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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사막 은하수 아래서>
이영남
이번 몽골 여행만큼 설렘과 답답한 마음이 뒤엉킨 가운데 길 나서기는 처음이다.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이룬 칭기즈칸의 본향인 몽골은 지구상에 몇 안 되는 오염 없는 청정한 곳이기에 오랫동안 이곳 여행을 소망하였는데 어찌 설렘이 작을까? 그러나 몽골 말이라곤 “영어 할 줄 알아요?”가 전부인 데다가, 몽골에 다녀온 사람마다 몽골에서 영어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척 어렵다고 일러준 것이 답답함의 원인이다.
인천에서 몽골의 울란바토르까지는 세 시간 비행 거리다. 비행고도가 낮은데다가 날씨가 맑아 땅 위의 것들이 또렷하게 보인다. 비행기는 제 그림자를 충실한 방자처럼 앞세우고 북서쪽으로 난다. 비행길 아래 듬성듬성 흰 구름이 솜처럼 떠 있고, 땅위에 드리운 구름뭉치의 감청색 그림자가 초원의 푸른색과 어울려 삼차원의 화폭으로 다가온다. 평원을 나르던 비행기가 탕산 (Tangshan)이란 도시를 지나더니 산악지대가 보인다. 동북아시아 대륙의 척추처럼 보이는 산악을 지나면 몽골의 대지다.
몽골이란 말은 ‘용감한’ 또는 ‘우리의 물’이란 뜻을 지닌 부족의 이름이라고 한다. 몽골국은 1921년 러시아의 도움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된 후 1990년 문호 개방 시까지 러시아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깊은 연대를 맺고 있었기에 우리에게는 금국(禁國)이였다. 몽골의 인구는 240만, 땅 크기는 한반도의 7배다. 연평균 강우량 200 밀리미터 안팎으로 매우 건조하며, 평균 해발 1600 m의 고원지대로 국토의 40%가 고비사막이다. 고비는 ‘사람도 동물도 살 수 없는 황폐한 땅’ 이란 뜻이란다.
사막지대를 지나면 푸른 초원(steppe)이다. 초원지대가 유목하는 몽골인의 생활터전이다. 초원지대 북쪽으로는 침엽수림대가 이어져 있다. 몽골에는 17 부족이 있는데 할흐 몽골족이 81%로 주종을 이루며 종교는 라마 불교이다. 할흐 몽골족은 몽골 반점을 지닌 우리와 외양이 비슷한 사람들이다. ‘붉은 영웅들’ 이란 뜻의 울란바토르는 1921년 공산 혁명 이후 몽골의 수도로 인구 70여 만의 몽골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며 울란바토르 상공을 한 바퀴 선회하면서 도시의 전경을 볼 기회를 주더니 활주로에 내려앉는다. 공항의 풍경이 60년대 초 김포 비행장 같다. 여행 성수기인 여름철에 하루에 1-2대의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는 공항,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동절기라 기상관계로 오가는 비행기 수가 절반 이하로 준다는 국제공항이다. 참으로 한적하여 오랜만에 고즈넉한 여행을 하고 있다.
공항에서 시내 중심가인 슈크라바타 광장 한 쪽에 있는 호텔까지는 20킬로미터가 안 되는데 도로가 울퉁불퉁하여 제 아무리 빠른 택시라도 반시간 정도는 걸린다. 길 나선 사람이 서두르면 뭣 하라, 천천히 달리는 차 속에서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 건물, 간판을 바라보면서 몽골의 풍정(風情)을 익혔다. 한국 상품의 광고가 곳곳에서 눈에 뜨이고 한국 상점도 간혹 보인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본 한류(韓流)란 말을 실감한다.
