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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살독수 독살풍장 살독수 강파문은 한 쌍의 귀조(鬼爪)를 휘둘러대다가 선우철 등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찔러 갔다. 일순 비류신은 대갈일성하며 번개같이 몸을 날려 적에게 덤벼들더니 기묘한 수법으로 살독수의 팔을 낚아챘다. 본래 고수들끼리 싸움에 있어서 승패와 우열을 가리는 문제는 지극히 짧은 한순간에 좌우되는 법이다. 살독수는 비류신의 신법이 그처럼 빠르고 절묘하리라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어억… …” 팔뚝이 시큰하게 저리다고 느낀 순간 살독수의 맥문은 벌써 비류신에게 잡히고 말았다. 한편 선우철은 금나수법(擒拏手法)을 시전을 하여 소대풍의 초식을 파헤침과 동시에 적으로 하여금 뒤로 훌쩍 뛰어나가게 하였다. 그는 비류신이 살독수의 맥문을 움켜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비형의 고강한 무공에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겠구려.” 비류신은 자기를 치켜세우는 말은 들은 척도 않았다. “선우형, 이 자를 어떻게 처치할까요?” 이렇게 묻자 선우철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비형께서는 그 자와 원한이 있을 것인즉, 비형 마음 내키는 대로 통쾌하게 호된 맛을 보여주는 게 좋겠지요.” 이때 독살풍장 맹호철이 비류신의 등 뒤로 덮쳐가면서 흉험한 기세로 일장을 내뻗쳤다. 비류신은 등 뒤로 강맹한 장풍이 덮쳐 옴을 느끼고 왼손을 뒤쪽으로 후려치면서 몸을 구부정하게 하여 반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리면서 오른손으로 엇비슷하게 상대방이 발출한 장풍을 쪼개어 갔다. 팍! 쌍방 간의 장력이 맞닥뜨리자 가벼운 마찰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 독살풍장 맹호철은 일보 뒤로 밀려나갔다. 이때 월광검 소대풍이 황망이 외쳤다. “강형! 노부는 강형을 구출하러 왔소!” 그가 이렇게 외치면서 비류신의 옆구리를 향해 강맹하기 짝이 없는 기세로 일장을 후려치니 싸늘하고 날카로운 장풍이 흉험하게 방출되었다. 소대풍의 공력은 매우 심후하였다. 비류신은 그의 일장에 맞아 하마터먼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었던 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잔뜩 경각심을 가지고 팔성의 공력으로 홍안서익 (鴻雁舒翼) 초식을 펼쳐 상대방의 공격에 마주쳐 갔다. 그는 상대방보다 한 발 늦게 장력을 방출하였지만 한 발 앞서서 적을 격중시켜 독살풍장으로 하여금 이 보 후퇴하여 허공으로 헛손질을 하게 만들었다. 소대풍은 흉맹무쌍한 자신의 일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크게 노하여 버럭 호통 쳤다. “맹형, 어서 손을 써서 이 녀석부터 처치하도록 하시오!” 이어서 그는 신속하게 쌍장을 휘둘러 다시 속공을 가하니 날카롭고 강맹한 장풍이 노도와 같은 기세로 몰려나와 비류신에게 덮쳐 갔다. 비류신은 상대방이 다시 흉험한 반격을 전개하자 살독수 강파문을 앞으로 끌어내 소대풍이 발출한 장풍에 부딪히게 하였다. 즉, 자기들끼리 장풍을 내뿜고 얻어맞게 한 것이다. 선우철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비형, 저 자의 장풍은 내가 막아 드리겠소!” 그는 곧 왼손을 내뻗쳐 한 줄기 보이지 않은 잠력(潛力)을 발출하더니 강파문을 향하여 부딪쳐갔다. 단번에 강파문을 격살시켜 버릴 수작임이 분명했다. 월광검 소대풍이 냉소를 지은 채 음험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우철! 너도 무척 악독하구나!” 애당초 비류신을 향해 장풍을 내뿜던 그는 돌연 장세를 변화시켜 그 무궁무진한 장력을 선우철에게 내뻗쳤다. 눈 깜짝할 사이의 변화는 실로 오묘하기 짝이 없었다. 선우철은 발장(發掌)함과 동시에 신형을 엇비슷하게 틀어 상대방의 공세를 피하였다. 이때 비류신은 강파문의 팔을 놓아주고 일 장 밖으로 밀어낸 다음 낭랑한 어조로 외쳤다. “당신이 선우형과 한바탕 싸우고자 하는 뜻을 이해하여 잠시 당신을 살려 두는 거요!” 그 말을 듣고 선우철이 파안대소 하였다. “하하핫… 비형이 그처럼 너그러우시니 나는 크게 감복하였소!” 그 한마디에 약간 비꼬는 듯한 기색이 어려 있다고 느낀 비류신이 대뜸 되물었다. “그럼 선우형은 나더러 그를 죽이라는 말이오?” 선우철이 뭐라고 대꾸하기 전에 살독수 강파문이 날카로운 두 눈을 부릅뜨고 살기등등하여 크게 외쳤다. “선우철! 네놈이 그처럼 음험할 줄 몰랐다. 노부는 기어이 너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말 테다!” 청풍검 선우철은 가벼운 웃음을 머금었다. “강형! 그 무슨 소리요? 강형은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드는구려. 강형은 오늘 다행히도 마음이 바다보다 더 넓은 비형을 만났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황천객이 되고 말았을 거요! 