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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티학교 청년 과정(호스피티움) 김효래 -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센델 저) 중 2권을 읽고 요약하시오.
정의란 무엇인가는 세계적 석학 마이클 샌델의 책이다. 근현대 윤리학과 정치철학에 해당하는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쟁의 핵심을 풀어놓은 책이다. 사회정의에 대한 갈망, 자유로운 질문과 대답, 흥미로운 예시 등의 내용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매우 난이도가 어려웠다. 이 책에서는 형식적인 정의와 내용적인 정의 두 가지로 구분 할 수도 있다. 형식적인 정의는 윤리, 합리성, 법률, 자연법, 종교, 공정함, 균등함, 그리고 선포된 윤리의 위배에 따른 처벌 등에 바탕을 두고 내리는 도덕적인 옳음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책 33쪽에 이렇게 나와 있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즉,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서 정의를 ‘분배 정의’로 한정짓고 있다. 그러나, 처음에 봤던 형식적 정의에 따르면 정의에는 분배정의뿐만 아니라 처벌에 관한 정의도 있다. 그런데, 마이클 샌델의 책 33쪽에서 본 것처럼 마이클 샌델은 그 책의 정의론의 대부분을 ‘사회 질서나 정의의 기준에 따라 사회의 경제적 생산물을 분배하거나, 기존의 분배 구조 안에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불평등을 조절해야 하는 가치’ 즉, ‘분배정의’ 에 한정하는 것 같다.
또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내용적 정의이기도 하다.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한 답이다. 400 페이지 이상의 두꺼운 책에 이 답이 실려있지만 그만큼 다루기 어려운 문제다. 쉽게 다룰 수 있으면 책이 얇고 페이지도 적을텐데, 이정도 양의 책을 보면 매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공리주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이기적 쾌락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조화시키려는 사상이라고 한다. 공리주의자들은 사회구성원에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나 결정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경제적 풍요와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정책을 지지한다. 예를 들어 테러리스트가 잡혔을 때 용의자에게 고문을 주는 것은 정당화 할 수 있다. 고문은 용의자에게 고통을 주지만, 폭탄이 터지는 순간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따져보면 확률이 크다고 판단하기에 고문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를 얻게 되는 것 이다. 나는 죄다 어렵다고 보지만 공리주의도 생각할수록 무지 어렵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인권을 갖고 태어나는 ‘천부인권’과 미국의 미란다 판결에서 유래한 것으로, 피의자 조사 전과 피의자를 체포, 구속할 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선임권 등의 권리를 고지해야 한다는 원칙의 ‘미란다원칙’이 있다고 한다. 벤담에 의하면 옳은 행위는 공리를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이다. 또한 공동체란 “허구의 집단”이며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 공리주의의 첫째 약점은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권리에 많은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고. 둘째 약점은 중요한 도덕적 문제를 모조리 쾌락과 고통이라는 하나의 저울로 측정하는 오류를 범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밀은 매 순간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리를 극대화함으로써 공리주의를 변호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공리를 넘어서는 도덕적 이상인 인격과 인간 번영이라는 이상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벤담의 원칙을 다듬은 것이 아니라 비난한 셈이 된다. 밀이 고급 쾌락을 중시한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공리주의의 핵심은 간결하며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하다.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의 극대화, 즉 쾌락의 총량의 고통의 총 량보다 많게 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공리를 극대화하는 행위는 무엇이든 옳다. 그가 말하는 공리란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이나 불행을 막는 일체를 의미한다.’ <벤담의 원칙>
*자유주의*
공리주의 논리는 급진적인 부의 재분배를 옹호할 수도 있고 생산성 감소라는 이유로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분배에 반대하는 흔히 ‘자유지상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규제 없는 시장을 옹호하는데 그 명분은 경제 효율성이 아니라 소유권과 같은 인간의 자유다. 그런데 자유지상주의는 자신을 소유함에 근거하여 콩팥 판매와 안락사, 합의하여 이루어진 식인 행위라는 극단적인 예까지 허용할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권리를 지켜주는 결정이 정의로운 결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유주의는 범위가 매우 넓어서 같은 자유주의 내에도 여러 다른 현상의 입장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 책에 따르면 같은 자유주의 내에도 자유방임주의와 공평주의라는 입장이 매우 다르고, 우리 시대 가장 치열한 정치적 논쟁이 이 둘 사이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옹호하는 입장이 자유주의라고 정의내리기도 한다. 즉, 개인의 자유만큼 평등한 권리도 중요하고, 그렇게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자유주의의 일종인 것이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 문제점은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정부는 도덕적 문제에 있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개인 선택의 자유만을 강조하면 어느 순간 정부는 거의 모든 정치적 쟁점에 대해 중립을 지킨 채 무기력하게 된다.