UNESCO와 미국 미생물학회 후원으로 이루어진 닷새 동안 몽골 국립대학교 생명과학대학에서의 강연 및 협동연구추진의 일정을 마치고는 몽골 역사 탐방, 몽골 초원과 고비 사막 여행길에 나섰다. 오래전부터 염원했던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싶었던 곳으로의 설렘 가득한 여행이다. 울란바토르 시내 구경과 자연사 박물관, 역사박물관 관람 및 몽골초원 여행에는 몽골대학교 미생물학과의 교수 두 분이 안내를 자청했다. 모두 영어가 유창하고 불어나 독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그중 한 분은 동양, 서양 역사에 관한 화제가 무궁한 사람으로 서로 뜻이 맞아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몽골의 9월의 날씨는 아침저녁은 조금 싸늘하여 보온성 옷이 필요하나 낮 기온은 섭씨 20도 전후로 쾌적하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휘돌아 흐르는 톨 강을 건너 침엽수림이 잘 보존된 보그도 (Bogdo) 산기슭에 오르는 길목에 ‘이태준 박사 기념공원’이란 한글 팻말이 보인다. 세브란스 의전(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2회 졸업생인 이태준 박사는1914년 일제 강점기에 몽골에 자진 망명하여 1921년 백러시아 군에 의하여 암살될 때까지 몽골 사회에 크게 공헌한 사람이다. 보그도 산기슭에는 자이산(Zaisan) 혁명 영웅들의 기념탑이 있고 탑 기둥에는 슈크라바타, 칼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부조상이 둘러있다. 기념탑 옆에 서니 울란바토르 도시 전경이 훤하게 눈에 들어온다. 가을 하늘에는 가벼운 흰 구름이 수줍은 듯 떠 있고 공기는 신선하고 햇볕은 따스하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고비 사막 황토지대에서 발굴한 거대한 공룡 뼈와 공룡 알 화석을 보았다. 세계에서 제일 큰 공룡화석이라는 그들의 말에 수긍이 간다. 국립 역사박물관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경상도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똑 닮은 암각화 탁본이 우리를 맞는다. 어쩌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빗살무늬토기, 무문토기, 움집 등 선사실(先史室)에 진열된 많은 유물들이 마치 내가 경복궁 박물관 선사실에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착각을 준다. 몽골 반점이 아니라도 이러한 선사 유물들과 몽골 선사인의 생활상이 내가 몽골 기마 민족의 후예임을 극명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도시를 벗어나니 낮은 구릉의 초원이 펼쳐있고 도로는 비포장이다. 자동차는 뒷꽁지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꺼릴 것 없이 달린다. 몽골 초원에는 교통표지판도 길 안내판도 없다. 누런빛이 감도는 풀밭이 끝 간 데 모르게 펼쳐있다. 초원 위에는 말, 양, 검은 염소, 누런 소, 검은 소들이 자연에게 묵념이라도 하는 듯 움직임 없이 서 있다. ‘목가적 평온함’ 이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ger)도 간혹 눈에 띈다. 동행하는 교수가 몽골 초원의 참모습은 6월에 있다면서 한 프랑스 여인이 6월에 몽골 초원을 보고는 그 빛이 매우 아름다워 그만 울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갖가지 들꽃들이 서로 다투어 피는 6월의 초원의 빛을 언젠가는 꼭 보리라. 햇빛 찬란하고 물 맑은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말 등에 올라타고 초원을 거닐고, 물이 너무 청정해 유목민의 식수로 쓰인다는 냇가 풀밭에서 피크닉도 하면서 호사스런 시간을 보냈다.
몽골 전 국토의 40%를 차지하는 고비사막은 모래로만 된 사막과 듬성듬성 풀이 자라는 사막지대로 구분된다. 고비사막 여행은 오기(Oggi)란 이름의 통역사가 동행했다. 하얀 피부에 복사꽃 빛 볼, 큰 눈망울, 삼단 같은 머리채를 가진 늘씬하고 청순한 스물한 살의 몽골 미녀다. 오기는 4년간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워 일본어 구사는 제법이나 2년쯤 독학한 영어는 서툴다. 내가 그녀의 두 번째 고비 여행 고객이라고 한다. 안내자의 영어가 서툴면 어떠하랴, 아름답고 상냥한 사람과의 여행은 아무나 하나.
고비로 가는 비행기는 정원 50명의 소련제 구형 쌍발 프로팰러 비행기로 외형, 내부 모두 초라하나 스튜어디스는 제법 세련되어 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양력을 얻고자 10여 분간 프로팰러를 돌리는데 그 소리에 지축이 흔들려 공포를 자아낸다. 비행 도중에도 윙윙, 키르릉, 카르릉, 크르릉, 샤아샤 등 각가지 소음을 내기에 별 탈 없이 목적지에 닿을까 걱정되었다.
