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작가인가
선생님이 쓴 글을 보면서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헤더 리치, 로버트 그레이엄 공저)에 나오는 작가 정의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몇 개에 해당하는지 동그라미를 쳐보시기 바랍니다.
1. 대상을 자세히 보는 관찰자(자세히 보라) ( )
2. 대상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경청자(잘 들어라) ( )
3. 대상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애니미스트(생명을 부여하라) ( )
4. 대상에게 애정을 갖는 휴머니스트(인간을 써라) ( )
5. 대상을 자기 나름대로 정의하는 안내자(정의를 내려라) ( )
6. 대상에서 삶의 위치를 깨닫는 철학자(의미를 찾아라) ( )
7. 대상을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보는 각성자(자신을 돌아보라) ( )
8. 대상의 미래 모습을 예측하는 예언자(삶의 방향을 찾아라) ( )
9. 대상의 과거 모습을 반추하는 성찰자(대상을 과거, 현재, 미래의 관점에서 보라) ( )
10. 대상에게 왜라고 질문하는 질문자(당연한 것도 다시 캐물어라) ( )
11. 대상을 남달리 낯설게 만드는 이방인(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라) ( )
12. 대상의 여러 면을 두루 쪼개보는 분석자(자세히 보고 가지치기를 하라) ( )
13. 대상을 자신의 내면에 비춰보는 연결자(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을 연결하라)
몇 개 이상이어야 한다는 정답은 없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요.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한순간에 이런 내용을 담은 글을 써낼 수 있을까요? 프랑스 정신의학자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평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무의식들도 언어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데, 무질서하기보다 질서정연하게 구조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를 길어 올리면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잊고 있던 기억들, 평소 생각지 못했던 생각들이 쭉쭉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 기억의 문자화를 막는 일차적 장애가 수치심이고요. 무의식인 속마음이 드러나면 창피하잖아요?
그럼 수고스럽지만 선생님이 쓴 A4 한 장 글을 보면서 문장별로 작가 정의 숫자를 연결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어렵지요? 왜 그럴까요?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문장에 수많은 생각들이 중첩되어 들어갈 수 있는 게 우리의 생각입니다. 다만 그 생각들이 나올 때는 가급적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생각이 담기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이게 많이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박문호 박사의 <뇌, 생각의 출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최종 목적지인 생각의 출현까지 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는데, 그중 중요한 것으로 다음의 대략 스물다섯 가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1. 신경세포 2. 이온 채널 3. 신경계의 진화 4. 신경계의 발생 5. 감각 입력과 운동 출력 6. 유아기의 뇌 7. 기억과 학습 8. 신경전달물질 9. 감각기관의 진화 10. 운동 출력 11. 감정 12. 작업 기억 13. 주의 집중 14. 1차 의식 15. 호모사피엔스에서 가능하게 된 언어를 매개로 한 고차 의식 16. 언어의 출현 17. 자폐증 18. 감각질 19. 궁극적인 자아의식 20. 신념 기억과 학습 21. 꿈의 진화 22. 감정과 느낌 23. 무의식적 자동 반응 24. 신경신학 25. 세계상의 출현(바깥세상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으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내면화하게 되었는가의 문제).”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인데, 정말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25가지 항목을 또 파고들어야 생각의 윤곽이 잡힐 텐데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전공자 혹은 공부에 취미가 없다면 가까이 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선생님들이 쓴 A4 한 장에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나이, 학력, 성별, 경험의 많고 적음, 책을 많이 읽고 적게 읽음, 글쓰기에 관심이 있고 없음을 떠나 A4 한 장을 완성했다면 그것으로 글쓰기 업그레이드는 준비되었습니다. 글을 써낸 순간 선생님은 작가가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글과 상호작용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길러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