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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마더'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 '관용이 사라지는 순간 제국은 몰락한다!'
세계화의 '고발자'에서 제국의 '가치 선도자'로, 예일대학교 법대의 에이미 추아(Amy Chua) 교수...
제국의 몰락 (Day of Empire)
에이미 추아 교수는 2003년에 '세계화'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불타는 세계(World on Fire)》를 출간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석학이다.
세계화에 이어 그녀가 주목한 것은 바로 '제국'이다.
고대 페르시아와 로마를 시작으로 동양의 당(唐)과 몽골, 서양의 네덜란드와 영국을 거쳐 미국에 이르기까지,
2500년 동·서양 제국의 흥망사를 개괄하면서 현대의 제국인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주의와 오만함에 경고장을
던진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의 쇠퇴 원인을 관용의 상실에서 찾는다.
독일과 일본의 실패 사례처럼 강력한 패권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열쇠는 강요와 위협이 아니라, 타인을 모으고
끌어안는 종교적, 인종적 관용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제국은 관용을 베풀면서 세계 패권을 획득하지만 동시에 관용을 상실하면서 붕괴의 수순을 밟게
된다.
이민자의 나라로 성장한 미국은 이민자 문제, 환경 문제, 중동 정책 등에서 강력한 불관용 정책을 펼치면서 세계
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저자는 오만한 미국은 더 이상 제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일갈한다.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중단해야 한
다고 역설한다.
투키디데스는 민주주의야말로 아테네가 몰락한 원인이라는 의미심장한 주장을 했다.
에드워드 기번은 기독교를 로마 쇠퇴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최근 폴 케네디는 주요한 강국들의 몰락 원인을 "제국주의적 팽창"으로까지 넓혔고,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붕괴(Collapse)》라는 책에서 "환경 파괴"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9·11 공격,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침공 이후에는 기대조 혹은 비난조로 쓰인 제국과 제국주의에 관한
책들이 거의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책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역사상 존재했던 세계 초강대국들은 서로 상당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적어도 해당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적인 우위에 오르기까지는 하나같이 대단히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나라들이었다.
모든 초강대국들에게 관용은 패권을 장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제국의 쇠퇴는 불관용과 외국인 혐오, 그리고 인종적·종교적·민족적 '순수성'에 대한 촉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쇠퇴의 씨앗을 뿌린 것 역시 관용이었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초강대국들의 경우 관용은 결국에는 극적인 변화 지점을 건드려서 반목과 폭력을 유발했다......
한 사회가 한 지방이나 지역이 아닌, 전 세계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기술적·군사적·경제적 면에서 세계
의 최첨단에 서 있어야만 한다.
어떤 역사적 상황이라고 해도, 세계 유수의 인적 자본이라는 것(지성이든, 신체적 강인함이든, 기술이든, 지식
이든, 독창성이든, 연결망이든, 상업상의 혁신이든, 기술적인 발명이든 그 형태는 관계없이)은 어느 한 장소나
어느 한 인종 혹은 어느 한 종교 집단 안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회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인종, 종교, 배경을 따지지 않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야만 한다.
이것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제국으로부터 대몽골제국, 그리고 대영제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초강대국들이 해온 일들이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의지해온 것이 바로 관용이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관용은 인권과 관련된 현대적인 의미의 관용이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관용은 정치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의미한다.
내가 앞으로 사용하게 될 관용이라는 단어는 수단적인 의미에서의 관용이든, 전략적인 의미에서의 관용이든,
아주 이질적인 사람들이 특정한 사회에서 생활하고 일을 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좀더 명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관용은 인종, 종교, 민족, 언어 등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개인
이나 집단이 그 사회에 참여하고 공존하면서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를 일컫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관용은 존중이 포함되지 않는다.
로마인들은 온갖 배경을 가진 전사들을 충원하여 거대한 군대를 꾸렸지만, 자신들은 신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
이라고 생각하고 "완전히 야만적인" 켈트족과 "몇 날 며칠이고 늪 속에서 사는 벌거숭이 칼레도니아인들",
그리고 "커다란 팔다리"를 가진 "거대하고 짐승 같은" 북부유럽 주민들에 대해서 늘 경멸감을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관용은 선택적일 수 있었다.
