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우리집은 부자였다. 그래서 초등학교 이 학년 때 벌써 집에는 에어컨이 있었다. 더운 여름 학교수업을 마치면 냅다 달려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문의 벨를 쾅쾅쾅 눌러 문이 열리면 제일 먼저 현관의 건너편 문을 열고 바람이 통하게 하여 탁 주저앉는다. 그러면 시원한 맞바람이 휙 휙 지나가면서 줄줄 흐르던 땅방을이 사악 말랐다. 이 맛으로 더워도 아무 걱정 없었다. 에어컨은 번거롭고 늦었다. 아무리 더워도" 집에만 가면 시원해진다"는 밑는 구석이있다. 세월이 흘러 나도 결혼을 했고, 촌구석 월배로 왔다. 같은 대구지만 거리가 먼 달서구 월배다. 나는 없는 살림에 에어컨은 물론 없었다. 좁은 집에 선풍기를 틀어도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냉장고 문을 열어롷고 머리를 들이밀었읍니다. 남편이 말없이 보고 있더군. 한 하루는 은행에 볼 일보러 갔다가 이거다 하고 은행 문 닫을 때까지 거기 있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가서 한 해를 보냈다. 또 어떤 해는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를 하루 하루 한 해는 그렇게 보내고 저녁 되면은 숨이 막혀 냉장고 문을 열고 머리를 내리 박았다. 그러기를 몇 년 나는 없는 살림살이에 작은 소형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냅다 에어컨부터 샀다. 우리 신랑이 기가 차서 나를 쳐다봤다. 아니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당당히 "냉장고 반 찬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 고 생각했다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그런 식으로 나는 살림을 내질렀다. 남들은 세탁기가 있니 없니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만들지도 않는 드럼 세탁기를 일찌감치 독일제로 샀다. 그런 이유로 독일제 큰 식기세척기도 장만하게된다. 남편은 소위양반 달성서씨 학유공파 십 오대손 간섭 못 한다. 내 일을 도와주지는 않아도 간섭은 못 한다.^^ 지금 생각하면은 내가 간도 큰가 보다. 전기요금때문에 마음 껏 쓰지는 못 하지만 젊은날 여름은 그렇게 보냈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