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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극대도] 2권 제8장 죽음의 골짜기에서 만난 신비선옹 ① 길고도 지루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천면사신이 수하들을 데리고 한천애 밑에 도착한 것은 동녘이 훤 하게 밝아올 무렵이었다. 한 시진 정도 더 일찍 당도할 수 있었으나 곽여송이 분신쇄골(分 身碎骨)이 됐을 단호삼의 시신을 왜 굳이 찾으려 하느냐고 의심에 찬 눈으로 보는 바람에 살객들은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면 절대 믿지 않는다는 그럴 듯한 거짓말과 함께 백혼검이 절세보검이라 욕심이 난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능청스럽게도 같이 가지 않겠 느냐고 물었다. 하자 곽여송은 마침내 의심을 떨쳐 버리고 청성파로 돌아가 아들 의 시신을 매장해야겠노라며 떠났다. 곽여송의 등을 보며 천면사 신은 하얗게 웃었다. 저런 바보 같은 놈.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하면서. 졸졸졸…….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아 그런지 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계류가 청아한 자연의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 가 종달새 울음이 들려왔다. 온갖 희귀한 모양을 한 기암괴석군(奇巖怪石群)은 보는 이로 하여 금 절로 탄성을 발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 어떤 아름다운 정경도 천면사신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 다. 우뚝 걸음을 멈춘 그는 구름에 덮여 있는 한천애를 올려다보다 무 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샅샅이 뒤져라. 꼭 놈의 시체를 찾아야 한다, 알았느냐?" 말이 떨어지기가 겁나게 담사를 비롯한 살청막의 살객들이 바람같 이 달려나갔다. 그 뒤를 따라가며 주위를 찬찬히 살피는 천면사신의 마음은 왠지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계획은 치밀했다. 그런데 뜻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 같 은 경우도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계획에 들어 있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추영화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불길해. 왠지 모르게." 그때였다. "여기 핏자국이 있습니다!" 흑매의 목소리였다. 팟! 시체가 아니라 핏자국이라 했다. 의문이 들었지만 그 순간 천면사 신은 음성이 들린 곳으로 이미 몸을 날리고 있었다. 연기가 꺼진 듯이 사라지는 귀신같은 몸놀림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시체는 없었다. 다만 핏자국만 있었을 뿐이었다. 높은 곳에서 떨 어진 듯한 피는 방사형(放射形)으로 퍼져 있었다. 피는 말라 있었 으나 오래되지 않은 듯 붉은빛을 잃지 않고 있었고, 그 옆에는 부 러진 노송(老松) 가지와 솔잎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천면사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나무에 걸렸단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이십 장 높이까지는 기기묘묘한 형태로 휘어지고 꺾어진 노송이 군(群)을 이루고 있었고, 위로는 군데군데 노송들이 있었다. 하지만 천면사신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방사형으로 퍼진 핏자국은 단호삼이 죽은 것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니까. 놈은 추영화처럼 사라지지도 않았고 천우 신조(天佑神助)로 살아나지도 않았다. 문득 천면사신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 몸으로, 이런 천장단애에 떨어졌는데 어떻게 살아 있을지도 모 른다는 생각을 했단 말인가? 어쩌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지 않아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 사이 담사, 환사, 혈우를 위시해 일급 살객들이 속속 도착했 다. 그들의 보고는 한결같았다. "보이지 않습니다." 일급 살객이라 해봐야 이제 여섯밖에 남지 않았다. 만일 조화선공 과 만천검결을 얻지 못한다면 살청막은 크나큰 손실로 남을 것이 다. "!"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대답을 대신한 천면사신은 군을 이루고 있는 노송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저곳에 걸렸다면 좋으련만.' 