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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보다 귀한 것은 없네
2018년 4월 29일 / 대예배, 삼일예배 / 히브리서 11:1-12
성경 66권 1189장 가운데 ‘믿음’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책은 히브리서요,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은 히브리서 11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질 정도가 ‘믿음’에 관하여 많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40구절 가운데 ‘믿음’이라는 단어가 25번, ‘믿어야 할지니라’ 1번 도합 26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믿음의 사람 또는 신자(信者)이라고 합니다. 믿음을 영적 그릇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그릇을 준비하고 즉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행하는 일에 또는 기도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그릇에 채워주십니다. 믿는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자와 양의 관계 또는 포도나무와 가지 관계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 옛날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 총독부에서 인도의 지방 부호들에게 자동차를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호들이 자동차를 받기는 받았는데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바퀴는 네 개가 달렸으니 땅에서 구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튼튼한 소 두 마리를 구해 자동차 앞에 묶어서 선물로 받은 기념으로 군중들 앞에 그 차를 몰고 다녔다고 합니다.
믿으면 태산을 옮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을 활용할 줄 몰라서 자기 힘으로 낑낑거리며 살아가거나 겨우 육신의 응답이나 받으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 즉 겨자씨만한 믿음의 소유자, 반반 믿는 자, 때로는 의심하여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설령 거역했을지라도 버리지 않으시고 큰 믿음을 가지도록까지 도와주십니다.
방황하며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을 통해 약속하신 것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의 선진들의 부르짖었던 기도와 순교자의 피가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여 허송세월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 384장을 마음껏 불러보십시다.
패니 크로즈비(Fanny Jane Crosby, 1820-1915) 여사는 맹인 여류 찬송시인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평생 찬송시 작시에 몰두하며 살았는데, 그녀가 쓴 찬송시를 모두 합하면 8천 편 이상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처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6주 쯤 되었을 때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집은 가난하여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크로스비가 한 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후에는 할머니마저도 죽었기에 크로즈비는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나중에 크로즈비는 38세가 되어서야 맹인인 남편과 결혼합니다. 두 사람은 가난하였으나 깊은 사랑으로 행복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늦둥이 아기가 곧바로 죽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고통의 터널을 지난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찬송시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가 남긴 많은 찬송시 중의 백미는 ‘나의 갈길 다가도록’입니다. 1875년 어느 날 5달러의 돈이 필요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작품을 출판해 줄 출판사 사장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버스 요금 5달러가 없어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기도하고 있는데 누가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현관문을 여니 낯모르는 사람이 크로즈비 여사의 팬이라고 하면서 그녀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고 말없이 사라졌습니다. 크로스비가 만져보니 정확히 5달러짜리 지폐였습니다. 그녀는 너무나도 정확하신 하나님의 응답에 감사하면서 이 찬송시를 써내려갔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이 중에서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의 원 가사의 의미를 직역하면 이렇다. “여기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늘의 평화와 신령한 위로가 넘치네 / 왜냐하면 내가 알기 때문이네 내게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주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얼마나 귀한 신앙고백입니까? 단돈 5달러에 감격해서 이 찬송시를 쓴 것 자체도 감동입니다.
▶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나오는데, 개정개역에는 아직도 이해하기가 어렵게 되어있지만 현대어성경에는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히 11:1-2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개정개역) /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예전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도 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정받았던 것입니다.(현대어성경)
▶ 노아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7절에 ‘노아도 하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일을 경고해 주셨을 때 홍수의 조짐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방주를 만들어 자기 가족을 구해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노아의 신앙은 그 당시 거역만을 일삼던 사람들의 죄나 불신앙과 비교할 때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노아가 얼마나 오랫동안 방주를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방주 크기를 볼 때 수월치 않게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창세기 6:14-16에 나와 있는 치수대로의 방주 크기는 길이가 삼백규빗(135m), 폭이 오십규빗(22.5m), 높이가 삼십규빗(13.5m)으로, 43,200m3 정도의 부피를 가지는데, 이는 한 량에 240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는 화차 522량에 해당하는 용량과 같습니다. 그 당시에 연장도 변변치 않는데 그런 연장을 가지고서 만드는 배인데,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도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날씨에 수십 년 동안 매일 망치질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노아를 미쳤다고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믿음으로 사는 영적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이라면 육에 속한 사람의 말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 아브라함도 보십시오. 자녀가 하나도 없는데 나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나님께서 시키셨다고 하여 자신들을 ‘만국의 아비요, 어미’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현재 없는 것일지라도 거짓말로 약속하시지 않았기에 앞으로 주시려고 하시기에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있는 것처럼 만민의 아비, 그 아내가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는데 만민의 어미라고 하신 것입니다. 대신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언제나 내 앞에서 살아가도록 하여라. 내가 항상 너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도록 하여라.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아라. 그리고 바른 길만 걷도록 하여라.’(창 17:1)고 하셨습니다.