몽골의 강들은 마치 커다란 구렁이가 누런 대지 위를 슬슬 기고 있는 것처럼 구불구불 흐른다. 초원(steppe)을 벗어나니 허연 소금 띠를 두른 호수가 간간이 보인다. 먼 옛날에는 바다였던 곳이 대륙의 염호 (鹽湖)로 남게 된 것이다. 초원에 이어지는 지형은 모래 (sand dune) 사막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래밭이 끝도 없이 펼쳐있는데 모래판의 모습이 매우 곱다. 모래 위에 고운 바람이라도 지나면 모래가 흐느끼듯 소리를 내는데 이를 모래울음(沙鳴)이라고 한다지.
한 시간 반을 날던 비행기가 앞세운 제 그림자와의 점점 거리를 좁히더니 이내 폭발음을 내며 땅덩어리와 부딪고는 모래사막을 길게 활주한다. 모래사막이 활주로라니, 색다른 경험이다. 하늘을 덮을 만큼 흙먼지가 인다. 사막의 강한 바람이 흙먼지에 속도를 달아준다. 텅 빈 사막에 이십여 채의 게르가 보인다. 거기에 우리의 숙소가 있다. 공항을 빠져 나오니 새까만 얼굴에 친진한 웃음을 띤 남자가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를 고비사막으로 안내할 운전기사인데 그는 소련제 지프차 한 대포로 15년간 몽골 구석구석을 누빈 베테랑이란다.
고비사막에는 도로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고 사람, 차, 말, 낙타가 지나간 자취가 길이 된다. 사막에는 교통 표시나 이정표, 또는 안내 표시 같은 것이 없다. 그러나 몽골 사람들에게는 사막의 풀 한 포기, 모퉁이의 돌 하나, 약간 도톰한 흙더미, 모래벌판이 안내판이요 이정표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초원의 길잡이로 삼는 유목 몽골인이 사막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란 절대 없다. 구닥다리 지프가 기운차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막을 내리달아 ‘독수리 계곡’이란 뜻의 율린암 계곡으로 향한다. 독수리가 양 날개를 펴고 먹이를 노리는 형상의 바위산인데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같은 곳이다. 바위산이 수 킬로미터 펼쳐있는데 계곡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바위산이 높아지며, 불어난 계곡 물로 인한 기온이 강하하여 염천(炎天)에도 얼음덩이를 볼 수 있다. 사막에서 얼음덩이를 본다니 경이로다!
어린애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십 년째 공룡화석을 발굴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갔다. 도중 사람이라곤 전혀 볼 수 없는 외딴 사막에서 혼자 사는 유목 민가에 들리니 높은 광대뼈의 전형적 몽골 아주머니가 무공해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맞는다. 염소 젖 짜는 것도 보여주고 마유(馬乳)를 발효하여 만든 몽골 특유의 우유차 (아이락, airag), 치즈, 크림과자 등을 대접한다. 사람이 그리워서였을까? 무지개나라에서 온 손님이라며 낙타도 태워준다. 낙타 등에 타 보기는 난생처음이다. 해가 중천에 닿을 즈음 주홍색 진흙이 두꺼운 지층을 이룬 풀 한 포기 없는 바양쟉(Bayan Zag) 구릉 지대에 닿았다. 사람보다 먼저 지구의 주인이었던 공룡들의 존재와 소멸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생명체라곤 전혀 볼 수 없는 황토 사막 먼 곳에 작은 점으로 보이는 공룡 화석 발굴 팀 숙소가 공룡의 전설처럼 아득함으로 다가선다.
잘디잔 자갈과 모래로 된 대지 위를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고 또 달렸다. 지평선 저 멀리에 물결이 출렁거린다. 물결치는 호수만 아니라 호수 주위에 수풀도 보인다. 더위에 지친 나그네가 오아시스인가 싶어 가까이 가면 사라진다는 신기루다. 수차례 떠오르는 신기루에 속다 보니 진짜 오아시스 마을이 나온다. 게르도 있고 학교도 있고 바라크 형 집도 여러 채 있고 마을 공동 채소밭도 있다. 밭에는 수박, 오이, 양파, 당근, 토마토, 서양 호박, 오이, 상추, 무 등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자라고 있다. 몽골에 와서 처음 보는 싱싱한 생명체이다. 탄성이 나올 만큼 반가웠다. 오아시스 마을에서 농약 없이 재배한 갓난애의 머리만 한 수박 한 통을 샀다. 막대 저울로 무게를 달아 판다. 마을 앞쪽에 구릉에 오르니 바위 아래에서 샘물이 솟는다. 오아시스 마을의 수원지로 상쾌한 물맛이 그야말로 감로수다.
