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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교동 성당 성서 백주간 제 48 주
- 하까이서, 즈가리야서, 말라키서, 요엘서
I. 하까이서
1. 개 관
예언자 하까이는 다리우스 왕 제 2년 520년에 예언활동을 전개함과 아울러(1,1) 즈루빠벨과 여호수아의 귀환으로 활기를 되찾은 성전재건사업을 적극 지지한 인물이다(에즈 5,1; 6,14). 하까이는 집정관 즈루빠벨, 대제관 여호수아 그리고 백성 전체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2,4), 특히 즈루빠벨을 통한 희망의 메시아 시대를 연상하면서 성전재건을 바로 이 메시아 시대의 개막으로 선포하고 있다. (김건태, ⌜구약성서 입문⌟, 79.쪽 참조)
하까이(haggai)라는 말은 ‘야훼의 축제’((haggaih)라는 말의 축약형으로 ‘축제의’라는 뜻이다. 하까이는 성전에서 활동하던 사람으로 늘그막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즈루빠벨(다윗의 후손. 여호아긴 왕의 손자)이 유대 총독으로 있던 기원전 520년경에 활동하였다. 당시에는 지배자 페르샤 제국을 거슬러 거대한 규모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고, 하느님의 뜻을 새긴 예언자는 이것을 ‘야훼의 날’이 임박한 것으로 이해하고 유배와 식민통치로 실의에 빠진 유대민족이 간절히 기다려온 메시아 왕국이 다가왔음을 선포하고 이를 준비하도록 활동하였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유배이후 중단되었다가 중단된 성전을 재건하는 사업으로 보고 이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에 힘입어 성전재건 사업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야훼께서 평화를 주시는 날’(축제의 날)을 준비시킨대도 기원전 515년에 성전 완공을 볼 수 있었다.
2. 주요 내용. => 참조 : ⌜성서 40주간 성경 읽기 안내 구약 2⌟ (영원한 도움 성서 연구소 편저. 성서와 함께. 2007), 153- 155.쪽.
3. 주요묵상.
1, 9 “내 집이 무너져 있는데도 너희가 저마다 제집 돌보는 데에만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너희에게 이슬을 내리지 않고 땅은 소출을 내주지 않았다.
(묵상) 하느님의 집을 소중히 여길 때, 하느님을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주님으로 모시는 신앙이 드러나고,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말로만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내집. 내살림, 내 밭을 가꾸는데만 여념이 없다면 주님의 축복을 합당히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낡은 성전을 허물고 새로운 성전을 신축하고, 분당을 하여 새로운 성전을 신축하고 하는 것은 모두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우리의 참되고 순수한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다.
2,4 “즈루빠벨아 이제 용기를 내어라”
(묵상)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고 힘든 일이었고, 주변 민족의 방해도 심했다. 그러나 이것은 만군의 주님을 모시는 일이기에 주님께서 친히 힘과 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도 중심을 잃지 말고, 모든 어려움 중에 주님께 지혜와 힘을 청하며 성전신축과 분당신축의 일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2,23 “스알디엘의 아들, 나의 종 즈루빠벨아,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를 받아들여 너를 인장반지처럼 만들리니, 내가 너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묵상) 즈루빠벨은 다윗왕손이고, 유대총독으로 부임한 사람이며, 성전재건의 중책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왕손이 되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 왕의 사제,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베드로 1서, 2,9)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복음전파사업을 수행하다면, 우리 하나 하나를 주님께서는 새로운 즈루빠벨과 같이 여겨주실 것이다. (참조. ‘누가 내 형제이며 내 어머니인가’. 마르3, 31-35)
II. 즈가리야서 (1-8 장)
1. 개 관
즈가리야는 ‘야훼께서 기억하시다’라는 뜻이다. 제사장의 가문으로 제사장으로 일하면서 기원전 520년경 하께보다조금 늦게 예언자로 불림을 받아 약 2년동안 하느님 말씀을 전함. 하께 예언자와 마찬가지로 메시가가 오실날 곧 ‘야훼의날’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백성들에게 그분을 맞을 준비로 성전재건을 하도록 힘을 북돋우었다. 특히 여러환시를 통하여 즈루빠벨이 하느님께서 세우신 메시아임을 강조하고 그를 통하여 성전을 재건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사제이며 예언자였던 즈가리야는 하까이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재건사업을 독려했던 인물이며, 국가의 재건과 율법준수도 아울러 강조했던 인물이다.
