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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사기7장1~14절
제목 :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미디안과 일전을 앞두고 하나님은 거듭 군대 축소를 지시하십니다.
동시에 대적들의 심리 상태를 미리 보여주심으로 기드온에게 승리의 확신을 갖게 하십니다.
1. 하나님의 시험(1~8절)
1)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하롯 샘 곁에 진을 쳤습니다(1절)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여룹바알 - '바알과 논쟁하다',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으로 기드온이 바알(Baal)의 단을 훼파하고서 얻은 이름입니다.
하롯샘 -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얄룻'(Jalud) 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샘은 '이스르엘 골짜기'의 바로 북쪽 길보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편 '하롯'이란 지명은 다윗의 30인 용사 중 '삼훗'과 '엘리가'의 출신지로(삼하23:25) 언급된 것 외에는 성경에 더 이상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블레셋 군대가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기 위해 진 친 곳이 '이스르엘에 있는 샘'곁이 었는데(삼상 29:1), 이것이 하롯샘과 동일한 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르엘 골짜기 주변에는 샘을 끼고 있으면서 군대가 진을 치기에 적당한 장소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모레산 -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모레'(Moreh)는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 있는 '세겜'에 속한 한 지역입니다(창 12:6;신 11:30).
그런데 이 지역은 전투 장소로 묘사된 '이스르엘 골짜기'남쪽에 떨어져 위치하고 있으므로 '모레 산'과 동일시될 수 없습니다.
다만 '모레 산'은 '하롯 샘' 북쪽의 어느 한 곳일 것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2)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백성이 너무 많아 미디안 사람 넘겨 주지 않겠다고 합니다(2절).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 사실상 기드온을 좇은 이스라엘 백성은32,000명으로(3절) 메뚜기 떼 같은 적들과 비교할 때(12절;6:5) 그렇게 많은 수효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기가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사람의 수효와 훈련 정도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거의 판 가름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36,000명의 알렉산더 대재(Alexander the Great)의 군대가 60만의 바사 왕 고레스 3세(Cyrus III)의 군대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이긴 적도 역사적으로 실제하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분명 그리 많지 않은 수의 이스라엘군이 엄청난 병력의 미디안 연합군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수효를 줄일 것을 명하셨는데,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에서였습니다.
즉 (1)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고
(2)믿음의 정예(精銳) 용사를 뽑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세우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 한 목적은 단순히 이방의 압제를 그치게 하려는 데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성시켜(6:7-16),
당신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주요 목적을 지니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전투 인원을 극소수로 제한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1)겸손히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였고
(2)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삼상 14:6).
3)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합니다(3절)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 하나님의 백성이 대적과 싸움에 있어서
'두려워서 떤다'는 사실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을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만일 이들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스스로 자긍할 자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 여기서 '길르앗 산'은 요단 동편의 갓, 르우벤, 므낫세 반 지파의 지경(地境)에 걸쳐 넓게 퍼져 있는 길르앗 산지를 가리킵니다.
때문에 혹자는 본절의 길르앗은 '길르앗'이 아니라 '길보아'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합니다(Clericus, Bertheau, Cassel, Cundall).
왜냐하면 현재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는 곳은 요단 동편의 길르앗 산지가 아니라 길보아 산기슭의 하롯샘 곁(1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길르앗' 이라하면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를 일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서'란 말은 '-으로'라고 번역하여, 본절을 '길르앗 산으로 떠나 돌아가라'라고 번역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기드온을 따른 사람들 중에는 그와 같은 지파인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가장 많았을 것이며, 많았던 점에 의거할 때(6:35) '길르앗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자연히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영역 성경 RSV도 이를'집으로 돌아가라'(let-return home)는 의미로 의역하고 있습니다.
4) 아직도 백성이 많으니 물가에 가서 시험하여 갈 자를 정하겠다고 합니다(4절)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 아마 1차 관문을 통과하고 남은 이들 백성 중에는 '졸장부'라는 비난이 두려워서 남아 있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전쟁의 승리 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을 불신앙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아 있는 1만 명도 많게 보시고 다시금 재감군(再減軍) 명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께서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했습니다(약 1:13).
그런데 본절에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시험하신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각각의 문맥에 따라 해결될 수 있습니다.
즉 야고보 사도가 말한 시험은
인간 자신의 욕심에 미혹되어 인간 스스로 고난에 빠진 것을 의미하며,
본문에서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전쟁에 합당한 자를 고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5) 물을 혀로 핥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지는 자 분리합니다(5절).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혀로 물을 핥는 자 - 6절에서는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를 말합니다.