순간, 스슷! 바로 옆에 있는 살객들의 귀에도 들리지 않은 미세한 음향과 함께 그의 몸이 유령처럼 떠올랐다. 단번에 칠 장을 솟구친 그는 노송의 가지를 슬쩍 발끝으로 차며 다시 위로 치솟았다. 일학충천(一學沖天)에 이어 놀라운 제운종 (提雲宗) 신법이었다. 그러기를 서너 차례. 어느덧 그는 이십 장 높이의 노송에 서 있었 다. ② 위잉! 높이가 높이니만큼 바람도 거셌다. 옷자락이 찢어질 듯 펄럭거렸 다. 그런데 새끼손가락 굵기의 나뭇가지를 밟고 서 있는 천면사신 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노송을 살피던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피묻은 가지만이 걸려 있을 뿐 어디에도 기대했던 단호삼의 모습 은 보이지 않았다. "더 위란 말인가? 일이 더럽게 꼬이는군." 낮게 중얼거리던 그의 손이 돌연 금빛으로 물들었다. 놀랍게도 그 것은 금석(金石)을 두부처럼 으깨 버린다는 금황신수(金荒神手)였 다. 이 금황신수는 중원의 무공이 아니었다. 밀종대수인(密宗大手印) 과 함께 천축 소뢰음사(少雷音寺)의 이대절학 중 하나였다. 그렇 다고 그가 소뢰음사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사부, 즉 전대(前代)의 살청막주에게서 배운 무공 중 하나였다. 사부도 역시 그 사부에게 배웠을 것이다. 백육십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살청막은 지금 네 번째 주인이 바뀌 었다. 기실 살청막에는 세인(世人)들이 모르는 기괴한 전통이 있었다. 막주는 단 한 명만의 제자를 두었고, 막주가 되기 위해서는 당대 의 막주를 죽여야만이 그 뒤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전 대 막주의 별호마저 그대로 이어받아야 하였다. 천면사신으로! 그 목적은 분명했다. 강호 무림인에게 신비롭게 보이기 위함이었 고, 그것은 확실한 효과를 얻고 있었다. 백오십 년 동안 이어져온 천면사신의 명성은 공포, 그 자체로 인식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허나 당대의 천면사신은 아직 제자를 두지 않았다. 왜인지는 그 자신만이 알 뿐이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천면사신은 신형을 허공으로 뽑아 올렸다. 오 장을 날아오른 그는 암벽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푹! 단단하기로 유명한 화강암(花崗巖)에 금황신수를 박는 순간에 그 는 발로 암벽을 걷어차며 다시 위로 솟구쳤다. 그러기를 몇 차례, 무려 지상에서 오십 장이나 올라간 그는 망설 일 수밖에 없었다. 밑을 보니 수하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았고, 안력(眼力) 을 돋구어 위를 보니 자욱한 운무만이 보일 뿐 단호삼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칡덩굴마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공력이 고갈되지 않는 한 아직 더 올라갈 수는 있었다. 그 러나 내려갈 때가 문제였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니까. 절세비급을 얻은들 죽고 나면 말짱 공염불이 되지 않겠는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망할 놈! 죽어서까지도 애먹이네." 낮게 으르렁거린 천면사신은 몸을 솜털 마냥 가볍게 한다는 부운 약평(浮雲躍平)이라는 상승신법으로 떨어져 내리며 이를 갈았다. 천하의 모든 밧줄을 구해서라도 기필코 찾고 말 것이라고! 이런 천면사신에게 물욕(物慾)이 지나치다고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릇 무예를 익힌 무인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절세병기와 무공 비급이 탐욕의 대상이다. 간혹 강호무림에 실전된 무공기서(武功奇書)가 나타날 때마다 피 보라가 몰아쳤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누가 그를 매도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도 천 고제일의 심법이라는 조화선공과 만천검결임에야. ③ 과연 단호삼은 천면사신의 판단대로 노송에 걸려 있는 걸까? 아니었다. 단호삼은 지금 지상에서 무려 이백 장 높이에 있는 한 동굴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동굴은 자신의 손가락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고, 너무 높아서 인지 동굴에서 생활하는 박쥐도 보이지 않는 천연 동굴이었다. 천장에는 족히 수억 년은 지남직한 종류석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 었고, 그 밑에는 어김없이 종류석에서 떨어지는 수적(水滴)이 만 든 석순(石筍)이 돋아나 있었다. 