즈가리야 역시 성전재건을 메시아 시대의 개막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메시아관은 하까이의 그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 즈가리야는 다윗의 후손 즈루빠벨 뿐만이 아니라(4,8-10) 대제관 여호수아(3,1-7) 이 두 인물의 공동노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완벽한 메시아 시대를 기대하고 있다. <김건태, ⌜구약성서 입문⌟(수원 가톨릭 대학, 2000), 80.쪽 참조>
2. 내용
1) 표제 (1,1)와 회개요소 (1,2-6)
2) 여덟 개의 환상 (1,7-6,8) - 과거의 죄를 꾸짖으며, 환시를 통하여 70 년간 이민족의 지배 아래 허덕이고 있는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고, 야훼께서 친히 당신의 집, 성전을 다시 세우실 것이며 당신이 예루살렘의 성벽이 되어주시리라고 한다.
3) 상징적 대관식 (6,9-14) 대관식의 주인공으로 여호수아가 나온다(새번역 11절). 그러나 본래는 즈루빠벨이 주인공인 것으로 보인다(공동번역 11절). 성서학자는 이 두사람 모두 새로운 유대공동체의 주인공으로 지명된 것으로 해석한다.
4) 새날을 맞는 예루살렘 - 새로운 메시야의 도래로 변화하게될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리고 또 하느님 구원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다.
3. 묵 상.
(전체) 주님께서는 항상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행정지도자(즈루빠벨) 영적 지도자(대사제 여호수아)를 보내주신다. 그리고 우리의 비천한 처지를 우리 이상으로 잘 아시고 구원하여 주시고자 한다. 그분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2,12), 또 우리의 비천함을 돌보아주시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히시는 분이심을(3,4) 믿고 힘과 용기를 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주님께서는 개인구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성화와 재건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하심을 잘 알 수 있고, 우리도 우리가 속한 소공동체, 본당 공동체의 성화와 재건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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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즈가리야서 (9-14장)
I. 개 관.
1. 제 2 즈가리야(9-14장)이 제 1 즈가리야(1-8장)과 구분되는 이유.
제2 즈가리야의 관심사는 제1 즈가리야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즈루빠벨이나 여호수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성전재건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아시리아나 이집트는 모든 억압세력의 상징으로만 나타날 뿐이며 벌써 희랍제국세력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9,1-13). 문학양식면에서도 다른데, 제 1 즈가리야는 여덟 개의 환시를 중심으로 짧은 신탁이 곁들여진 반면 제 2 즈가리야에는 이러한 환시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또한 질문을 하거나 신탁을 전해주는 예언자도, 이를 풀이해주는 천사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9-14장을 1-8장과 분리해서 다루며, 4세기 말엽 익명의 저자에 의해서 저술되어 첨가된 작품으로 본다.
2. 시대 배경
기원전 330-300년경 주측됨.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시작하여 띠로를 파괴한 것을 전제로 하는 9,1-8절의 내용과 9,9-10에 나오는 겸손한 왕 메시아의 표현은 이 글을 쓴 것이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이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쓰여졌음을 뒷받침해준다.
3. 내 용.
1) 주제는 ‘메시아 시대의 도래’라고 볼 수 있다.
2) 구분 : “신탁” 또는 “야훼께서 계시하신 말씀”이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두 부분으로 쉽게 구분된다: 운문을 주로하는 전반부(9-11장)은 온 세상 모든 민족 위에 군림하신느 하느님의 절대 주권과 평화로운 통치를 강조하면서 좀 더 보편적인 메시지로 시작하여 이스라엘 구원에 관한 특별한 메시지로 좁혀지는 반면, 산문이 주를 이루는 후반부(12-14장)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관한 메시지로 시작하여 온 세상의 구원으로 넓혀진다.
3) 다른 성서. 특히 신약성서와의 연관성.
