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청두에서 감숙성 천수까지는 기차로 17시간 북상하는 거리다.
여기는 중국이다를 실감하는 일이 발생했다.
1시간 일찍 기차역에 도착했다. 11시다.
대기실에서 약 30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갈 입구에 길게 앉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옆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물어보니 15시 30분으로 현광판이 바뀌었다고 한다.
3시간 40분 연착한다는 내용이다.회계사로 일한다는 이 아이는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던 옆 아저씨 말을 건낸다.
한국사람을 실재로 처음 본다고 신기해 한다.
TV를 통해서만 보던 사람을 처음 보니 궁굼한 것이 많은 모양이다.
이미 여권검사를 하고 입장한 상태라 소란스러운 대합실에서 5시간을 기다렸다.
아무도 불평하거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 기차의 종착역이 청해성의 주도 시닝이라 회교도 인이 많이 눈에 뛴다.
외양도 복장도 중국인이 아니다. 물론 중국말을 하는 중국인이기는 하지만 한족과는 다른 아랍 계통의 종족이다.
어느 회족 가족은 작은 밥상을 통로에 펴놓고 둘러 앉아 국수로 점심을 먹고있다.
3층 침대기차에 탑승했다. 복도로 이어지는 6인실 침대차이다.
아래 두 자리는 60대부부,맞은 편 2,3층은 5살아이를 대리고 천수로 귀가하는 부부
그리고 옆칸의 청해대학 진로담당자까지 합세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중국 오지를 버스나 기차로 여행하는 외국 관광객은 거의 없다.
어쩌면 아예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동 중 만나는 사람들 모두 우리를
신기해 하면서 친절하게 대해 준다.
아침 차창에 비치는 풍광이 지금까지 보아 온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붉은 진흙 빛을 띄는 강과 황토색 다랭이 밭을 제외하고는 우리와 친숙한 높이의
산들이 연속해 있는 계곡을 따라 간다.
아침 9시 도착, 3일 후 난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난주는 감숙성의 주도이고 실크로드상의 중요한 도시이다.
기차역에서 도보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중학교와 담을 같이 쓰고 있는 youth hostel.
오늘은 하루 종일 이동하면서 보냈다.
청두에서 시닝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청두역. 이 곳에서 5시간을 앉아 기다렸다.
천수 날씨는 사막 기후에 가깝다.
건조한 탓에 땀이나지 않아 청두에 비하면 훨씬 견딜만하다.
지금 막 숙소에 도착한 아가씨, 천진사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라고 한다.
큰 키에 강하게 생긴 아이다.
오후에 민속촌을 같이 갔다.
천수는 작은 도시지만 두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다. 천수는 하늘이 준 물이라는 뜻이다.
넓은 강은 중간에 높은 담으로 나뉘어 있다.
강물을 이렇게 나눌 생각을 하다니 중국답다.
티벳에서 내려오는 눈 녹은 초록색물과, 흙탕물로 나뉘어 있어
흙탕물은 그냥 흘려보내고 초록물은 땜으로 막아 조금씩 흘려 보내고 있다.
민속촌은 혼잡한 다운타운 내에 있다.
명나라 초에 귀향한 초씨의 집이라고 한다.
고색창년한 건축양식의 500년 된 건축물이다.
교사인 이 아가씨 역사에 관심이 많다.
우리에게 관심이 많아 연신 우리 사진을 찌는다. 어디에 쓰실려고..
민속촌 옆 공자 사당에서 휴식을 취하고 기차역에서 숙소 까지 걸어오면서 저녁 식사를 했다.
만두 ㅈ가지와 밥 그리고 수박으로 저녁 식사. 우리가 식비를 내려고 해도 받지 않고 자신이 계산했다.
내일은 천수에 온 주목적인 맥적산에 간다.
낙양의 용문석굴에 갈 시간이 없어 꿩 대신 닭으로 선택한 것이 천수의 맥적산 석굴이다.
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호두를 10원에 한근을 사서 하루 종일 까 먹으면서 다켰다.
기차역에서 34번 버스가 간다. 버스비가 5원이라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상당히 먼 거리에 있다.
종점에서 내려 숲길을 따라 올리간다.
입장료 70원, 우리는 경노 우대로 반표.
숲길을 약 3키로를 걸어가면 직벽위에 석실을 만들어 놓은 놀라운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중국이 조금은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북위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를 거치면서 계속 조성한 석굴이다.
북위가 AD 300년대 국가이니 초기에 조성한 갓은 1700년전 작품이다.
내려오는 길에 식물원까지 2시간 이상 숲길을 걷다 5시경 귀가.
절벽위 바위를 깎아 만든 불상의 크기가 고개를 치켜들어 보아도 턱만 보일 정도이다.
절벽위 바위에, 통로를 만들었다.
복희사당에 갔다. 긴 붓으로 내 이름을 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냥 소일꺼리로 써주는 할아버지.
복희사당은 우리나라 단군신화와 같은 중국 건국 신화에 나오는 창조의 신
복희의 사당이다. 그의 고향이 이 곳 천수라고 한다.
천수 포도 맛이 그만이다. 단맛이 입안에서 씹이는 느낌이 든다. 7원에 배낭 하나 가득이다.
사당에는 박물관이 내부에 있다.
기원전 유물에서부터 원 명 청나라 그리고 불교 유물과 서예가 시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돌로 우주의 형샅을 받치고 있는 팔쾌.
복희 사당 후문에서 가까운 옥천관.
옛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재현한 곳이다.
입장료가 있어 그냥 지나쳤다.
남곽사.
천년 고찰로 유명한 절이다.
산 정상까지 셔틀이 다니지만 우리는 걸어서 올라갔다.
절에서 천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호객행위를 하는 운전수 아저씨,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동베이 삼성에서 한국사람들이 조선족에게 나뿐 짓을 많이 했다고 열변을 토한다.
별로 인상이 좋지 않다. 바로 하산.
천수는 유비와 조조가 영역을 넓이기 위래 싸웠던 중국의 중앙에 의치하는 것이다.
숙소 뒤 산 절개지에 있는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