쓸모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들에게는 관용을 베풀고, 나머지 집단들을 배제하거나 무참히 진압할 수도 있는 일
이다. 18세기말 잉글랜드인들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제국 건설에 유용한 자산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로 개신교를
믿는 스코틀랜드인들을 대영제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러한 관용은 가톨릭교를 믿는 아일랜드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요컨대 이 책의 핵심적인 개념은 '상대적인' 관용이다.
세계적인 패권을 다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회가 절대적인, 영원불변의 기준으로 볼 때 관용적이냐 아니
냐가 아니라, 경쟁자들과 비교해서 더 관용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관용은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관용의 혜택을 받던 집단들이 절대적인 기준에서는 가혹한 차별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19세기 말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도망쳐 나온 학살 지역과 비교하면 미국은 천국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에서도 여전히 반유대주의와 유대인에게 불리한 할당제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관용이 세계 제패의 '필수' 조건이라는 것, 그리고 역으로 말하면, 불관용은 초강대국의
쇠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원인과 결과를 분리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불관용이 쇠퇴를 초래하는 것인지, 아니면 쇠퇴의 부산물로 불관용이 초래되는 것인지는 분명히 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이 두 명제 모두 참일 수 있다.
요컨대 나의 논지는 관용의 정도가 높아지면 당연히 번영의 정도도 높아진다는 것도 아니고, 관용이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불관용을 견지해온 사회 가운데에도 부와 권력을 장악한 사회들이 많았다. 나치 독일이 그 좋은 사례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종주의, 종교적 광신, 혹은 인종 청소를 토대로 한 사회가 세계적인 패권 국가가
된 사례는 없었다.
세계적인 패권을 획득하고 유지할 목적이라면, 강압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고 박해는 그 대가가 지나치게 비
싸며, 인종적 혹은 종교적 균질성은 근친교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생산성이 떨어진다........
미국은 관용을 통해서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 성장한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물론 인권의 측면에서 보면, 미국은 대부분의 시기 동안 로마제국이나 몽골제국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미국인들은 노예제도를 유지했다. 그들은 잔인하게 원주민들을 내쫓았고 심지어는 학살을 자행한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종교적인 자유에 대한 대단히 혁명적인 공약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온갖 계층의 개인
들에 대한 유난히 개방적인 시장 제도를 통해서, 수천만에 이르는 이민자들의 활력과 재능을 유인하고 보상하고
활용했다.
이들 이민자들의 노동력과 재능은 서부 개척에서부터 산업의 급성장,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이어지는
미국의 성장과 성공을 추진한 원동력이었다.
특히 원자폭탄 개발은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었다.
미국이 그 경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박해를 피해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 과학자들 덕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몇 십 년 후에 미국은 브라운 판결 및 시민권 운동을 통해서 인종적, 민족적 측면에서
역사상 손꼽힐 만큼 개방적인 사회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시기적으로 꼭 들어맞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국은 바로 이 시기에 세계적인 패권을 손에 넣었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한 것과도 관계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이 급격히 성장하는 컴퓨터 시대에 기술적, 경제적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 것과도
관계가 있다. 이 분야에서의 우위 역시 세계 전역으로부터 재능 있고 진취적인 개인들을 끌어들이는 미국의
탁월한 능력이 빚어낸 직접적인 결과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폭발을 일으킨 촉매가 되었던 실리콘밸리는 놀랍게도 어느 이민자의 독창적인 발명품이
었다.
관용을 통해서 세계 제패를 이루었다는 근본적인 측면에서 보면, 미국은 과거의 모든 초강대국들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미국은 과거의 초강대국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미국은 보편선거권을 인정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서는 최초의 초강대국이고, 인권과 모든 민족의 자결권
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시대에 등장한 최초의 초강대국이다.
또한 미국은 대량 파괴 무기를 휘두를지 모를 테러리스트 조직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최초의 초강대국이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요인들 때문에 미국이 세계에서 맡아야 할 적절한 역할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미국인들이 많다.
