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기획시리즈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자연을 사랑하고 평화를 노래했던 교회 종지기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아름다운 삶을 온 세상에
안동인터넷신문사는 안동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을 심층 취재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기획시리즈 「안동의 문화예술人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음악, 미술, 연극, 문학, 공연예술 등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단체 및 인물을 직접 찾아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이들의 활동상을 인터넷 지면을 통해 자세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공공분야에서 활동하는 단체를 비롯해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동아리까지 분야, 장르, 규모 등을 막론하고 취재대상의 범위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기획시리즈는 문화예술분야 단체 및 개인 10개 팀을 대상으로 올해 내에 총 10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안동 문화예술인과의 소통을 통해 지역 내 문화 다양성이 존중되고, 문화생태계가 보다 건강해지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2006년 동화 '랑랑별 때때롱'을 집필할 때의 권정생 선생의 모습. 이듬해인 2007년 선생이 타계하면서 이 동화는 고인의 마지막 동화작품이 됐다. 사진제공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열 번째 이야기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한국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고(故) 권정생(1937~2007) 선생. 그는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의 횡포를 비판한 사상가이자, 전쟁을 반대하고 통일을 염원한 평화주의자, 교회의 잘못을 꾸짖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0살 때 한국으로 돌아와 마을 교회 종지기로 일했고, 빌뱅이 언덕 아래 작은 흙집에서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고 살다가 2007년 봄 70년의 고단했던 삶을 마감했다. 선생이 타계한 지 2년 후인 지난 2009년, 그의 위대한 문학적 사상과 헌신적 삶을 재조명하기 위해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됐다. 그는 남긴 유산과 앞으로 발생할 인세를 전쟁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글을 유언장에 남겼기 때문이다. 유언집행권자인 박연철 현 재단 이사장 등과 유족들은 선생의 유언을 실천하고, 그의 아름다운 생애를 기리기 위한 사업도 함께 펼쳐오고 있다. 올해로 선생이 타계한 지 12년째. 권정생동화나라 최윤환 관장과 김석현 사무처장을 찾아 선생의 위대한 삶을 되짚어 보고, 현재 재단의 운영 상황 등을 들어봤다. 다음은 최 관장과 김 사무처장과의 일문일답.
Q :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 대한 간략한 소개
A :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아동문학가인 고(故) 권정생(1937~2007) 선생의 유언에 따라 전쟁과 분단, 기아 등으로 고통 받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도울 목적으로 선생의 유언집행권자인 정호경 신부, 최완택 목사, 박연철 변호사와 유족들에 의해 2009년 설립됐다. 권정생 선생이 유언장에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한 이유에서다. 선생이 남긴 유산과 저작권 인세수입은 권정생동화나라 운영과 독서지도사업, 희망드림캠프사업, 북한어린이급식지원사업, 결핵환자의약품지원사업 등에 쓰이고 있다. 아이들이 전쟁 없는 세상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여러 사업들을 펼치면서, 더불어 고인이 남긴 아름다운 글과 위대한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
권정생동화나라 전경. 사진제공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Q : 권정생동화나라는 어떤 곳인가
A : 권정생동화나라가 위치한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일대는 선생의 대표작인 『몽실언니』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이다. 폐교된 일직남부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2014년 문을 열었다. 권정생 선생이 살았던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 생가에서 1㎞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층은 권정생 선생의 유품을 모아놓은 전시실과 수장고, 도서관, 서점 등이 마련돼 있고, 2층에는 100여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회의실, 작가들의 창작 공간과 숙소 등이 차려져있다. 특히 교실을 리모델링해 만든 각 방에는 몽실네, 강아지똥네, 때때롱네, 점득이네, 똘배네 등 선생의 작품 속 인물들로 이름을 붙여 재미를 더했다.
주로 문학 소모임이나 단체에서 문학기행을 오거나,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견학하기 위해 방문한다. 견학 비용은 무료이다. 50명 이상 단체 방문 시 독립영화 ‘몽실언니’를 상영하기도 한다. 특히 가족단위 방문자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엄마까투리’의 미방영된 시즌3을 도서관에서 유일하게 감상할 수 있다.
