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월요일
감상, 나비부인, 로린 마젤
연습, 바이올린, 9시간 10분
피아노, 1시간 50분
가창, 2시간
읽은책 :
하늘이 무너져 내리다, 알베르 우데르조, 문학과 지성사, 2008. 4. - 'Nihil conveniens decretis ejus!' 원칙대로 되는 것은 없다. 오마주, hommage 존경.
오벨릭스의 수난, 상동. 'Summum jus, summum injuria.' 정의의 극치는 불의의 극치다. 'Nunc est bibendum.' 지금이야말로 꼭 마셔야 할 때 (호라티우스, 서정시집). 'Felix qui potuit rerum cognoscere causas.' 사물의 원인을 통찰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하여라 (베르길리우스, 농경시).
성령의 능력에 관한 솔직한 대화, 빌 헐, 국제제자훈련원, 2007. 10. - bona fides 선한 신의. 루돌프 불트만, 칼 바르트, 브루너, 본훼퍼. 불트만 - 신화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의 신비를 이야기할 때 쓰는 방법. 현대인에게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독교 믿음 및 성경의 기적들 재 해석. 신약의 사건들 중 신비로운 면을 제거, 현대인에게 거부감없이 재해석. 기적 뒤에 있는 이야기에 모든 관심 집중. "원래부터 기적은 없었다." "원래부터 능력은 없었다." .
복음주의자들, 능력은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은사중단주의자 vs 은사주의자.
'미국... tv프로그램 중... 코끼리 조련사였다가 은퇴한 찰리 프랭크에 대한 것, 찰리는 니타라는 코끼리를 오랫동안 훈련시켰다. 찰리와 니타는 둘 다 은퇴할 때까지 함께 일했다. 은퇴한 후 찰리는 트레일러 식 이동 주택에 살았고 니타는 새디에고 동물원으로 보내졌다. 찰리와 니타는 이렇게 헤어진 후 15년 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다. ...진행자는 찰리를 데리고 샌디에고 동물원으로 니타를 찾아갔다. 니타가 과연 찰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찰리는 열 마리의 코끼리들 중에서 니타를 금세 알아봤다....과연 니타가 알아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귓속 말로 속삭였다. 찰리조차 확신이 없었다. 15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으니까. 찰리가 먼 거리에 서서 "니타, 귀여운 놈, 이리 와"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청난 덩치의 코끼리 한 마리가 방향을 틀더니 찰리에게로 뛰어갔다. 찰리는 니타에게로 다가가서 쓰다듬어 주고 니타는 긴 코를 찰리의 볼에 비벼 댔다. 나는 그 장면에서 울고 말았다. 찰리도 울었고,휴엘도 울었고, 수많은 시청자들이 함께 울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찰리가 니타와 함께 공연했던 그 공연을 재연하는 것이었다! 15년 동안이나 서로 보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마치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에코의서재, 2008,8. 2쇄. "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로운 음정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지 않도록 참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 -J.S. Bach. 가장 흔한 즉흥연주 형태는 일상의 대화다. 모든 대화는 재즈 연주와 같다. 예술의 단계에 이르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술을 넘어서야 창조할 수 있다. 기술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창조적인 삶은 위험부담으로 가득하다. 부모님, 친구, 사회제도가 정해놓은 길을 버리고 나름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전통과 자유 사이에 미묘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한 손으로 총을 쥔 채 변화에 맞서야 한다. 한편으로는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영혼의 자유를 가로막는 기성의 틀을 깨뜨리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모험가, 인생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창조적 영감의 원천은 문화권에 따라 여자로, 남자로, 혹은 아이로 형상화되었다. 뮤즈, 키드르. 가슴은 머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 -파스칼. 마음의 소리를 찾는 것, 모든 예술가들은 결국 이것을 목표로 한다. 자기만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우려고 평생을 바치는 것이다. 놀이는 창조성의 시작점이자 삶의 근본 형태다. "악기 연주는 전적으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실시간으로 자신의 용기를 시험하는 것이다. 올바른 연주법을 가르쳐주는 이론은 아무 소용없다. 반복연습을 통해 자신의 방법을 발견해야만 한다." 아이들 연습용 악기는 음정을 표시하는 테이프를 붙이기도 하지만 이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무지한 행동이다. ... 순간적으로 소리의 높낮이를 판단해 조정해나가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손가락은 단번에 목표지점에 도착해 멈추는 것이 아니다. 미세하게 위아래로 미끄러지며 귀가 듣고 싶어하는 그 정확한 높낮이를 찾는다. 민감한 귀와 유연한 손가락을 통한 끊임없는 피드백 과정을 거쳐 제대로 슬라이딩을 하는 것이다. 바이올린 현을 세게 누를수록 느낌은 줄어든다. 더 크게 연주할수록 들리는 것은 더 작다. 근육을 이완시켜야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해 진다. 손 팔 어깨 신체 각 부분에서 힘을 빼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유연하게 하라. 비자발적으로 긴장된 근육, 경직되어버린 의지 따위가 문제다. 두려움 의혹 불안 등은 불필요하게 근육을 긴장시키는 생리적 효과를 낳는다.:신체의 갑옷-빌헤름 라이히,정신분석학자. 악기 연주란 결국 무게를 제대로 분산하여 근육이 과도한 긴장을 느끼지 않게끔 제대로 균형잡힌 행동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150가닥으로 이루어진 활은 연주자의 오른팔의 연장선이다. 또한 두뇌의 연장선, 혈관의 연장선이다. 연습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지루한 연습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연습은 해야한다. 지금 하는 연습이 지루하다고 생각된다면 참고 견디지 마라. 자신에게 맞는 다른 것으로 바꿔라. 음계순서나, 리듬이나, 음색을 바꿀 수도 있다. 연습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그 가락보다는 손가락 압력이 내는 미묘한 차이를 살핀다. 연습을 실제 상황과 분리시키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연습을 통해 창조과정은 추진력을 얻는다. 숙달의 경지는 연습에서 나온다. 연습은 놀이로 가득찬 과도한 실험, 그리고 경탄하는 마음에서 온다. 음악가는 한 곡만 더 연주하고 싶어한다. 음악가와 운동선수, 무용가는 근육이 아프고 숨이 가빠도 연습을 계속한다. 연습은 내적인 보상을 주는 놀이다. 우리 안의 아이가 5분만 더 놀고 싶어하는 것이다. '한 번만 더'라는 연습의 특징. 창조에는 기법, 그리고 기법으로부터의 자유가 모두 필요하다. 이렇게 되려면 기법이 무의식이 되도록 연습해야 한다. 같은 동작을 오래 되풀이 하는 가운데 기술적인 방법론은 '잠자면서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다. 일정 수준에 다다르고 나면 기법은 모습을 감춘다.