1.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귀히 쓰십니다.
히 11:6 / 여러분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이는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 재미있는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이 글에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12제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경영컨설팅 전문회사에 의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에 대한 평가가 다음과 같이 나왔습니다. “나사렛 예수 귀하! 귀하가 의뢰한 12명의 인적 사항을 검토하고 심리 테스트 및 적성검사를 한 결과 다음과 같습니다. 한 명만을 제외하고는 다들 학력이 너무 낮고 경험도 부족합니다. 그들은 귀하가 새롭게 기획하는 공동체의 간부로서 자격 미달입니다. 그들은 단체 관념도 없고, 협력 정신이 부족해서 경영관리자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먼저 시몬 베드로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성격이 너무 과격합니다. 안드레는 한마디로 무능력자입니다. 남을 지도할 사람이 못됩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은 공동체의 이익을 제쳐놓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도마는 매우 부정적이고 질문뿐이며, 추진력이 별로 없습니다. 마태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할는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및 가나안인 시몬은 사회혁명을 노리는 과격한 불온사상에 깊이 감염되어 있습니다. 귀하가 추천한 12명 중 그래도 긍정할만한 사람이 있다면 가룟 유다 한 사람뿐입니다. 그는 비교적 유능한 편입니다. 사회 지식도 풍부합니다. 실업인다운 예민한 감각과 판단력도 가졌습니다. 사교성도 있어 권력 상층부와도 잘 접촉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강한 동기가 있고, 의욕도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본 경영 컨설팅 전문회사는 가룟 유다 한 사람만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웃으라고 만든 유머이겠지만,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고, 사교술이 뛰어나고, 강한 성취 욕구를 중요시하는 세상의 기준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기준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셨고,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에 따라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서 찾았던 소중한 것은 믿음으로 오늘도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누가복음 18장 8절에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예수님께 믿음이 있다고 칭찬받은 사람들
1. 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기적이 일어남을 믿었습니다(마 8장).
유대 장로들의 청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시려고 백부장의 집으로 가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백부장이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집에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이 다만 이 자리에서 ‘나으라’ 하고 말씀만 해도 제 하인은 나을 것입니다. 저도 지휘관 밑에 있고 제 밑에도 부하들이 있어 제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하인더러 ‘이것을 하라’하면 합니다. 저는 주님이 ‘병이 나으라’ 하고 말씀만 하시면 그 병이 나을 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직접 가시지 마시고 말씀만 하시면 낫게 될 것을 믿으니 말씀 한 마디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기이히 여기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주 놀랐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입장이 바꿨습니다.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그 백부장이 놀라야 하고 기이하게 여겨야 하는데, 도리어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셨던 것입니다.
마 8:10-13 / 그 백부장의 말에 감탄하신 예수께서는 군중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온 땅에서 나는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본 일이 없다. 11) 이 백부장과 같은 많은 이방 사람들이 세계 여러 곳에서부터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나라에 들어가 앉을 것이다. 12)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해 하늘나라가 마련되어 있는데도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땅을 치며 통곡을 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백부장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라.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하인의 병이 나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백부장에 말씀하신 것 중에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우리가 믿고 기도하는 것들을 응답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음이 없기에 응답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1.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후렴>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2.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메오가 눈을 떴다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메오가 눈을 떴다네
3.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네
4.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거친 바다가 잠잠해졌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거친 바다가 잠잠해졌네
2. 가나안 여자의 믿음 / 마 15:21-28(막 7:24-30)
구약의 나아만의 경우처럼 가나안 여인은 자존심(自尊心 -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버리고 믿음으로 부르짖을 때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게네사렛 지방을 떠나 이방 땅인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조용히 향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소문이 이곳에까지 퍼져 고통당하는 딸을 가진 한 이방여인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마귀에게 고통당하고 있어 고쳐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녀는 고통당하는 딸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애끓는 심정으로 예수님의 자비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비록 자녀의 고통이지만 이방여인으로 여러 장벽을 넘어서 예수님께 나아와 간청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할 열정과 용기입니다.