강형이 진정으로 훌륭한 벗을 사귀든지, 아니면 훌륭한 벗을 적으로 여길 것인지 오로지 강형의 마음먹기 하나에 달려 있소! 그러니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우리를 도와 지령보를 물리치는데 심혈을 기울이도록 합시다. 만약 우리의 청을 거절한다면, 흐흐흣! 당 신네 흑도(黑道)들은 강호에서 도저히 발붙이지 못할 것이니… …” 적면귀 사심독이 버럭 호통을 쳤다. “선우철! 개수작 부리지 마라! 나는 의리에 살고 죽는 대장부로서 너 따위 졸장부와 어찌 손을 잡고 일할 수 있단 말이냐? 우리는 오늘 너희들에게 호된 맛을 보여 빚을 청산하고 말테다.” 월광검 소대풍이 수염을 쓰다듬고서 빙그레 웃었다. “사형, 강형, 그리고 맹형, 여러분은 안심하고 마음껏 솜씨를 발휘하시구려. 뒷일은 모두 내가 책임지겠소.” 흑도사괴 중 세 사람은 소대풍의 그 한마디에 사기가 충천하였다. 천하에서 두려울 것 없는 지령보의 세력을 등에 업으면 도장맹(刀將盟)의 세력쯤은 간단히 꺾을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 것이다. 애당초 그들은 도장맹이 전면적으로 복수해 올 일이 두려웠으나 이제 그 흉악한 무리들과 대적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비류신은 소대풍이 의기양양하고 자신만만한 소리를 하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호통을 쳤다. “받아랏!” 그는 곧 왼손을 옆으로 휘둘러 반원을 그리며 후려침과 동시에 오른손을 가슴팍 부근에 대고 맹렬한 기세로 육박해갔다. 그 일 초는 괴이하기 짝이 없는 초식으로써 발산하자마자 강맹한 장풍이 사납게 소용돌이쳤다. 월광검 소대풍은 노련한 인물로서 상황 판단이 매우 신속하고 정확하였다. 그는 비류신의 그 일 초가 무척 흉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 발끝으로 지면을 툭 차더니 쏜살같이 밖으로 훌쩍 뛰어나갔다. 이때 흑도삼괴는 일제히 선우철을 향해 덮쳐들었다. 선우철은 그들 삼인이 합공을 퍼붓는 기세를 발견하고 입 언저리에 싸늘한 웃음을 머금더니 가볍게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면서 뒤에 있는 경장 사나이들에게 호령을 내렸다. “급히 환운검진(幻雲劍陣)을 펼쳐라!” 그의 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장맹의 경장 사나이 열두 명은 일제히 장검을 뽑아들고 진법을 펼치더니 순식간에 흑도삼괴를 포위하였다. 선우철은 고개를 돌려 비류신을 바라보더니 웃음을 머금은 채 크게 외쳤다. “비형, 우리는 우선 이들 세 사람을 해치운 다음 다시 합세하여 지령보 사람들을 상대하도록 합시다!” 이 말은 비류신도 함께 화운검진으로 합세하여 흑도삼괴를 죽이자는 뜻이었다. 만화신검 홍부용은 선우철의 잔인하고 음험한 수단을 잘 아는 터라 지금 비류신을 이용하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속셈을 대뜸 눈치 챘다. 목하 상황은 선우철에게 무척 불리한 까닭에 그로서는 비류신의 도움이 절실히 요청되는 판국인 것이다. 그리하여 홍부용은 비류신이 선우철의 꼬임에 빠져 이득이라고 전혀 없는 희생을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날카로운 어조로 황망히 외쳤다. “비 공자!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망각해서는 안돼요. 우리는 현기현청(玄機玄淸) 비보(秘寶)를 찾아야 하는데 그 보물은 이미 누군가 선수를 쳐서 빼내버리고 말았어요. 그렇게 된 이상 공연히 여기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필요 없어요. 일각이라도 빨리 이곳을 뚫고 나가는 게 상책이에요. 또한 고 선배님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필시 의외의 사건이 발생한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흑도삼괴는 흉험한 기세로 공세를 펼쳐 환운진법을 펼치고 있는 열두 명의 경장 사나이들 중 세 명을 죽이고 진법을 뚫고 나가 소대풍 곁으로 질주하였다. 살독수 강파문이 돌연 괴상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선우철! 당신에 도장맹의 환운검진(幻雲劍陣)의 명성이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구려! 하마터면 우리들 세 사람은 목숨을 잃을 뻔했소.” 청풍검 선우철은 강파문의 조롱기 섞인 한마디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강형! 당신네들은 감히 뱃심 좋게 우리와 적이 되려고 하는 거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비류신은 선우철의 거동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선우철과 같이 기지가 뛰어난 인물이 어찌하여 얼간이 같은 졸개들을 시켜 어설픈 검진(劍陣)을 펼치게 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으흐흣… 선우철! 너의 지략이 아무리 뛰어난다 한들 결코 우리 앞에서 어떠한 수작도 부리지 못할 것이다. 가담하리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허허헛… 네가 외톨박이가 된 주제에 누구 앞에서 감히 위엄을 부리려 하느냐. 