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1일 (수)
아이들을 만나는 날입니다. 구 삼촌을 대신하여 제자들이 아이들과 만나게 됩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배운 것을 생각하며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풍선 바람이 조금 빠져있어 바람도 채우고, 색종이도 넉넉히 가져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요구르트와 이름표를 만들 A4용지 그리고 색연필, 사인펜까지 모두 책상에 올려둡니다. 준비를 다 마친 후, 우리의 스승님 구 선생님께 응원받기 위해 전화를 합니다.
“선생님, 저희 오늘 어떻게 할까요?”
“..열심히... 열심히 하면 되죠”
구 선생님의 열심히 하라는 말씀은 늘 해주시던 응원이지만, 오늘은 조금 시무룩한 목소리로 들리는 건 저의 아쉬움이 만든 착각일까요. 몸은 괜찮으신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전화를 마무리합니다. 이제 10시가 되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301호 문을 두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무슨 색 좋아해요? 멋쟁이 리본 달아줄게요!”
“저는 이거... 핑크색이요.”
각자 좋아하는 리본을 목에 걸고, 자리에 앉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종이접기 잘한다며 뭔가 접는 친구, 조용히 앉아서 모두를 지켜보는 친구, 옆에 아는 형이 있다고 반가워하는 친구, 리본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하는 친구, 하트를 접어서 보여주는 친구. 참 다양한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먼저 자기소개하기 전에 이름표를 만들어봅니다. 어떻게 만들면 이렇게 나올 것 같냐는 질문에 “에이 쉽죠~ 이렇게!”라는 아이들의 대답에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함께합니다. 유치원에서 실습했던 아동학과 친구가 요즘은 초등학교 입학 전 7세 반이어도 아이들이 생각보다 종이접기를 잘 따라 하지 못하더라는 말에 저는 갇혀 있던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한 살 한 살 차이가 크다던데 정말 그런 것인 걸까요. 8살 아이들도 곧잘 따라 접습니다.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옆에 앉은 친구나 형 누나가 접는 것을 보고 따라 해봅니다. 그렇게 이름표 형태를 완성하고, 이제 이름을 쓴 뒤 아이들은 이름표를 꾸밉니다. 이름을 구석에 작게 쓴 친구는 처음엔 다시 안 만들고 그대로 한다고 하더니 “쌤! 저 다시 할래요. 종이 하나만 더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스티커와 색연필 사인펜도 사용합니다.
2023년을 쓰려던 아이가 숫자를 헷갈리더니 저에게 묻습니다.
“쌤 이거 2023 아니죠..? 2023은 어떻게 써요?”
10살이면 큰 숫자를 모를 것 같지도 않아 저는 금방 정답을 알려주지 않고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줍니다.
“이건 2303! 2023은 어떻게 써야 할까요?”
혹시 되려 물어본다며 흥미를 잃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아이는 스스로 한참을 고민합니다.
“음... 모르겠어요! 어떻게 쓰지..?”
정말 헷갈리는 것으로 보이자 저는 투명 글씨로 힌트를 줍니다.
“(손가락으로 책상에 2023을 쓰며) 그러게.. 2023은 어떻게 쓰면 될까요?”
저의 힌트를 봤는지 정말 생각난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바로 외치며 신나서 숫자를 씁니다.
“아! 알았어요! 이거 2023년 맞죠!”
“맞아요. 잘했어요.”
이름표를 완성하고 아이들은 자기소개를 합니다. 그런데 이름을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지 나이는 잘 말하면서 이름은 이름표를 땅땅 치며 “이름은 이거요”라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5명 모두 그렇게 소개를 합니다. 박수도 참 요란하게 칩니다. 종이접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또래 친구들을 만나 벌써 신이 난 아이들. 역시 명랑합니다. 덩달아 저도 동심이 깨어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간이 빠릅니다. 벌써 10시 30분입니다. 남은 시간은 30분인데 준비한 종이접기를 다 할 수 있을까요?
먼저 쌤(창현 선생님)과 함께 바람개비를 만듭니다. 천천히 쌤을 보고 따라 하는 친구도 있고, 이런 건 쉽다며 혼자 쓱싹 만들어버리는 친구도 있습니다. 옆에 앉은 친구가 헷갈리면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게 둘이서 또 바람개비를 만들어냅니다. 계획대로면, 이제 개구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은 얼추 11시 50분, 아이들이 갑자기 창문으로 향합니다. 밖에 나가면 바람이 불고 그러면 바람개비가 돌아간다고 말을 하니, 아이들 생각에서는 창문 밖도 밖인 것 같습니다.
창문은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바람개비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아이들이 옥상에 가자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개구리, 학, 표창은 어떡하나 고민도 들지만, 순간 또 30분 안에 나머지 접기를 모두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반성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주인은 아이들이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맞다 생각하여 활쏘기와 개구리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옥상으로 하하 호호 웃으며 올라갑니다.
올라가서 바람개비가 잘 돌아가는지 손을 뻗어봅니다. 바람개비를 조금 고치고 바람도 많이 부는 옥상에 오니 잘 돌아갑니다. 그리고 또 넓은 공간을 보니 뛰어놀고 싶은 게 아이들 마음인가 봅니다. 얼음땡을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까지 실컷 놀고 뜁니다. 이 밝은 모습을 한순간이라도 더 남겨 보고 싶어 뒤로 물러나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도 그렇고 끝나고 다시 봐도 체력 좋은 창현 선생님 참 고생 많으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수~)
다 뛰어놀고 다시 종이접기를 하고 싶은 아이들은 서둘러 내려갑니다. 어머님께서 기다리셔도 “엄마 더 기다리라고 하면 돼요~ 저 이거 접고 갈거에요!”라며 종이접기 그리고 아이들과의 놀이에 푹 빠진 아이들의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보입니다. 활쏘기도 하고, 개구리도 접고, 형이 데리러 교실까지 들어와서야 한 아이가 처음으로 일어섭니다.
더 있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보이는 꾸러기 얼굴들. 한두 명씩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교실을 나가는데, 나가기 전에 아이들에게서 본 모습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시작하면서 구 삼촌이 아파서 제자들인 우리가 대신 왔다고 말했는데 그걸 기억한 것일까요? 아니면 제가 잠시 언급했던 표창 편지를 기억한 것일까요? 어느 쪽이든 신나게 놀 것 다 놀고 구 삼촌 아프다고 한 것도 기억하고 빨리 나으시라고 편지를 스스로 쓴 것이 매우 기특합니다. 유치한 농담을 하다가도 이런 모습을 보이니 순수함이 무엇인지 느껴집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어머님이 잠시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아이가 기다리고 있을 때, 잠시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어땠어요? 같이 놀았던 친구들 이름은 알 것 같아요?” “아니용”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오늘 함께 종이접기 했던 것과 뛰어놀았던 것 그리고 서로 얼굴은 기억할 것입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놀이터에서 만나서 놀다가 인사할 것 같습니다. 비록 아이들이 구 삼촌은 만나지 못했지만, 함께 놀았던 아이들은 기억할 것 같은 강한 믿음이 생겨서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