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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식 선생, 「중국 정부에 올리는 청원서(上中國政府請願書)」와 「손중산 총재께 올린 서신(上孫中山總裁書)」
2024년 8월 20일 번역
신규식 선생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 강화회의가 열리는 것에 대비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워 독립을 실현하려고 먼저 중국 광주(廣州)에 있는 군벌 정부(唐紹儀)와 의회(참의원, 중의원)를 비롯하여 북경 정부 또 손문 선생에게 외교적 지원과 대한민국 국가 승인을 받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청원서과 서신을 읽다 보면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1911년부터 1919년까지 온갖 고생을 겪으시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어 말과 글도 서툰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신규식 선생의 훌륭하신 인품이 중국인들을 감동시켜서 이렇게 어소통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었을 것입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모두 소위 백화체(白話體) 문장을 쓰고 한국인들은 조선시기의 소위 한국 한문(漢文)에 백화(白話)를 섞어 글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문장은 전고(典故)가 많고 심지어 조사(助詞)까지도 고문(古文) 투로 썼기에 현대적 상황을 묘사하거나 필자 개인 의사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물론 진단(震壇) 주보에 있는 중국인 기자들이 윤색하였더라도 의사 전달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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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새로운 운동(國際間之新運動)」
신규식 선생, 「중국 정부에 올리는 청원서(上中國政府請願書)」 :
(진단 주보사에서 쓴 서문)
삼한이 일본에 합병된 뒤부터 한국과 중국의 외교관계가 자연히 단절되었으나 한국인의 복국(復國)운동은 전혀 끊어진 적이 없으며 마치 한나라 장량(張良)과 초나라 신포서(申包胥)처럼 복국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애쓰느라고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다. 생각해보니 국제적인 독립운동을 벌일 적절한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런데 마침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회의가 앞으로 열린다. 이때를 맞아 (대한민국) 각계 인사들은 천년만에 나오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각국에 찾아가서 활동을 기획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중화민국 8년(1919년, 1918년?) 10월에 한국 대표(신규식)가 갑자기 중국 정부(廣州)에 나타나서 먼저 집정자(當道, 廣州, 唐紹儀)와 의회(參議院, 衆議院) 사람들과 만나 상의(接洽)한 뒤에 한국독립 지원(외교적 지원)과 국가 승인에 관한 정식 공문을 제출하였고 (廣州) 군 정부의 정무회의에서는 통과하였다. 최근에 한국독립은 세계문제가 되었고 대다수 국가(특히 영국)는 공공연히 찬성하며 아무런 거리낌이나 회피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반드시 신중하여야 하므로 상세한 청원서 제출 과정과 당시 찬성자 명단은 앞으로 공개하겠다. 먼저 제출한 문서를 찾아 아래와 같이 싣는다.
(제출한 청원서 본문)
한국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 총대표 신규식(申圭植)은 우리 2천만 복국(復國)하려는 동포의 양심을 대표하여 우리와 가장 가까운 우방국 대중화민국 정부의 여러 총재 각하께 눈물을 흘리며 청원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에서 서유럽의 발칸과 같습니다. 발칸의 상황이 하루라도 안정되지 않으면 서유럽의 전운은 하루도 쉴 날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이 하루라도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의 평화는 하루라도 빨리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현재 발칸이 도화선이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세계의 여러 대국이 정의에 따라 참전하고 연합하여 싸웠고 4-5년 동안 정성과 피를 흘려 비로소 도화선의 불을 껐습니다. 발칸 문제를 거울삼고 앞으로의 전쟁을 예방하기 위하여 전쟁의 불씨를 완전히 끄지 못하면 다시 불이 일어날 수 있기에 세계 민족들 가운데 속박받는 약소국들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시켜 영구 평화를 보장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란드, 유대 민족, 필리핀과 아일랜드 등은 벌써 독립과 자유를 실행하고 있으며 또 파리 세계평화회의 선포를 기다리는 민족들도 여럿이 있습니다. 위대합니다! 이러한 조치는 정말로 세계를 구제할 근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서유럽의 문제를 해결한 작은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계의 대평화를 말하려면 동아시아 문제도 이때 동시에 해결하지 않으면 아마도 전운이 곧바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문제가 아주 복잡하다지만 중요한 요점을 따져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을 회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동양의 이탈리아이며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는 유럽의 그리스에 해당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4천년이 넘고 인민도 2천만이 넘습니다. 