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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꽉 차 있는 물질이라도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원자핵과 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러한 원자 내부의 99.9999... 퍼센트는 비어 있음을 현대물리학은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처럼 원자 체적의 아주 작은, 대략 1,000조분의 1 정도만을 차지하고 있는 원자핵은 반면에 아주 꽉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원자핵의 밀도는 통상 우리가 접하는 물질 밀도의 대략 1,000조 배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꽉 찬 조밀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나 중성자는 쿼크라 불리는 점 입자 3개로 이루어져 있음을 현대물리학은 말하고 있다. 점 입자라는 얘기는 크기가 없는 입자라는 뜻이다. 이는 가장 조밀한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나 중성자가 사실은 비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물리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물질계의 실체는 불교의 반야심경에 나오는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구절과 너무나 합치하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그 다음 구절, 공즉시색(空卽是色)은 어떠할까?
놀랍게도 현대물리학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vacuum)이 실은 온갖 ‘물질’들로 요동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우리가 항상 접하는 거시적 세계에서는 논리 자체로도 모순투성이인 이 명제와 걸맞은 현상은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나 미시 세계로 가면 완전히 달라져서,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음을 현대물리학은 말해주는 듯하다. 그렇다! 현대물리학에서는 우리가 상식으로 인정하는 통상의 논리 체계도 종종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과 어긋나는 현대물리학이 말하는 진공의 실상은 무엇인가?
진공眞空은 그 뜻이 의미하는 바, 아무런 물질도 존재하지 않는 빈 공간을 뜻한다. 그런데 현대물리학에서는 이와 같이 아무런 것도 존재하지 않아 극히 조용하여야 할 빈 공간이 실은 온갖 입자들이 시시각각으로 생겨나고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극심한 변화가 상시 일어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 안에 온갖 입자들이 변화무쌍하게 존재한다?
이 모순되는 얘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현대물리학의 근간이 되다시피 한 ‘불확정성 원리’의 의미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하겠다.
불확정성 원리의 원래 물리적 의미는 어떤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 두 가지를 동시에 함께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측정의 부정확성 때문이 아니라 원리상 그렇다는 것이다. 즉,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면 할수록 운동량은 부정확하게 측정되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위치의 부정확성과 운동량의 부정확성을 곱하면 그 값은 항상 어떤 특정한 작은 상수보다 커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위치를 특정한 포인트에 핀 포인트 했다면, 운동량은 전혀 확정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면 위치의 불확정성이 0 이 되어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운동량의 불확정성은 무한대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서로 합쳐져 4차원 시공간(spacetime)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불확정성 원리에 나타나는 위치와 운동량은 위치가 4차원 시공간으로 확대될 때, 운동량은 에너지와 운동량의 4차원 운동량으로 확대된다. 이는 위치와 운동량 사이의 불확정성 원리가 시간과 에너지 사이의 불확정성 원리로도 확대됨을 뜻한다. 즉, 어떤 사건(event)이 일어난 시간의 불확정성과 그 사건에 관련된 계(system)가 갖는 에너지의 불확정성은 그 곱한 값이 어떤 특정한 작은 상수보다 커야 함을 뜻한다.
무슨 의미일까?
만약 어떤 사건이 아주 작은 시간 간격 사이에 벌어진다면 그 사건의 시간의 불확정성은 아주 작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해당 사건에 관련된 에너지의 불확정성은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아주 크게 된다. 이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는 계가 엄청나게 큰 에너지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특수상대성이론에 나오는 에너지-질량 등가 공식(E=mc2, 즉 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력의 제곱을 곱한 것과 같다)은 어떤 물질이 갖는 질량의 크기는 곧 그 물질이 가진 에너지의 크기임을 말해준다. 즉, 질량이 큰 물질일수록 가진 에너지 역시 크다는 것이다. 사실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은 이러한 에너지-질량 등가 공식을 현실화한 한 가지 예라고 할 수 있다.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은 원자핵들이 분열하거나 융합하면서 질량이 감소하게 되는데 그 감소된 질량이 에너지-질량 등가 공식에 따라 엄청난 에너지로 변환하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공도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는 아주 큰 에너지를 가진 계로 존재할 수 있게 될 것인데, 그렇게 존재하게 된 큰 에너지가 물질 입자들로 변할 수도 있을까?
- 물질은 진공요동으로부터 -
앞의 논의는 진공에서도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는 큰 에너지를 동반한 사건들이 벌어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 짧은 시간 동안 큰 에너지를 가진 계로 변하며 시시각각 요동치는 현상을 물리학에서는 진공요동(vacuum fluctuation)이라고 부른다.
앞서 인용한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이라는 현대물리학의 기본 이론에서 나온다. 이 양자역학에 특수상대성이론을 적용하면 ‘양자장론’이라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게 되는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중력계를 제외한 자연계의 모든 현상은 이 양자장론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양자장론은 입자들(물질)이 에너지로부터 입자와 반입자 쌍으로 생성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즉, 현대물리학 이론은 진공요동에 의해서 물질들이 생성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단지 이론일 뿐인가?
