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바뇌 성모발현성지
▲ 바뇌 기념경당
개요
바뇌는 보랭과 함께 벨기에의 유명한 성모님 발현 성지이다. 바뇌 가까이에 있는 벨기에 동부의 거점 도시 리에주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이유로 바뇌의 신자들은 전쟁의 불안과 경제적 곤궁으로 보랭의 신자들보다 더 심하게 사회주의에 빠져 가톨릭 신앙을 부정하고 무시하였다. 이에 성모님은 보랭에서 마지막 발현하신 1933년 1월 3일로부터 12일 후인 1월 15일 다시 바뇌에서 발현하시어 벨기에 가톨릭을 원상태로 회복시켰다.
바뇌는 규모가 큰 성지로, 15곳의 경당이 있고 20개의 성상이 있어 묵상할 거리가 많고 루르드처럼 기적의 샘도 있다.
성모님의 발현
성모님은 바뇌에서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까지 보랭의 경우와 비슷한 시간인 저녁 7시를 전후하여 총 8번 발현하셨다. 보랭에서 월 3일 마지막으로 발현하시고 12일 만에 벨기에의 산골 마을 바뇌에서 다시 발현하신 것이다.
첫 번째 발현 - 1월 15일
주일 저녁 7시경, 베코 가족의 칠 남매 중 맏이인 12세 마리에트 베코는 친구 집에 놀러 간 남동생을 기다리며 창밖을 내다보다가 정원에서 타원형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 빛 속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데, 마리에트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라고 손짓하였다. 이에 놀란 마리에트가 어머니에게 말했지만, 어머니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머니는 화를 내며 문을 잠가 버렸다. 여인은 흰색 옷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베일을 걸치고 허리에는 하늘색 띠를 두르고 있어서 루르드 성모님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여인은 얼굴을 왼쪽으로 기울인 채 두 손을 합장하여 가슴 위에 얹었고, 오른팔에는 황금 십자가가 달린 묵주가 들려 있었으며, 오른발 위에는 황금 장미가 얹혀 있었다. 마리에트는 언젠가 우연히 시골길에서 주웠던 묵주를 들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성모님의 첫 번째 발현은 곧 끝났다.
다음날 마리에트는 본당신부인 루이 자맹에게 여인의 발현을 전하였지만,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마리에트는 회심하여 수요일 아침마다 미사에 참례하고 교리반에도 다시 나갔으며, 추운 겨울날에도 밤마다 정원에 나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로부터 15일 후 독일에서 히틀러가 총리로 임명되자 벨기에인들의 불안이 더 커졌다.
두 번째 발현 –1월 18일
수요일 저녁 7시경, 마리에트는 영하 12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정원에서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린 딸이 걱정되어 자맹 신부도 불러 보고 이웃과 함께 마리에트를 달래 집으로 들어오게 해 보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내 여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마리에트로부터 몇 걸음 앞에 섰다.
여인은 빛나는 구름 위에서 20분 동안이나 말없이 마리에트를 바라보다가 당신을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여인은 뒷걸음질로 가다가 두 번 잠시 멈춰 섰는데, 이때마다 마리에트는 얼어붙은 땅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와 두 동생이 일정 거리를 두고 마리에트의 뒤를 쫓았다. 여인은 작은 샘이 솟고 있는 길옆에 멈춰 섰고 마리에트는 세 번째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여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네 손을 물에 담그거라.” 마리에트는 차디찬 샘의 밑바닥까지 두 손을 밀어 넣었다.
여인은 이어서 “이 샘은 나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 샘물을 마시거라. 다시 보자'라는 말씀을 남기고 사라지셨다. 마리에트가 여인을 따라가다 무릎을 꿇은 세 자리는 현재 별 모양이 그려진 석판으로 표시되어 있다.
자맹 신부는 샘에 관한 소식을 듣고 다른 신부와 같이 마리에트의 집으로 향하였다. 그 길에서 자맹 신부는 만약 마리에트의 아버지 쥘리앵이 회심을 한다면 여인의 발현을 믿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밤 10시경 자맹 신부가 마리에트의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 렬리앵이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신부에게 전하며 내일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하겠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바뇌의 두 번째 회심이다.