일본이 강도처럼 도적질하는 방법으로 겉으로는 독립을 보전한다고 말하고 속으로는 기만과 속임수를 써서 우리 대한민국의 정권과 국가재산을 빼앗았습니다. 손에 넣은 뒤에는 세상이 크고 넓다는 것을 모르는 야랑국(夜郎國) 국왕처럼 자만하면서 잔악하게 포악하고 방자하며 아시아 전체를 삼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발칸(대한민국)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우리 대한민국이 독립을 회복한다면 중화민국은 동쪽 지역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우리 대한민국도 서쪽에 좋은 이웃 국가(중화민국)의 도움을 받아 서로 형제처럼 협력할 것입니다. 유럽과 미국이 아무리 고개를 들고 자신만만하더라도 중국과 일본의 복잡한 상황을 어찌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동아시아가 서로 평화롭다면 세계의 분란을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 일은 아주 중요하기에 우리는 일찍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수많은 어려움은 정의를 지키겠다는 사람의 구실이 된다는 것을 깊이 잘 알고 있습니다.(이 일은 아주 중요하기에 우리는 일찍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정의를 지키겠다는 사람들도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고 포기한다는 것을 깊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내에서는 대동단결을 주창하여 최고기관(임시정부)를 조직하고 대외적으로는 유럽과 미국 등 열강에 우리의 의지와 소원을 이해하도록 설득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하늘의 도움을 받아 우리 한국인의 정성(31독립운동)에 유럽과 미국 등 국가들이 모두 감동 받아 비밀스럽게 도와주거나 이번 평화회의에서 우리 한국인이 복국하겠다는 결심을 전 세계에 알려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문제는 결국에는 동아시아 범위 안의 일이기에 유럽과 미국 사람들의 문제 제기는 결국에 우리 동아시아의 우방국(중화민국)이 앞장서서 정의를 지켜주는 것이 확실하고 영광스러운 것만 못합니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어깨에 책임을 질만 국가가 귀국(중화민국) 말고 어느 나라가 있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문서를 잘 써서 여러 총재 각하께 올리며 임진왜란 시기에 조선이 명나라를 지켜준 공헌, 최근에 갑오전쟁에서 패배한 치욕, 을미년 중일조약의 제1조 및 기해년 한청조약의 제1조를 생각해보시고 공동의 원수(일본)를 몰아내는 데에 절실한 뜻을 모아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첫째로는 귀 정부에서 먼저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을 승인해주시고 둘째로는 귀국 대사에게 평화회의에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우리 대한민국의 정황을 알려주셔서 공정한 재판을 받는다면 정의와 인도주의의 신(神)이 된 미국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 민족자결주의 주창)이 동아시아 평화의 공로를 혼자 독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문서를 쓰면서 몹시 부끄럽고 좋은 소식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문서를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별도로 청원서를 첨부하였는데 길게 1만 자가 넘어 위와 같이 줄였습니다. 또 북경 정부(北洋政府總統,馮國璋,1917年7月12日-1918年10月10日;徐世昌,1918年10月10日-1922年6月2日)에는 동제사 명의로 청원서를 한흥(韓興)과 이광(李光) 두 대표가 제출하였습니다. 문장의 뜻을 서로 같아 첨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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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중산 총재께 올린 서신(上孫中山總裁書)」 :
중산(中山) 총재 선생 각하께, 우리 대한민국이 일본인에게 강제 점령(强佔) 당한 뒤에 중국으로 와서 망명하였습니다. 선진(先進) 여러분(同盟會 會員)들을 따라 사귀었고 어렵게 경영하고 독립의 회복을 도모하였습니다. 겪어온 각가지 어려움과 희망은 잘 아실 테니 쓰지 않겠습니다.
지난해 선생께서 대원수 직을 맡으신 동안에 비밀 서신(열강의 평화회의 준비와 동삼성에 관한 일)을 진광례(秦廣禮, 1981-1919) 의원(衆議院 議員, 黑龍江省 代表)에게 부탁하여 대신 전달해 올리고. 칭찬(동의)을 기다렸습니다. 현재 파리에서 세계 평화회의가 열리고 미국 대통령 윌슨(Thomas Woodrow Wilson)이 민족의 자주(自主)와 자결(自決)을 전 세계에 호소하자 호응하여 일어나는 민족과 실현하는 민족 모두 6-7개 국가가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의 발칸이며 선생께서는 혁명가로서 동쪽 대륙(아시아)의 워싱톤( George Washington, 1732-1799)이신데 아주 귀중한 기회(千載一遇)에 우리 대한민국에 특별히 공감하시니까 반드시 걸맞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귀국(중화민국) 국회와 군 정부 이외에 특별히 삼가 서신을 올리며 간절히 바랍니다. 새로운 중화민국을 재건하시는 마음을 넓히셔서 한국독립을 도와주시면 선생의 박애(博愛) 정신과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둘이 지구를 환하게 비출 것입니다.
