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탕질의 조짐은 처음부터 있었다. 교육생들은 처음부터 이 강의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치안정책과정> 담당자가 마이크를 잡고 강의 시작을 알렸으나, 잡담은 중단되지 않았고, 당혹스러운 표정의 담당자가 몇 차례 강의 시작을 알리고 강사를 소개한 후에야 소음이 잦아들었다.
내가 어떤 학문적 배경을 갖고 있고, 그동안 경찰 조직 문화와 관련하여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소개했다. 특히 이 강의를 위해 작년에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국내외 문헌 자료는 물론 다양한 근무 조건 및 직군의 현직 경찰들에 대한 심층 면접 조사를 통해 성인지 관점에서 경찰 조직을 분석했고, 구성원들이 관리자에게 바라는 바를 수집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먼저 국제 사회에서 ‘security’가 공공서비스로 재개념화되면서 등장한 새로운 치안 개념을 소개했다. 수강생 중 한 사람도 이 새로운 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궁금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변화되는 치안 환경에 맞추어 성 평등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관리자로서 가지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조별로 공유하도록 안내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분탕질이 시작됐다. 누군가 뒤에서 ‘피곤한데 귀찮게 토론시키지 말고, 그냥 강의하고 일찍 끝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말을 무시하고 토론 방법과 시간을 설명하고 조별 토론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조별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조별 토론 시작을 알리는 순간, 15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다. 조별 토론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귀찮게 이런 거 왜 하냐’는 불평이 나왔고, ‘졸리다’, ‘자, 커피나 마셔볼까’라면서 우르르 자리를 이탈했다.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이들 역시 조별 토론을 할 생각이 없었다. 앞자리에 앉은 사람 중 몇 명은 내가 앞서 소개한 <경찰의 핵심 직무 역량으로서 성 평등> 내용 중 “증가하는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은 경찰의 치안 유지에 중요한 활동입니다.”라는 항목에 이의를 제기했다.
‘여성 대상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근거가 무엇이냐’, ‘통계 출처를 대라’, ‘여성 대상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성 평등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관리자의 고민’은 거의 공유되지 않았다. 주어진 조별 토론 시간 동안, 교육생들은 잡담을 나누거나, 강사에게 딴지를 걸거나, 밖에 나가서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교육생들이 나가면서 열어 놓은 문을 닫고 강의를 이어갔다.
나는 교육생들에게 ‘강의 현장에서 숱한 일을 골고루 겪어 봤지만, 조별 토론 시간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밖으로 빠져나간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커피를 마시거나,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천연덕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경찰 조직의 성 평등을 인사, 문화, 리더십, 성희롱·성폭력 등 4개 영역으로 나눠서 진단하고 분야별 솔루션을 공유하겠다고 안내한 후, 수강생들에게 성 평등과 관련하여 관리자로서 고민, 가장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경청하는 이는 딱 한 사람이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시종일관 귀찮은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거만한 태도, 무시하는 태도였다. 얼굴에 미소를 띤 사람도 있었는데, 이러한 분위기에서 그것마저 비웃음으로 느껴졌다.
‘이걸 들어줘야 해?’, ‘야, 야, 말해보란다’, ‘대충 아무 말이나 하고 치워’, 이런 무언의 대화, 메시지가 강의장을 가득 채웠다.
누군가 발언하겠다고 손을 들었을 때, 교육생들의 반응은 귀찮고 하찮은 일 대신해준 동료에게 해주는 ‘우쭈쭈’ 같은 것이었다. 두 사람이 손을 들어 발언했는데, 발언 내용은 성 평등 이슈와 관련하여 굳이 고민이 있다면 인사에 관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고민이라는 것이 ‘여경 인사’와 관련된 것이었기에, 4개의 주제 중에서 경찰 채용 방법 및 기준, 직무 배치, 평가의 공정성을 먼저 다루기로 했다.
2017년 현재 경찰 조직 내 여성 비율이 11.1%라는 자료 화면.