똑똑……. 동굴의 내부가 밝으면 또 모르나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이처럼 을 씨년스러울 수가 없는 가운데 누워 있는 단호삼 옆에는 마의를 걸 친, 즉 신비선옹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 었다. 한데 신비선옹이 어떻게?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추영화를 치료하던 중 신비선옹은 한천애 쪽에서 짙은 살기와 검 기가 하늘을 밝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보나마나 단호삼이 살청 막의 살객들과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직감했다. 다급해진 그는 추 영화에게 몇 마디 일러주고는 몸을 날렸다. 다행히 추영화의 화기 를 다스린 후였기 때문에 안심하고 떠날 수 있었다. 내상은 운기조식으로 치료하면 될 것이고, 미량의 산공독은 두 시 진만 지나면 절로 사라질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한데 막 한천애 밑에 도착했을 때였다. 한 줄기 섬광(閃光)과 함께 처절한 비명이 꼬리를 무는 것이었다. 이어 우지끈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누군지 모르나 분명 절벽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단호삼일 것이라는 판단에 신비선옹은 전설상의 경공술인 어풍술 (馭風術)로 신형을 뽑아 올렸다. 허나 아무리 바람을 타고 나른다 는 어풍술이지만 한계가 있는 법이고, 또한 그는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새가 아니었다. 암벽을 거듭 차면서 솟아오르기를 몇 번, 진기(眞氣)가 이어지지 않아 잠시 진기를 조절할 곳을 찾던 중 이 동굴을 발견하고 입구 에 내려서는 순간에 무엇인가가 시커먼 물체가 눈앞을 스치는 소 리가 들리자 신비선옹은 지체없이 천근추(千斤鎚) 신법으로 따라 떨어지며 허공섭물진기를 펼쳐 단호삼을 움켜잡는 즉시 신형을 틀 어 다시 동굴로 되돌아온 것이다. 설명은 길다. 허나 이 일련의 사건은 실로 눈 몇 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일 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이백 장을 날아오를 사람은 오직 신비선옹뿐일 것이다. 내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기 전, 단호삼을 본 신비선옹은 연거푸 놀랐다. 당시 단호삼은 실로 눈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목불인견(目不忍見) 의 모습이었다. 찢어지고 갈라진 검상만 해도 무려 서른두 곳. 그 중 가장 심한 상처는 복부였다. 쩍 벌어진 상처에서는 불그죽 죽한 내장이 삐쭉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데다 기경팔맥(奇經八脈) 과 전신 근골이 뒤틀려 있었다. 게다가 진기가 완전히 고갈된 바 람에 전신에서는 비천갈독의 독기로 살이 썩는 중이었다. 어찌 이런 상태로 아직 죽지 않았는가 하는 첫번째 놀람이 채 가 시기도 전에 그는 또 놀랐다. 갈비뼈가 세 개나 부러졌고, 어깨가 탈골된 왼손으로 부러진 소나 무 가지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뿐이랴. 백혼검을 쥔 오른 손등은 힘줄이 돋아날 만치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초인적인 정신력이었다. 누가 이런 상황에서 백혼검을 쥐고 있을 것이며, 정신을 잃은 상 태에서 추락하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나무를 쥘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제일 시급한 비천갈독을 단 호삼의 체내에서 태우기 위해 명문혈로 조화선공을 불어넣을 때였 다. 단전(丹田)을 감싸고 있는 한 줄기의 상스러운 현기(玄氣)! 이것은 바로 조화선공이 팔 성에 이르렀다는 증거였다. 평생을 조화선공에 바친 자신도 겨우 십일 성에 불과하거늘, 이제 겨우 이십이 세인 단호삼이 팔 성이라니 그의 놀람은 당연했다. 기실 단호삼이 공령의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방해를 받지 않았다 면 능히 십 성의 경지에 도달했을 것이다. 원래 상승내공심법은 운기조식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 다. 그렇지 않다면 왜 자질과 근골을 보겠는가. 깨달음. 즉 운기조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한계가 있는 법이니 심법 의 구결(口訣)을 올바로 해석하고 마음의 깨달음이 있어야만 대성 (大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신비선옹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도 왜 단호 삼이 죽지 않았는가를 말이다. 