흐흐흣… …” 선우철은 날카로운 시선을 들어 장중(場中)을 한차례 휘둘러보고 내심 초조한 심정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청풍명사 청룡백호는 어디론지 훌쩍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전초도의 금환두발 진동철 역시 어느 틈엔지 무림의 사대도(四大島) 무리들을 거느리고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버렸다. 이제 장중에는 오로지 지령보 일파의 인물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선우철은 추호도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대풍, 당신들은 인원수가 많다고 해서 사람을 깔보지 마시오! 사람이란 어디까지나 사람 나름이오. 아무런 능력이나 재주가 없는 인간은 몇 백 명을 거느려도 별 볼일 없소.” 소대풍은 갑자기 담담하게 웃었다. “허허헛… 선우철! 너는 이미 강호 천지에 쟁쟁한 명성을 떨친 바 있으며 막강한 무공과 탁월한 지략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더욱이 너의 부친은 위엄이 대단하여 누구든지 이름 석 자만 들어도 간이 떨릴 정도지. 그 덕분에 너도 지금까지 많은 덕을 보아왔다. 무림 인물들은 네 부친의 위명으로 인하며 사사건건 너에게 최소한 삼분 이상은 양보하였다.” 선우철은 씁쓰레하게 웃었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 있기에 나와 아버님을 마구 치켜세우는 거요? 할 말이 있으면 탁 털어놓고 얘기하시오. 그렇게 비비꼬지 말고 말이오.” “아하… 너는 과연 총명한 젊은이로구나. 아닌 게 아니라 노부는 너와 긴히 상의할 문제가 있다.” “현재의 상황은 당신에게 크게 우세하거늘 무엇을 상의하겠다는 거요?” “좋아! 터놓고 얘기하지. 다름이 아니라 네가 도장맹에서 여기까지 온 목적은 단순히 현기현청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소! 당신은 이미 내가 여기 온 다른 목적을 알고 있으리라 믿소.” 월광검 소대풍은 매의 눈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선우철을 노려보며 다시 캐물었다. “그리고 도장맹에서 온 사람은 너 혼자만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그 말이 떨어지자 선우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흠칫 놀랐다. ‘설마 소대풍이 우리 도장맹의 비밀을 모두 알아 버렸단 말인가?’ 그가 이런 의혹에 잠겨있을 때 월광검 소대풍이 득의만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우철, 그대는 세 가지 임무를 띠고 여기 왔다고 생각하는데 내 추측이 맞았는가?” “맞았소. 그런데 당신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구려.” 월광검 소대풍은 다시 알쏭달쏭한 질문을 하였다. “한 가지 또 묻겠다. 지령보 사람 중에서 왜 이렇게 소수의 인원만 이곳에 파견되었는지 아느냐? 또한 무림의 사대도주(四大島主) 중 가장 무공이 약한 전초도의 도주 금환두발 진동철 혼자 이곳에 온 까닭을 아느냐?” 선우철은 가소롭다는 듯 껄껄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나는 당신네 지령보 사람들이 우물 안 개구리일 뿐 아니라 살쾡이요, 요정(妖精)이기도 하구려.” “뭐라고? 누구 앞에서 감히 큰 소리 치느냐? 선우철, 까불지 말고 내 말 똑똑히 들어라! 너희들 도장맹 무리들은 가는 곳마다 남의 계략에 빠져 쩔쩔매고 있다. 너희들은 도장맹의 주 세력을 파견하여 안간힘을 기울였지만 허탕을 치고 말았단 말이다.” 비류신은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점점 짙은 의혹에 사로잡혔다. ‘저 자들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은 비류신 혼자만 품은 것이 아니라 홍부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소대풍이 지적한 선우철이 이곳에 온 세 가지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잔금섭혼신편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만일 비 공자가 잔금섭혼신편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소대풍이 폭로한다면 큰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린다… …’ 이때 선우철은 안색이 돌변하였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자 싸늘한 어조로 소대풍에게 다그쳐 물었다. “당신은 지령보 사람들로부터 그런 비밀을 탐지했던 것 아니오?” “그렇다고 잘라 말할 수 없다. 그 일에 참여한 사람이 여기 온 사람보다 훨씬 많을 뿐 아니라 무공 또한 몇 갑절이나 고강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승리를 거둘 자신이 없지만 우리 쪽에서도 특별한 고수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하하핫…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마시오! 