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전쟁중!!!
김무완(kskmo)
나는 오늘도 그 녀석들의 꿍꿍대는 소리에 잠을 깼다. 무슨 놈의 새가 밤낮도 없나 첫 새벽(04시경)부터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나의 신경을 자극한다. 아파트 창문을 살며시 열고 위층에서 나는 소리인지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 인지를 확인하고 아래층 쪽은 아래로 물을 쏟아부어 쫓고, 위층은 준비된 낚싯대로 쫓아낸다.
누구는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도 한다. 새하얀 날개로 하늘을 평화롭게 나는 겉모습만 볼 때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겪고 있는 비둘기는 거의 재앙 수준이다.
퇴직한 후 우리 부부는 생활하기 좋고(특히 운동), 호출이 잦은 딸 아이 집이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고르고 골라 현재의 이곳으로 몇 년 전에 이사를 왔다. 와서 보니 산과 호수가 바로 인근에 있어 공기가 좋고, 밤낮으로 내가 원할 때는 언제나 운동을 할 수 있고, 대형 병원도 바로 인근에 있어 정말 이곳으로 이사를 잘 왔다 생각했다. 하나의 문제점만 없다면 지금까지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가을에 이사를 와서 베란다를 훤히 열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듬해 우연히 7층인 우리 집의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부근을 살펴보니 비둘기 배설물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그래서 아래층 쪽을 살펴보니 그쪽은 실외기를 하얀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 같았고 3층부터 5층까지는 아예 이놈들의 놀이터였다. 그때까지는 미처 느끼지 못한 비둘기의 배설물과 비릿한 비둘기 몸통 냄새가 갑자기 나기 시작했다. 비둘기에 대해 관련 자료를 검색해 보니 평화의 상징으로 알고 있던 비둘기가 유해조수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자기의 배설물 위에 둥지를 만드는 습성으로 층층이 쌓이는 많은 배설물과 깃털은 심한 악취와 호홉 곤란은 물론,특히 아토피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배설물에는 중금속이 들어있어 배설물이 마르면서 발생하는 곰팡이균은 포자가 공기 중에 떠다니다 인체에 들어가면 뇌수막염, 결핵 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어린아이나 노약자에게 주의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었다.
비둘기의 유해성을 알아본 나는 이놈들이 아파트에 둥지를 트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며 퇴치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아내는 ‘비둘기도 살라꼬 왔는데 당신이 너무 심한 게 아니냐’며 나를 나무랐다. 그런데 나는 결코 모든 비둘기를 싫어하고 쫓아내자는 것이 아니고, 아예 실외기 밑에 집을 지어 살아가는 놈들을 퇴치하자는 생각이었다.
자료에 의하면 서울시에서 행사용으로 비둘기를 직접 사육한 적이 있었는데 야생에서는 통상 1년에 1회 정도 산란을 하던 비둘기가 먹이를 주니 1년에 7~8회 산란을 해서 도저히 늘어나는 비둘기 수를 감당할 수 없어 사육을 중지했다는 자료가 있었다. 결국, 이놈들은 먹이만 있으면 1년 내내 계속 번식 활동만 한다는 것이었다. 공원에서 운동하다 보면 흔히 산책 나온 분들이 작은 포대를 가져와 공원에 있는 비둘기와 저수지에 있는 물고기에게도 먹이를 막 던져 주는 것을 흔히 본다. 야생동물에게 아무 생각 없이 던져 주는 먹이가 야생동물과 물고기를 비만에 이르게 하고 나아가 이놈들의 엄청난 번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생각이나 해 봤을까?
먼저 아파트 베란다 쪽에 앉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나? 는 고민을 하다가 지인의 말을 참고하여 인터넷으로 모형 매를 사서 앉혀 두었더니 며칠은 효과가 있었으나 1주일 정도 지나니 깨끗이 청소된 실외기 주변에는 배설물이 군데군데 묻혀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두 놈이 와서 모형 매의 코앞에서 빤히 쳐다보기도 몸으로 툭툭 치기도 하며 아예 모형 매를 무시하고 저희끼리 구구대며 놀고 있었다. 실패다!
다음 방법을 강구 했다. 그래 며칠만 부지런히 쫓아내면 이곳으로 오는 놈들이 다른 편한 곳으로 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집에 있던 체조 봉대로 이놈들이 앉아 노는 소리가 들리면 창문을 열고 철제로 되어 있는 실외기 부근을 두드려 쫓기 시작했다. 그런데 봉의 길이가 짧아 별 효과가 없었다. 안되겠다 싶어 지인으로부터 긴 낚싯대를 얻어 낚싯대를 아래 위층으로 휘둘러 쫓아내기 시작했다. 참 영악했다. 낚싯대를 휘두르면 낚싯대가 닿지 않는 위치로 도망가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미칠 지경이다.