이 세 번의 놀라움! 백이십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놀란 횟수보다 하나가 더 많았다. ④ 옷 밑단이 거의 뜯어질 무렵 신비선옹의 손이 멈추었다. 기실 그에게는 무인들이라면 필히 갖고 다니는 금창약(金瘡藥)이 없었다. 하긴 천하에 누가 있어 그에게 상처를 입히겠느냐마는 설 사 금창약이 있어도 단호삼에게는 별반 소용이 없었다. 상처도 상처 나름 아니겠는가. 이렇게 쩍쩍 벌어진 상처에는 금창약보다 신비선옹처럼 바늘이 없 다면 내공으로 실을 꼿꼿이 세워 상처는 꿰매는 게 제일이다. 작은 헝겊을 너덜너덜 기운 듯한 단호삼을 내려다보던 신비선옹은 돌연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무극천패를 찾으러 왔건만 일이 이렇게 되다니. 이 아이와 인연 의 끈이 닿아 있음인가?" 우연이라 보기에는 너무 절묘했다. 모든 것을 제자인 왕도연에게 맡긴 터라 용궁사로 들어갈 수 있는 무극천패를 찾으러 단호삼을 만나러 왔던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 도 단호삼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고, 때마침 자신이 구했 다. 구했다는 것도 그냥 우연으로 치부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신비선 옹이 한천애를 오르던 중이었던가, 아니면 다 올라간 순간에 단호 삼이 떨어졌다면 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데 그 시간이 실로 절묘하게 딱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막 한천애 밑을 지나는 찰나에 떨어졌으니 말이다. 우연이라기보 다는 필연(必然)에 가까운 인연의 끈! 잠시 후 신비선옹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이것 또한 하늘의 뜻이라면……." 어두웠다. 칠흑 같은 어둠이 어떤 것인지 실감할 정도로. 지옥인가? 그럴 것이다. 지옥이 아니면 어찌 이토록 어두울 수가 있는가. 단호삼은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그렇게 많은 죄를 지었던가? 지옥에 올 정도로…….' 그때다. 아픔!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 가운데 느껴지는 욱신거리는 이 아 픔은? 죽은 자도 아픔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의문이 뇌리에서 채 사라지기 전, "아이야, 아직 움직이면 안된다." "!" 단호삼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이곳은 지옥이 아닐 뿐더러 죽지 않았던 것이다. "누, 누구… 십니까……?" 음성이 떨려 나왔다. 겨우 이 한마디를 하는데도 무척 고통스러웠 다. 고통 정도가 아니라 전신이 부서지는 듯했다. 한데 괴이한 것 은 고통이 너무 크다 보니 그 아픔이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듯싶 은 것이다. 그가 고통스런 빛을 보이자 신비선옹은 슬쩍 손을 들어올렸다. 단호삼은 기해혈을 통해 한 줄기 청량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맞는 것처럼 시원해지면서 고통 이 사라지는 느낌이 드는 순간, 부지간 놀라 부르짖었다. "이, 이건 조화선공!" 신비선옹은 손을 거두면서 깊은 한숨을 토했다. "이 늙은이는 하립이의 외할아비란다." 뜻밖의 상황에서 생각지도 않은 말을 들은 단호삼의 머릿속은 텅 비어갔다. "하립이라면… 바로 사 아저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사 아저씨라……." 낮게 되뇐 신비선옹이 조용히 말했다. "허허허, 그 아이가 이름도 안 가르쳐 주었나 보구나. 네가 그리 부르는 것을 보니."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역시 사 아저씨가 천하제일검인 그분이었어!' 단호삼은 가슴이 떨렸다. 무면탈혼검 사하립! 대륙의 땅을 밟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죽음의 승부사(勝負士)! 석 자 여섯 치의 한 자루 검으로 천하를 격동시킨 무적의 검객(劍 客). 비록 일여 년 동안 강호무림에 나타나지 않았고, 전전대의 고인(高人)인 왕도연의 등장으로 그 명성이 약간 빛을 바랬다고는 하나 무림사(武林史)에 길이 남을 명실상부한 천하제일검이었다. ⑤ 가슴이 뜨거웠다. 그 위대한 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니! 그러다 문득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패배(敗北)! 자신의 패배는 곧 사하립의 패배가 아닌가. '그분의 명성에 누를 끼쳤어. 이 바보 같은 놈. 왜 그때 죽지 않 고서…….' 단호삼의 표정에서 마음을 읽은 신비선옹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 했다. "너무 자책할 것 없다. 싸움을 하다 보면 질 때도 있고, 이길 때 도 있는 법이니. 