세 번째 발현 - 1월 19일
목요일 저녁 7시, 마리에트가 이웃 주민 11명이 모인 가운데 정원에서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여인이 나타났다. 마리에트가 “아름다운 여인이시여, 당신은 누구신가요?”라고 묻자, 여인은 “나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 마리아이다”라고 당신의 신분을 알려 주고 마리에트를 다시 샘으로 데려가셨다. 마리에트가 “어제 ‘이 샘은 나를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라고 다시 묻자 “이 샘은 병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나라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라고 답하셨다.
그리고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다시 보도록 하자”라고 하시며 사라지셨다. 이후 바뇌 성모님은 ‘가난한 이들의 성모’,'병자들의 성모’로 불렸으며, 바뇌 성모님을 향한 신심으로 ‘국제 기도회’라는 조직이 결성되어 2백만 명이 넘는 회원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네 번째 발현 - 1월 20일
금요일 저녁 7시 45분경, 마리에트는 조금 지쳤지만, 변함없이 정원에 나와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을 때 성모님이 나타나셨다. 마리에트가 성모님께 물었다 . “무엇을 원하시나요?” 이에 성모님은 “나는 작은 경당을 원한다.”라고 말씀하시며 마리에트를 축복해 주셨고,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정원에 몇 달 후 아주 작은 경당이 세워졌다. 그리고 3주 동안 성모님이 발현하시지 않고 조용히 지나갔다. 그사이 사람들은 무관심해졌고 발현 현장을 찾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리에트 가족은 가혹한 비난을 받았다. 마리에트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회심한 아버지 쥘리앵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조롱을 당했다. 그럼에도 마리에트는 약속을 지키려고 매일 저녁 7시 추운 날씨에도 정원에서 기도를 바쳤으며 성모님을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였다.
다섯 번째 발현 –2월 11일
신부와 수녀, 아버지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성모님이 마리에트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 주셨다. “나는 고통을 덜어 주려고 왔다.” 그날은 성모님이 루르드에서 처음 발현하신 날로, 루르드 성모님의 발현 75주년이었다. 바뇌와 루르드 성지는 발현 날짜만 아니라, 발현하신 성모님의 복장도 비슷하고, 두 곳 모두 기적의 샘이 있으며, 또한 바뇌 성지에는 루르드의 시 현자 베르나데트의 동상까지 있는 등 연관성이 매우 깊다.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루르드의 샘을 통한 치유의 기적을 바탕으로 2월 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정하였다. 다섯 번째 발현 다음 날 마리에트는 첫영성체를 하였다.
여섯 번째 발현 -2월 15일
수요일, 마리에트는 본당신부 루이 자맹의 요청으로 성모님께 “본당신부가 발현의 증거를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성모님은 “나를 믿거라. 나도 너희를 믿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마리에트에게는“많이 기도하거라. 다시 보도록 하자”라고 말씀하셨다. 자맹 신부는 자신의 요청에 대해 성모님이 답해 주신 것에 감사하며 그분의 발현에 자신도 참여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 후로 가난한 이들의 성모님과 마리에트를 열렬히 옹호하였다.
일곱 번째 발현 - 2월 20일
월요일, 몹시 추운 날이었지만 마리에트는 눈 위에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드렸다. 마리에트가 정원에서 샘으로 가는 동안 세 번 무릎을 꿇으며 기도를 바치자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사랑스러운 나의 딸아, 기도하거라. 많이 기도하거라”라고 말씀하셨다.
여덟 번째 발현 - 3월 2일(마지막 발현)
저녁 7시경, 마리에트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땅 위에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성모님이 나타나셨고 이내 비가 그쳤다. 성모님은 오랫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시다가 슬픈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기도를 많이 해라. 잘 있거라.” 성모님은 이전처럼 ‘다시 보도록 하자’라는 말씀 대신 ‘잘 있거라’라고 하시며 이번이 마지막 발현임을 암시하셨다. 그리고 성모님은 마리에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하신 다음 성호를 긋고 사라지셨다. 이 마지막 발현은 5분여 동안 일어났으며 비가 내려 날이 무척 추운데도 수백 명의 군중이 둘러서서 마리에트와 함께하였다. 다음 날 마리에트는 자맹 신부를 만나 지난밤에 일어난 일들을 전하며 이제 더는 성모님이 나타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시 현자
마리에트 베코는 가난한 마을 바뇌에서도 제일 가난한 집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베코 가족은 아버지 쥘리앵이 실직하여 작은 방이 3개 딸린 집에서 9명의 식구가 살아야 했다. 마리에트는 1921년 3월 25일에 태어났는데 그날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자 성금요일이었다. 그러나 마리에트의 부모는 냉담자로, 집에 십자가도 없었으며 신앙에 무관심하였다. 또 부모는 자녀들에게도 무관심하여 마리에트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꾸짖지 않았다. 그래도 마리에트가 나이는 어렸지만, 맏이 역할을 다하려고 동생들을 잘 돌보았다. 이렇게 하느님께 버림받은 것 같던 아이에게 성모님이 찾아오신 것이었다.