① 말라키서서와의 연관성: 비슷한 신탁이 공통적으로 발견됨. (‘보아라’로 시작하는 즈가 12, 2-6 과 말라키서 3, 1-5절 유사함)
② 메시야의 신탁(9,9-10)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사순절 성지주일 복음과 긴밀하게 연관된다(루가 19,28-40; 마태21,1-11 등). 여기서 표현하는 메시야 왕은 그야말로 겸손과 평화의 왕이다. 상대적으로 오만하고 무력을 앞세운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과 비교가 된다. 아울러 메시야 왕은 당신 왕국에 무장해제를 선포한다.(참조 이사 2,4; 호세 2.20; 미가 4,3)
③ 나쁜 목자를 지칭하는 11장의 배경은 에제 34장과 37장이다. 내용은 에제 37장은 계약을 회복하는데 반하여 즈가리야 11장은 계약이 파기되는 것으로 서로 반대의 결과가 표현된다.
11장의 양 장사꾼은 이스라엘을 집어삼키려는 외국세력을 상징한다. 11, 12절의 예언자의 품삯 30세겔은 신약에서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가 받는 돈의 액수와 일치한다.
‘호의’라는 지팡이를 부러뜨리는 것은 외국세력과의 단절을 말하고, ‘일치’라는 지팡이를 풀어뜨리는 것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단절을 말한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기원전 328년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짐산에 자신들의 성전을 짓게 되면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즈가 11장에서는 에제 37장과는 달리 구원과 회복 대신 고발과 저주를 선언한다.
④ 12,9-13,9에 나오는 ‘찔러 죽은 이’는 후대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표현은 이사 52,13-53, 12에 나오는 ‘야훼의 종’의 넷째 노래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구약의 대표적인 예시로 해석되고 받아들여졌다. 13, 7-9의 칼의 노래에서 나오는 ‘내가 목자를 칼로 쳐서 양떼가 흩어지게 하신다’는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기 전에 인용하신 말씀이다( 마태 26,31; 마르 14, 27; 요한 16,32 등).
⑤ 하느님께서는 흩어진 양떼를 정화시켜 남은 자들의 새 공동체를 만들어 내시리라는 즈가 13,8-9의 내용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내리라는 것(마태 26, 32; 마르 14,28-‘갈릴래야로 가거라’의 내용)과 연관이 된다.
그 외에도 복음저자들은 제2 즈가리야서를 자주 인용하거나 또는 암시하고 있다(마태 21,4-5= 즈가11,12-13; 마태 27,9=즈가9,9; 요한 19,37= 즈가 12,10 등).
II. 묵 상
① 불쌍한 처지에 빠져있는 인간을 친히 돌보시는 하느님(9-10장) . . 여기서 나오는 여러 도시들은 하느님께서 친히 인간을 위해서 없애주시는 여러 가지 불행과 고통을 상징하고 있다. (예, 에클론, 아스클론, 아스돗 등). (10,3b-4 참조). 우리를 그리스도와 떼어놓으려고 하는 적(마귀. 유혹, 여러 시련)들은 모두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항구한 실천으로 모두 무너지고 사라질 것이다.
② 사악한 통치자, 게으르고 거짓된(위선적인) 목자를 단죄함 (11,4-16)
하느님께서 백성들(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준다. 백성들을 돌보아야할 목자(목동)들이 양을 돌보지 않는 것은 주인으로부터 받은 임무를 소흘히 하는 것이며 주인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일이다. 주인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 두 개 <귀염둥이-호의> < 단짝-일치>는 목동들과 주인과의 관계가 그렇게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목동(목자)들이 주인과 일치하지 못하고 귀여움을 받지 못하므로 그들은 파면되고 주인과의 계약도 끝이 나게 된다.
③ 야훼의 날(마지막 날)에 대한 경고
12장과 13장의 야훼의 날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큰 영광이 되는 것이지만 13, 7부터 14장은 커다란 불행을 예고하고 있다. 주님의 법을 충실히 따르고 지킨 사람, 시련에도 항구하게 신앙을 지킨 사람은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주님이 재림하는 날이 곧 심판과 징벌이 날이 될 것임을 명심하여야 하겠다.