그 일의 주인공은 무공이나 기지가 어느 고수 못지않게 탁월한 까닭에 지령보 사람들의 재간으로 도저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리라고 보증하는 바이오.” “물론 그 말에도 일리 있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하나 나도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떻게 됐든 최후의 승리는 우리 지령보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들 사이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이 변화 역시 결국은 너희들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주 비참한 패배를 맛볼 각오를 해라!” 선우철은 소대풍의 그 말에 자기편 사람이 정말로 지령보의 수하에게 패한 줄 알았다. ‘그가 방금 말한 중요한 변화라는 것은 필시 잔금섭혼신편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 신비한 십팔 년간에 어떤 심상치 않은 변화가 있었단 말인가?’ 그는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으나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소대풍, 지금 당신은 중요한 골자는 빼놓고 공연히 헛소리만 하고 있소. 그러지 말고 할 얘기가 있거든 탁 털어놓고 얘기합시다.” “좋다. 그럼 결론만 얘기하지. 너는 지금 곧 수하들을 이끌고 이곳을 떠나라.” 선우철은 무척 가소로운 생각이 들었다. ‘흐흠… 이 늙은이가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일까? 여태까지 잔소리를 늘어놓고서 이제는 나더러 수하들을 데리고 떠나라 하니 도대체 무슨 꿍꿍이 속일까?’ 월광검 소대풍은 비류신에게 독수를 뻗쳐 잔금섭혼신편을 빼앗으려는 흉계를 꾸미고 있건만 선우철은 그의 속셈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소대풍은 자기 속셈을 선우철이 눈치 채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빨리 떠나라고 한 것이다. 선우철은 소대풍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냉담하게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무슨 까닭에 그처럼 조심하는 거요? 아무래도 당신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털어 놓으시오.” 선우철은 소대풍이 무공으로써 윽박지르지 않고 자진해서 원수를 놓아 주고 자기들을 풀어 주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사람은 아버님이 복수하려고 나서는 게 두려워서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떠나게 하는 데 필시 어떤 내막이 있을 터인즉 그 원인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선우철은 단도직입적으로 캐물었고, 소대풍은 선우철이 짙은 의혹을 품으리라는 사실을 예측하였기에 미리 대책을 세우고 있던 터라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였다. “선우철, 너는 정말 총명하구나. 내가 너더러 빨리 이곳을 떠나라 한 것은 그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사실 굉장히 중대한 일 일뿐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이 포함되어 있다.” 비류신은 소대풍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싸늘한 어조로 외쳤다. “소대풍, 그 따위 간교한 수작을 부리지 마시오. 잠시 후 나는 모든 진상을 밝혀 버릴 것인즉 당신의 야욕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거요.” 월광검 소대풍은 비류신의 그 한 마디에 섬뜩 놀랐다. ‘음…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만일 비류신이 잔금섭혼신편을 세상에 공개해 버린다면 지령보의 세력이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혼자 잔금섭혼신편을 입수하지 못할 것이다… …’ 그는 내심 이렇게 절망적인 생각을 하였으나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말하였다. “비류신, 자네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지 않겠지?” 이때 홍부용이 황급히 외쳤다. “비 공자, 복수할 일은 잠시 포기하고 우리 갈 길이나 찾아가도록 해요.” 비류신 역시 홍부용과 동감이었으므로 소대풍의 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 세 줄기 인영이 번쩍 치솟는 것 같더니 흑도삼괴가 비류신의 앞길을 막아 버렸다. 