정성을 다하여 머리 숙여 절하고 신규식이 서신을 올립니다.
군(軍) 정부에 올린 공문과 청원서를 첨부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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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壇』(星期刊),第六號,中華民國九年十一月十四日,韓國紀元四千二百五十三年,(大韓)民國二年
「國際間之新運動」
申圭植,「上中國政府請願書」︰
三韓被併以後,國交自然斷絕,而韓人之復國運動,無或間斷,子房之推時間,包胥之淚未乾。惟國際的運動,惜無時機可乘,而適歐戰告終,和議將開。此時各界人士,認為千載之機,奔走各國,籌劃活動者,頗不乏人。
民國八年(七年?)十月韓代表,突現於中政府,先接洽當道(唐紹儀,廣州,軍政府,1919年改名護法政府)及兩議會(廣州︰參議院、衆議院)後,乃以正式公文提出韓國獨立援助及□(要)求承認案,于是通過於軍政府之政務會議。日者,韓國獨立爲世界問題,類多公然贊成,無所謂諱秘。然尙有須慎重,故經過詳情,及當時贊襄諸人之名氏,另俟他日發布。茲探得「提出書(請願書)」,刊登如下︰
韓國□□(新亞)同濟社總代表申□□(圭植),謹代表我二千萬臥薪同胞之良心,揮淚請願於我最親愛之友邦大中華民國軍政府諸大總裁閣下。
我韓之在東亞,猶西歐之有巴爾幹,巴爾幹之棋局一日不定,即西歐之風雲一日不息。猶我韓之獨立不早一日恢復,即東亞之和平不能早一日實現。今者由巴爾幹所發生之導火線,經世界諸大國仗義拔劍,合力奮鬪,費四五年之精血,始爲撲滅。懲前毖後,惟恐根株不盡,死灰終有再燃之日,乃倡議世界各民族被人束縛之小弱國,恢復其獨立自由,以保永久之和平。如波蘭,如猶太,如菲律賓、愛爾蘭等,有已見諸實行者,有待此次世界和平會議後宣布者,亦不知凡幾。偉哉斯舉,眞救世之根本也!雖然,此猶西歐問題之小結果。若語夫世界大和平,非將東亞問題乘此時機一同解決,恐戰雲之起,即在目前。但東亞問題,雖甚復雜,而提綱挈領,莫要於我韓之獨立恢復。
蓋我韓之位置,東洋之義大利也,我韓之文化,歐洲之希臘也。歷史有四千餘年,人民有二千萬。自經日本以強盜剽竊法,陽言保全,陰存欺詐,將我韓之政權、國產騙劫,到手後,即夜郎自大,暴厲恣睢,至欲鯨吞全亞而有之。故東亞之巴爾幹,遂爲世人所注目。若我韓一復獨立,則中華無東顧之憂,我韓有西鄰之助,如兄如弟攜手同行。歐美不雖翹企,又何言乎中日之轇轕?東亞既已相安,更何有乎世界之紛擾?
