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사로잡은 하마구치 류스케 작품부터 오기가미 나오코 신작까지
더 친절한 프로그래머2 –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
2021년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이름은 하마구치 류스케이지만 그것만 기억해서는 곤란한다. 기억할만한 일본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 만이 아니다. 먼저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은 흔한 청춘로맨스물처럼 시작하지만 특별한 감동을 안겨주는 영화다. BL을 좋아하는 소녀와 게이인 소년이 만나 얼떨결에 데이트를 시작, 역경을 딛고 성정체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차원의 우정을 꽃피운다. 대중영화에서 성정체성을 다룬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힐 작품이다. 또다른 야외극장 상영작 <도쿄 리벤저스>도 미소년들이 대거 나오는 영화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과 극영화 모두 화제가 된 작품으로 2021년 일본판 <빽 투 더 퓨처>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프랑스 FID마르세유 영화제에서 대상, 연기상, 관객상을 수상한 <하루하라상의 리코더>는 단연 올해의 발견이다. 인과관계를 자세히 설명하는 대신 인상적인 장면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신기한 영화로 시적 영화라는 반응을 얻었다. 뉴 커런츠 선정작인 <실종>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올해의 발견으로 회자될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가타야마 신조 감독은 인간성의 숨은 면모를 보여주는 강렬한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중견감독의 영화로 오기가미 나오코의 <강변의 무코리타>와 제제 다카히사의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오기가미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잘 살린 영화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생기가 피어나는 가볍고 밝은 이야기다.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은 동명의 추리소설이 원작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9년이 지난 미야기현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살인사건 이면에 숨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사회에서 벌어진 문제를 들여다보는 영화로 묵직한 사회적 이슈를 흥미로운 미스터리물에 담아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인 <견왕>은 신카이 마코토, 호소다 마모루 등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유아사 마사아키의 신작으로 일본의 전통 음악극과 현대 록음악이 어우러진 독특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