비류신은 눈을 부라리며 버럭 호통을 쳤다. “이건 무슨 거동이냐? 셋이서 일제히 내 앞길을 막는 이유가 무엇이냐 말이다!” 살독수 강파문이 원망이 잔뜩 어린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비가야! 떠들지 마라! 네놈의 머리를 박박 삭발해 버리고 말 테다.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고이 홍 낭자를 데리고 돌아갈 생각은 말아라.” 비류신은 냉엄한 표정을 짓고 싸늘하게 물었다. “너희들의 능력으로 그럴 수 있을까?” 적면귀 사심독이 말을 받았다. “너 따위 젖비린내 나는 놈 하나 상대하는데 우리 셋이 덤빌 필요없다.” 이때 홍부용이 분노를 참지 못하여 앙칼지게 외쳤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사내들이군! 당신들은 인원이 많다고 해서 사람을 마구 윽박지르는데, 훗날 이 소문이 강호에 퍼지는 날이면 당신들은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오.” 독살풍장 맹호철이 음흉하게 웃어 젖혔다. “히히히힛… 그가 봉화염을 죽인 까닭에 우리와 무척 원한이 깊다. 그러므로 동료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동시에 덤벼도 수치로 여길 수 없다.” 일순 비류신의 매서운 두 눈에서 날카로운 정광(精光)이 번쩍했다. 그는 흑도삼괴를 금방 잡아먹을 듯 쓸어보다가 날카롭게 외쳤다. “나를 막는 자는 처참한 최후를 마칠 것이며, 피하는 자는 목숨을 건지게 될 것이다.” 그는 곧 쌍장을 휘둘러 추산전해(推山塡海) 초식을 펼치며 흑도삼괴들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일순 벽력같은 폭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비류신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두어 걸음 후퇴하였다. 흑도삼괴의 반격이 의외로 흉맹하여 비류신은 주춤 밀려나갔고, 그들은 여세를 몰아 더욱 강맹한 기세로 속공을 퍼부었다. “이야앗!” 비류신은 열세를 모면하기 위해 무섭게 호통 치며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적면귀 사심독을 향해 강맹한 장풍을 내뻗쳤다. 그 비호와 같이 날쌘 동작과 신법은 무림에서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절묘한 것이었다. 적면귀 사심독은 비류신의 급습을 피해내지 못하고 연속 대여섯 걸음이나 물러나가더니 입을 헤벌리고 울컥 선혈을 토해 냈다. 내장이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바로 이때, 만화신검 홍부용은 매화검(梅花劍)을 뽑아들고 섬섬옥수같이 매끄러운 팔을 내뻗쳐 검을 휘두르니 매화꽃을 연상케 하는 검화(劍花)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괴이하고 신랄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검초(劍招)가 독살풍장과 살독수에게 뻗쳐가자 그들은 감히 그 일초를 받아내지 못하고 주춤 후퇴해 버렸다. 이때 월광검 소대풍은 대갈일성하며 몸을 솟구쳐 오르더니 비호같이 비류신에게 덮쳐가면서 그의 가슴팍 장문혈(章門穴)을 향해 예리하기 비할 데 없는 경풍을 발출하였다. 비류신은 두 다리를 서로 엇갈리게 자세를 바꾸더니 왼손으로 상대방의 팔목을 휘둘러 상대방이 내뿜은 경풍에 마주쳐 갔다. “으흐흐흣… …” 돌연 소대풍은 음흉한 웃음을 터뜨리더니 사뭇 득의만만한 듯이 허리를 쭉 펴고 한쪽 발을 높이 쳐들어 비류신의 가슴팍 요혈을 향해 냅다 걷어찼다. 이어서 신형을 활처럼 구부려 비류신의 머리 위 백회혈(百懷穴)을 힘껏 내리쳤다. 그 수법은 실로 강맹하고 흉랄하기 짝이 없어 비류신으로 하여금 반격할 기회를 찾지 못하게 하였다. 그 상황을 힐끗 쳐다본 홍부용은 내심 크게 놀라 앙칼지게 외치며 장검을 홱 돌리더니 소대풍에게 찔러갔다. 이때 살독수 강파문과 독살풍장은 홍부용의 공세에서 벗어난 터라 얼씨구나 하고 기고만장 하여 일제히 그녀에게 협공을 가하였다. 이리하여 홍부용은 소대풍에게 내뻗친 검을 거두어 자신을 보호하지 않을 수 없는 위기에 처하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선우철이 버럭 함성을 지르며 덮쳐들어 살독수와 독살풍장의 매서운 협공을 막아냈다. 소대풍은 홍부용의 기습을 받자 비류신에게 덮쳐가던 동작을 중지하고 일 장 밖으로 훌쩍 물러났다. 한편 살독수 독살풍장은 선우철의 일격에 맞아 가슴이 울렁거리고 안색이 돌변하였다. 이때 월광검 소대풍이 싸늘한 어조로 외쳤다. “선우철, 만약 네가 묵묵히 구경이나 하고 있다면 나는 훗날 반드시 응분의 보상을 해 주겠지만 끝까지 그들을 돕는다면 황천행을 면치 못할 것인즉 그리 알아라.” 이어서 그는 장검을 뽑아들더니 흑도삼괴를 향해 낭랑한 어조로 외쳤다. “당신들은 선우철을 단단히 감시 하시오.노부는 천강검초로써 이들 남녀를 해치우겠소!” 소대풍이 검을 뽑아들자 선우철은 내심 은근히 좋아했다. 그는 천강검법(天?劍法)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음… 언젠가 아버님께서도 소대호의 월광검 아래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신 적이 있었지. 