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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시인의 시집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을 읽고 / 한혜영 (시인)
마경덕 시인의 시집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을 읽고 / 한혜영 (시인)
― 제2회 선경상상인문학상 수상시집
마경덕의 시는 언제나 독자를 만족시킵니다. 다섯 번째 시집인데도 탱글탱글한 긴장감이 여전하네요. 흔한 소재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아내는 능력, 시적 대상물을 대할 때의 치열함과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때로는 재치 있는 반전으로 텍스트의 부력을 한층 높이기도 하고, 철저하게 육화된 시를 쓰는 것이 마경덕 시인입니다. 거기다 편하게 읽히는 장점까지 있지요. 이미지를 징검돌 삼아 퐁당퐁당 건너다보면 어느새 아름다운 시의 세계로 들어와 있습니다. 말맛도 얼마나 좋은지 어떤 문장은 보들보들한 아욱국처럼 목 넘김이 좋고 또 어떤 문장은 육질 좋은 소고기처럼 씹히면서 고소함이 한참이나 남습니다.
하나님은
저 소금쟁이 한 마리를 물 위에 띄우려고
다리에 촘촘히 털을 붙이고 기름칠을 하고
수면에 표면장력을 만들고
소금쟁이를 먹이려고
죽은 곤충을 연못에 던져주고
물 위에서 넘어지지 말라고 쩍 벌어진 다리를
네 개나 달아주셨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연못이 마르면
다른 데 가서 살라고 날개까지 주셨다
우리 엄마도
서울 가서 밥 굶지 말고, 힘들면 편지하라고
취직이 안 되면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지 말고
그냥 집으로 내려오라고
기차표 한 장 살 돈을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그 한마디에
객짓밥에 넘어져도 나는 벌떡 일어섰다
― 「객짓밥」 전문
화자가 소금쟁이 얘기를 시작한 것은 자신의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서울 가서 밥 굶지 말고, 힘들면 편지하라고/취직이 안 되면/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지 말고/그냥 집으로 내려오라고/기차표 한 장 살 돈을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던 엄마의 이야기를.
온통 물이라는 환경에서 소금쟁이가 살아가도록 만든 것이 하나님이었다면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그를 살아남게 만든 것은 엄마지요. 정확하게는 엄마의 말씀이지만. 여차하면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거. 엄마가 거기 계신다는 거. 그 믿음 하나 붙잡고 고달픈 타향살이를 버틴 겁니다. 이 정도면 화자에게 있어 엄마는 하나의 종교지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엄마와 하나님이 동급인 것입니다.
군용 천막으로 만든 국방색 못주머니
목수인 아버지 허리에 매달려 살았다
나로도, 녹동, 광양, 거문도까지
파도를 넘어 일거리를 찾아 따라가던 못주머니
바쁠 땐 아버지 입이 못주머니였다
서너 개씩 입에 물리던 못들
망치 소리 빨라지면 입에 물린 못들도 하나씩 사라졌다
손에 박인 못자국과 비릿한 쇳내는 모두 못주머니에서 나왔다
탕, 탕 망치의 장단에 나무의 뼈가 이어지고
기둥이 서고
지붕이 덮이고
집들이 일어섰다
미송 나왕 소나무 편백
단단하고 여린 나무의 속살을 매섭게 파고들던
대못 무두못 실못 납작못
집 속으로 사라진 그 많은 못은
집의 뼈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다
늦은 밤, 지친 허리를 놓고
나무연장통으로 들어가던 초라한 못주머니
온갖 못들이 전대처럼 생긴 주머니에 우글거리며 살았지만
못에 찔린 상처와 먼지뿐
탈탈 털어도 땡전 한 푼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골목에 버린 다리 삐딱한 의자를 보면 문득,
꽝꽝 못질을 하고 싶다
그런 날은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허어, 못 한번 치면 쓸 만한데…
어느새 못주머니 차고 망치 들고 나오신다
― 「못주머니」 전문
시인에게 있어 육친의 이야기는 가장 쓰기 쉬운 소재이면서 성공하기 어려운 소재입니다. 자칫하면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육친을 다루려면 우선적으로 객관적이 되어야 합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타인처럼 담담할 때 성공률이 높다는 것. 흔한 말로 가수가 먼저 울어버리면 관객은 울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경덕의 ‘못주머니’는 성공적입니다. 시종일관 담담하게 진술하거나 묘사하고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지친 육신과 낡은 못주머니가 오버랩 되지요. 아버지의 생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딸의 절절한 마음. “못에 찔린 상처와 먼지”뿐이었던, 한생을 목수로 우직하게 살다가 가신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황금측백나무는 책꽂이 형식
그 앞에 서면 마치 서재 같다는 생각,
제목만 보여주는 가지런한 책들처럼
줄기에 수직으로 꽂힌 납작한 이파리들 모두 측면이다
손을 밀어 넣기 좋은 딱 그만한
틈과 틈, 시집 한 권 몰래 빼낸 자리 같다
천지天地를 짓던 셋째 날
섬세한 잎맥도 그리고 잎새 둘레 톱날무늬도 새기느라
하나님은 돋보기까지 찾아 쓰셨다
돌려나기 뭉쳐나기 어긋나기 마주나기, 잎차례도 정해
조각조각 그늘까지 붙여 태어난 나무들
천 가지 만 가지 달라야 하니 얼마나 머리가 아프셨을까
잠시 무릎을 펴고 둘러보니 사방천지
가로가로가로가로가로……
문득 생각을 뒤집고 측백나무를 설득했을 것이다
책 한 권 없는 부자보다 책이 넘치는 가난한 시인을 사랑한다고
황금이란 호를 덤으로 얹어
하나님은 그때 각별한 시 한 편을 측백나무에 꽂아두셨다
그리고 나는 그 시를 필사 중이다
― 「측백나무 서재」 전문
황금측백나무를 책꽂이로 본 시인의 관찰력이 놀랍습니다. “제목만 보여주는 가지런한 책들”을 발견하고 “틈과 틈, 시집 한 권 몰래 빼낸 자리”까지 발견하다니요.