문학관 내 서점에선 방문객이 직접 손으로 쓴 엽서를 1년 뒤 본인에게 다시 우편으로 보내주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이메일이나 문자로 소통하는 이 시대에 옛날의 감성을 되살리고, 아이들에게 단 한 줄이라도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방문객들의 반응이 꽤 좋은 편이다.
큰 틀에선 권정생 선생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무한 헌신성을 방문객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공간인데, 현재로서는 이를 담아내기에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앞으로 공간 활용에 있어 조금씩 변화를 주려고 한다.
권정생어린이동화나라 김석현 사무국장(앞)과 최윤환 관장(뒤)이 수장고에 보관된 권정생 선생의 유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곳에 보관된 유품은 도서, 물품, 서류 등 6천 여점에 달한다.
Q : 권정생 선생의 유품은 잘 보관되어 있나
A : 선생의 유품은 도서 5,208권, 물품 417종, 서류문서 1,106종이다. 수장고 내에 보관된 것도 있고, 지인들이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생전 입었던 옷과 신발, 작품을 쓸 때 사용한 문방구,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생활용품 등 다양한 유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전시실에선 일부만 공개를 하고, 대부분은 수장고에 보관해 두고 있다. 모두 낡고 오래된 것들인데, 선생의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유품에 비해 장소가 협소한 점은 다소 아쉽다. 지금은 보안설비를 해 둔 상황이지만, 입주 첫 해만 해도 도난을 막을 창살도 없었고, 제대로 된 진열장도 갖춰지지 않았었다. 현재 많은 부분이 보강된 상태다.
Q : 헌정된 그림과 작품이 많은 것 같다
A : 설치 미술가인 최병수 선생의 작품이 많다. 최병수 미술가와 권정생 선생은 생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권정생 선생이 『병수는 광대다』라는 시를 지어준 인연으로 권정생 선생의 영결식장에 판화를 제작해 설치하기도 했다. 판화에 새겨진 권정생 선생의 얼굴 아래에는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는 이유는 하늘나라에서 별이 되어 통일된 한반도를 지켜보시란 뜻으로 그렸다고 한다. 최병수 선생은 2015년 권정생동화나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5월의 하늘’이란 주제로 기획전도 연 적이 있다. 기획전 이후 대부분의 작품이 이곳에 기증됐다. 건물 입구에는 전쟁 반대를 상징하는 ‘평화통일’이란 작품을 비롯해 ‘어머니’라 새겨진 솟대, 엽서에 그려진 작품 ‘별 그대’ 등 대부분 최병수 선생의 조소작품이다.
2022년 추모의 정 15주기에 맞춰 “권정생 말하고 장종규 쓰고 신태수 그리다”는 기획전에 권정생 선생의 책 속 아름다운 글귀를 새겨 넣은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신태수 화백은 지난해 4월 역사적인 1차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 걸린 그림 ‘두무진에서 장산곶’을 그린 작가로도 유명한 분이다. 남북 평화를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리는 신태수 화백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염원했던 권정생 선생의 정신이 맞닿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설치 미술가 최병수 선생은 2015년 권정생동화나라에서 '5월의 하늘'이란 주제로 기획전 개최, 전시 이후 작품 대부분을 권정생동화나라에 기증했다. 좌, 우 작품 모두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제작한 철제 조소작품이다.
Q : 권정생 선생의 삶은 어떠했나
A : ‘내 몫 이상을 쓰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라 생각하며 항상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생전 인세로 들어온 돈을 꼬박꼬박 모아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정생’(正生)이란 이름처럼 바른 삶을 사셨고,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셨던 분이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밑바닥 삶을 살았고, 10살 때인 1946년 청송 외가에 있다가 1947년 아버지의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왔지만 더 나아진 것도 없이 극빈의 삶을 또 다시 살았다. 이러한 생활로 늑막염에 폐결핵까지 겹쳐 한쪽 콩팥과 방광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은 후 평생 소변주머니를 달고 고통스럽게 살았다. 그러한 속에서도 아름다운 글 수 백편을 남겼다. 평생 모은 재산과 앞으로 발생할 저작권 인세를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2007년 봄 우리 곁을 떠났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전쟁으로 고통 받는 중동, 아프리카, 티벳의 아이들을 걱정했다.
