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다리문예대학 문예반 송용탁 선생님이 제21회 김포문학상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 2022 김포문학상 우수상 당선작 >
폭설에게 / 송용탁
숫눈 위를 걷는다
너무 하얘서 아플 때도 있는 것이다
괜찮냐고 묻지 말아야 한다
어디선가 전화가 오면 나도 모르게
울컥 지구 반대편 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둥근 지구도 때론 평평해지는 날이 있다
사슴은 그래서 공중에 대고 머리를 흔든다
몸이 눈 속에 가라앉을까봐
뒤꿈치에 힘을 준다
애쓰지 마라고 눈이 다시 내린다
떠난 사람은 늘 인사가 없다 그래서
사슴의 뿔은 먼 곳을 향해 애쓴다
슬픈 어깨는 감추고 숫눈을 지운다
발바닥이 흥건하다 원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짜 눈물이 온다
약봉지를 힘껏 털어 넣어도 눈이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의 소주잔이 울컥 흔들렸다
눈이 와서 잠시 미끄러진 그리움이었다고 하자
차라리 울어버리라고 말하지도 말자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웠던 걸
걷다가 뒤돌아보는
사슴의 날이었다
독백하는 것들 / 송용탁
문 닫은 공장 안
투명한 것들이 모여 산다
수상한 바람과 온도가 손잡이를 붙들고 있었고 깨진 창문으로는 쉬이 통과 못한 오늘이 기웃대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동네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귀신을 두려워하며 피해다녀야 했다.
아기울음이 사라진 동네,
밤마다 아기울음을 흉내내는 길고양이들
공장에 사는 것들은 죽을 힘을 다해 멈춘 언니들을 흔들어 깨웠다. 노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 없는 것들만 노동을 소화 중이다. 쌓이는 먼지들이 지친 기계들의 어깨를 투명하게 핥아 주었다.
혼잣말은 세상에서 가장 먼 방언
그들의 말이 혼자서 자라고 있었다. 동네는 공장의 말을 잊었고 멈춘 언니들이 그들의 말을 키우고 있었다. 기침 소리가 투명해지고 잠을 쫓던 옷핀이 투명해지고 큰소리 외치던 현수막이 결사적으로 투명해졌다.
쏟아지는 목적들
동네 사람들은 죄 없는 귀신 탓만 했다
층간소음 / 송용탁
절벽에 잃어버린 단추를 달아주었다.
알프스 산양들이 경사를 밟을 때마다 옥탑은 더 설레었다. 어둠은 아직 오시지 않았고 배고픈 선주족들은 난간에 웅크려 흙 묻은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데굴데굴 단추 굴어가는 소리. 절벽에서 멀어지는 눈동자 소리. 봄도 오기 전에 초록 싹을 내밀면 어쩌지? 독이 가득 오를 텐데. 산양들이 단단한 벽에 못을 박는다. 발굽은 선천적 슬픔이다. 옥탑과 가까워질수록 이주자들의 생각이 휜다. 운명은 그렇게 동그랗게 말리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평지의 주민들이 중력을 닮은 전등을 하나씩 켜둔다. 같은 종자들이 중력의 방향으로 귀가한다. 벽에 걸린 산양들의 동공 한구석이 환해진다. 난간을 도려내면 어둠도 숟가락을 놓고 위를 쳐다봐 줄지도 모르겠다. 그 흔한 바람개비 하나 흔들어줄지도 모르는 일. 아직은 감자를 요리할 시간이 아니랍니다. 선주족의 앞니가 바람도 없이 흔들린다. 운명은 혼자서 도는 자력이 있나 봐. 층간 사이로 가난한 생각이 데굴데굴 멈춰있다. 어지럽게 멈춰있다. 절벽은 산양들의 보호색 같았다. 이주자들은 언제 도착할까요? 벽의 흉곽에 매달린 걱정들을 걱정으로 바라보는 감자들. 어둠이 감자를 하나씩 빼 먹을 때마다 심해지는 층간소음. 어둠의 안쪽에 산양의 마음을 달아준다. 난간을 잡고 흔드는 경사. 다시 돌돌 말리는 산양의 뿔. 흔들리는 가족사진을 힘껏 고정시켜 본다. 독 오른 싹은 아무 데서나 구르지 않는다. 낭하의 가족들이 기도처럼 무릎을 모은다.
봄도 아닌데
산양의 발바닥에 싹이 돋는다.