한계가 없다면 예술은 불가능하다.- 예산이 풍족하기보다는 부족할 때 더 좋은 예술이 나온다. 물론 가난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창작을 하려면 재료를 사야한다. 잘 먹고 삶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창작에 방해된다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결핍된 상황은 수중에 있는 재료를 십분 활용해 결과물응 만들어낸다. 돈을 내고 기존의 해결책을 사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 창조는 절대 불가능하다. 한계는 집중을 낳는다. '제약이 많을 수록 영혼을 옭아매는 족쇄로부터 더 많이 해방된다.'-스트라빈스키. 브리콜뢰르 bricoleur, 온갖 한계를 극복하는 전문가, 예술가. 음악은 "불충분한 수단으로 위대한 결과를 이루는 길"-베토벤이 헨델에게 보낸 편지 중. 베토벤은 오로지 음계의 오르내림만을 사용하여 위대한 음악을 완성했다.
felix culpa, 복된 죄. 비제는 카르멘을 초연한 후 제대로 된 멜로디가 없다는 혹평에 시달리며 불과 1년 만에 눈을 감았다. 우리는 창조성에 '비범함'이나 '예외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예술과 과학이라는 특수 영역에 한정시킴으로써 창조성을 가둬버린다. 스타 연주자나 공연자를 만들어냄으로써 창조성을 한층 더 멀리 밀어낸다.삶의 무게에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관습적 쳇바퀴에 못 박히게 된다. 하지만 억지로 한다고 얻어지지는 않는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면 명상하라. 창조하려면 사라져야한다. 무조건적 포기만이 진정한 텅 빎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후에야 자유로운 창조의 가능성이 열린다. 자신을 비워야 영적 예술가가 될 수 있다. 통찰력이나 돌파력은 힘든 노동의 끝인 휴식기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겨울에 수영을 배우고 여름에 스케이트를 배운다.'-윌리엄 제임스,심리학자. 긴장이 풀린 이완 상태에서 창조적 영감이 얻어지기도 한다. 빈둥거림의 가치-월트 휘트먼. Sabbath, 안식일-지난 4천 년의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사회정치적 발명품. "삶의 미적 측면은 예술을 창조하는 이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세상의 온갖 현상에 대해 타고난 감각을 마음껏 발휘할 때, 그리고 그 결과 생명이 온갖 행복에 가득 찰 때 삶은 아름답다."-시인 허버트 리드. 예술 작업에서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건 창조적 문제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간접적으로 드러난 삶의 문제다. 예술은 삶과 마찬가지로 반복적인 과정이다. "예술가의 삶은 갈등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평범한 인간처럼 행복하고 만족스러우며 안정된 삶을 바라는 마음과 개인적 욕망을 넘어서는 불같은 창조 열정이라는 두 가지가 늘 전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창조의 불길이라는 재능은 예외없이 응분의 대가를 요구한다."-칼 구스타프 융. 모든 것을 다 바치다시피 해야 하는 여정의 끝에 대해, '그 탐험의 끝에서 우리는 출발했던 곳에 도달할 테지 그리고 처음으로 그곳을 알게 될 테지.'-T.S. 엘리엇. 돌파구 혹은 되돌아감의 순간은 다시 찾은 순수성의 삼매다. 도구를 집어들 때마다 예술가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애초의 노는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작업을 해낼 수 있다.
베토벤은 서른두 살 때 자기 청력이 영원히 회복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게다가 평생 고독하게 지내리라는 것도 내다보았다. 절망감에 유서를 쓰고 생을 마감할 생각마저 했다. 하지만 유서를 쓴 바로 그 여름에 작곡된 2번 교향곡은 비, 공기, 행복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드러낸다. 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영웅교향곡은 베토벤이 수많은 마음속 갈등을 딛고 작곡해낸 결과물이다. 동시대인들이 말하는 베토벤은 무척이나 불운하고 염세적이며 운명에 대한 복종과 저항을 반복한 인물이다. 그는 포기의 길 좌절을 초월하는 길을 선택했고 바로 그 덕분에 귀가 먹고 외롭긴 했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많은 기쁨을 노래한 시인으로 살았다.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레위기.
라틴어입문, 04. terrae pulcrae ~ 09. Galba et pirat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