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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린도전서10장1~13절
제목 : 넘어질까 조심하라
초대교회 시절에 스데반 집사가 뜨거운 가슴으로 전도 설교를 하다가 성난 청중들의 돌에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그렇게 죽었지만 천사 같은 얼굴로 자신에게 돌 던지는 청중들을 위하여 기도드리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사도행전 7장에서 이스라엘 조상들이 시나이 광야40년간 유랑시절을 "우리 조상들이 광야교회에 있었다."(행7:38)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인들이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여한 것으로,
이제 자기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지나친 자만심에 빠진 것을 경고하기 위하여,
바울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상과 광야교회를 예로 들며,
고린도교회가 깨달을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통하여 크신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1. 과거를 통해 배우라(10:1~6)
溫故之新(온고이 지신)이란 말이 있습니다.
옛날 것을 배워서 깨달으면 새로운 것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난 역사를 통하여 앞으로의 장래를 예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조상들의 일들을 배워라(1절)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바울은 이방인인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형제'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교회 전체를 하나의 몸(body)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또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연결시킴으로써,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에 기독교 교회의 근원이 있음을 시사하였습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이 출애굽 사건이 지닌 참된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할까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 여기에서 '다'(판테스)라는 말이 강조되어 2, 3, 4절에서 5번에 걸쳐 반복됩니다.
이처럼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멸망하였다(5절)는 사실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구름 아래 있고 -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 출애굽하여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여기서 구름은 하나님의 인도를 의미합니다(출 13:21, 22;14:19, 24등).
구름은 출애굽 할 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던 것을 말합니다.
이 구름기둥 불기둥을
(1) 이스라엘의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광야는 주야의 기온차가 심하고 낮의 직사광선은 사람을 상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으로 가려서 백성을 보호하였고,
밤에는 추우니까 불이 되어 난로 불이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애굽의 군대가 쫓아 올 때는 구름기둥이 이스라엘과 애굽 군대 사이에서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구름기둥의 보호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보호 없이는 살 수가 없음을 잘 시사해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2) 인도의 상징인 것입니다.
모세는 회막을 지었을 때 그 위에 구름기둥이 내릴 때 정지(유진)하고,
떠오르면 출발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이 이끄시는데 까지 가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바다 가운데로 지나므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확실히 체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 받았습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도 끊임없는 경건과 영적인 각성(覺醒) 없이는 멸망 받은 이스라엘 조상들과 같은 전철(前轍)을 밟게 될 것입니다.
본절에서 바울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2)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2절)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세에게 속하였다는 것은 홍해를 건너는 위기의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굳게 믿음으로써 모세와 하나로 결합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합체를 이루는 것입니다(롬6:3-5).
*롬6:3~5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 혹자는 구름과 바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인들과 공간적으로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해주는 역할이었고 동시에 모세의 권위를 높여주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제자가 되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구름과 바다가 그리스도인들의 세례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의미를 분석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을 통해 인도함을 받고 홍해 바다를 건너는 체험을 함으로써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초자연적 능력을
극적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백성이라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을 갖게 해주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구름 기둥과 홍해 바다'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
곧 '구원 받은 백성'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름과 바다'는 구원의 도구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인의 '물세례'를 상징합니다(롬 6:3).
*롬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었습니다(3절)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신령한 음식은 '만나'를 가리킵니다(출16:4,14-18).
*출16: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이것이 무엇이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먹게하신 양식, 한 사람에 한 오멜씩(약2리터),
*출16: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민11:7~8 “[7]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8]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만나는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공급된 초자연적인 양식이었습니다.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4절)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적인 방법을 통하여 메마른 광야에서 계속 물을 공급받았으며 그 공급의 근원은 바로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구약 시대에나 신약 시대에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생명의 떡이며 물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요6:31, 32).
*요6:31,32 “[31]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3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주께서는 배고픔과 갈증으로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시급했던 음식과 물을 제공 하셨습니다(요7:37-39).