애처로운 여인의 부르짖음을 외면한 듯 예수님은 침묵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소리를 지르며 도와달라고 간청을 하자 이에 제자들이 나서서 예수님께 요청을 합니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성가시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겨우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입을 열어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 즉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이지 이방인들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깜짝 놀란 사람은 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그런 거절 아니 여인을 무시하는 있을 수 없는 말씀에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조금도 자기의 뜻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선생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계속 간청하였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이 들어보지 못한 말씀을 또 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먹을 떡을 강아지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거절치고는 너무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이 여인에게서 나왔습니다. 다음 두 절을 봅니다.
마 15:27 / 그 여자가 말하였다. “예,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질 않습니까?”
마 15:28 / 그때 예수께서는 “여자여,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➊ 예수님의 침묵은 단순이 거절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심에 따라 선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기다림의 시간이라는 점입니다.
➋ 예수님이 도와주기는커녕 여인을 개 취급하시며 모욕적인 말로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이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무시를 받아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놀랍게도 부스러기라도 먹을 터이니 달라고 합니다. 이는 주인집 개의 자격이라도 주심에 감사하고 그래서 주인의 밥상 아래에 앉아 있다가 그곳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감사할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사실상 자신이 주인집의 개 취급을 받는 이방인으로서 메시야가 베푸시는 구원과 은혜의 식탁에 자녀로서 참여할 수는 없다고 하여도 최소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의 부스러기라도 곧 일부라도 힘입을 수는 있다고 하는 사실에 근거를 둔 확신에 찬 요청인 것입니다.
▶ 여기에서 잠시 열왕기하 5장에서 나아만의 경우를 봅니다.
왕하 5:8-12 / … 엘리사가 왕이 옷을 찢고 괴로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전갈을 보냈다.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내십시오. 그러면 그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9) 나아만은 마차를 타고 사마리아에서 길갈로 내려와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멈추어 섰다. 10) 그러나 엘리사는 그를 만나주기는커녕 다른 사람을 내보내 말을 전하게 하였다. 위풍당당한 장군을 마치 천하고 불쌍한 거지처럼 취급한 것이다. “나아만은 요단강으로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씻어라! 그러면 문둥병이 나아 살이 깨끗해질 것이다.” 11) 화가 치솟은 나아만은 당장 발길을 되돌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가 몸소 나와서 나를 영접하면서 자기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를 드리고 나의 온갖 상처를 어루만져서 이 문둥병을 고쳐 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런데 요단강에 가서 몸이나 씻으라니! 12) 다메섹에는 이스라엘의 어느 강보다 더 좋은 강들이 있지 않느냐? 레바논 산속에서 흘러나오는 아마나 강물과 헬몬 산속에서 흘러나오는 바르발 강물은 얼마나 맑고 시원하냐! 강물에 들어가 목욕해서 나을 병이라면 내가 거기서도 충분히 목욕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화를 내면서 고향으로 되돌아가려고 마차머리를 돌렸다.
나아만은 자기를 멸시 조롱하는 듯한 엘리사의 말에 분노하여 돌아가려고 합니다. 나아만이 먼저 엘리사를 찾은 것이 아니라 자기를 오라고 해 놓고서 문전박대하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으로서는 정말 어려운 발걸음을 했음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지자가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무시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나아만의 부하들이 다가서며 말합니다. “만일 저 예언자가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라고 요구하였더라도 장군님은 틀림없이 그대로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겨우 가서 몸을 씻으면 깨끗해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일단은 그대로 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돈 많고 권세 높은 나아만은 마음을 바꾸어 겸손히 요단강으로 내려가 엘리사가 명령한 대로 그 물에 일곱 번 몸을 씻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완전히 치료되어 그의 피부가 소년의 살결처럼 깨끗해졌습니다(왕하 5:13-14).
