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2023.10.11. 수): 홍콩 둘째 날 일정(9.26. 화)
홍콩의 강남 센트럴 마켓~빅토리아 피크 피트의 피트트랩(Peak Tram), 스카이 테라스 전망대~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Feather & Bone점에서 휘시앤칩과 T본스테이크~에버랜드~완차이 미슐랭 맛집에서 저녁식사
아침식사를 느긋하게 하고 며느리의 안내로 호텔에서 10:30분 택시를 타고 피크트랩 탑승입구에 도착하였다. 그때까지도 피크트랩이 무엇인지 몰랐다. 입구 매표소에 들어서니 트램 열차의 역사가 전시되었고 그때서야 홍콩전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트램을 타고 정상에 오름을 알았다.
"오른편 좌석으로 타야 바다 전경을 볼 수 있어요!"란 며느리의 귀띔에 오른편 좌석 창가에 앉았다. 곧 관광객으로 좌석을 채웠고, 45도 각도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자락의 고층 이파트를 지나 센트럴 금융센터 건물들과 바다가 펼쳐졌고 건너편 침사추이 등 섬전경이 펼쳐졌다. "우와, 이것이 바로 홍콩의 절경이구만!", 감탄이 저절로 폭발했다. 피크트랩은 10분도 안 걸린 짧은 운행이었지만 급경사의 산 길을 오르며 감탄하였다. 마치 페낭의 트랩과 같아 반가웠다.
빅토리아 피크 정상에 오르니 넓은 공간이 보였고 각종 식당과 관광 기념품 판매소 등이 보였다.
산정상에는 섬 바다 홍콩시내 고층 건물들을 바라볼 수 있는 걷는 등산길이 보였다. 사자문을 지나 전망대에서 IFC 등 전경을 바라보았다. 홍콩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둘러보았다.
바람이 불고 있지만 따가운 햇볕과 후덕 지근 함이 피곤케 하였다. 어디 앉을 때가 없나 살펴보니, 전망 좋은 곳에 카페가 있었다. 그러나 창가 좌석은 이미 사람들로 채우고 있었다. 창가 뒤편의자도 겨우 걸터앉아 커피를 즐겼다.
그런데 창가의 손님들이 일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재빨리 창가 자리로 이동하여 홍콩 전경을 바라보았다. 아내와 기념사진도 찍고 즐거움도 나누었다. 저 아래 건물이 막내가 근무하는 건물이라고 며느리는 가리켜 준다. 홍콩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조밀하고 고층건물들도 경쟁하고 있었다. 바닷가에도 건물들과 인파가 가믈가믈 거리고 있었고 섬 산등성에도 주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은 절경이지만 삶은 답답보였다.
1997년 홍콩이 중화민국으로 반환된 후 요즘에는 중국 본토에서 몰려와 옛 "홍콩 브리티시" 모습이 아니란다. 이젠 "홍콩 차이나"란다.
홍콩의 독립을 부르짖으며 민주화 투쟁으로 분투하던 삶을 돼 색이었다. 거리에는 "열열경축 중화인민공화국 74주년"의 붉은 현수막에 황금색 글자를 볼 수 있었다. 거리와 건물마다 중국 깃발과 홍콩 깃발이 나란히 걸려 있지만, 홍콩 깃발은 작았다.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이야!", 외치는 것 같았다.
피트트랩에서 미드레벨의 에스컬레이터 산 길을!
홍콩 센트럴 관광의 핵심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이라 한다. 홍콩 센트럴에서 태평산 중간 미드레벨 지역까지 설치된 교통수단으로 20개의 에스컬레이터와 3개의 무빙워크가 총 800미터 길이로 이어져 있단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운행하는데 오전 10시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행, 10시 20분부터는 상행으로 운행한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좌우로는 소호거리와 란콰이펑 거리가 연결되고 침차이키, 막스누들 같은 미슐랭 맛집들과 타이청 베이커리, 베이크 하우스 등 유명 디저트 상점들이 즐비하다. 산 등성을 오르며, 마을을 이루고 각종 학교도 있고 슈퍼, 마켓 등 홍콩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 흥미진진하다.
오르고 올라도 끝없이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로 오르는데, 앞에 아이리쉬펍레스토랑 간판이 보였다. T본 스테크 날이란다. 선교지 쿠알라룸푸르에서도 늘 보고 즐겼던 아이리쉬펍 레스토랑 분위기가 반가웠고, 영국식 휘시앤칩도 생각이나 들어가 보았다. 아늑한 분위기가 벅차오르게 한다.
