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갈증
찔레꽃 고운사랑
신근식
해마다 5월이 오면 소박하고 청초한 자태를 뽐내는 목마르고 배고픈 추억의 찔레꽃을 생각한다. “엄마 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하는 이연실의 엄마를 애타게 그리는 “찔레꽃” 노래다. 소박하고 아름다움을 지닌 찔레꽃은 배고픔과 슬픔의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시나 노랫말이 많이 있다.
찔레꽃은 우리나라 산과 들의 기슭과 계곡에서 흔히 보는 낙엽활엽관목이다. 키는 약 2m 정도이고, 잎은 잎자루 양쪽에 5~9장의 작은 잎은 서로 어긋나게 붙어 있다. 꽃은 5월에 피며 지름이 2㎝ 정도의 백색 또는 연홍색이며 꽃잎은 5장이다. 꽃이 지고 가을에 빨갛게 익는 열매는 영실(營實)이라는 약재로 여성들의 생리현상과 신장염 치료에 효험이 있다.
찔레꽃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다. "고려 원종 때 원나라에 공녀로 끌러간 찔레는 십 수 년 동안 갖은 고초를 겪다가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나 막상 고향에 돌아왔지만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은 생사조차 알 수가 없었다. 찔레는 부모님과 동생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고향산천 곳곳을 헤매고 다니다가 산골짜기 시냇가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듬해 봄 찔레가 죽은 곳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고, 진한 향기를 내뿜는 수많은 흰 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찔레의 흰 저고리와 치마는 꽃잎으로, 가족을 부르는 그녀의 애타는 목소리는 향기가 되었다. 찔레의 영혼이 환생한 나무라는 뜻으로 찔레꽃이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찔레꽃에 대한 추억이 있다. 우리 형제는 4남매로 내가 맏이며 밑으로 남동생 2명, 막내 여동생이 있다. 늦은 봄, 어릴 때 뒷산 못 둑 위에 밭이 있어서 농사짓는 아버지 따라 자주 놀러 갔다. 놀다 보면 목이 말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개울가 찔레 덤불로 뛰어가 찔레 꽃잎을 따서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던 어려웠던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이 난다. 껍질을 벗겨서 먹던 연한 찔레 순의 맛을 잊지 못한다.
찔레꽃 꽃말은 ‘온화’ ‘애틋한 사랑’ ‘고독’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가족은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여행 한 번 가본일도 없다. 부모와 같이 손잡고 놀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 때에는 모두 그랬다. 부모님은 먹고 살기에 바빠서 일을 하다 보니 우리를 보살필 여유가 없었다. “밥을 잘 먹이는 것”과 “공부 잘해라”는 말 말고는 더는 없었다. 특히 엄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찔레꽃 사랑 같은 것은 사치일 뿐이다.
우리 집은 처음에 농사를 짓다가,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정미소를 운영하였다. 집의 구조는 위채와 아래채가 있었고 아래채는 부모님이 기거 하고, 위채는 할머니와 4남매가 같이 생활하였다. 할머니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했다. 그 대신 귀는 굉장히 밝았다. 듣기로는 내가 장손으로 태어나자 할머니는 어깨춤을 추었고 항상 업고 다녔다고 하였다. 하도 많이 업어서 다리가 'O자‘가 되어 보기가 싫었다. 그 만큼 할머니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결혼하고 아내와 같이 인사하고 할머니와 한방에서 자면서 할머니가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당신이 안 보이는 눈에 눈물이 맺히면서 “우리 강아지 색시를 얻었구나, 요량대로 잘 살아라”고 당부하고는 이듬해 돌아가셨다. 향년 91세다. 결국 손자가 결혼하는 것을 보려고 오래 사셨나 보다.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엄마라고 부르지 말고 존칭어로 어머니나 어머님이라고” 불러 달라"고 하다. 이제 가까이 다가가기보다 재롱부리는 일도 없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는 정미소 일을 거들면서 눈 먼 시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을 마다 않아 동네에서는 효심이 지극한 며느리라고 칭송을 받았다. 어머니도 힘든 일을 많이 하였기에 당신의 몸이 아픈 날이 많았다. 정작으로 우리들에게 애정을 쏟을 여유조차 없었다. 엄마 사랑의 목마름이다.
엄마 복이 많아 결혼하고부터 엄마가 둘이 되었다. 양자로 가서 큰어머니와 낳아 준 친어머니, 두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아마도 아내가 결혼하기 전에 엄마가 둘이라면 시집 왔을까? 지금도 그 해답을 받지 못했다. 두 분이 질투할 까봐 아내는 두 사람 똑같이 인사도, 선물도 모두 똑같이 대하였다. 두 분 모두 가족으로서 소중한 분이다. 아내는 결혼하여 시집에 왔을 때부터 "아파서 오래 못살겠다"고 하시던 두 분이 지금 친모는 90세로 치매가 심하여 요양원에 있다. 그리고 양모는 올해 99세 백수를 누리고 있는데 아직까지 혼자서 생활 하실 만큼 건강하다. 애정보다 삶의 무게가 더하는 느낌이다.
이제 내 나이도 어느덧 65세 노인의 대우를 받는 장년이 되었다. 더 이상 엄마의 사랑을 갈구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지 못한 목마른 사랑을 나누어 줄 가족과 아내가 있다. ‘아내’라는 이름의 소중한 인연이 없다. 생판 남이었다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이 된 사이인데, 우리는 매번 그 인연을 자주 잊게 된다. 사소한 것에도 화를 내고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하지만 인생을 지나보면 아내만큼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아내란 젊은 시절엔 애인이지만 중년에게는 친구이고 노년에는 간호사라고 한다. 이제 나이 먹고 손자 재롱에 푹 빠져 사는 아내는 새로운 삶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고운 얼굴이었다. 이제 주름살이 늘고 머리도 희끗희끗 해지니 너무 안쓰럽다. 그동안 살면서 자주 잔소리하고 가끔씩 신경질 내던 아내가 이직도 사랑스럽다. "행복의 순간"이‘ 참 소박하다. 찔레꽃처럼 고운 당신이 있기에.
부부는 처음부터 남남이었지만 고맙고 고운인연으로 남녀가 만났으니 이 보다 행복할 수가 어디 있으랴. 사람 살다보니 아웅다웅도 하며, 짜그락거릴 싸움도 하고 살았다. 그래도 자식 낳고 고사리 손 호호 불며 어디 다칠세라 눈 못 떼고 살았다. 훌적 자란 자식 보면서 붉은 찔레꽃 피듯 아름다운 삶을 엮어 내느라 고군분투하였다. 이제 지긋이 회갑을 넘긴 초로의 애증어린 부부로 그 예전의 봄에 찔레꽃이 목마름에 좋았듯 서로 목말라 하는 젊은날의 사랑이 그립다. (230207)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청림숲힐.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찔레꽃 고운 사랑으로 소박하게 잘 표현하셨습니다.
그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도 아버지의 사랑도 느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