놀랍도록 지금까지 자기를 괴롭힌 나병에서 고침을 받자 나아만은 새사람이 된 듯합니다. 조금 전의 자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엘리사 선지자 앞에 와서 고개를 숙이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왕하 5:15-19 / 그가 수행원들을 모두 거느리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로 돌아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외에는 온 세상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내가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러니 감사해서 드리는 나의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16)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나아만은 그의 마음을 돌이켜 놓으려고 여러 번 애를 썼으나 엘리사는 여전히 어떤 선물도 받지 않았다.
이에 나아만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엘리사에게 말을 합니다.
왕하 5:17-19 / 마침내 나아만이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님이 이렇게 나의 선물을 받지 않으신다면 나귀 두 마리가 싣고 갈 수 있을 만큼만 여기서 흙을 파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이제 돌아가서 그 흙으로 제단을 만들어 놓고 여호와께만 번제와 제물을 바치고, 다른 어떤 신도 섬기지 않겠습니다. 18) 그러나 한 가지 여호와께서 묵인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왕이 우리나라의 민족신인 림몬을 섬기러 신전으로 들어갈 때에 내가 그의 오른팔을 붙잡고 함께 들어가서 절을 해야 되는데, 여호와께서 이것만은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19) 이때 엘리사가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가십시오.” 하고 말하자 그는 그곳을 떠났다.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의 이러한 신앙과 마음의 다짐을 우리들에게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병 고침이라든가 복만 받으면 하나님을 떠나는 그러한 신앙은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이것은 본인들에게도 결코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영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 다시 가나안 여인에게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놀라운 답변에 놀람과 감탄이 그대로 묻어 나온 말투로 “훌륭한 대답이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떠났다.”라고 기뻐하셨습니다. 여기 큰 믿음의 칭찬이란 그녀의 신뢰, 확신, 낮춤, 인내까지 포함하여 인정된 칭찬인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인은 건강한 딸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응답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혈루증을 고침받은 여인
막 5:24-34 / 예수께서 그를 따라 나서자 많은 무리가 함께 예수의 뒤를 좇았다. 25) 그 무리 가운데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으로 고생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치료받았으나 돈만 허비하였을 뿐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졌다. 27) 그럴 즈음에 예수께서 놀라운 이적을 행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무리 속에 끼여 따라가다가 뒤에서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그것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29) 과연 그 여자는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자마자 하혈이 멈추면서 병이 나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께서는 곧 자신에게서 병 고치는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시고 돌아서서 무리들을 둘러보며 물으셨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31) 그러자 제자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무리가 사방에서 밀어대고 있는데 누가 선생님께 손을 댔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32) 예수께서는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며 손댄 사람을 찾으셨다. 33) 그때 그 여자는 자기 몸에 일어난 일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가 한 일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34)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네 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건강해져라.
3. 먼저 의심을 버리도록 기도하라
■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 명 가운데 기독교 신자는 10% 정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슬림 국가입니다. 그런데 수라바야에 가면 2만 5천명의 좌석이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순복음 교회의 3배 만합니다. 거의 운동장만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는 에이브라함 알렉스라는 분입니다. 무슬림 국가에서 목사 노릇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아기를 낳았는데 뇌성마비 아기로 수족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주변에 있는 무슬림 교도들이 ‘자! 너희 하나님이 목사 아들을 뇌성마비로 낳게 하였으니 참 잘했다. 너 하나님 어디 계시냐?’라며 집요하게 조롱합니다. 그런데 이 에이브라함 알렉스 목사님은 큰 믿음의 사람인지라 그때부터 결심하고 아들의 건강한 모습을 마음에 품고 기도를 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이 계속 비난하자 교인들도 더 당황하고 굉장히 큰 시험에 걸렸었습니다. 그럴지라도 목사님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매일 집중해서 기도하기를 한 달을 해도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두 달을 기도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석 달을 기도해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마귀가 와서 ‘포기하라. 뇌성마비로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낫느냐. 포기하라.’고 속삭이지만 목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믿음으로 기도를 계속합니다. “하나님! 이 아이를 일으켜 세워줄 줄 믿습니다. 이 아이는 나을 것입니다. 건강할 것입니다. 두 다리로 설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기도한지 넉 달째 기도 중에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느 날 조용기 목사님을 찾아와 아들에게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당부했고, 조용기 목사님을 아들을 위해 안수기도한 후 에이브라함 목사에게 “아들이 치유받았으니 매일 아들을 위해 기도한 후 아들이 나았다고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늘 방안에 누워있던 에이브라함 목사의 아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후 베다니 교회는 놀라운 부흥을 거듭했고, 에이브라함 목사의 아들은 현재 목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히 11:1 /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344장 / ➊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걸어가서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버리고 걸어가서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➋ 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없이 살아 갈 때에 우리 소원 주 안에서 이루리