*공동체주의*
이 책에서는 공동체주의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마이클 샌델 자신은 공동체주의의 입장에 서 있는데, 정작 자신은 공동체주의라는 단어를 싫어한다고 한다. 책에서는 미덕, 그리고 좋은 삶에 기여할 수 있는 결정이 정의다라고, 설명은 되어있다. 공리, 선택의 자유만으로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으며 공정한 세상을 위해 공동선을 추구하고 이견을 상호 존중해주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의 연대 의무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공동체주의라고 부르지만, 마이클 샌델에게 연대의무란 자연적 의무와 자발적 의무가 함께 3가지 의무 중 하나이면서 어떤 안건을 바라보는 3가지 관점중 하나에 불과하기에, 마이클 샌델 본인은 그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주의'라는 단어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적 공동체'로 쉽게 오해받기 때문에, 샌델은 여러 관점을 파악하여 가장 적절한 관점을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통해 함께 찾아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공동체주의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런 것들을 살펴볼 때 마이클 샌델의 관점은 '공동체 속의 개인은 개인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함께 공동체의 가치를 결정하며 이를 통해 개인은 선택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누린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개념들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공화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공화적 시민 참여가 일어나는 조건이, 공동체의 '연대 의식'과는 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공동체주의와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정의를 바라보는 세 가지 기준. 행복, 자유, 미덕을 설정한 후,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한 공리주의를 소개한 다음, 중립적인 정의의 원칙으로서 자유와 합의를 주장한 자유주의적 접근, 즉 자신의 합리적 이성을 통해 스스로에게 자신이 정한 도덕규칙을 부여해서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이끌어낸 칸트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둬 최소수혜자에게 이를 주어 기회의 평등을 맞춰야 한다는 롤스의 이론을 소개한다. 또한 상호이익으로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존 로크의 주장과 부자는 세금으로 빼앗긴 만큼의 강제노동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정부는 최소한의 치안유지만 하면 된다는 이론을 설명한다. 이후 정의란 미덕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관을 소개하며, 이러한 이론에 근거하고 있는 매킨타이어의 '서사적 자아'에 따른 공동체주의를 말하면서 자연적 의무와 자발적 의무가 구별되는 '연대 의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특히 이 부분에서 중립적 원칙과 합의의 영역을 넘어서는 도덕적 의무가 있음을 들어, 롤스를 비판한 대목은 이 책에서 매우 유명한 부분이다.
끝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 관에 바탕을 둔 ‘목적 즉 본질 파악'과 '영예 분배 결정'을 다루며, 도덕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논하고, 정의 담론이 도덕의 영역을 애써 피하고 중립을 지키려다가 근본주의의 득세를 돕는 꼴이 되었다. 반복 적인 독서와 다른 매체들을 활용한 학습 등으로 마이클 샌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나 이론들의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하였다. 그중 제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 아래 내용이다.