미국은 군사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테러리즘의 위협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
를 유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극적인 세계 질서로 복귀하는 것이 세계를 위해서,
그리고 미국 자신을 위해서 더 나은 길일까? [ 서문 : 세계 제패의 비결 ]
미국, 1990년대에 갑자기 출현한 단극 체제의 세계 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초강국 앞에는 중대한 위협을 가할
만한 경쟁자도, 대항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까다로운 정치적 선택의 문제는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자유 시장, 민주주의, 공동 협력은 세상을, 평화를 애호하고 생산성이 높으며 현대화된 국가들로 이루어진 공동
체로 변모시킬 것이고, 그 과정에서 민족 간의 증오와 종교적 광신을 비롯한 저개발의 유독한 면모들은 사라지
게 될 것이다. '역사의 끝'은 전쟁이 아니라 골든 아치(Golden Arches)1
였다. 미국의 군사력과 관련해서 가장 큰 논쟁거리는 (코소보나 르완다의 경우처럼) 순전히 인도주의적인 이유
때문에 다른 나라의 문제에 미국이 개입해야 하는가, 그리고 군사비 지출을 중단할 경우에 생기는 수십억 달러
의 '평화 배당금'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런 낙관적인 전망은 베트남이나 남미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20세기에 세계 곳곳
에 심어놓은 막강한 신용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미국은 상상할 수도 없는 파괴력을 가진 사회이자 어떤 세력도 대항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미국은 경쟁 상대가 없는 힘을 영토 확장이나 공격적인 제국주의적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이 채 못 된 오늘날, 이런 낙관주의의 거품은 터져버리고 말았다.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해외에서 미국의 신용은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이다.
미국 국내에서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이민자들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혹은 경제 후퇴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모르지만,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불안감이 심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9·11과 미국의 강력한 개입주의 정책이 모든 광경을 뒤바꾸어놓은 것이다.
미국의 세계 제패는 초강대국들의 역사에서 기나긴 진화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옛날에는 군사력과 경제력은 직접 연관되어 있었다. 어떤 사회가 정복하는 대상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사회
는 세금 징수, 공물 징수, 약탈, 착복 등의 방법을 통해서 점점 부유해졌다.
아케메네스 왕조(Achaemenid dynasty)의 왕들은 "땅에서 나는 과일이든 땅에서 자라는 동물이든 고유한 기술로
만든 물건이든" 가리지 않고 속국의 "값진 소유물"들과 "생산품"들을 긁어모았다.
로마제국은 다키아를 정복하고 그곳에서만 수백만 파운드의 금과 은을 손에 넣었다.
몽골제국은 국내에는 변변한 산업도,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페르시아 문명과 중국 문명, 그리고 아랍 문명 등
당시 손꼽히던 문명권의 영토를 정복하고 그들이 가진 부를 빼앗았다.
[ 아케메네스왕조(559-330 BC)의 최대 영토(다리우스 1세와 크르크세스 1세의 통치기간), 출처 : wikipedia ]
당시에 부에 이르는 열쇠는 군사력이었고, 군사력에 이르는 열쇠는 전략적 관용이었다.
현대 이전의 초강대국들은 피정복민 수십만명을 병적에 올리고, 어떤 경력을 가졌든 따지지 않고 재능이 뛰어난
전사들과 지휘관들을 군대에 충원하는 등 관용을 통해서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다.
아케메네스의 정예부대를 구성한 것은 그리스 용병들이었다. 로마 군단에는 리비아, 시리아, 칼레도니아, 골,
스페인 출신의 병사들이 많았다.
당 왕조는 초원 지대 출신의 '야만적인' 기병들로부터 충성을 얻어내, 아프가니스탄, 사마르칸트, 타슈켄트까지
영향력을 확장했다.
유목민으로 이루어진 군대와 거대한 공성 장비를 만드는 중국인 기술자들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몽골제국은
거대한 성채로 방비된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도시들을 정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경제적인 패권은 여전히 군사적인 패권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관련된 변수들을 달라지기 시작했고, 해군력이 갈수록 중요해졌다.
14세기와 15세기의 기술 진보는 가장 넓고 가장 강력한 사회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했다.
멀리 떨어진 아메리카 대륙의 금과 은, 인도 제국의 후추와 향신료, 카리브해 연안의 설탕, 발트해 연안으로부터
지중해 연안과 아프리카 대륙에 이르는 지역에서 나는 커피, 차, 코코아, 직물, 담배, 보석 등의 사치품 무역은
새로이 엄청난 수익을 남겼다.
네덜란드와 대영제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부와 세계 제패에 이르는 열쇠는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세계 각지
의 수역(水域)들에 대한 통제권으로 옮겨갔다.