④ => 이하 참고서.⌜성서 40주간 성경 읽기 안내 구약 2⌟ 162.쪽 즈가리야서의 가르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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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요엘서.
1. 개 관.
1) 작품 연대 : ‘야훼는 나의 하느님’이라는 의미의 ‘요엘’이라는 사람의 작품은 대략 400 경 기초된 것으로 본다.
2) 시대 배경 : 메뚜기 떼의 엄청난 재앙을 앞두고 이 보다 더 큰 야훼의 날, 즉 하느님 심판의날이 다가왔음을 알려주고자 하는데 작품의 의도가 있다.
3) 특 징 : 야훼의날을 선포함과 아울러 하느님께서 만방에 당신의 영을 부어주시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고 환시를 본다는 대목이 나온다.(3,1-2) 이를 신학적으로 후대에 이루어질 성령강림의 예언하는 것으로 본다. 한편 하느님께서 단지 이스라엘만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만방을 심판하심으로써 또한 하느님께서 온 세상의 주님이심과 동시에 또한 모든 민족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임을 보여준다. 예언서적인 성격이 아직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요엘서는 분명 예언문학과 묵시문학의 중간단계에 있는 작품이다. “요엘서는 오순절의 예언자이나 회개와 단식과 기도에 또한 모든 이들을 초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톨릭 사순절 전례의 창시자로 볼 수도 있다
2. 내 용
요엘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1,2-2,27(메뚜기 떼의 침입, 국가적인 기도와 단식의 날 선포, 야훼의 신성 예찬)과 3-4장(새로운 시대와 야훼의 날).
1) 주께서 거동하실 날이 왔다.(요엘 1, 1 - 2, 11) : 자연의 재앙(메뚜기) 앞에 신음하고 있지만, 이것은 단지 주님 심판의 전조에 지나지않음을 알고 진심으로 회개해야 한다.
2) 참된 회개의 촉구(2,12- 17). : “진심으로 뉘우쳐 돌아오라. 옷만 찢지말고 심장을 찢고 너희 하느님 야훼께 돌아오라”- 사순절의 참된 회개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어 곡식과 포도주를 넘치게 해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신다는 희망을 전한다.(2,18-27)
3) 만민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리리라(3,1-5) :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게 해주시는 것 뿐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받아 예언을 하고, 환시를 보는 등 영적인 풍요로움도 받게 됨을 말해준다.
4) 만방에 심판을 내릴것을 예고함.. . 이스라엘을 황폐화시킨 여러 이방민족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함. ‘여호사밧’ 골짜기는(4,1) ‘야훼께서 심판하신다’는 뜻.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 당한 피의 값을 보상해주고 영원히 돌보시라는 희망을 약속함.(3,20)
3,주요 묵상
1) 요엘서에 나타난 “주님의 날”의 의미 ( 말라키서서 포함)
① 종말의 날. .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죄에 대하여 심판을 받는 날.(2장 3절. 11절)
②구원의 날... 하느님의 백성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는 날이다. (3, 1-5절. 18-21절)
요엘 예언자는 하느님의 백성이 고통 중에 겪어야 했던 재앙을, 예전의 예언자들이 선포한 종말의 날이 시작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로써 요엘이 선포하는 주님의 날에는 두 가지 새로운 점이 첨가된다. 첫째는 이 날이 단순히 미래의 어느 날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고, 이미 지금 (hic et nunc, here and now) 시작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이 종말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멸망과 함께 구원을 가져온다는 점이다.(⌜주석 성경⌟.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2010.) 요엘서 입문 참조)
이러한 “주님의 날”을 맞이하려면, 단순히 하느님의 백성에 소속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율법이나 경신례로 충실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보장받지 못한다. (2, 12-17.참조). 예언자의 말씀에 따라, ‘마음을 찢는 참회’를 해야, 심판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위한 준비를 순전히 이 예언자들에게만 맡기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의 “모든 사람”에게, 곧 아들과 딸 늙은이와 젊은이, 자유인과 노예의 구분없이, 모든 이에게 당신의 영을 풍성히 내려 주신다. 그리하여 모든 이가 예언자가 된다. 저마다 예언자처럼 하느님과 가까워지도, 그분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이다. (3, 1-2)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제 주님의 이름을 참된 마음으로 부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름을 받을어 부르는 이는 모두”구원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신다.(3,5) (⌜주석 성경⌟. 요엘서 입문 참조)
2)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에 대하여 확신을 갖자.(2,12-14) . . “주님은 가엾은 모습을 그냥 보지 못하시고 좀처럼 노여워하지도 않으신다. 사랑이 그지 없으시어 벌하시다가도 쉬이 뉘우치신다. 혹시 마음을 돌이키시어 재앙을 거두시고 복을 내리실지 그 누가 알겠느냐? ”
- 이는 구약 전체의 중심 사상에 속한다.(탈출 34,6; 느혜 9,17; 시편 86,15; 103,8 ; 요나 4,2 등) 주님의 심판도 두려워해야 하지만 항상 우리가 참으로 뉘우치기만 한다면 그분은 심판의 손길을 거두시고 구원의 손길로 바꾸어주시는 분임을 항상 확신을 가져야 하겠다.