사회적 연대 의식 강화를 강조 한다 했으니 우선, 우리가 하는 정치 참여라면 선거. 투표도 있지만 정치에 무관심 할 경우 흔히 우리가 내고 있는 수도세나 전기세, 교통비가 확 올라버린다. 기본요금이 1000원에서 2000원.. 3000원.. 계속 올라버리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세금만 내고, 계속 돈 만 비싸게 내면 억울하지 않는가, 정치 참여를 조금이라도 하며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내면 의견조율을 해줘서 1000원 더 인상 될 것이 500원 인상으로 될지 모른다. 예전 이슈로 예를 들자면 미국에서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여서 병 든 소들이 나왔고 우리도 그런 소들을 수입 반대운동이 있었던 광우병 사건. 즉 이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소리를 모아 정치 참여를 통해 해결이 되었다. 요즘 이슈로 예를 들자면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을 토대로 ‘진상규명’ 과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라며 공교육 교사들의 목소리를 내는 대규모 집회. 이 문제를 공론화를 시켜서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진행하는 집회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반대 서명도 하나의 정치 참여다. 광우병 사건처럼 잘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오염수 방출은 막지를 못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계속 연대를 해서 일본에서 더 방출을 시키지 못 하게 해야한다고 본다. 나도 어릴 적에 부모님을 따라 광화문 촛불집회, 세월호 진상규명 시국 미사, 위안부 수요집회,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집회 등 다양한 정치참여를 했었다. 세상 살아가면서 나만 잘 먹고 잘 산다고 좋은 게 절대 아니다. 이렇듯 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사회에 살아가면서 부조리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참지 말고 개선방안을 생각해 보고 자신이 생각하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과 다 같이 연대해야 한다고 본다. 마이클 샌델이 말했던 사회적 연대 의식을 강화 하는데에 있어서 이바지 할 수 있는 것 같다.
* 정리*
‘정의란 무엇인가’ 책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의 론이 설명된다. 사람들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공리주의,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정의를 행복의 합계나 자유보장으로 단순히 설명할 수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도덕적, 종교적 가치에 대한 논의로부터 공동체 구성원의 좋은 삶과 공동선에 대한 답을 천천히 찾아보자는 공동체주의. 이 중 마이클 샌델은 세 번째 공동체주의, 미덕 추구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의 훌륭한 점은 단지 내용적으로 공리주의나 자유주의에서 앞서 있는 공동체주의로 나갔다는 게 아니라, 그 방법론에 있는 것 같다. 정의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가장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근본적인 철학적 논의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다양한 도덕적, 종교적 가치들을 반영할 수 있는 진정 공정한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
이번 시간에 받은 과제는 매우 어려웠다. 약 2개월의 시간을 갖고 ‘정의란 무엇인가’ /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센델 교수의 두 책을 읽고 공부하고 연구하여 논문을 쓰는 것 이었다. 하지만 나는 걱정이 태산이었고 피곤함부터 몰려왔다. 다른 청년샘들에 비해 글쓰기 훈련이 턱없이 부족했다. 작년에 남들처럼 나는 인문학 발제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다른 일이 많았기에 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다들 나는 책도 출판하고 글도 재밌게 잘 쓰는 걸로 아시지만, 논문은 아니다. 블로그나 카페에서 무언가를 홍보하거나 또는 소식을 전하거나, 나의 이야기는 기가 막히게 잘 쓰는데 논문은 진짜 어려웠다. 그래도 나에게 온 과제인 만큼 열심히 하기는 했다.
책을 몇 번이고 계속 읽어봤다. 그래도 이해가 하나도 되지 않았다. 정의론은 대체 뭐고, 자유지상주의자는 또 뭐며, 연대의식은 또 뭔지... 그야말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다가 과제 제출일 임박이 되었고 나는 남샘을 찾아가서 설득의 말씀을 드려 보기로 했다. 나에게는 이러한 글쓰기 훈련도 남들에 비해 덜 되어있고 아무리 책을 계속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당최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과제 기한을 조금 늘려주셨고 글 쓰는 방식도 조금은 쉽게 바꿔주셨다. 저 두 권의 책 중에 한 권을 제대로 읽고 책을 요약해오기로 말이다. 솔직히 이것도 잘 할 자신은 없다. 책 한 권의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논문에서 요약글로 바뀌었으니 한 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정의란 무엇인가’ 책을 읽고 읽으며 또 읽고 반복을 했다. 책을 보며 글을 쓰고, 나의 생각이나 경험담을 썼다. 그래도 글이 짧고 과연 내가 이해하고 쓴 글이 이게 맞는 것 인지 싶었다. 그래서 몇 가지 글들을 참고하기 위해 다음과 네이버에 검색해서 찾아봤다. 이 책을 요약한 글이나 책에 관련된 글도 참고하여 글을 썼다. 솔직히 온전히 내가 이해한 대로 글을 술술 써 가면 좋은데 시간도 많이 없고 이동학습 준비도 겹쳐있어서 몇 가지 글은 참고한 글들을 옮겨 쓰고 계속 읽어가면서 내 머릿속에 넣기로 했다. 그 후로 계속해서 쓴 글을 읽고 읽어보며 또 읽었다.