카일(Keil)의 말대로 이들은 서서 물을 움켜 조금씩 핥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이들이 평소와는 달리 마음 놓고 물을 마시지 못한 것으로 보아 겁쟁이들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42).
한편 혹자는 이들이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들보다 훨씬 재빠르므로 전쟁에 보다 적합한 자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Goslinga).
아무튼 이들은 서서 혀로 물을 핥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주위를 경계하면서, 방심하지 않는자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매우 조심성이 요구되는 횃불 작전(15-23절)에 적합했을 것입니다(Wycliffe).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 - 전쟁에 임할 자들 치고는 너무도 태평스러운 자세를 취한자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조심스러운 작전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었습니다(6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삼백 명 - 이처럼 최종적으로 선발된 삼백 용사의 특징을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들은 장차 맞게 될 전투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않았습니다(3절).
즉 비록 수효 면에서는 엄청난 열세에 몰려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민족에 대한 소명으로 굳게 무장되었기에 담대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철저한 임전 태세(臨戰態勢)를 갖춘 자들이었습니다(6,7절).
비록 소수일망정 확고한 목표 아래 한 마음 한 뜻으로 강력하게 결집될 때 위대한 성과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7) 삼백 명으로 구원하며 남은 백성은 자기의 처소로 돌아가게 합니다(7절)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 이 승리의 약속은 이미 이전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주셨던 바 있습니다(6:16).
하나님께서는 우상의 산당을 제거하게 하시고(6:25,26) 군대를 선발하시는 등 모든 절차를 끝내신 후 비로소 기드온에게 승리를 다시 확증시키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 중 불신앙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하시고 오직 당신의 사역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 선발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본격적으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9-25절).
8) 기드온이 삼백 명은 머물게 합니다(8절).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 여기에서 '나팔'에 해당하는 단어인
'쇼파르'는 대개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백성들에게는 이러한 '나팔'이 필요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팔'은 예배나 축제 때에 악기로 사용되는 것을 제외하고(레 25:9;민 10:10;왕상 1:34) 전쟁이나 기타 비상시에 신호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민 10:9;31:6;수 6:4;삼상 13:3).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백성들은 돌아가는 길에 양식을 구할 수 있으므로
'양식'도 거의 필요치 않습니다.
따라서 본절의 '백성'은 선발된 300명임에 틀림없습니다.
히브리 본문 역시 '그 백성이 그들의 손에 있는 양식과 그들의 나팔을 취했다'라는 뜻인 점에 비추어 볼 때 그 같은 사실은 더욱 분명합니다.
2. 하나님의 표징(9~14절)
1) 그 밤에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하십니다(9절)
“[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그 밤에 - 문자적으로 '그리고 바로 그 밤에 그것이 있었더라'는 뜻입니다.
이는 곧 정예 300명을 뽑고 그 나머지 사람들을 돌려 보낸 그날 밤에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진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즉시 명령을 내리신 것은 아마 적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군대의 수효를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2) 기드온이 부하 부라와 함께 적군의 진영으로 내려 갑니다(10~11절)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11]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300명을 남겼으나 수많은 적들을 생각할 때 아직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지 못하여 하나님께 3번씩이나 표징을 구했었던 바 있으므로(6:17,36-40) 적을 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두려워 망설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또 다른 표적(13,14절)을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믿음 약함을 탓하지 않으시고 오직 믿음으로써 적과 싸울 수 있는 담력을 그에게 주시고자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전쟁의 승리가 기드온과 그의 백성들의 용기와 지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영광 받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군대가 있는 - 문자적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있는'이라는 의미입니다(Pulpit Commentary).
이것은 적들이 순수한 병사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유목민들이므로 여인들과 아이들도 데리고 있었음을 암시 해 줍니다.
아마 그들은 무장한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진과 마주 대하여 배치했을 것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짐승과 더불어 안전한 곳에 배치시켰을 것입니다.
3) 적의 수가 많았음을 말합니다(12절)
“[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미디안 사람과...동방의 모든 사람 - 이들 미디안 연합군들이 어떠한 자들인지에 대하여서는 6:3 주석을 참조하라.
골짜기에 누웠는데 - 기드온이 부하 부라와 함께 적의 진지로 정탐하러 간 때가 밤이었으므로(9절) 적군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워 있다'는 표현이 사용된 것입니다.
여기서 '골짜기'는 '모레산 앞 꼴짜기'(1절)를 의미합니다.
한편 이처럼 적들은 이스라엘 군대를 가까이에 두고도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깊은 잠을 자고 있었기에 기드온의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에 정신이 없어 자기들끼리서로 싸웠을 정도입니다(22절).