관찰을 마친 화자는 측백나무가 책꽂이가 되기 이전으로 옮겨갑니다. 잎들이 온통 “가로가로가로가로가로……”였을 때로. 스스로의 창작품에 지루함을 느끼셨던 하나님은 이번엔 잎을 세로로 세우기로 마음을 먹고 측백나무와 협상을 하시지요. “책 한 권 없는 부자보다 책이 넘치는 가난한 시인을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씀으로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때 각별한 시 한 편을 측백나무에 꽂아두셨”는데 화자는 그것을 필사중입니다.
가난하지만 대단한 존재가 시인이라는 인식으로 시인은 스스로 위안을 얻고 싶었을까요?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황금측백나무 서재에서 시집을 꺼내 읽는 마경덕 시인! 그 비밀이 노출되었으니 앞으로는 황금측백나무를 기웃거리는 사람이 많겠습니다.
돌진하는 새들
어디로 가는 중이었을까
봄부터 이어진 박새 참새 곤줄박이의 투신이 지역신문 헤드라인이 되려면 더 많은 새들이 죽기를 기다려야 한다
새들만이 아니었다
사차선 차도에서 튕겨 나와 벽과 충돌한 굉음은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신기루와 비행이 만나는 지점,
이곳은 묘지였다
질주하던 속도와 정면충돌한 사건이 중앙선을 넘고 벽을 뛰어넘었다
무단 침입한 잡음은 아파트보다 높이 자랐다
최대한 키를 높여 달려드는 소리를 죽이겠다고 잠을 설친 의견들이 둘러앉았다
방음벽은 마지막 배수진
주민들은 새들 따위는 금방 잊었다
새의 죽음을 이야기한 시인이 있었지만 날아오는 화살에 곧 입을 다물었다
담쟁이를 심자던 숲해설가도 일조권에 밀리고 말았다
누군가는 새들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새들은 스스로 머리를 박거나 날개를 꺾지 않는다
하늘을 달리는 날개들은 머리를 들이박고 뼈가 부러진 소리들은 투명 방음벽 아래 수북이 쌓여간다
공중에도 로드킬이 있다
―「방음벽」 전문
방음벽으로 인한 자연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도시 곳곳의 산이 헐리고 뚫리면서 도로가 나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그로 인해 동식물들의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 오도 가도 못하는 들짐승이나 산짐승들은 위험을 무릎 쓰고 도로를 건너다 로드 킬을 당하고 있다는 것. 고속도로의 소음을 막으려고 인간들이 세운 투명 방음벽에 새들이 죽어간다는 것.
그런데도 주민들은 방음벽을 더욱 높이자고 합니다. 밤잠을 설쳐서 화가 난 주민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새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목소리와 “담쟁이를 심자”고 주장해 보는 숲해설가의 목소리는 일조권에 가차 없이 묵살당합니다.
인간들이 생산해내는 소음에 인간들이 세우는 방음벽! 새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 인간들의 잘난 이기심입니다. 본디 자연은 들짐승과 날짐승들의 것인데. 그들 구역에 침입한 것이 인간들인데 말이지요.
