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 오영국
최근 전 세계는 탄소중립 달성 및 미래 에너지 수요 증가에 대한 대응책으로 핵융합에너지를 주목하고 있다. 해외 빅테크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 세계 주요국들은 민간 기업의 협력을 바탕으로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KFE, Korea Institute of Fusion Energy)은 우리나라 유일의 핵융합 전문 연구기관으로 핵융합에너지 실현을 위한 국내 핵융합 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한다.
인류의 미래를 비추는 혁신 : 핵융합에너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전경
핵융합에너지는 태양과 같은 별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리이다. 핵융합에너지의 연료는 바닷물 속에 무한히 존재하는 중수소와 리튬이다. 또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이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도 발생하지 않는다. 바닷물 45리터 속 중수소와 리튬배터리 1개 분량의 연료로 무려 석탄 40톤 분량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고효율 에너지이기도 하다. 오로지 바닷물을 에너지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중심이 되는 혁신적 에너지인 것이다.
KFE의 역사와 발전
우리나라는 1995년 국가 핵융합 연구개발 기본계획이 확정되며 핵융합에너지 연구의 첫발을 내디뎠다. 핵융합 연구의 후발주자였던 우리나라는 당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시도하지 않았던 초전도자석을 적용한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를 건설하여 핵융합 선진국 반열로 빠르게 도약하는 ‘중간진입전략’을 실행하였다.
이때 당시 국가의 핵융합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전담 수행할 전문 조직으로 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내에 ‘핵융합 연구개발 사업단’을 신설한 것이 현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2005년 10월 1일 KBSI의 부설로 ‘핵융합연구센터’가 출범하였고 2006년 ‘핵융합에너지 개발 진흥법’ 공표에 발맞춰 2007년 ‘국가핵융합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20년 11월 20일에는 안정적인 핵융합 연구·개발을 위한 전문 연구기관의 설립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대두되며 마침내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탄생하였다.
한국 핵융합 연구의 자부심, 인공태양 KSTAR
1996년 KFE의 전신인 핵융합 연구개발사업단은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 장치 개발 사업을 ‘KSTAR 프로젝트(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라고 명명했다.
당시 핵융합 선발국들도 선뜻 시도 하지 못했던 나이오븀-주석(Nb3Sn) 합금 소재의 초전도자석으로 핵융합 장치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나라들은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02년 초전도자석을 국내 기술력으로 완벽하게 제작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후 2007년 마침내 KSTAR 장치가 완공되었고, 이듬해 첫 실험에서 즉시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하며 KSTAR 신화가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특히 KSTAR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정적인 성능을 기반으로 핵융합 초고온 고밀도 플라즈마 운전에 대한 난제 해결을 선도한다. KSTAR는 장치 운전 시작 만 2년 만인 2010년 가장 대표적인 플라즈마 운전 방법으로 손꼽히는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모드(H-모드)’ 구현에 성공하였다. 이후 지속적인 장치 성능 향상과 운전 역량 강화를 통해 지난 2023년 캠페인에서는 무려 102초간 장시간 운전에 성공하였다. 또한, 지난 2022년에는 H-모드의 단점으로 꼽히는 ‘경계면 불안정 현상(ELM)’이 발생하지 않아 더욱 플라즈마 운전 안정성을 향상할 수 있는 새로운 플라즈마 운전모드인 ‘FIRE 모드(Fast Ion Regulated Enhancement mode)’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되어 핵융합 연구계의 큰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한국의 인공태양 KSTAR
KSTAR는 지난 2023년 장치 내부에서 고열속을 견디는 핵심 부품인 ‘디버터’를 텅스텐 소재로 교체하여 더욱 선도적인 플라즈마 운전 연구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이 외에도 지속적인 장치 성능 개선과 AI 기술 기반의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한 Virtual-KSTAR 구축 등을 통해 핵융합 난제 해결을 위한 또 다른 도약을 이루어 낼 것이다.
국제 핵융합 프로젝트 주도하는 우리의 기술력
KFE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업의 국내 전담 기관으로서 ITER의 성공적인 건설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ITER 사업이란 우리나라 등 7개국이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가능성을 실증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핵융합 장치를 건설·운영하는 인류 최대 규모의 과학기술 프로젝트이다.
우리나라는 KSTAR 건설 과정을 통해 핵융합 기술력을 인정받아 2003년 정식으로 ITER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ITER는 각 회원국에서 제작한 부품을 프랑스 ITER 건설 현장에 조달하여 조립하는 방식으로 제작되며, 우리나라는 진공용기, 열차폐체, 조립장비 등 주요 품목 9가지의 조달을 담당한다. KFE ITER 한국사업단은 국내 산업체와의 기술 협력을 바탕으로 조달 품목을 성공적으로 개발·제작하고 적기 조달을 통해 ITER의 성공적 건설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국내 기업들은 KSTAR 및 ITER 사업을 통해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타국 조달품 수주 경쟁에 참여한 결과, 무려 7,477억 원(’24.7 기준)의 수주 기록을 달성하고 있다. KSTAR와 ITER 건설 및 조달 참여가 민간 기업의 기술 혁신으로 이어진 결과, 국내 핵융합 산업체가 170여 개를 이루어 핵융합 생태계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KFE 중심의 국내 산·학·연 핵융합 생태계는 최근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실제 핵융합 전기 생산을 실현할 핵융합 실증로 건설을 위한 개념설계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KSTAR의 신화를 만들어냈던 산학연의 역량을 다시 한번 결집하여야 할 때이다.
에너지 자립 실현의 구심점 역할 수행
최근 전 세계 핵융합 연구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핵융합 주요국들은 공공주도의 연구개발 정책에서 나아가 핵융합 핵심·혁신 기술 확보를 위해 민-관의 협력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핵융합 기술의 경쟁 우위 달성을 위하여 글로벌 협력이 핵융합 연구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도 민-관 협력을 바탕으로 핵융합 실현을 앞당기기 위한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안)’을 발표하였다. 해당 전략은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하여 다양한 핵융합 연구개발 지원과 인프라 확충, 산업체와의 협력 강화 등을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핵융합 연구 및 기술 개발에서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핵융합 산·학·연의 역량을 밀집하여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립 실현과 에너지 주도권 확보를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필자소개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 박사
(전) ITER국제기구 장치운영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