더욱이 기드온이 정탐하러 갔을 때는 아무리 늦어도 이경 초 곧 밤 10시에서 11시 이전이었습니다(1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수효가 메뚜기 떼같이 많은 것만을 믿고서 정신 상태가 해이해져 있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 무수한 메뚜기 떼는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을 상징하였습니다. 6:5 주석 참조.
낙타의 수가 많아. - 약대는 유목민들이 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운송 수단입니다.
특히 미디안의 침략에는 이 약대가 병기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전투시에 상당한 기동력을 발휘했을 것이고 그 위용면에서도 상대방을 크게 위압했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약대를 사용한 예는 여기서 처음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적절한 무기였음에 틀림없습니다. 6:5 주석 참조.
4)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두 명의 적병이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13절)
“[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 꿈이란 한 갖 생리적 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함부로 해몽(解夢) 운운하는 것은 매우 터무니없는 일입니다(전 5: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에 꿈을 통해 당신의 뜻을 계시하기도 하셨습니다(민 12:6;욥7:14;렘 23:28).
기드온과 부라가 적진으로 은밀히 침투해 들어갔을 때, 두 명의 적병이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기드온이 그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14절과 같이 해몽하였다고 할 때
과연 그것이 기드온에게 큰 확신을 주었을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왜냐하면 그 꿈이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되었다면 그 해몽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일행이 잠복한 때에 꼭 맞춰 꿈과 해몽을 적병
의 입을 빌어 들려주심으로써, 의혹의 여지를 남기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 -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흔했던 음식으로 '비천함'을 상징합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바 이 '보리떡'은 넓은 의미로 당시 가난에 찌든 이스
라엘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비천한 가문 출신인(6:15)기드온을 상징합니다(14절).
한 장막 - 이는 대표 단수로 미디안 전체 장막을 의미합니다.
특히 '장막'이라는 표현은 유목민의 거주지이므로 미디안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용어 입니다.
5) 적병의 친구가 꿈를 해몽입니다(14절).
“[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 이것은 어떤 사실을 단정적으로 확증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동료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 미디안 사람이 이처럼 판정적인 표현을 사용 한 것은 은연중에나마 미디안 진영에 '기드온'이란 인물에 대한 두려움이 퍼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 원어로는 '엘로힘'입니다.
이처럼 미디안 사람이 신명칭으로 보통 명사인 '엘로힘'을 사용한 것은 매우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엘로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자신들의 '신'을 가리키던 명칭이기 때문입ㄴ다. 6:40 주석 참조.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두려움의 샘’(하룻 샘)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려보내십니다(1~3절).
그들이 자긍할 것을 고려하신 것입니다.
기드온은 “패배”를 염려했지만 하나님은 ‘자만’을 우려하셨습니다.
“풍요” 때문에 하나님을 떠났듯이 “승리” 때문에 하나님을 잊을까 걱정하신 것입니다.
실패보다는 성공 이후에 더 큰 시험이 찾아옵니다.
망각과 자만은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삶으로 가는 필수 단계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순간 나를 지켜주고 지탱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2) 적들을 상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숫자인데도 “아직도”많다고 하십니다(4~8절).
선별 과정도 “자격”을 묻는 시험이라기보다 “두려움”에 대한 시험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군대를 “두 번”(6:34,35) 소집하고 하나님을 “두 번”(6:37,39) 시험한 기드온의 불안과 불신을 향한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두려움이 증폭된 상황은 그의 믿음을 가늠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일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는 믿음의 진위를 확인하는 기회이자 믿음을 배울 수 있는 시간입니다.
3) 하나님은 군사가 줄어 더욱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10절) 기드온에게 정작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적들이라고 알려 주십니다(9~14절).
적들의 심리상태를 미리 알려 주tu서 “그의 손”을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두려움을 다루실 뿐 꾸짖지 않으십니다.
그가 “두려움의 사람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작은자에서 큰 용사”가 되길 바라십니다.
힘겨운 시련 중에 우리가 바랄 것은 “상황의 반전”이 아니라 “나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크심”과 “나의 작음”을 알아 갈 때 내 믿음도 그만큼 자랄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바알과 논쟁하던” 기드온이 이제 미디안과 전쟁을 치릅니다(1절).
저자는 기드온의 이름을 “여룹바알”이라 언급하여 변화된 그의 위상뿐 아니라 “바알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을 엘리야의 갈멜산 전투 처럼 여호와만이 참 신이며 그분만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구원자요 사사임을 확증하는 전쟁입니다.
이것이 승리보다 더욱 중요한 명분이요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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