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흙으로 구워진 토기와도 같다. 그 위에 신선한 과일이 담길 수도 있고, 더러운 물질이 담길 수도 있다. 그러나 깨끗이 설거지를 하면 맞있는 음식을 담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어떠한 상처나 아픔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떠한 죄 된 행위로 범죄 저지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사람에 대한 상대적인 의를 내세울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욕심이 가득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물질을 많이 쌓아두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 없는 삶은 어떤 경우에도 만족함이 없는 고통의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인생을 사랑하셔서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믿는 믿음 하나로 상처를 치유 받게 하시고 죄로부터 구원하여 주셔서 영원한 천국백성(내가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 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힌 것은 옛사람의 죽음이요,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죽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된 것이다. 영적으로 거짓자기(옛사람)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니,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참자기(새사람)가 살아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고백 할 때 내가 죽는다는 말을 어려워하거나 이해를 못하여 헛갈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의 회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영원히, 단번에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은 것인데 아래의 말씀은 왜 바울이 날마다 죽는다고 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고전 15:31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는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이후에도 죄를 짓는 모습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성도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치유의 과정 중에 상처 입은 자리를 직면하여 나의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상처 입고 형성 된 나의 수치심을 알고 드러내는 것과 같다. 이렇게 나의 상처받은 자리와 그로 인해 내가 거짓자기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오염된 감정을 순환시켜 진짜 감정을 느끼는 참자기를 찾는 것은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옛사람과 거짓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새사람이 되었음을 알고 명확히 하나님을 알고 믿어 죄(상처)로부터 해방되어 참자기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건강한 인격들이 모인 교회는 내재된 영적 생명력이 왕성해진다. 또한 영적 생명력이 왕성한 교회는 구성원들을 치유하고 바른 믿음을 주어 건강한 생명의 연합을 이루는 교회가 되게 한다.
롬 7:18-19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그러나 이 죄악 자체를 자기(참자기)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악은 바로 내 속에 거하는 죄(죄와 짝을 이루었던 거짓자기, 즉 옛사람)로 여겨야 한다. 아래의 말씀을 보자.
롬 7: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2 이처럼 육신으로는 원치 않는 죄악이 있고,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이때마다 내가 십자가에서 옛사람(거짓자기)은 죽은 존재이고, 새사람(참자기)은 살아 난 존재임을 믿음으로 날마다 고백하며 죄악 된 행동들을 버리고 새사람으로서의 삶을 통하여 점차 성화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로 표현 한 것이다. 이는 또한 심리상담학적으로는 십자가(나의 상처에 대한 직면)의 자리에서 옛사람(거짓자기, 상처 입은 자기)이 치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내가 날마다 죽는다고 표현 했다. 즉, 상처 치유의 과정이 성화의 과정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성화 되는 나의 모습이 치유 받은 참자기의 모습이 되기 때문이며, 참자기의 모습을 찾는 것이 치유의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상처가 나를 괴롭히지 못하고, 죄와 죄 된 행동이 더 이상 나를 유혹하거나 행위로 나타나기 어렵게 되며, 생각 또한 어두움에서 벗어나 밝은 생각을 가지고 기쁨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성령 충만의 모습이며,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힌다.
그러므로 복음이 분명하면 사랑이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신다. 비록 젖먹이 일 때도 있으나 점점 자라 결혼하여 부모도 되고, 후에 조부모도 되고 후에 하늘 본향으로 간다. 그 길에 자기 몫의 십자가가 있다. 언제나 받아먹는 어린아이에서 머무를 수는 없다. 자라면 내가 어렸을 때처럼 다른 어린아이에게 먹여주어야 하는 수고가 뒤따른다. 그렇게 성숙하면 그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는데 이처럼 복음이 전해지고 또 다른 젖먹이 생명을 낳는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어디까지 가야하냐고 물어 본다면 그 십자가가 세워지고 들리는 곳 까지 지고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들린 곳에 누가 달려야 하냐면 자기가 달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십자가라고 부른다. 이러한 결승점에 이르러 믿음으로 구원 받은 내가 주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힘으로 또 다른 열매를 맺는다. 드디어 주님의 길이 나의 길이 된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