본격적인 분탕질은 이 지점에서 폭발했다.
‘우리 조직은 여성 비율이 50%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냐’(맨 처음 ‘귀찮게 토론시키지 말고 빨리 끝내라’고 요구했던 이 교육생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기관장 승진예정자로서, <치안정책과정> 내내 그런 태도로 일관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기관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이 사람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에 따로 민원을 제기할 것이다.)
‘여자가 일을 잘하면 구태여 남녀 가려서 뽑을 일이 있겠어’
‘경찰 여경 비율은 급격히 늘고 있다. 왜 여경 비율 증가 통계 추이를 보여주지 않고, 이 통계만 언급하냐?’
‘아까 그 통계 출처를 대라’, ‘직접 만들지도 않은 통계를 왜 가져왔냐?’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이 이야기를 왜 듣고 있어야 하냐?’
왕왕왕왕왕왕...
이들의 의도는 분명했다. 50대 여자 박사인 강사와 그 강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성 평등이라는 주제 자체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의도는 관철되었다. 강의는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중단되었다. 강의가 중단된 후, 몇몇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었는데, 그것은 대부분 동료의 언행을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것이었다. 70여 명의 교육생 중 여성은 단 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이 내게 한 말은 ‘나도 여자지만~’으로 시작되는 말이었다.
이들은 먼 길 달려온 외부 전문가에게 노골적으로 밑바닥을 드러내었다. 분탕질이 계속되는 동안, 아무도 말리는 이가 없었다. 기관장으로서 삶을 앞두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권한을 자각하고 고민하는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찰 조직의 꽃이라 불리는 총경의 자리에 오른 이들, 서로를 벌써 ‘서장님’이라고 부르는 이들, 공직 및 공공기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 이들은 ‘지금까지 고생했으니 이제 대접받을 일만 남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마치 기관장이라는 자리는 갑질 특권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이들은 모두 시종일관 <성 평등한 조직 만들기>라는 관리자에게 주어진 과업을 부정했고, 동료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앞에서 그 행위에 가담하거나, 침묵했다. 이들은 그렇게 철저히 무능했다.
이 금쪽같은 주말에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5월 29일에 <치안정책과정>의 성 평등 교육에서 있었던 이 일은 도저히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성 평등의 가치, 현 정부가 추진하는 성 평등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공직 사회의 기강을 무너뜨린 일이기 때문이다.
남성들만으로 이뤄진 조직이 왜 그렇게 무능하고, 자정 능력이 없는 조직이 될 수밖에 없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기 때문이다. 왜 경찰 수뇌부에 성 평등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지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무능과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 조직에 성 평등 가치가 실현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에 ‘치안’ 행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전체 경찰관의 남성 비율, 경찰 지휘부의 남성 비율이 제한되어야 한다. 경찰 조직 내 여성 경찰 및 여성 경찰 관리자 비율을 절반 이상 확보해야 한다.
그날 교육 현장을 지켜본 조교는 교육생들이 ‘마치 유치원생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런 태도는 대학 1학년에게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기관장, 경찰서장으로 앉아있는 조직에서 성 평등 행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을 이대로 기관장, 임원, 총경으로 승진시켜서는 안 된다. 이들은 관리자가 반드시 이수해야 할 성 평등 역량 향상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았다. 이들은 성 평등 교육을 거부했고, 방해했으며, 강사의 전문성을 부정했다. 성 평등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바, 이들이 내게 <성 평등 교육> 이수 확인증을 요구한다면, 나는 거부할 것이다.
나는 민갑룡 경찰청장 포함 지휘부 전원이 참석하도록 예정된 6월 25일 <성 평등 감수성 향상 교육>에서 이 일을 언급하고 시정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공직 사회에서, 관리자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없는 이들이 기관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없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제안한다. 이에 대해 경찰 수뇌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떻게 대응하는지 함께 지켜보자. 이 글을 널리 공유하여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