오아시스 마을을 떠난 차가 방향을 가름할 수 없이 무작정 달리더니 투그루시리(Tugrugshiree)란 지역의 황금빛 모래 산(sand dune) 앞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모래 한 줌을 손에 움켜쥐니 곱디고운 모래가 스르르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내린다. 손안에 남는 것이 없다. 황금빛 모래 산이 바람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움직이는 예술작품 (natural mobile art)이다. 바람이 좀 세어지면 사명(沙鳴)까지 곁들인다. 모래의 그림과 소리가 잘 어울린다. 모래 산을 뒤로하고 또 구불구불 사막 길을 또 달리니 이번에는 미황색 모래가 겹겹이 이랑을 이룬 모래 계곡 (sand valley)이 눈앞에 펼쳐진다. 미황색 계곡과 ‘불타는 절벽 (flaming cliffs)’이란 이름의 진홍색 지층이 수직으로 맞닿아 장관을 이룬다.
맨발로 모래 계곡을 걸어 내려갔다. 태양열에 뜨거워진 모래의 감촉이 간지럽다. 나 보다 한 발 앞서 모래 위를 지나간 도마뱀의 자취가 섬세한 그림으로 남아 있다. 운전기사가 모래 언덕을 기어올라 손으로 모래를 쫙 흐트러뜨리니 위쪽의 모래가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모래 물결을 만들어내는 형상이 참으로 아름답다. 어쩌면, 어쩌면 하는 소리만 연발했다. 오기가 모래 속에서 찾아낸 동그랗고 하얀 작은 돌을 ‘새끼 공룡 알 화석’ 이라며 내게 건네기에 공룡 알은 무슨 공룡 알, 새알이나 뱀의 알이겠지 했더니 얼굴에 홍조를 띠며 날 놀리려고 해본 소리란다. 스물한 살 몽골 아가씨의 홍조가 싱그럽게 가슴에 와 닿는다. 낮에는 사막을 쏘다니다가 아득한 지평선에 붉은 낙조가 드리울 때면 캠프로 돌아온다. 이렇게 쏘다닌 사막 길이 수 천리는 될 듯싶다.
사막의 밤바람은 여행자에게 편안한 잠을 허용하지 않는다. 게르 천장에 나 있는 창문 덮개의 헝겊자락과 비행관제탑의 깃발이 바람에 몸부림치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문을 열고 어둠에 잠긴 대지 위로 나온다. 바람이 머리칼을, 앞가슴을 풀어헤친다. 어둠 속을 걷는다. 풀 아래에 잠자던 도마뱀이 발소리에 놀라 달아난다. 아득한 지평선, 어디를 둘러봐도 전깃불이나 촛불처럼 사람의 기술로 만들어낸 불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아름다운 어둠이다. 검은 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영롱하다. 마치 낮에 보았던 황금빛 모래알이 날이 저물자 모두 하늘로 올라가 땅을 내려다보는 듯싶다. 머리 위 하늘을 올려다보니 찬란한 은하수가 얼굴 위에서 흐른다. 은하수가 머리 위에 있으면 모든 것이 풍요로운 가을이라 말씀하시던 어머님 모습이 떠오른다. 수많은 별 중 어느 별에 어머니가 머물고 계실까? 지평선 가까이 내려앉은 별에 올라타 징검다리삼아 별들을 건너가면 어머니가 계신 곳에 닿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어머니 생각에 눈이 촉촉해진다. 2001년 9월 초가을
이영남 약력
강원 원주 출생
서울대학교 약학과 졸, 미국 마사츄셑쯔주립대학교 미생물학과 졸(이학박사)
충북대학교 미생물과 교수 역임.
현 충북대학교 명예교수, (사) 한국문인협회 회원(수필),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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