문학상 시상식에 낡은 골덴 바지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갈 정도로 순박한 분이셨다. 일직교회 문간방에 사실 때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겨울날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가 토끼몰이를 할까?”를 생각하는 나(김석현 사무처장)에게 선생은 “석현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토끼는 뭘 먹지”라고 물어 와서 당황한 적이 있다. 생명을 향한 무한존중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조탑리 생가 앞마당에 풀 한 포기 뽑지 않으셨다.
선생의 위대한 생애에 비해 그의 문학과 정신이 덜 알려진 느낌이다.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여러 사업들이 앞으로 많이 생기길 바란다.
권정생 선생이 생전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빨래는 너는 모습. 빨래집게를 자세히 보면 구리선이 든 전선을 잘라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최소한의 것으로 검소하게 생활했던 선생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진제공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Q : 권정생 선생을 대표하는 철학과 사상은 무엇인가
A : 권정생 선생의 평화주의는 곧 자연주의와도 맞닿아있다.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관통하는 사상은 전쟁반대와 평화주의인데, 이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철학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분쟁이 발생하고, 이는 곧 자연의 황폐화로 이어진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지혜를 배우고 삶을 터득하는 세상을 꿈꾸셨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지식만을 얻으려 하는데, 이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유언장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목사, 신부, 변호사와 같은 사회적 책임이 있는 직업군에 대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규정을 짓지 않으셨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 밑에선 다 똑같은 인간이기에 모자람이 있더라도 이웃을 사랑하고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자 하셨다.
Q : 권정생 선생의 동화 속 캐릭터의 상업화를 우려하는 것 같은데
A : 권정생 선생의 동화 속 캐릭터들은 모두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특히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해진 엄마까투리와 꺼병이 9형제는 어머니의 모성애와 아이들의 천진함을 상징한다. 꺼병이 형제 마지, 두리, 셋지,꽁지 등의 캐릭터는 아이들에게 이미 의인화가 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를 형상화한 먹거리 상품을 만들 경우 생명경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캐릭터 사업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친숙한 동물 캐릭터를 초콜릿이나 빵 모양으로 만들어 급식으로 제공하겠다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이는 권정생 선생의 철학에 절대적으로 반하는 것이다. 이를 특히 경계하고 있다.
권정생 선생이 엄마까투리를 동화의 소재로 한 이유는,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더불어 평화통일과 전쟁반대의 의미도 깔려있다. 한국에서 까투리가 꺼병이를 데리고 다니는 시기가 5~6월이고, 이 시기에 숲 속에서 큰 화재가 발생한다. 이는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상징한다. 우리민족의 슬픈 역사를 되새기고, 평화를 지향하자는 문학 속 큰 가르침이 왜곡되지 않길 바란다.
Q : 현재 재단이 추진 중인 교육 사업이 있는지
A : 올해부터 레바논 등 중동 분쟁지역에 학교건립 지원금을 보내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난민 교육 후원회에도 매년 1200만원 씩 지원한다. 권정생 선생의 교훈적인 사상을 알리기 위해 해설사 양성과정도 꾸준히 펼쳐오고 있다. 총 3기가 진행됐고, 수료생 중 현재 17명이 본격적인 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책 속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콘텐츠화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은 재단이 자체적으로 아직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재단의 역량문제도 있지만, 비용의 한계가 크기 때문이다. 권정생 선생이 남기신 유산을 북녘 어린이들을 돕는데 거의 사용 하고 있지만, 중장기 계획을 세워보면 언젠가는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의 사업을 위해서라도 다소 상업적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소극적으로라도 기념품 판매 사업이라든지 엽서보내기 프로그램 등을 운영 중이다.
Q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 현재의 권정생동화나라는 선생의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측면이 있다. 계단을 올라야 갈 수 있는 건물의 위치는 군대 사열대처럼 아이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고, 옛 건물이기 때문에 획일적 사고를 하도록 강제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풀밭을 뛰어 놀고, 모래로 성을 쌓고 , 연못에서 물고기와 함께 노는,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다시 만들고 싶다.
출처 : 안동인터넷신문(http://www.andonginews.com)
*기사원문
[기획연재]‘안동의 문화예술人 이야기’(10) -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안동인터넷신문)
http://www.andong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