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사찰의 연혁은 662년(신라 문무왕 2)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기 전 의상(義湘)이 백련지(白蓮池) 동쪽에 백련암(白蓮庵)이라는 작은 암자를 지은 것이 지금의 백련사의 창건이다.
그 뒤 30년만인 692년(효소왕 1)에 큰 비가 내려 연못과 암자가 매몰된 것을 819년(헌덕왕 11)에 무착(無着)스님이 옛터에 중창하였다.
이후의 연혁은 1588년(조선 선조 21)에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쓴 『조선사찰사료』,「치악산백련사중창기문」에 자세히 전해진다.
이에 따르면 1008∼1016년 사이에 연화암(蓮花庵)이라는 초가가 있었으며, 1116년(고려 예종 11)에 하의(荷衣)라는 도인이 이 초가에서 수도하였다고 한다.
1910년에 응파 유일(有一)이 중수하였으나, 1916년에 화재로 모든 가람이 소실되었다. 그러자 같은해 10월에 윤인선(尹仁善)스님이 산성안의 지금의 위치에 가람을 중창하고 이름을 백련사로 바꿨다.
근대에는 1947년에 무룡 태순스님이 중수했으나,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또 한번 소실되었다. 이후 1957년에 박현장스님이 중창하고, 1959년과 1962년에 또 한차례 중수되었으며,
현재의 가람은 1976년에 일운 담월(一耘 潭月)스님이 주석하면서 지금의 가람을 이루었다.
극락전의 아미타여래좌상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전통사찰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백련사라는 사찰명은 예부터 백련이 자생하여 백련지라고 부르던 남쪽의 작은 연못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산내암자로는 미륵사ㆍ신흥사ㆍ천수암ㆍ은적암ㆍ청련암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그 터만이 전해진다
첫댓글 백련사 가는 입구에 시골우리집도 있다우 철따라피는도 예쁘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