고민하다 어느 날 딸아이 집에 갔더니 손자가 갖고 놀던 비비탄용 권총이 있었다. 그래 이거다! 하고 손자한테 사용법과 비비탄을 충분히 가지고 집에 와서 그놈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가까이 있는 놈은 낚싯대로 쫓아내고, 낚싯대를 피해 살짝 옮겨 앉아 나를 놀리는 놈은 비비탄의 맛을 보여 주리라! 한때는 날렸던 6사단 명사수의 솜씨를 보여 주겠다고 벼렸다. 그런데 결국 나의 패배였다. 아파트 가운데 층에서 낚싯대를 휘두르고, 남의 집 베란다에 앉은 놈에게 비비탄을 쏘는 나를 주차장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한때 명사수였던 내가 쏘는 비비탄의 명중률은 극히 낮았고 어쩌다가는 남의 집 베란다 안으로 비비탄이 들어가기도 해 내가 난처하기도 했다. 한편, 이놈들이 쫓겨 날아오르는 순간 모습을 자세히 보게 된다. 눈은 발갛고, 발은 하얗거나 새빨갛다. 더욱이 우리 위층에서 날아오르는 놈은 하도 산란을 많이 해서인지 꼬랑지가 축 처져 뒤뚱이는 못난 모습이다. 사람으로 친다면 눈이 벌겋고, 얼굴이 하얀 저승사자를 닮았다고나 할까?
나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둘기 퇴치는 별 효과가 없었다. 도대체 이 머리 나쁜 새대가리 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 후 돌아온 아내가 하는 말이 ‘당신 낚시 할배로 소문이 났더라’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황당했다. 나 혼자 잘 살려고 지금까지 이런 짓을 했던 것은 아닌데, 우리 이웃 사람들이 함께 이놈들의 피해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낚싯대를 휘두르고 비비탄을 쏘았는데, 낚씨할배라? 그래 나의 참뜻을 모르는 이웃에게 이놈들의 문제점을 알려 이웃의 협조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다음과 같은 협조문을 작성하여 붙였다. 통상 관리실의 협조가 없는 안내문은 청소 아줌마가 매일 청소를 하며, 철거하는 데 다행히 이 협조문은 상당 기간 부착되어 있었다.
[“배란다 실외기 주변의 청결을 유지합시다!!!”
비둘기는 관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유해조수로 이로 인한 피해가 심각합니다
-비둘기는 배설물 위에 둥지를 만드는 습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배설물과 깃털은 심한 악취와 호흡 곤란은 물론특히 아토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답니다.
-비둘기의배설물에는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어 배설물이 마르면서 발생하는 곰팡이균은 포자가 공기 중에 떠다니다 인체에 들어가면 뇌수막염, 결핵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하니특히 어린아이나 노약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실외기 주변이 비둘기의 배설물로 더럽혀 져 있다면 공기 청정기 설치의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가구가 실외기 주변 청결 유지에 동참합시다.
나의 관심이 우리 가족의 건강은 물론 주민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협조문의 효과가 일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아래층과 옆집에서는 실외기에 그물망을 씌워 비둘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아마 내 생각에는 하도 내가 베란다 쪽으로 두드려 대는 소리가 지겨워서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이리라 생각된다). 우리 집도 아내의 등쌀에 밀려 ‘비둘기 차단 방충망’을 거금을 들여 설치했다(방충망설치업자의 말에 의하면, 방충망 설치 요청이 있어 방문해 보면 배설물이 쌓이고 쌓여 10kg용 폐기물 봉투 2장이 부족할 때도 있고, 배설물 처리 후에는 반드시 스팀으로 소독해야 비로소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특히 비둘기가 아예 밤낮으로 상주를 하는 바로 위층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다. 그래서 우연히 함께 탄 에리 베이트 안에서 만난 위층 아주머니께 아내가 비둘기의 위해성을 이야기하고 특히 아이들한테(그 집은 초·중학생이 3명이 있다) 치명적이다는 말을 전하니 알겠다고 했단다. 이제 좀 나아지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벌써 반년이 지나가도록 위층의 베란다는 여전히 비둘기 운동장이다. 하필 내가 쓰는 방이 실외기가 있는 쪽이고 위층의 아이들도 실외기 쪽 방을 쓴다고 한다.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직접 올라가서 베란다를 깨끗이 청소해주고 그물망이라도 씌어 주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하지만 어쩌랴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으니, 아마 외국에서 근무하는 위층 아이들의 아빠가 돌아오면 해결하겠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나는 몇 년 전에 신설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초대회장으로 향후 투명한 아파트 관리가 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한다는 자세로 재임 동안 모든 안건은 전원합의로 의결하는 등 한 번도 개인적인 욕심을 부린 적이 없다. 각종 현안 해결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고 이후 임기 2년을 마치고는 주위의 만류에도 미련 없이 그만두었었다. 그런데 이놈의 비둘기의 문제를 그대로 둘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아파트 전체 차원에서 해결해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아내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있는 입주자대표회의 선거에 다시 한번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입주민의 동의를 받아 전체 세대를 대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비둘기 차단 조치를 한다면, 우리 아파트는 더욱 쾌적한 환경 속에 살기 좋은 주거 공간이 될 것이며, 비둘기 또한, 우리아파트에서도 잠시 놀다가 자연에 있는 둥지로 돌아가 건강하게 잘 살아가리라 생각된다.
나는 오늘도 새벽부터 구구대는 이놈들의 소리에 잠을 깬다.
이웃집 사람들의 새벽잠에 지장이 있을까 봐 살며시 창문을 열고 놈들의 위치를 확인한 후 바가지 물을 확 부어 이놈들을 쫓아낸다.
낚씨할배는 오늘도 외로운 전쟁 중이다!!!.
첫댓글 지도교수님 뵐 면목이 없어 밀린 숙제중 하나를 얼렁뚱당 올렸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보는 사람도 없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감사합니다!!!
비둘기가 해조가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글을 다듬고 퇴고하면 좋은 글이 될 수 있습니다. 꾸준히 공부해서 훌륭한 작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