마리에트는 성모님의 발현을 처음 목격한 후 회심하여 미사에 참례하고 교리반에 나갔다. 추운 겨울날에도 정원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다. 마리에트에게 기도는 일상이 되었으며 마음속에 주님과 성모님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리에트도 다른 시현 잣들처럼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에 시달려야 했다. 사람들이 집으로 몰려와 온갖 질문을 해했고, 마리 에트를 욕하고 조롱하는 자들도 있었다.
또한, 마리에트가 사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게 아니라 루르드에 대한 전단지를 읽고 그저 상상한 것이며, 루르드의 베르나데트를 따라 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같은 과도한 관심과 괴롭힘은 마리에트가 평생 짊어져야할 십자가였다.
1942년 21세의 나이로 결혼한 마리에트는 두 자녀를 낳고 이후로는 성모님의 발현에 대하여 침묵한 채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아갔다. 1972년 바뇌 인근에 있는 ‘퇴’라는 마을로 이사한 뒤 줄곧 그곳에서 살다가 2011년 12월 2일 90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성지 소개
바뇌 성지는 그 규모가 매우 크고 숲속에 위치하여 조용히 순례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성모님이 가난한 이들의 동정 마리아로 발현하신 이유 때문인지 대지보다 모든 시설이 규모가 매우 작은 편이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성지라면 으레 세워져 있는 대성당이 아직 없으며, 성당도 1곳뿐인 데다가 발현 성지중에서 발현 기념 경당도 가장 작다. 대신 다양한 시설들과 성상들이 많은데, 경당만 15곳 가까이 되며 성모상을 비롯한다는 성상도 20개가 넘는다. 성지
를 소개하는 안내판에 안내 번호가 51번까지 달린 경우는 바뇌가 유일할 것이다.
성지에서 중요한 장소는 첫 번째로 마리에트의 집과 성모님이 발현하신 정원에 세워진 발현 기념 경당이다. 두 번째는 기적의 샘이 있는 곳이다. 지금 이곳에는 가난한 이들의 성모상이 세워져 있으며, 수많은 순례자가 이곳에 와서 성모님이 알려 주신 기적의 샘에 손을 담그고 그 물을 마신다. 세 번째는 야외 미사가 열리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경당과 메시지 경당, 야외 제대, 가난한 이들의 성모상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병자들을 위한 야외 미사가 거행되는데, 성지에서 운영하는 요양 병원이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노인 환자들과 그 밖의 병자들이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84년에 건립된 가난한 이들의 성모 성당은 성지 남쪽 끝에 위치하며, 외관은 마치 구약성경의 장막처럼 커다란 천막이 연상된다.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아직 대성당으로 승격되지 않았다. 바뇌 성지의 특징은 360개 병상을 갖춘 대형 요양 병원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모님이 다섯 번째 발현에서 “나는 고통을 덜어 주려고 왔다”라고 말씀하신 바에 따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세운 시설이다. 1938년 초석이 놓였으며 1940년 완공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46년 6월에서야 병원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성지 숲속에는 성 미카엘과 성 잔 다르크 경당, 로욜라의 성 이그나시오 경당, 주님 탄생 예고 경당 등 많은 경당이 곳곳에 있으니 차분히 돌아보면서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보내기를 권한다. 경당 사이사이에는 루르드 베르나데트의 성상, 마더 테레사의 성상,『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을 쓴 몽포르의 루도비코 마리아의 성상, 오상의 파드레 비오의 성상 등도 있어 또 다른 묵상 체험을 할 수 있다. 숲속 깊은 곳에는 십자가의 길이 만들어져 있으며, 치유의 샘 근처에는 성모칠고의 길도 있다.
[자료: 세계의 성모발현 성지를 찾아서. 분도출판사. 최하경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