한편 세계적인 부를 형성할 수 있는 방편이 땅에서 바다로, 정복에서 교역으로 옮겨지면서 군사력과 경제력의
연관 관계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초강대국이 멀리 떨어진 땅에 있는 부를 손에 넣기 위해서 침략, 점령, 병합이라는 본질적인 필요조건을 갖추
어야 할 필요는 없어졌다.
정복을 통한 통치는 비용이 많이 들지만, 교역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로마제국이 1,000년 전에 힘겹게 터득한 교훈이었다.
로마제국이 외국 땅을 약탈하여 엄청난 수익을 거뒀던 것은 다키아 정복(서기 101년~106년)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대부분의 성인 남성들이 현역으로 복무할 의무를 지고, 늘 전쟁 준비를 하던 사회"였기 때문에,
전쟁에 소요되는 물질적 비용이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크게 웃돌게 된 이후에도 오래도록 변함없이
대규모 군단에게 정복과 팽창의 사명을 부과했다.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의 경우 교역과 정복 사이에서 흔들리던 저울추는 교역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졌다.
세계적인 우위를 장악하려는 네덜란드의 전략은 정복과 영토 확장이라는 번거로운 '사업'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 대륙,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네덜란드 '제국'의 영토는 단순히 교역을
위한 전초 기지로 이루어져 있었고(자바와 실론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
토착민들과 내륙 도시들에 대한 통치는 대부분 해당 지역 고유의 통치 조직에게 맡겼다.
네덜란드의 막강한 해군은 이런 전초 기지들을 보호하고 다른 유럽 국가의 상인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공화국이 독점권을 손에 쥐고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해주었다.
고대의 초강대국들도 그랬지만, 전략적 관용은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이 세계 제패에 이르게 한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관용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고대 사람들에게 관용은 피정복민의 관습과 언어를 그대로 용인하고 그곳의 지도 계층을 흡수하고 재능이 뛰어
난 그곳의 장인들과 전사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다.
반면에 네덜란드의 관용은 네덜란드라는 땅덩어리를 피정복민들이 아닌, 유럽 전역의 박해받는 소수 종교집단
들을 끌어들이는 자석으로 바꾸어놓았다.
17세기의 암스테르담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거주하는 도시, "진정한 의미의 도가니"가 되었고,
"플랑드르 사람, 왈론 사람, 게르만 사람, 포르투갈 사람, 게르만의 유대교도, 그리고 프랑스의 위그노교도" 할
것 없이 그 도가니 안으로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네덜란드인이 되었다."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은 이들 이민자들의 기여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세계적인 교역과 산업,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은 군사적 정복과 식민화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어 가는, 새로운 형태의
세계 패권에 이르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세계무대에 등장한 초강대국인 대영제국은 네덜란드의 계승자로서의 면모와 로마의 계승자
로서의 면모를 함께 보였다.
영국은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국내적인 관용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이웃 국가에서 도망
쳐온 이민자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대영제국은 로마의 문명화와 팽창주의의 사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네덜란드와 달랐다.
대영제국은 정복한 방대한 영토 전부를 통치하고 장악하려고 했다.
빅토리아는 영국의 여왕이면서 동시에 인도의 황제였다.
영국은 또한 인도를 비롯한 피정복 지역 출신의 병사 수십만 명으로 거대한 군대를 만드는 전략적 관용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제국 팽창의 고대적 공식을 복원했다.
다음에는 미국이 네덜란드가 그려놓은 '해로'를 따라가게 되었다.
17세기의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관용을 통해서 난민들을 비롯한 더 나은 기회를 찾는 사람들을 끌어
당겼다.
제국주의적으로 활동했던 순간이 분명히 있었고, 서부 개척 역시 부분적이긴 하지만 군사적 정복에 기초하여
진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성공을 거둔 결정적인 비결은 재능 있고 의지가 강한 진취적인 개인들을 배경
에 관계없이 흡수하여 그들에게 합당한 보수를 제공한 데 있었다.
처음부터 미국은 이민 덕분에 인적 자본 면에서 다른 나라를 앞설 수 있었다.
