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 교수의 '니까야서 길을 묻다'
깨달음의 세계, 우리 삶과 밀접
1. 부처님이 제시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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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 투 더 스톰’을 보면,
졸업을 앞둔 고교생들이 25년 뒤에 펼쳐질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엄청난 폭풍 속에서도
역경을 헤쳐 가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중심을 이루지만,
지난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학생들의 인터뷰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25년 뒤 자신의 모습’이라는 단어와
접촉하는 순간 70대 중반이 되어버린
늙은 내 자신의 모습이 계속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25년 뒤’라는 생각이 가져온
두려움 때문에 일상이 즐겁고 기쁘지 않아서
문득 생각이 진행하는 방향을 거꾸로 돌려보았다.
25년 뒤가 아니라
‘25년 전의 나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군 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향해가고 있는
20대 젊은이의 모습이 나타나더라.
우리들이 갖가지 상황을 겪게 되면서
떠올리는 생각이란 녀석은 이토록 허술하다.
25년이라는 삶의 과정을 앞으로 돌리면
늙은이의 영상이 떠오르지만
뒤로 돌리면 젊은이를 만나게 되니 말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생각이 일어날 때
그의 앞에 펼쳐지는 모습은
양면성을 띠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즉 바라던 대상이나 이미지가 나타나면
즐거워 하다가 바라지 않던 것이 나타나면
괴로움에 빠져
허덕이는 일상의 모습이 되기 쉽다는 뜻이다.
따라서 생각이라는 작용은
한쪽 방향으로 달려 나가기를 좋아하며,
그러한 방향이나 속도감에 맛들이게 되면
그것이 하나의 ‘습관을 형성(業)’하게 되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의 방향성에 대해
성찰하기 어렵게 만든다.
“지나간 것에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것에 애태우지 않고
현재를 지켜 가면,
그것에 의해 얼굴빛은 밝게 되네.”
(SN,Ⅰ,p.5)
인용한 내용은 초기불교 경전의 하나인
<상윳따 니까야> ‘갈대의 품’에 나오는 구절로써,
과거의 사실에 빠져 있거나
바라고 있는 미래의 일에
미리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현재를 지켜간다’는 말의 의미는
동일한 내용을 전하고 있는
<잡아함> 제995 ‘아련야(阿練若)’ 경에 따르면,
‘바른 지혜로써 생각을
(과거나 미래로 흩어지지 않도록)
묶어두고 주의력을 불러일으켜
지금 여기에 지속되도록 하는 것(正智繫念持)’
으로 설명되고 있다.
인용문에서 ‘현재를 지켜간다’는 말은
자신의 사고 작용이
지금 여기에 온전하게 머무르게 한다는 뜻이 되니
이것은 바로
불교의 명상 수행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사유의 작용이 지금 여기에서 지속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로 달려 나가고 있는 그 순간을 방치하면
다음 수순은
욕망과 감정이 개입되는 꼴을 목격하기 쉽다.
생각의 작용에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생각은 감정에 끌려 다니게 되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의 일이나 사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이러한 상태를
‘탐욕’과 ‘번뇌’라는 말로써
그 위험성에 대해 수없이 지적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서 늘 발휘되고 있는
나의 ‘생각’이라는 녀석이
온전하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성찰하는 태도로부터
불교는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전 속에 등장하는
갖가지 불교 교리(敎理)들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저 생각과 감정의 덩어리가
어떠한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김준호
/ 울산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