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화 (모티프로 줄거리 만들기) 모티프로 줄거리 만들기 (3회)
제자는 금수저 동기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공사판에서 여름 한때를 같이 보낸 김 씨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김씨는 아들 도움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며 마르게 웃었다. 그 흔한 학원도 보내주지 못한 애비, 수학여행 갈 때 용돈으로 2만 원 준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려서 아직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던 김씨, 아들은 명절 때도 오후에 잠깐 들려서 선물만 내 놓고 검사장에게 새배를 드리러 간다는 것. 벌어 놓은 돈이 없어서 몸이 움직이는 한 노동판을 떠날 수 없다던 김씨.
김씨를 보면 왠지 아버지의 얼굴이 투영될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평생 농사일로 뼈가 굳으신 분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해인가 설날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시는 모습을 보고 싸운 적이 있었다.
“보일러 기름 아껴서 뭐 할 건데?”
“놀아서 뭐하냐? 산에 가서 나무 한 짐을 해 오면 닷새는 등허리 따시게 잘 텐데…”
“아부지는 지금 제가 취직 못했다고 일부러 나무 해 오시는 거잖아.”
“내가 좀 늙었다 치더라도, 너 하나 정도는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응께. 쓸데 없는 걱정하지 말고 동네 으런들 한테 새배나 다녀 와라.”
“취직도 못한 놈이 뭔 자랑한다고 새배를…”
“야, 이 놈아!이 동네에 대학 졸업하고 취직 못한 아들이 너 하나 밖에 읎냐? 설령 너 하나 밖에 읎더라도. 너 취직 못했다고 손가락질 할 어른들은 한분도 안 계신다. 그랑께, 어여 새배나 하고 와라. 웃골 진택이 아부지한테 먼저 가 봐. 진택이가 작년에 암으로 죽었잖여. 올 설은 그 분이 젤로 힘들 거여. 그냥 가지 말고 정종이나 한 병 사 들고 가.”
제자는 아버지 말에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했다.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 입고 대문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소설가의 경험을 덧 붙여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지…”
스승의 말이 생각났다. 김씨와 그의 아들 김 검사. 서울 남부지청에서 근무를 한다는 잘생긴 검사 얼굴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다.
“소설은 거짓말이다.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고 거짓말을 덧붙이라는 거지.”
제자는 스승의 말이 생각 날 때마다 머릿속에서 희미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 마다 리드미컬하게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검사와 도둑.
제자는 머릿속에서 희미한 윤곽으로 맴돌던 생각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느꼈다.
아들은 검사 재벌집의 데릴사위로 결혼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공부시키느라 은행에서 대출 받은 돈을 아직 갚지 못했다. 대출금 이자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노가다판에 다닌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일거리가 별로 없다. 공사판 일 뿐만 아니라 닥치는 대로 일을 해도 늘 현실은 고단하다.
어느 날 식당일을 하던 아내가 미끄러져 허리를 다쳤다. 식당 주인은 아내의 실수라서 보상을 못해주겠다고 버틴다. 아버지는 아내의 병원 치료비를 구하러 다니지만 하나 같이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화를 한다. 아들은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전화를 하겠다며 끊어 버린다. 아버지는 치료비 독촉을 견디지 못해 공사판에 있는 값비싼 기계를 훔쳐서 중고상에 판다. 그 돈으로 치료비를 갚기는 했지만 불안하다. 다행이 기계를 잃어 버린 사람은 도둑놈이 따로 있다고 믿는 눈치다. 아버지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일을 한다.
어느 날 집으로 찾아 온 아들은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며 백만 원을 내 놓고 간다. 치료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버지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문 밖까지 나가서 배웅을 한다.
제자는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신들린 사람처럼 키보드를 두들겼다. 스토리를 꾸밀 생각을 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쓰니까 어떻게 써야 하는지 조금씩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