아니다. 그러한 이론이 실제임을 카시미르 효과(Casimir effect)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카시미르 효과는 진공 중에 두 개의 평판을 서로 마주보며 평행하게 가까이 하였을 때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이는 1948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카시미르에 의해 예측되었고, 이후 실험적으로 입증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진공요동으로 설명된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는 모든 현상이 양자역학적 파동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양자장론에서는 이 파동이 양자화 되어 파동의 양상에 따라 파동의 특성에 상응하는 입자들이 생성 또는 소멸하는 것으로 기술된다.
진공에서는 요동이 존재하는 시간에 따라 시간이 아주 짧은 때는 에너지가 큰 요동이, 시간이 더 길 때는 에너지가 더 작은 요동이 생겨나게 된다. 이와 같이 생겨나는 요동들은 양자역학적 파동으로 기술될 수 있다. 그런데 두 평판이 마주보며 가까이 있을 경우 두 평판 사이에 생겨나는 양자역학적 파동은 사이 공간이 갖는 기하학적 제약 때문에 어떤 특정한 조건을 만족해야만 한다. 이는 즉 양자역학적 파동의 종류가 두 평판 사이에서는 두 평판의 외부에서와는 달리 제약됨을 의미한다. 양자장론적 관점에서 이는 양자화에 의해서 생겨날 수 있는 입자들의 종류가 두 평판 사이에서는 두 평판 외부에 비해 제약됨을 의미한다. 이는 곧 평판에 부딪히는 입자들의 수가 두 평판 사이에서는 그 외부에 비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와 실질적으로 두 평판을 외부에서 안쪽으로 압박하는, 즉 두 평판이 서로 끌어당기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게 된다.
이와 같이 카시미르 효과는 진공요동에 의한 입자들의 생성이 단지 이론에 의한 주장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현상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없어 비어 있다고 생각하는 진공도 실은 시시각각 요동치며 순간적으로 생성 소멸하는 온갖 종류의 입자들로 꽉 차 있는 공간임을 말해준다.
- 에너지와 물질(질량)은 등가 -
이전 글에서도 잠시 썼지만 세상은 광대무변한 우주에서부터 보이지도 않는 원자핵의 속까지 온갖 기(힘 force)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중력이나 전자기적인 힘은 그 범위가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중력은 온 우주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원자의 내부는 전자기력으로, 원자핵의 내부는 강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진공에도 어떤 기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햇빛이 태양과 지구 사이의 빈 공간(진공)을 지나서 우리에게로 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럼 잠시, 빛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빛은 전자기적인 힘의 파동이다. 힘의 파동? 이를 위하여 잠시 장론(field theory)을 살펴보자. 전하를 띤 물체 또는 자석이 있으면 주변의 전하를 띤 다른 물체나 금속이 힘을 받는다. 이처럼 전하나 자석에 의해 그 주변 공간 어디에나 존재하게 되는 전자기적인 힘의 분포를 우리는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힘의 근원인 전하를 띤 물체나 자석을 움직이면 전자기적인 힘의 분포 역시 따라서 바뀌게 된다. 이와 같은 전자기적인 힘의 분포를 시간에 따라 바뀌게 하면 전자기적인 힘의 분포 역시 시간에 따라 파동처럼 전 공간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이러한 파동을 우리는 전자기파 또는 전(자)파라고 부른다. 우리가 보는 빛(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x-레이, 라디오파, 마이크로웨이브 등이 모두 다 전자기파에 속하며 이들은 다만 전자기 파동의 진동수가 다를 뿐이다. 전자기파 즉 빛은 전자기적인 힘의 파동이다. 이는 전자기적인 힘이나 중력이 진공 중에서도 전파되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중력의 파동인 중력파는 매우 미미하여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예측되긴 했으나 백년 만에야(2015년) 겨우 측정되어 탐지한 이들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진공에 존재하는 강력한 전자기파인 감마선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실 우주선(cosmic ray)은 대부분 고에너지 감마선이다. 물리학에서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기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에너지의 변화는 힘을 생성하여 상태에 변화가 일어나게 한다.
고에너지 감마선은 앞서 언급한 에너지-질량 등가 공식에 따라 전자와 양전자 쌍을 실제로 생성하기도 한다. 즉 물질이 에너지만 존재하는 진공에서 실제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전자와 양전자는 서로 합해져서 빛으로 변하여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스위스와 프랑스에 걸쳐 있는 CERN이라 불리는 ‘유럽입자가속기센터’에서는 양성자와 양성자가 거의 빛의 속도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다가 충돌하면서 이 두 입자를 합친 질량보다 훨씬 무거운 엄청나게 많은 입자들을 만들어낸다. 이는 마치 작은 당구공 두 개를 엄청 빠른 속도로 충돌시켜서 더 크고 무거운 쇳덩어리들을 엄청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는 에너지와 물질이 아인슈타인의 에너지-질량 등가 공식으로 항상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가히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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