오늘 소대풍이 월광검법으로 비류신을 죽이려 덤비니 아무래도 비류신은 액난을 면치 못할 것 같다.나는 적당히 흑도삼괴와 맞서 싸우는 척하다가 소대풍으로 하여금 비류신을 제거하게 하여 어부지리를 노리자… …’ 한편 비류신은 월광검법의 무서운 위력을 알고 있던 터라 섬뜩 놀랐으나 당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경각심을 가지고 모든 잡념을 털어버린 채 암암리에 진기를 끌어올려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이때 지령보의 살음귀 쌍수벽과 마곡인 마대부가 발자국 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홍부용 곁으로 다가갔다. 사방은 찬 물을 끼얹은 듯한 적막에 싸였으며 그 음험한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등등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폭풍전야와 같은 숨이 막히는 긴장의 순간-- 이때였다. 돌연 대전의 분묘에서 날카로운 여인의 음성이 들려 왔다. “듣거라! 만약 그들 두 남녀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는 날이면 너희들을 박살내어 죽여 땅에 묻히지도 못하게 만들고 말 테다.” 월광검 소대풍은 뚜벅뚜벅 비류신과 홍부용에게 다가가고 있다가 그 날카로운 한마디에 우뚝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소대풍을 위시한 지령보 끄나풀들의 얼굴에 돌연 괴이한 표정이 나타났다. 비류신 역시 누구 못지않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 괴여인이 어찌하여 자기들을 두둔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선우철은 무척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제기랄! 저 여자가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깨끗이 비류신은 제거되는 것인데… …’ 선우철은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고 돌연 웃음을 띠고 낭랑한 어조로 소대풍에게 말하였다. “드디어 우리를 대신하여 당신들을 상대할 인물이 나타났소. 허허허… 그래도 당신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공격을 퍼부을 작정이오?” 이때 또 한 차례 괴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선우철, 똑똑히 들어라! 너는 심장을 무쇠로 만든 인간같이 악독하구나. 어쨌든 그에게 추호라도 손상을 입힌다면 너는… 부친인 선우휘가 곁에 있다 하더라도 내 명령을 거역했다가는 단번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테다.” 선우철은 섬뜩 놀랐다. ‘저 여자는 정말 비류신을 끝내 두둔할 셈이로구나. 저렇게 무서운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법도 한데… 그렇다고 살려둬선 절대로 안 된다. 그만큼 내 하는 일에 방해가 되니까.’ 비류신은 선우철이 수차에 걸쳐 자기를 해치려 한 사실을 알았지만 괴여인의 말을 듣고 더욱 의혹이 짙어져 곧 선우철에게 물었다. “선우형, 방금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했소?” 선우철은 무척 난처하여 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이때 홍부용이 날카로운 어조로 외쳤다. “비 공자, 묘에 있는 분의 말을 들어본즉, 아마도 선우철은 고의로 도장맹 사람들을 죽게 하려는 것 같아요.” 비류신은 예리한 눈초리로 선우철의 표정을 살피자 선우철은 섬뜩 놀랐으나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짐짓 태연한 척 웃어 보였다. “비형, 홍 낭자는 우스갯소리도 곧잘 하는 구려… …” 이때 괴여인의 노기 띤 목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썩 물러가지 못하고 아직 여기 남아 있느냐? 지금 곧 여기서 없어지지 않으면 너희들로 하여금 영원히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어 주고 말 테다.” ‘만일 저 여자가 끝내 비류신을 보호해 준다면 잔금섭혼신편을 손에 넣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그렇다고 공연히 저 여자를 격노시킨다면 더욱 난처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겠구나.’ 이때 비류신이 돌연 큰 소리로 외쳤다. “묘 속의 노 선배님! 비모(飛某)는 오늘 노 선배님의 은혜를 입었으나 훗날 기필코 이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런데… …” 비류신은 괴여인의 이름을 물으려 하였는데 그 말이 막 나오려는 찰나 무덤 속 여인이 날카로운 어조로 말을 가로챘다. “비류신, 홍부용! 여러 말 하지 말고 너희들은 즉시 이곳을 떠나라. 매사에 주의하여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각별히 명심해라. 강호에는 온갖 사악한 무리들이 득실거린다. 