인적 자본은 미국의 부와 혁신을 급성장시킨 연료였고, 미국이 확보한 우수한 인적 자본은 산업 시대와 원자력
시대, 컴퓨터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은 네덜란드를 귀감으로 삼은 초강대국이긴 하지만 네덜란드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은 이민자들에게 개방적인 나라였지만,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며, 이민자들의 나라로는
처음으로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그 규모는 훨씬 컸지만) 정복이 아니라 교역을 통해서 패권을 장악
했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로 초강대국이 된 최초의 사례일 뿐 아니라,
보편 선거권을 인정하는 성숙한 민주주의국가로 초강대국이 된
최초의 사례이다. 이것은 우연히 나타난 결과가 아니다.
결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는 국력과 자유의 원천일 뿐 아니라 국외자들을 끌어당기는 엄청난
매력의 원천이다.
미국의 민주정체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성공을 안겨준,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미국의 자유 시장 제도
와 더불어, 특별히 현대적인 형태의 전략적인 관용으로 특징 지워진다.
미국의 민주정체는 원칙적으로 배경과 신앙과 피부색에 개의치 않고 모든 미국인들에게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
에서 성공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는 미국을 현재와 같은 초강대국으로 만든 공식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과거의 초강대국들의 경우 관용이 그러했듯이, 민주주의 역시 미국에게 한계를 지우는 요소이다.
미국의 제국으로서의 역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흔히 미국을 로마에 비유한다.
이런 비유는 여러 측면에서 맞아떨어진다. 로마는 그 시대의 군사적, 경제적 거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문화적'인 사회였고 민족적, 종교적인 측면에서 최고의 관용을 베풀었다. 또한 로마는 고대의 제국들 가운데
유일하게 전 영토의 주민들에게 특별한 매력을 발산하는 문화 상품을 제공했다(물론 이것은 노예가 아닌 주민
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오늘의 미국 역시 로마와 마찬가지로 문화 상품을 제공한다.
그 문화 상품의 사례로는 전 세계의 수십억, 줄잡으면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맹렬하게 유혹하고 있는
청바지와 야구, 힙합과 할리우드, 패스트푸드와 프라푸치노(Frappuccino)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로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로마는 피정복민들을 로마제국의 일부로 만들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에서부터 스페인, 아프리카 서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정복민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라의 국민
이 되었다. 특히 로마는 수많은 피정복민 남성들, 즉 지도 계층의 남성들과 평범한 병사들에게 시민권을 부여
하고, 그러한 시민권에 부수되는 높은 지위와 특권을 주었다.
미국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미국은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외국의 주민들을 자국의 국민, 자국의 시민으로
만들려는 의사도 없고, 그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
중동에 미국의 제도와 민주주의를 가져간다는 생각을 할 때 미국인들이 상상하는 것은 바그다드와 팔루자 주민
들이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는 모습이 아니다.
지금 다른 나라들을 침공하고 점령한다고 해도, 미국의 목적은 병합에 있지 않고,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입헌
적인, 그리고 가능하면 친미적인 민주주의 제도를 세운 뒤에 군대를 철수하는 데 있다.
냉전의 시기, 특히 1980년대에 미국은 소비에트연방의 영향력을 막으려는 총괄적인 전략의 일환으로 세계
전역의 민주주의 운동을 지원했다.
미국의 이런 전략에는 민주주의 제도와 함께 경제적 자유주의를 퍼뜨리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미국의 막강한 권력에 대한 적대감이 비교적 적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극도로 억압적인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확실한 대안은 곧 미국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과 민주주의의 확산을 막는 결정적인 방해물인 소련이 붕괴하자, 세계의 다른 지역들이 미국의 주도
권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커졌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적인 패권'은 반미주의의 만연과 폭발이라는 기이한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미국이 마주보고 있는 세계 전역의 수십억 명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가난하고, 이들에게 미국의
달러는 세계를 지배하는 통화이고, 영어는 세계를 지배하는 언어이며, 미국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두드러지는 존재이고, 미국의 상표는 가장 침투성이 강하고 가장 큰 선망의 대상이다.
이들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보기에 미국은 현재 자신들의 처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이다.
그들은 가난한데다 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자기 가족의 운명도 어찌 할 수 없는 처지이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미국은 부유하고, 건강하고, 매력적이고 자신감이 넘치고, 착취를 하는 존재이다.
