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례지로(巡禮之路: Pilgrimage Road)’













이 길은 맛있고 향기 나는 사과만이 나귀등에 실려 올라가고 내려간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 이전부터 소금과 차 같은 이 지방에서는 생산되지 않지만, 인간들 생명줄과 같은 귀중한 물건들이 전문 보따리 상인들에 의해 지역차익과 시세차익을 위해 이용하던 대상로였다. 이름하여 또 다른 ‘차마고도’였다.
또한 이 길은 먼 무스탕 염소들이 피의 희생잔치를 벌이려고 수 천여 년 동안 해마다 죽음의 행진을 하던 길과 겹쳐 있었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종교적 축제날에 맞추어 한 날 한 시에 목이 땡강 잘려 죽으려고 먼 포카라까지 몇날며칠을 목동들의 채찍에 맞아가며 쫓겨 내려가는 길이었다. 무엇보다 이는 며칠 전까지도 ‘현재진행형’이라는데 의미가 깊었다.
또한 이길 위에는 종교적 구도심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험난한 구도의 길을 떠났던 수많은 구도자들의 순례길이기도 했다. 역시 말을 만들어보자면 ‘순례지로(Pilgrimage Road)’였다.
역사상 이 길을 오가간 순례자들이 어찌 한 두 명이었겠냐 마는, 그중에서 나는 이 마르파의 한 골목에서 특기할만한 한 인물을 ‘다시’ 만났다. 바로 카와구치 에카이(河口慧海,1866~1945)라는 일본 황벽종(黃壁宗)의 승려였다. 그는 그냥 마르파를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아예 3달 동안을 살다갔다고 한다. 그는 일본을 떠나 인도 캘커타에 상륙하여 다르질링을 거처 네팔로 입국하여 포카라를 경유하여 1900년, 이곳 마르파에 도착하여 3개월 동안 머무르며 티베트로의 밀입국을 준비하였다. 그리고는 천신만고 끝에 대설산 히말라야를 넘어 무사히 라싸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는 몽골승려로 위장하여 꿈에도 그리던 세라사원에 방부를 들여 3년을 머무르며 불경 공부를 원 없이 하였다. 그러다가 신분의 위협을 느껴 귀국하였다가 10년 뒤 다시 잠입하여 티베트대장경을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다.
1997년 나는 그를 카일라스 성산 꼬라길 중 최대의 난코스인 될마라(5,668m)고개에서 처음으로 만났고 다음으로는 세라사원에서, 카트만두 보드나트에서,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기록상으로 그는 동양삼국권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카일라스 한 바퀴 도는 ‘꼬라’를 성취하고 기록을 남긴 사람인데, 그는 그 고개를 남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삼도해탈(三途解脫)의 고개”라고 불렀다.
또한 그는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아름다운 ‘하얀 산’ 다울라기리를 바라보며 “마치 비로나자 부처님이 허공에 계신 듯한, 눈 덮인 봉우리구나~ ” 라는 감탄사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이 길은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그 부속적 문화가 교차적으로 오르내렸던 길이다. 이는 단지 종교만 지나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종교는 “문화를 실어 나르는 배” 노릇을 충실히 했다는 사실조차도 사족일 것이다.
인도에서 탄생하여 전륜성왕(轉輪聖王:CakhraVartin)이라 불리는 아쇼카(Ashok)대왕 시대에 크게 번창하던 불교는 그 뒤 계속적으로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견제와 잠식 그리고 이슬람교의 침공으로 인해 본토에서 설 자리가 점차로 없어지자 당시 일부 승려들은 살 길을 찾아 히말라야를 넘어 설역고원 티베트로 들어가 딴뜨릭불교를 전파했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 티베트불교는 고유의 전통신앙인 뵌뽀교와 한 편으로 대립하고 한 편으로 융합하면서 반탄력을 키우며 4갈레로 갈라졌지만, 결국 티베트불교는 각기 뿌리를 굳게 내리면서 외부 조류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근대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무신론자들의 집단인 중국공산당에 의해 나라와 영토를 빼앗기게 되자 다시 옛 초기 전파길을 따라 옛 고향 인도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망명길이었다. 물론 그들이 다시 내려왔던 길은 여러 갈레였지만, 가장 중요한 루트가 바로 무스탕과 좀솜과 마르파를 지나는 길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불교사적으로 간과해서는 안 될 몇 가지 문제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바로 지금의 티베트불교는 옛날에 티베트로 들어갈 때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반탄력이 강력해졌다는 점이다. 천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다져온 승려조직은 승려들 각자의 체질과 능력에 따라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외부 속인이 전혀 필요 없을 정도로 승려들 자체로만 단단하고 거대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논리적인 경전을 넘어 신통력에 가까운 수행력으로 중무장한 막강한 승려집단은 이미 일당백의 능력을 구비하여 마치 천하무적의 군대처럼 공격하여 함락시키지 못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이는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대신 티베트불교의 잠재력은 세상의 어떤 종교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젠 대승불교나 소승불교 같은, 남방불교나 북방불교 같은 구태의연한 분류법은 세계불교사적 관점에서는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다. 이젠 네팔이나 인도는 그저 티베트불교란 막강한 적황색 옷을 입은 점령군이 잠시 스쳐가는 경유지일 뿐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그럼 도대체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첫댓글 가보고 싶은 길입니다. 그러니까 무스탕을 방향으로 잡아 가면 되는 건가요?
네 일단 무스탕의 입구 좀솜까지 가셔서 몇 시간 정도 걸어 내려 오셔도 됩니다.
티벳인들이 랏사에서 독립과 자유를 찾기를 기원합니다.
티베트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