천장(遷葬) / 송용탁
아미동 19번지에 가면 죽음의 단면을 빌려 쓴 집들이 모여 산다. 돌의 저자들은 고백만 하다 지쳐 잠든 밤. 고향 잃은 게다 소리도 산 자의 허기진 밤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달도 빛나는 돌이라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을 떠난 자들의 민요.
몸만 가진 사람들의 저녁이 있었고, 이름만 남은 사람을 초대한 저녁이 있었다. 단단한 돌이 아궁이를 만들고 반듯한 단면이 벽을 세우고 차가운 돌의 온도 위에서 따뜻한 밤을 피우던 동거의 시간들. 이승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을, 이 기막힌 세계는 시인의 몇 걸음으로 닿을 수 있을까. 죽음을 빌려 쓴 자들의 마음이 주인 없는 침묵들에게 사자밥을 준비하는 저녁. 한 편의 서사가 둥글게 뜬다.
밤새 비가 올 때면 귀신을 핑계로 산 살결들이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몸과 몸이 무덤 속에서 신음을 만들어낼 때, 빗소리는 쉿, 부러지고 아파도 부러지면서 조용히 이승을 덮어주던 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침을 위해 이장을 결심한 비석의 기호들. 상형은 우는 법을 알고 있었을까.
두 개의 모국어로 쓰인 고전이 낮으로 이사를 준비했다. 채무자들에게 웃음의 관습을 비석에 새기듯, 꽃들이 봄 사이에 새겨지던 날.
함부로 붉어지는 눈동자도 용서할 수 있을,
휘어진 돌이 있었다. 관용은 따뜻한 밤이었다.
빈산에 편지만 놓고 갔어요 / 송용탁
네가 나를 빈산이라 부를 때가 있었다
너의 젖음이 어디서 기원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파꽃의 무렵
파문이 끝난 곳
달 한 송이 피고 지는 산정에
지붕 없는 집 한 채 짓는 것
그저 빈산이면 됐다고
방백처럼 경계 없는 말을 했다
파꽃이 진 이후 좌초된 이유가 늘었다
서간에는 수백의 달이 뜨고 있었다
예감은 달의 뒷면과 닮았다
등만 있는 산은 늘 적막했다
울지 마 소녀야
봄여름가을겨울
너는 내게 늘
빈산을 찾는 한 어절이었다
2022 김포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나태주 시인
2022년도 김포문학상 시부문에 응모된 작품들을 읽었습니다. 본상 부문과 신인상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우선 신인상 부문에서 당선시킬만한 작품을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다음 작품을 골라냈습니다. 『밤 한 톨』, 『모시저고리』, 『가을밤의 만남』, 『어머니』입니다. 사실 네 분의 작품이 다 고만고만해 아직은 미숙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았는데 특히 언어 표현들이 많이 모자라고 노쇠해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인상인 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서 서정적 사유와 현대적 감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상 부분에서는 두세 편 좋은 작품이 보여 다행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두 편의 작품에 주목합니다. 먼저 124번 응모자의 작품이 좋았습니다. 응모자의 모든 작품의 수준이 고른 편이라서 안정감이 있었습니다. 삶과 자연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언어표현도 신선했습니다. 맨 나중에 있는 「빈산에 편지만 놓고 갔어요」는 가편이었습니다.
결국 시를 낳는 것이 그리움과 호기심과 사랑인데 그러한 에너지가 충만한 작품이었던 만큼 독자의 마음을 아주 부드럽고 너그럽게 쓰다듬어 주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야말로 오늘날 지친 독자들에게 위로와 축복을 주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닌 유용한 작가라 여겼습니다.
그다음으로 좋았던 작품은 53번 응모자의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우산」이었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도 시적인 꼴이 잘 잡힌 글로 호소력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언어의 운용(運用)이 약간 넘치는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도 두 번째 작품을 뽑는다면 이 작가의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작가는 「샤갈과 눈길을 걷는 동안」과 「풀리다」, 그리고 「종이접기」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전체 작품을 두고 말한다면 시가 어떤 글인지 모르고 쓴 글이 다수 있어 보였습니다. 시의 본질은 서정(抒情)인데 서사(敍事) 쪽으로 기운 작품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시가 길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 시단의 한 경향인데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비시적(非詩的)인 일이요 시가 시로서 바로 서는 데에 방해가 되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의 소재가 정서라는 것을 잊고 기억이나 생각이나 경험 자체 사실의 표현을 시로 착각하는 응모자가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위의 작품들을 읽게 된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었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