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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척교회가 살아야 한국교회가 산다 | ||||||
이덕진 목사(명문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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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총신대학원에서 ‘교회개척과 성장’에 관하여 몇 년간 강의를 해왔다. 신학생들은 총신에 처음 입학할 때만 해도 불덩어리 가슴으로 온 민족과 세계를 복음화 시키겠노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입성한다. 그러나 점차 졸업반이 가까워지면서 그 꿈은 벽에 부딪친다. 전임 부교역자로 가기도 쉽지 않고 개척하기는 더더욱 만만치 않은 현실 때문이다. 필자는 1987년 36세 되던 해에 총신대학원에 들어갔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당시 고등학교 교사 10년차 생활을 접고 동기들 보다 8~10년 늦은 나이에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다른 공부는 그런대로 하겠는데 히브리어, 헬라어는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웠다. 추시, 재시, 삼시 등을 거쳐 겨우 학점을 딴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지금도 새롭다. 서른여섯이란 나이에 아내와 두 살, 네 살 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긴 했는데 퇴직금으로 전세 방 두 칸 얻고 나니 별로 남는 게 없었다. 교육전도사 자리를 알아봤지만 나이가 많아서 받아 주는 데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전셋집 거실에서 개척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처음 우리 네 식구, 친구 가족, 조카 등등 모두 10여명이 모여서 시작을 했는데 2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제법 교세가 있는 교회로 성장했지만 그때 교회개척의 고달픔과 애로는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게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1박 2일의 비록 짧은 일정이지만 8년 전부터 개척교회 목회자 부부를 초청하여 서로 교감하며 유익함을 나눌 수 있는 세미나를 열게 되었다. 짧은 일정에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의외로 효과는 있었다. 그들에게는 방법 보다는 위로와 용기를 얻고 의욕을 충전하는 일이 더 시급했다. 함께 기도해주는 교회들이 있고 교감하며 힘을 나눌 수 있는 주변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들의 도전은 새로운 비전과 의욕으로 채워졌다. 목회는 소명으로 하지만 너무 지치고 힘들때도 있기에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처럼 교회도 많고 교회의 위상도 떨어진 현실에서 전도를 통해 교인을 늘려 나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작고 힘없는 개척교회는 더 할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경제가 튼튼하려면 중소기업이 살아야 하듯 한국교회 역시 기존의 교회들이 자립의 기반을 잡고 새로운 개척교회들이 성장할 수 있는 저변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간판을 달고 십자가를 세워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청년 때부터 우리 교회에서 성장한 부교역자가 있었다. 시무한지 10년이 되자 교회를 개척 하고 싶다고 했다. 사모와 열심히 기도한 후 연고지를 중심으로 알아보러 나갔는데 돌아와서 하는 말이 앞, 옆, 뒤 사방으로 교회가 있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다고 했다. 교회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보니 개척교회를 한다는 것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공격해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시 소명에 불을 붙여 각오를 새롭게 하여 개척현장으로 내보냈다. 한동안 힘들어 하면서 부침개 전도, 호박죽 전도 등 온갖 아이디어와 노력을 기울이더니 지금은 멋진 성전을 세우고 잘 성장하고 있다. 성경적으로 보면 교회는 인간이 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의 기업이 아니며 하나님의 살아계신 진리와 생명의 기둥이다.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해서는 안된다. 아울러 교회는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종교기관이다. 요즘처럼 교회가 경쟁의 관계가 되고 개인기업 처럼 돈에 의해 사고 팔리는 물건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다른 교회는 안되는데 우리교회는 된다고 좋아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살면 함께 살고 죽으면 함께 죽는다는 공감의 정신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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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개척교회가 반드시 부흥하길 소원합니다 ~!
대형교회로의 지나친 편중 현상은 한국교회에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