스탠드 옆 좌석을 안내받고 자리를 잡았다. "오늘 점심은 내가 쏜다", 기뻐하며 며느리에게 비상금 USD100불을 건네주었다. T본 스테이크와 휘시앤칩, 샐러드를 주문하였다. 셋이서 풍족하고 행복한 테이블이었다. 몇 년 전 피렌체에서 어멈과 손녀, 우리 부부 넷이 T본 스테이크와 방석 같은 빵을 놓고 즐겼던 순간도 떠올리며 행복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더 올라갈 맘이 없어졌다. 거의 다 올랐다고 하지만 나른하기도 하고 이젠 내려가자고 하였다. 옆으로 돌아 계단을 내려서니 산등성 길이었다. 에스컬레이터로 올랐지만 구불구불 산 길 도로로 2층버스도 택시도 다니고 있었다. 산등성은 마을을 이루고 있고 고층건물, 아파트, 주택들이 한치의 공간도 아까운 듯 빼곡히 차 있었다. "우와 홍콩인들의 삶은 좁은 공간에서 처절한 삶이구나!" , 애틋한 마음이었다.
오후 5시를 지나고 있어 택시로 막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페시픽플레이스 건물로 가서 만났고, 완차이(Wan Chai) 거리의 미슐랭 맛집으로 갔다.
50년 전(1973) 첫 목회지인 충주제일교회에서 중등부 학생을 홍콩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최사장은 이미 한 달 전에 유명한 맛집을 예약해 놓고 있었다.
최사장은 홍콩에서 33년째 사업하고 있었고, 완차이(Wan Chai)에 있는 유명한 식당에서 만찬을 했다. 우리 부부와 막내부부, 최사장 부부와 아들부부가 둘러앉아 참 기쁘고 즐거운 밥상이었다!
최사장에 대한 잊지 못하는 추억의 에피소드가 있다. 50년 전(1973년) 주일예배 시간이었다. 교독문 낭독 순서에서, 최사장 형제는 회중 차례를 읽고, "파라!"라 하는 것이다. 의아하고 당황했지만 나는 계속 교독문을 나누었고, 그 때마다 "파라!"를 외치는 것이다.
예배가 끝나고서 두 형제를 세워놓고, "파라"가 무엇이냐? 예배시간에 그러면 안된다"고 타일렀다. "파라"는 당시 유행하던 만화의 패스오버와 같은 말이었다. 다음 교독문 구절을 넘긴다는 신호인 것이다. "파라!"
아내의 추억담도 이어졌다. 에피소드는 또 있단다. 최사장의 여동생이 4~5살 때 부흥회에 엄마와 참석하여 목사님 설교말 때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우물거리는 것이다. 당시 유행가에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란 노랫말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서둘러 자제시켰던 웃지못할 일이 벌어져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고 한다. 우리는 밥상에서 그때 그시절을 회상하며 즐거웠다.
첫 목회지 교회에서 아내는 주일학교의 중등부를 맡아 가르쳤는데, 그때 그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을 모신다고 홍콩의 최고급식당, Liu Yuan Pavililon(留園雅敘)에서, 싹스핀, 털게요리(Hairy Crab), 사오린 빠우 & 포크번 등 산해진미의 진기하고 화려한 미슐랭 요리 만찬으로 우리는 행복했다. "그 은혜 속에 이런 날도 있군요! 감사합니다!"
충주에서부터 들고 온 전통한과와 충주사과 한과 상자를 선물하였고, 우리는 홍콩의 "문케이크"를 선물 받았다.
식당을 나서니 완차이 거리는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으며, 오가는 인파들과 차량들로 붐비고 있었다.
센트럴과 완차이 거리에서 홍콩의 자치와 독립, 민주화를 외치는 홍콩 민들의 처절한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2019년 홍콩인들의 처절한 함성과 투쟁은, 2020년 국가 보안법 통과와 강행으로 홍콩은 급속히 중국화로 향하고 있다. 아! 홍콩인들이여!
최사장 가족들과 악수도 하며 허깅도 하고 작별인사를 나누고 택시로 호텔로 돌아와 고단한 몸을 쉬었다.(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