과제 제출 날이 다가왔고 최종적으로도 나는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 넣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남샘께서는 내가 쓴 글을 제대로 잘 읽고 얼마나 이해했는지 물어보신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얘기를 잘 하지 못 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논하고 있는 세 가지 정의론은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했지만 진짜 어느 정도였다. 제대로 말도 안 나오고 내가 써놓고 내가 얘기를 제대로 못 했다. 그러자 남샘께서는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해주시고 이 질문에 답변을 말하면 된다고 하셨다. 한 마디로 잘 이해하고 이게 정의구나 라고 알고 넘어간다는 것 이다. 이제 내가 최종적으로 알게 된 정의와 책을 읽고 제대로 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요약한 것을 설명해보겠다.
마이클 센델 교수는 이 책에서 정의를 ‘분배 정의’로 한정짓고 있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 이다.’ 이 한 마디가 이 책을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는 처음에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이런 것들도 하나도 몰랐다. 하지만 남샘께서 몇 가지 예를 들어주시면서 이해가 조금씩 되기 시작했다. 어떤 일의 결과로 번 돈 그리고 많고 넉넉한 재산, 당연히 해야 할 일 그리고 어떤 일을 자유롭게 처리하거나 타인에 대해 당연히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자격, 남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힘 그리고 어떠한 일이나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경우 이 것들을 사회의 법칙에 따라 나누는 것 이다.
‘시민공화주의’ 이것 또한 이해가 어려웠다. ‘시민이 정치참여에 기초하여 공동체적 삶에서 자의적 권력에 의한 지배를 배제하는 사상.’ 내가 공동체 주의를 공부하면서 연대 의식에 대해도 공부를 했고 내가 어릴 적에 참여한 정치도 썼다. 물론 지금도 정치참여를 하고 있다. 서명 캠페인이나 후원으로! 그리고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것은 규제 없는 시장이다. 이 말도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남샘께서 보여주신 사진을 보고 이해가 왔다. 미국의 어느 지역인데 버려진 지역처럼 지저분하고 이상한, 마치 폐허된 도시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마약을 많이 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규제가 없어서 계속 마약을 하고 그 지역에는 신경도 쓰지 않으니 그런 것 같다. 정말이지 나 같아도 저 지역에서는 하루라도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좋지 못 한 주변 환경부터 중독이라고 하는 마약까지 있기에 어질어질 할 것 같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각자의 경제력에 맞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 건강보험료로 예를 들면 각자의 보험료는 달라도 모두가 같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와 학생들의 급식.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인 사람이나 모두 무료급식을 받는다. 이 두 가지 다 누구는 돈을 적게 내고 누구는 돈을 많게 낸다고 해서 차별화된 것은 없다. 다 똑같이 서비스를 받는다. 이렇게 예시를 생각했다.
이렇게 공부를 했어도 나는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정의론을 이해하는 것만 해도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1년도 부족 할 수도 있다. 나에게 2개월 하고도 절반은 굉장히 짧기도 하고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다음번에 또 이런 걸 하게 된다면 업무며 뭐며 다 내려놓고 집중 빡 하면 조금이나마 더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다들 논문으로 쓰는데 나 혼자 이렇게 하니 눈치도 보인다. 나중에는 꼭 논문 방식의 글도 써보고 어떠한 주제의 책이던 머릿속에 잘 넣어져서 이해도 잘 되게끔 멋진 글을 나 혼자 스스로 잘 써봤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내가 잘 하는 에세이나 꾸밈 글 혹은 소식을 알리는 글 말고 논문 식의 글도 쓰는 법을 연습해봐야겠고, 읽기 어려운 책 이여도 내 수준에 맞는 책부터 골라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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