➌ 당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한 주 하나님 아버지는 참 미쁘다 그 귀한 모든 약속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무슨 일이 있을까
4.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어느 직물 공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공장에서는 여공들이 실을 풀거나 감다가 얽히게 되면 무조건 공장장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공이 작업을 하는 도중에 그만 실이 엉켰습니다. 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여공은 자기가 풀려고 막상 해보니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실이 더 복잡하게 얽혀버렸습니다. 그제야 여공은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하는 수 없어 공장장에게 실이 엉킨 것을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공장장은 복잡하게 엉킨 실을 보고 노발대발하며 물었습니다. “실이 엉키면 즉시 와서 보고를 해야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어요?” 여공은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공장장님! 저는 사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이렇게 실이 얽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공장장은 그 소리를 듣고 기가 막힌다는 듯이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바로 공장장인 내게 보고하는 것이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게 하시오!”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게 삶이 얽힐 때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푸는 것이 최선의 길이겠습니까? 그때 내 힘으로 하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하나님께 보고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것이 믿음의 바른 태도입니다.
찬송가 369장 1.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기독교인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기에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 동화되어 조롱을 받습니다. 온전한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만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라고 할 때 역사는 헬라어로 ‘에르곤’입니다. ‘행동’의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하는 믿음이란 행동하는 믿음, 움직이는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Working faith’ 라고 번역도 합니다. 고로 믿음은 살아서 움직여야 합니다.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믿음이라면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믿음은 겨자씨만한 믿음이었음을 기억하십시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의로운 사람은 진실하게 나를 의지하기 때문에 살 수 있다)’는 구절이 신약에 세 번 나옵니다. 로마서 1:17, 갈 3:11, 히 10:38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실제적으로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생애를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인물들의 전시장’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의 삶과 행위와 인격 속에서 나타난 믿음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자주 읽으십시오.
5.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 우물을 잘 파기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우물을 파면 백발백중 물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영감을 받기에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옵니까?” 그 사람의 답변입니다. “제가 우물을 잘 파는 비결은 딱 한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물을 파다가 물이 안 나오면 또 다른 데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나는 물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팝니다.”
어떤 영감(靈感) 혹은 큰 비결이 있는 줄 알았는데 비결이 겨우 끝까지 파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것쯤이야 못할 것이 있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못합니다. 사람들이 파다가 물이 안 나오면 낙심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우물을 파다가 물이 안 나와 낙심되어 포기할 때가 되면 반대로 이제 물이 나올 때가 가까웠다고 생각하며 힘을 다해서 견디고 더 깊이 파면 물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8:15, 18:1-8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은 마음에 길이길이 남습니다.
눅 8:15 /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그러나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기쁨으로 지켜 나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함으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눅 18:1-8 / 어느 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2) “어떤 도시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깔보는 재판관 한 사람이 있었다. 3) 그런데 그 도시에 사는 한 과부가 늘 그를 찾아가서 자기에게 억울한 일을 한 사람을 법으로 다스려 달라고 탄원하였다. 4-5) 재판관은 오랫동안 그 말을 무시해 왔으나 귀찮아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6) 나는 하나님도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여자가 나를 이렇게 성가시게구니 그의 소원대로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나를 찾아와서 견디지 못하게 할 테니까.’하고 생각하였다.”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비록 악한 재판관이라도 이처럼 들어주는데 7)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간구하는 그의 백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해주시지 않겠느냐? 8)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신속히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과연 몇 명이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믿음’이란 명사가 아니고 동사인데, 믿음에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아처럼 방주를 지어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모세처럼 지팡이를 들어야 바닷길이 열린다. 여리고 성을 돌아야 여리고 성이 무너진다. 내 점심 도시락을 주님의 손에 들려드려야 수천 명의 시장기가 해결된다. 12년 동안 혈루증에 걸린 여인의 손이든, 방글라데시 거지의 기도하는 손이든,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져야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행동을 보일 때 기적을 행하시고 역사해 주십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됩니다.
이제부터라도 작정하고 기도하십시다. 기도의 응답은 결코 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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