그들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너희들은 금후부터 사악한 무리들을 제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나의 이름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 돼서 유감스럽게도 너희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한다. 다만 오늘날 무림에서 나를 청색혈마(靑色血魔)라고들 부르지. 언젠가 내 스스로 너희들을 찾아갈 날이 있을지도 모르니 오늘은 어서 이곳을 떠나가라.” 비류신은 내심 크게 놀랐다. ‘저 여자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까? 더욱이 조금 전만 하더라도 나에게 무척 흉랄하게 대했는데 어찌하여 이처럼 친절을 베풀고 깊은 관심을 쏟는 것일까? 저 여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알 수 없구나… …’ 이때 장중의 사람들은 모두 비류신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정체에 대하여 각기 나름대로 추리해 보았으나 좀처럼 명확한 답안을 얻지 못하였다. 비류신은 괴여인의 무공이 고강한 사실을 상기하고서 자신의 무공을 견주어 보고 무거운 탄식을 하였다. ‘아! 나는 왜 이처럼 무공이 약하여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일까?’ 그가 땅이 꺼질 듯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막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떠나려는 찰나, 돌연 선우철이 큰 소리로 물었다. “비형, 어디로 가려는 것이오?” “나는 본래 정처 없는 떠돌이 신세올시다. 하늘 끝인지 바다 끝인지 행선지는 나도 모르오. 그저 뜬 구름처럼 떠돌아다닐 뿐이오.” “비형의 뜻이 그러시다면 제가 비형을 따라다니면서 보살펴 드리는 게 어떻겠소? 뜻하지 않은 위기에 봉착했을 경우 이 몸은 비형의 한쪽 팔이 되어 드리겠소이다.” 이때 홍부용이 싸늘한 어조로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귀하의 호의에 제가 비 공자를 대신해서 감사를 드리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대로 해결해야할 일이 있어요.” 비류신은 선우철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꿍꿍이속을 웬만큼 파악하고 있는 터라 그가 아무리 솔깃한 얘기를 하더라도 절대로 완전히 곧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굳혔다. 그리하여 그는 빙그레 웃어 보이며 침착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선우형의 호의에 대하여 나는 진심으로 감사히 여기오. 하나 홍 낭자도 말했듯이 우리에게는 긴히 해결할 문제가 있으니, 선우형의 온정에 대하여 훗날 융숭한 대접을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작별을 고해야겠소이다.” 선우철은 더 이상 강요할 수 없음을 알고 짐짓 냉랭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비형의 뜻이 그러시다면 굳이 강요하지 않겠소. 아무쪼록 무고하시기 바라며 나도 이만 가봐야겠소.” 이때 살독수 강파문이 음험한 웃음을 터뜨리더니 싸늘한 어조로 말하였다. “선우철! 누구 마음대로 함부로 떠나겠다는 것이냐?” 흑도삼괴는 지령보에 가맹할 뜻이 간절하였다. 그 원인은 지령보의 막강한 세력을 등에 업으면 도장맹을 쉽사리 분쇄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도장맹 사람들 중에서도 선우철을 가장 미워하던 터라 그가 빠져나가려고 하자 다짜고짜 일제히 덤벼들어 선우철을 포위해 버렸다. 이때 비류신이 성큼성큼 그들 곁으로 다가가서 버럭 언성을 높였다. “선우형은 어서 길을 떠나시오! 이 자들은 모두 내가 처치하리다.” 그는 곧 쌍장을 휘둘러 강맹하기 짝이 없는 기세로 흑도삼괴에게 급습을 가하여 그들로 하여금 졸지에 몇 걸음씩 후퇴하게 하였다. 선우철은 비류신에게 포권을 해보이며 웃음 띤 얼굴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비형, 정말 고맙소. 우리 다음에 만날 기약을 합시다.” 그는 곧 아홉 명의 경장 사나이들을 데리고 총총히 발길을 옮겼다. 이때 월광검 소대풍은 싸늘하게 코웃음 치더니 비호같이 날렵한 자세로 덮쳐 가면서 한 손을 내뻗쳐 선우철의 등을 향해 급습을 가하였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 비류신이 돌연 대갈일성 하더니 신속하게 오른손을 휘둘러 소대풍의 천령혈(天靈穴)을 내리쳤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등 뒤에 강맹한 장풍이 덮쳐 옴을 느낀 선우철이 신속하게 휙 돌아서더니 좌장우권(左掌右拳)으로써 독랄하기 짝이 없는 기세로 소대풍의 요혈(要穴)을 노려 협공을 가하였다. 소대풍은 선우철이 그처럼 신속하게 반격을 가하리라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터라 엉겁결에 엇비슷한 각도로 누워버리고 말았다. 