마찬가지로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신령한 음료'와 '신령한 음식'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바울은 주지시킵니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 바울이 그리스도를 반석에 비유한 것과 같이 신32:4,15,18등에서는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를 '능력의 반석', '영원한 반석' 등으로 표현하는데(사17:10;26:4) 이는 그리스도에 관한 것임이 분명하고(요12:41),
본 구절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미 선재(先在)하셨음을 뒷받침하는 구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신령한 반석이셨던 여호와가 바로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들과 동행하셨으며 그들의 구원자였습니다.
5)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습니다(5절)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령한 음식인 만나보다는 애굽의 고기를 더 좋아하는 등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고 원망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멸망당하는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민 26:65).
*민26:65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멸망을 받았느니라 - 본절은 민14:16을 인용한 것으로서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비참하게 멸망 받은 모습을 생생히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민14:16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바울이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든 이유는 비록 그들이 성찬에 유추(類推, analogy)될 수 있는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셨을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할 때에는 멸망 받았던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성찬'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할 때,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음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6) 멸망시킨 이유를 말합니다(6절)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1) 본보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하나의 흔적으로 새겨놓으라는 강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 악을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민11:4,5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을 갈망했었습니다.
*민11:4,5 “[4]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5]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그들이 애굽에서 먹던 고기와 야채를 간절히 사모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채워주시기는 하셨으나,
그들의 탐욕에 대해서는 진노로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민11:33,34).
*민11:33,34 “[33]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34]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에 대한 갈망은 곧 그들의 불신앙의 증거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전제로 고린도 교인들이 이교도들의 희생 제물 축제에 참여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2. 네 가지 죄악을 경계하라(7~11절)
1)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7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말은 문자적인 의미는
'우상 숭배자가 되기를 멈추라'는 뜻으로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가 이미 우상 숭배를 하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스라엘 백성 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한 것( 출32:4.)
같이 이교도들의 관습, 즉 우상의 신전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가함으로써 우상 숭배의 행동을 범하였습니다.
바울은 8장에서 우상 제물에 대한 문제를 이미 다루었고,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와 고린도 교인의 우상 숭배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경배한 후 불경스러운 향연을 벌인 모습을 묘사합니다(출 32:6).
*출32: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2) 음행하지 말라(8절)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또 하나의 범죄는 '음행'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을 지날 때 그곳에 있는 모압 여인들에게 이스라엘 젊은 청년들이 유혹을 받아 바알브올 우상을 경배하였습니다.
바알브올을 섬기는 제사 행위는 처녀들과의 음행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민25:1~9). 따라서 우상 숭배와 음행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 당시의 고린도 지역도 종교적인 매춘 행위가 성행하던 도시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여신 '비너스'를 섬겼으며, 비너스 신전에서 열리는 우상의 축제에는 바알브올을 섬길 때 행해지던 음행이 그대로 재현(再現)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절의 내용을 통하여 우상 숭배와 간음죄는 하나님께 큰 죄악이므로 그러한 유혹에 빠지지 말 것을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브올 우상을 섬기며 그곳 여인들과 음란한 교제를 나눌 때 하나님께서는 징벌로 전염병이 돌게 하셨으며 그 일로
이만 삼천 명이나 죽음을 당해야만 했습니다(민25:1-9).
한편 그 당시 죽은 사람의 숫자가 민25:9(70인역), 필로(Philo), 요세푸스이(Josephus) 등에 의해 2만4천 명으로 제시되어 천명의 차이가 생깁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민 25:9의 내용이 환난의 전 기간(이틀) 동안의 희생자를 언급한 데 반하여 본절에서는 당일 하루만 계산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3) 주를 시험하는 죄를 범하지 말라(9절)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여기 “시험하다”는 하나님의 선하심, 능력, 지혜 등을 그릇된 동기에서 알아보려는 인간의 생각을 가리키는 동사입니다(마 4:7;행 5:9;히 3:9).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관용을 시험하고 구원의 능력을 시험하였습니다.