3) 하느님 영, 곧 성령의 은혜를 적극적으로 구하자.
주님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은혜이다. 성령의 은혜는 건강하고 잘나고 똑똑한 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단순한 이, 배우지 못한 사람, 순수한 영혼들에게 더 잘 내린다. 우리의 소견과 범주를 뛰어넘는 크신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겸손하게 우리가 그분의 영을 받아서, 보잘 것 없는 우리(나)를 통해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야여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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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말라키서
1. 개 관
1) 시대배경. . 기원전 450년경. 하까이와 즈가리야로부터 50년 후. 에즈라와 느헤미야 이전.
2) 상황. . 성전은 재건되어 있었으나, 하느님께 대한 제사가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고, 불성실한 모습이 많았다. 다시 타락하는 모습이 종교,사회, 정치 곳곳에 나타남.
3)이름. . “나의 특사” 또는 “야훼의 사자”라는 의미 (3,1). 익명의 작품으로서 성전 재건 사업 완료(기원전 515년 : 에즈 6,15) 후부터 느헤미아에 의한 통혼금지(434: 느헤 13) 이전까지 활동한 사람의 작품으로 본다 (1,13 ; 2,10-12).
2, 내 용 => 보조 교재 참조. ⌜성경읽기 안내 구약2⌟(성서와 함께,2007),165-167.쪽.
3. 주요 묵상
1) 사제들에 대한 경고(1, 6- 2,9 ) . . .사제들이 하느님의 법을 잘 모르고 불성실할 때 모든 기강이 무너진다. 또 재물에 눈이 어두어 제 잇속만 챙기고 합당한 제물을 바치지 못한다면 이러한 제사는 하느님의 진노만 살 뿐이다.
2) 혼인의 신성성 . .. 조강지처에 대한 중시(2, 14) : 하느님 자녀로서 혼인에 관한 교회법을 잘 지켜야 한다.=> 별지 제 50 주 보충자료 - “혼인과 조당에 대하여”자료 참조.
3) 올바른 십일조 봉헌 강조- 하느님 은혜로 모든 소출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십일조는 하느님의 것이므로 ‘하느님의 창고’(교회공동체)에 들여야 한다- 새로운 하느님의 복을 불러들임.
3) 야훼의 특사. . 인간의 힘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힘으로 인간을 정화시킨다. (3,2-3) 우리 인간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신다.
4)‘주님의 날’과 하느님 심판의 경고 (3, 13). . . 주님의 날이 언제 오는가 하면서 하느님을 두려워함없이 방종하며 지내다가는 주님의 심판의 날에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우리는 죽음이 언제 올 지 모르는 두려운 마음으로 항상 심판의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3,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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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휴강. 그동안 제대로 읽지 못한 부분 보충하시고, 이후 진도 나갈 부분 미리 보아 두시기를. . ! 이후 진도 예정. 5월 5일 역대기 상. 하. / 5월 12일 잠언. 욥기. / 5월 19일 아가. 코헬렛. / 26일. 요나서. 토빗기/ 6월 2일 유딧서. 에스델서. / 9일 다니엘서 등.
<2020년 4월 21일. 매교동 성당. 전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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