골목 담벼락 밑
누가 벗어버린 오른발일까
신발 한 짝을 적시는 봄비의 목소리가 처량하다
모처럼 몰려온 봄비에 목발 집어 던지는 소리, 나긋나긋 깁스 풀리는 소리
봄비를 수혈한 나뭇가지들
비 그치면
겨울의 붕대를 풀고 마음껏 저 공중으로 걸어갈 수 있겠다
이 소란한 봄날
담 밑에 주저앉은 신발은 어느 캄캄한 골목을 헤매는 것일까
아픈 발을 감싸며 한 발 한 발 걸음을 고르고
골목을 오갔을 한 몸의 시간
중심을 잡던 그 힘을 제 것으로 믿었을 것인데,
비명을 지르던 뼈에 물이 오르고
발등이 빠져나간 자리 휑하다
한 발짝도 걷지 못하는 저 깁스 신발
팽개치고 싶은 무거운 몸을 싣고 절뚝거릴 때
그는 살아있었다
―「깁스 신발」 전문
누군가가 벗어서 버린 ‘깁스 신발’때문에 화자는 생각이 분분합니다. 마침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머잖아 찾아올 계절을 예감하기엔 적당한 때! 동사하지 말라고 무언가를 친친 감아준 나무에게서 깁스 신발을 보았네요. 머잖아 나무는 그 신발을 벗고 공중을 걸어갈 수도 있겠다니. 순간 햇빛에 반사되는 빛나는 잎을 달고 너풀너풀 공중을 걸어가는 나무의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오로지 다친 발을 위해 태어난 신발! 그것은 누군가의 발을 담고 힘들지만 뒤뚱거릴 때가 생애 최고의 시간이지요. 받들어 모시던 발이 떠나는 순간 깁스 신발은 더는 쓸모가 없으니까요. 그렇듯이 인간이라면 신발을 신고 움직일 때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단 한번이라도 누구를 위한 신발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습니다.
내친김에 또 한 편의 ‘깁스’에 관한 시를 소개할게요. 같은 소재이면서도 환기되는 방식이 조금은 다른…….
오른쪽 다리를 다친 시누이
친친 깁스를 하고 목발로 걸어와
아픈 다리에
어서 낫도록 몇 자 적어달라는데
서슴없이 매직펜으로 써 내려간
“내부 수리 중”
박장대소에 시누이도 따라 웃는데
문득 “내부 수리”라는 말이 가슴을 친다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내 머리칼도 다 세는 그분이
지금
설계도를 꺼내놓고 부러진 뼈를 맞추고 계신 것이다
자칫 공사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으니
뼈가 굳을 때까지 조심히 걸으라고
“내부 수리 중”
공사 팻말 하나 깁스한 다리에 세워 두었다
― 「내부 수리 중」 전문
깁스한 다리를 두고 내부 수리 중이라니! 시인의 재치가 돋보인다고 감탄을 하다가, 숙연해집니다. 우리의 몸은 창조주께서 지으신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말이지요. 우리는 언제든지 쉽게 고장 날 수도 있는, 그래서 수시로 고쳐가며 살지만 종내는 갈아 끼울 부품이 없는 일회성 목숨을 살고 있다는 사실! 문득 현재 내부 수리 중에 있는 내 가족을 위해 조용히 두 손 모으기도 했습니다.
작은 토분 속에서
고물고물 발이 기어 나온다
마디마디 볕에 달군 발가락
게거품처럼 수북이 부풀었다
허공에서 디딜 곳을 찾는 게발선인장
눈치 빠른 눈과 단단한 게딱지도 버리고
믿는 건 발가락뿐, 게걸음만이 살길이다
빨갛게 독이 오른 너는 지금 위험한 동물
다급하면 그 발도 버려야 한다
종종걸음치던 모래밭은 멀리 있다
발바닥에 모래를 묻히고도
바다를 모른다고 고개를 젓는구나
발끝에서 꽃이 터지는 네 조상은 꽃게였다
빨갛게 부어오른 핏빛 발톱
얼마나 먼길을 걸어왔느냐
살짝 건드리니 발가락 하나 뚝 떼어준다
― 「게발선인장」 전문
게발을 닮았다고 해서 ‘게발선인장’이라고 부르는 이 선인장의 또 다른 이름은 크리스마스 선인장입니다. 그맘때 핀다고 해서 그리 불리는 것인데, 이름 하나만으로 이런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인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육지에 있는 선인장의 모양과 바다에 있는 게의 움직임을 합성해서 이처럼 독특한 이미지를 보여주다니. “살짝 건드리니 발가락 하나 뚝 떼어”주는 장면까지 정말 생생하지 않습니까?
참 좋은 시집입니다! 이 한마디면 족한 시집을 두고 주저리 길게 떠든 듯해서 민망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게 만드는 시집이네요. 그만큼 가슴이 뛰었으니까요. 그 마음으로 독자들께 적극 추천 드립니다.
[시인의 말]
24시 순댓국집에 밤일 나가는
아래층 다솜이 엄마도
내가 시인이란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시는 써서 뭐한데요
요즘 누가 그런 걸 읽어요
살기 어렵다고 내 밥을 걱정해 주는
착한 이웃이 있어
다시 시를 쓴다
마경덕 시인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신발론』, 『글러브 중독자』, 『사물의 입』(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그녀의 외로움은 B형-新글러브 중독자』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제2회 북한강문학상 대상, 두레문학상, 제2회 선경상상인문학상. 제18회 모던포엠문학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2회 수혜,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한혜영 시인
충남 서산 출생. 1994년 《현대시학》 신인상,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뱀 잡는 여자』 『올랜도 간다』 『검정사과농장』
동시집 『개미도 파출소가 필요해』 외
미주문학상. 동주해외작가상 수상 제5회 해외풀꽃시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