민21:4,5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호르산에서 여행고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민21:4,5 “[4]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5]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의심한 죄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 이르러 마실 물이 없으므로 모세를 원망하였을 때에, 모세의 한 말이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출17:2).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죄 중에서 가장 큰 죄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였던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주를 시험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사용함에 있어서 그 한계(限界)를 벗어났습니다.
즉 이교도들의 우상 축제에 참여함으로 주를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구원하실 수 있는지를 시험하였으며,
설사 그러한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용서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관용이 있는지를 시험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이런 상태를 경고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의미로 2인칭 복수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주를 시험할 가능성이 바울을 포함한 모두에게 있음을 시사합니다.
*마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4) 원망하지 말라(10절)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본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네번째 잘못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이었습니다.
본절은 고라의 반역과 그를 따르는 일만 사천 칠백 명이 염병으로 멸망한 사건을 가리키는 듯합니다(민16:41,49).
또 가나안 정탐군의 보고를 듣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발했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언급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민14:22~24).
*민14:22~24“[22]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23]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24]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멸망시키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기 위해 온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천사'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다가 치명적인 염병(plague)으로 멸망을 받았습니다(민16:48).
고린도 교인들 중에 바울을 반대하여 우상 축제에 참여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우상 축제 참여에 반대하는 그들의 지도자들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불평 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예를 들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1절에서 기록한 이유를 하나는 본 보기가 되고, 또 하나는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기록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11절입니다.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 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말세를 만난은 유대인 시대의 끝을 뜻하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3. 넘어질까 조심하라(10:12~13)
1)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12절)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런즉은 '그러므로'라는 뜻으로, 바울이 앞에서 열거한 예증을 근거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충고하려는 의도를 나타내는 접속사입니다.
“선 줄로”는 현재 서있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로,
신앙이 아무런 흠 없이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의 복음에 대한 지식과 생활이 흠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택된 민족이며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결코 이방의 침략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였었습니다(겔 12:22).
이와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인들 중에도 자신들이 이미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입었기 때문에 우상의 제사에 참석하고 그 제물을 먹어도 아무런 해가 없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형벌로 죽은 사실을 지적하면서(5, 8절) 믿음 가운데 있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을 허락하시고 감당하게 하십니다(13절).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시험을 신약에서는 주로 '유혹'이나 '시련'(trial)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유혹'이라는 것은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고
(마 6:13;눅 11:4;계 2:10)
'시련'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연단하기 위하여 허락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마 5:4, 10;약 1:12;벧전 4:12).
'미쁘사'는 '신실(信實)하다'는 말로서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복음에 대한 지식이나 그들이 자처하는 경건의 생활로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써만 그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 본절에서 나오는
'시험 당함'의 의미를 '유혹'(temptation)과 '시련'(trial)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약1:14의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 됨이니'라는 말씀과 같이 비록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고 시련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러한 시련을 통하여 그들을 연단하시고 훈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실 때 피할 길도 함께 예비하신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시는 주관자이심을 전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허락지 않으시며 또한 직면한 시험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이 의도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다 선줄로 생각하다가 넘어지지 말 것을 권면하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이 다 선줄로 생각하다가 넘어졌습니다.
애굽에서 나와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받고 홍해가 갈라져 죽음의 위기를 면하며 안전하게 물을 건너는가 하며, 하늘로부터 내리는 신령한 양식을 먹고 반석에서 나오는 신령한 물을 마시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악을 즐기는 자가 되어,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을 행하며 주를 시험하고 원망하므로 이들 모두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회 신자들도 물로 세례를 받고 성찬에서 신령한 떡과 음료를 마시지만 다른 한편으로 옛 우상숭배에 다시 빠지고 우상 섬기는 이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기를 즐기다가는 옛 이스라엘 백성처럼 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의 고기를 먹는 자유를 알았다고 다 선 줄로 생각했다가는 우상 섬기는 자들의 음행에 빠져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시험을 피할 수 있고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옛 고린도교회 신자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권면과 경고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인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에 넉넉히 이길 수 있도록 언제나 도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승리하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영원히 복된 하나님나라의 상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