선우철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가 아직 몸을 일으키기도 전 번개같이 그에게 덮쳐들더니 오른쪽 발로 힘껏 걷어찼다. 그 기세는 날카롭기 짝이 없었으나 소대풍은 곧 한 손으로 지면을 짚고 몸을 옆으로 돌리더니 즉시 데굴데굴 굴러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하였다. 선우철 역시 심혈을 기울인 일격이 실패로 그치자 벽력과 같은 함성을 지르며 수 장 밖으로 날아가 내렸다. 소대풍은 선우철의 일장에 의하여 중상을 입지는 않았으나 간접적으로 크게 핍박을 당한 터라 노발대발하며 다시 흉랄하기 짝이 없는 기세로 반격을 가하려 했다. 이때 비류신이 크게 외쳤다. “선우형, 그렇게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달아나시오! 그 자는 내가 전력을 기울여 상대하겠소!” 그는 즉시 벽공장(劈空掌)을 발휘하여 소대풍에게 맹공을 가하였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소대풍도 흉맹한 일장을 내뻗쳐 반격해 왔다. 쌍방 간의 장력이 충돌하자 소대풍과 비류신은 각각 일보씩 후퇴하였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선우철은 수하들을 데리고 묘지가 있는 쪽으로 바람같이 사라져 버렸다. 소대풍은 비류신의 공력이 하루아침에 급격히 증강된 사실에 대하여 무척 의아하게 여겼다. 만약 세월이 좀 더 흐른 후면 그의 공력은 더욱 증강되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장애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비류신을 죽여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이윽고 소대풍은 단전의 진기를 끌어올려 쌍장에 집중시킨 채 매서운 눈초리로 비류신을 노려보았다. 단 일장에 그를 죽이고 말겠다는 결심이 역력히 서려 있는 눈언저리에는 흉험한 살기가 등등하였다. 비류신은 소대풍의 등등한 살기를 눈치 채도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이때 흑도삼괴들은 소대풍이 비류신을 필살시키겠다고 결심한 속셈을 눈치 채고 일제히 비류신 곁으로 모여들었다. 홍부용도 사태의 긴박함을 직감하고 즉시 날렵한 몸을 솟구쳐 비류신 곁으로 날아갔다. 이때 묘지에서는 예의 날카로운 괴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은 정말 피를 보아야만 죽음을 실감하는 인간들이로구나.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곧 빙선일월장을 펼쳐 일일이 너희들을 상대하여 박살내고 말 테다.” 소대풍을 위시한 흑도삼괴들은 괴여인의 한마디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대풍은 적잖이 당황하여 재빨리 묘지 쪽을 향해 외쳤다. “나는 결코 비류신을 적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바이오.” 월광검 소대풍은 돌연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가벼운 웃음을 머금은 채 어조를 부드럽게 하여 비류신에게 말을 걸었다. “비 노제, 자네들은 오늘 일로 말미암아 나를 무척 혐오하리라 생각하네. 허나 지난 일은 모두 불문에 붙이고 앞으로 일이나 잘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네. 나는 자네와 홍 낭자에게 긴히 할 말이 있으니 앞으로 강호에 활약하는 동안 참고로 삼아주기 바라네. 다름이 아니라 현재 강호의 실정을 살펴보자면 한창 패기만만한 젊은이들이 깊은 지식이나 후한 덕의 함양에는 신경 쓰지 않고 모두들 저 잘난 멋에 우쭐하여 값싼 능력과 만용을 뽐내기 일쑤더군. 스스로 영웅호걸을 자처하는 우쭐한 심리에서 툭 하면,은혜니, 원수니 그런 것이나 따지며 오만불손하게 기고만장하여 날뛰고 있으니 실로 개탄할 일일세. 이처럼 어지러운 세상에 비 노제같이 모범적인 청년이 있다는 사실은 강호의 화평과 안일을 위하여 의미 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네. 더욱이 비 노제는 기이한 인연 때문에 절세적인 무예를 익혔을 뿐 아니라 귀중한 보물을 간직하고 있으니 아무쪼록 자중하기 바라네. 옛날에 이르기를 화복(禍福)은 문이 있어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라 하였네. 매사는 인과응보라 하였거늘 비 노제는 일거일동에 신중을 기하여 부디 후회 없기 바라네. 그럼 다음 기회에 또 만나세.” 말을 끝마치자 그는 곧 수하들을 이끌고 총총히 떠나갔다. 비류신은 어안이 벙벙하였다.만악(萬惡)을 한 몸에 지닌 소대풍의 입에서 그처럼 정의감이 넘쳐흐르는 말이 나오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처럼 성인군자의 말 같은 소리를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묘 속의 괴여인은 더 이상 소리 지르지 않았고 또한 장중에는 음산한 정적이 감돌았다. 비류신과 홍부용은 땅바닥에 쓰러진 시체들을 내려다보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천만 가지 복잡한 생각을 머리에 인 채--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