惟茲事體大,我人深知不早自準備,萬難藉杖義者之口實,乃內而提唱大同團結,組織最高機關(1917년 「大同團結宣言」에서 말한 總機關),外而游說歐美列強,使了解我人之志願。幸蒙天眷,我韓人之眞誠,歐美各邦均被感動,除秘密贊助外,並允此次會議,將我韓人復國之決心,布告萬邦。
竊思我人問題,究屬東亞範圍以內事,歐美人提出,究不若我東亞友邦首先仗義,既確切且有光榮也。現在東亞堪膺斯肩者,舍貴國其誰屬?用是不揣冒昧,繕書上呈於諸大總裁閣下,懇祈遠念壬辰保障之功,近懲甲午喪敗之恥,並根據乙未中日條約第一款,及已亥韓淸條約第一款,志切同仇,義仗(仗義)討賊。一面由貴政先承認我獨立,一面囑貴國大使,將東亞大局之關係,與我人現在之情狀,懇切陳訴,公諸裁判,則正義、人道之神,威爾遜不能專美於前矣。臨穎慚恧,不勝迫切待命之至。伏祈鈞鑒。
另附說帖,洋洋萬言,始略之,又對北京政府,亦以同濟社名義請願,由代表韓興、李光等呈遞,文義略同,故不贅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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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孫中山總裁書」︰
中山總裁先生閣下,自我韓被日人強佔後,即亡命來華,追隨先進諸公,慘淡經營,圖謀恢復,種種苦衷與希望,諒在洞鑒,無庸煩瀆。
且去年先生在大元帥職內,已具秘函(即預籌運用列強和議及關於東三省事),託秦議員廣禮(秦廣禮,1981-1919,衆議院議員)代達,知已邀賞。茲者,世界和會開幕,美大總統威爾遜,方以自主自決主義,號召天下,而聞風以興起者、實現者,經已六七國。我韓東亞之巴爾幹也,先生東大陸之華盛頓也,於此千載一時之機會,對我韓國定抱特殊之同感,必有相當之援助。除上書貴國國會、軍政府外,特肅此恭呈懇祈,擴改建新華之心,以助我韓獨立,則先生之博愛與威爾遜之自決主義,照耀於寰球之日也。不勝頂禮拜禱之至,申睨觀謹書。
附呈上貴軍政府公文與說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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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秦廣禮︰
秦廣禮(1891-1919),字立庵,巴彥鎮中心街人。幼年讀私塾,光緒三十一年科舉制度廢除後,各地興辦官學堂,秦廣禮又先後到省城齊齊哈爾和北京求學。在求學時期,接受了孫中山先生的革命思想,決心致力於推翻淸朝的統治,建立民主共和國家的信念。曾任國民政府眾議院議員、法制委員,臨時大護國監軍等職。宣統三年(1911年)十月十日爆發了震驚中外的武昌起義。接著各省各地紛紛響應,宣告獨立,脫離淸政府的統治。革命形勢發展迅速,聲勢浩大。孫中山等人組織的同盟會,也影響到黑龍江,在司法、教育、郵局、電報局等各界成立同盟會支部,發展會員,策劃實現黑龍江的獨立。正當黑龍江省革命運動蓬勃發展時,秦廣禮代表孫中山到齊齊哈爾,在省議會與進步議員及愛國人士取得了聯繫,得到了愛國人士文璞(原係漢軍旗人,住綏化,後遷海倫)與進步議員的支持。通過協商,決定先分頭發動,同各校學生取得聯繫,再成立黑龍江新民愛國委員會。這一倡議,雖說遭到代理黑龍江巡撫周樹模出面的宋小濂的拒絕,但卻得到了黑龍江各界人士的支持。於是陸軍小學選出代表趙凱,高等巡警學堂選出代表曲錦蹩、才子明、於衡章、博經五,師範學堂選出代表高家驥等,於11月26日(農曆十月初六)在省諮議局召開成立黑龍江新民愛國委員會。選舉秦廣禮爲會長,文璞、高家驥爲副會長,趙凱、曲錦堂、才子明爲委員。委員會下設組織、宣傳、交際等部,組織部由文璞兼任,宣傳部由高家驥兼任,交際部由趙凱、才子明兼任。12月16日又成立黑龍江省國-合會,18日用委員會全體名義"要求黑龍江巡撫周樹模宣告獨立,並傳知軍界贊成”,19日召開第二次會議,擬定了"通告書"及"聯合簡章"。通告書中分析了武昌起義後黑龍江面臨的國內外形勢時說“武漢事起,各省響應,南北爭戰,風鶴驚心。江省地處極邊,內有種族之猜疑,外有強鄰之處,設有不慎,禍亂突興,而鬍匪乘之,而飢民乘之,而俄日乘之,而大禍立至矣。爲今之計,急應聯合滿、漢、回、蒙及索倫各族,化除私見,共矢公忠,要請巡撫,馳電郡國、宣告獨立”,“愛國同胞,當必有見於此矣”。秦廣禮於大會成立後不久,即返回廣東,臨行前將會務事宜交由文璞、高家驥等人辦理,俾斯早日達到革命之目的。秦廣禮回廣東後曾以黑龍江省代表的身份參加了第一次國民代表大會。後因患肺結核病,於民國8年(1919年)病逝於巴彥,享年28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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