적어도 미국의 할리우드와 다국적기업, 광고, 그리고 지도자들을 표준으로 본다면, 이것은 맞는 이야기다.
미국은 또한 군사력이나 미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혹은 가공할 경제적 권력을
통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미국이 처해 있는 곤경이다. 미국은 국경 내부에서는 인종적,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정치적 정체성을
만들고 세계 각지에서 온 온갖 배경의 개인들을 미국인으로 통합시키는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인들에 대해서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그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과 미국을 단단히 묶어줄 정치적인 접착제는 미국의 국경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21세기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주요 경쟁국들은 수많은 자체 문제에 직면하고 있지만 (개별적으로든 연합을 통해서든) 점점 강해지고 있으므로, 미국은 가까운 미래에 패권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단순한 강국의 신분으로 복귀하는 것이 꼭 나쁜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결국 초강대국이 된다는 것은 역사의 이변이고, 이득과 함께 희생까지 떠안아야 하는 일이다.
한편 미국은 지금도 여전히 여러 측면에서 전략적 관용을 보여주고 있다. 만일 미국이 건국 이후 성공에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던 비결을 재발견하고 제국을 건설하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면, 몇 십년이 지난 후에도 세계
의 초강대국, 그것도 강압과 군사력에 의지하는 초강대국이 아니라 기회, 역동성, 도덕성을 갖춘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 (pp.444-477)
미국은 세계화를 통해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나라이다.
이민자 출신으로, 미국에서 맨손으로 시작하여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모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의 말을 빌리면, "세계화란 곧 잉여 자본이 주변 국가에서 중심 국가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바로 미국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망명한 물리학자들 덕분에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있
었다. 그러나 미국이 '정보 기술'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역시 이주한 과학자들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보 기술 전쟁은 지난 25년 동안 세계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미국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누렸던 경제 호황에 직접 연료를 공급한 것은 바로 두 가지 혁명적인 발전이었다.
하나는 마이크로칩의 발견이라는 기술 분야의 혁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벤처 자본주의라는 금융 분야의 혁명이
었다.
전자는 컴퓨터 시대를 낳았고, 후자는 실리콘밸리를 낳았으며, 이 둘은 다시 새로운 정보 기술이 눈부신 속도로
활용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다. 이 두 가지 혁명적 발전의 근원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모두 미국이 이민자들의 능력과 진취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 덕분에
얻어진 결과였다.
2003년에 사망한 유진 클라이너(Eugene Kleiner)는 '실리콘밸리를 건설'하고 '벤처 자금을 사실상 발명'한 사람
으로 여겨진다.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드 바이어스(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 KPCB)의 사업 모델은 20세기의 마지
막 25년 동안 벤처 자본을 급격히 증가시키면서 미국 금융계를 변화시켰다.
벤처 자본주의의 출현이 나치 유럽을 피해온 망명객의 덕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고, 그것이 컴퓨터
시대에 미국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것 역시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벤처 자본주의는 전략적인 관용이 20세기 후반에 창출해낸 실체라고 할 수 있다.
[ KPCB 설립자들. 바이어스·코필드·퍼킨스, 유진 클라이너(좌측부터), 출처 : http://www.kpcb.com ]
로마제국이나 몽골제국이 그랬듯이, 미국의 패권은 세계 최첨단의 재능과 지적인 자본을 끌어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가능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미국의 벤처 자본주의가 이런 비상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배경을 가졌든,
가난하든 부자든, 백인이든 소수 집단이든, 본토박이든 이민자이든 가리지 않고, 젊은 과학자들과 발명가들,
그리고 기업가들에게 품은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엄청난 유인을 제공했던 관용 정책 덕분이다. (pp.358-370)
않는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맥도날드의 노란색 M자 로고를 따서 골든아치 이론(Golden Arch Theory)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 이론은 세계화가 단순한 경제적 발전뿐만이 아닌 정치적 안정까지 보장한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예일 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존 개디스는 "미국과 나토 연합국들이 유고의 벨그라드를 폭격함으로써 그 이론은 불행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벨그라드에는 황금 아치들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라고 지적했다.
프리드만의 맥도날드 이론은 <세계는 평평하다>를 통해 델의 갈등예방이론으로 수정되었다.
즉, 델(Dell)에 컴퓨터 부품을 보급하는 국가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leetho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