그보다 지금은 네 몸 걱정을 할 때다. 간단히 말 해서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무공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란 말이 다. 허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화선공이 단전을 보호했다는 것이 다. 그리고 이 늙은이를 만났다는 게 네게는 천만다행이다. 이 늙 은이만이 네게 도움을 줄 수 있음이니……."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말을 한 그는 잠시 숨결을 가다듬고 다시 입 을 열었다. "그런데도 왜 아직 손을 쓰지 않았느냐 하면, 네 승낙 하에 한 가 지 물건을 얻기 위해서다. 그 물건이 뭔지 알겠느냐?" 신비선옹은 물어왔다. 그러나 단호삼은 여전히 침울한 표정으로 오히려 되물었다. "사 아저씨는 어디 계시는가요?" 순간 신비선옹의 눈이 작은 떨림을 보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우선 이 늙은이의 물음부터 대답해주련?" 회피하는 듯한 인상에 단호삼은 일순 기이한 느낌을 받았으나 어 른 말씀에 대답 않고 되물었다는 것에 얼굴을 붉혔다. "죄송합니다. 소생이 너무 버릇없이 굴었군요." '허허, 요즘 아이답지 않게 심성(心性)이 무척이나 고운 아이로 다!' 내심 칭찬을 한 신비선옹은 더욱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괜찮으니 대답이나 해보거라." "예." 단호삼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혹시 무극천패를 말씀하시는 게 아니온지?" "바로 맞추었다." 순간 단호삼은 곤욕스러웠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만천검결이 적힌 양피지 석 장과 백혼검, 그리고 무극천패뿐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었던 것인데 짐작 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한데 만천검결을 제외한 두 가지 물건은 모두 사하립이 주었다. 특히 무극천패는 용궁사를 찾을 중요한 열쇠가 아닌가. "하지만 무극천패는……." "하립이가 준 물건이라 곤란하다는 거냐?" 단호삼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문득 신비선옹은 신비로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무극천패의 원주인이 누구인 줄 아느냐?" 단호삼은 무심결에 대답했다. "짐작으로는… 신비선옹이라는 분이 아닐까 합니다만." "옳다. 한데 그 신비선옹이라는 사람이 바로 이 늙은이라면 줄 수 가 있겠느냐?" "아!" 단호삼의 입이 딱 벌어졌다.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던 신화적인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칠십 년 전에 천마교의 마수(魔手)에서 천하를 구하고 홀연히 떠난… …. 잠시 망연자실하던 단호삼의 뇌리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 다. "저 좀 전에 사 아저씨의 외조부라 하시지 않았는지요?" 신비선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단호삼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사 아저씨의 연세는 이제 사순 정도인데 어떻게……?" 그 뒷말은 차마 이을 수가 없었다. 칠십 년 전에도 신비선옹이 노인이었다는 풍문이고 보면 지금쯤 적어도 백 하고도 이삼 십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십 먹 은 외손이 있다면 대체 몇에 딸을 낳았으며, 그 딸은 몇에 사하립 을 낳았단 말인가? 도저히 연대(年代)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을 다하지 못했다. 거짓말 같았기에. 신비선옹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허, 하립이가 그러더냐? 제 나이가 사십이라고?" 단호삼은 움찔 놀라 부지간 되물었다. "그 말씀은… 사 아저씨의 나이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까?" 문득 신비선옹의 얼굴이 흐려졌다. 자신 손으로 사하립을 죽였기 때문일까? 내심으로 장탄식을 토한 신비선옹은 예의 부드러운 신색으로 돌아 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보자. 하립이의 나이가 칠십 넷이던가, 다섯이던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그 정도는 됐겠군." "!" 놀라는 단호삼의 머릿속을 헤집고 불쑥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 었다. 그 뭐였더라?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기상천외한 무 공 이름이? 이름이 입안에서 맴돌 때 신비선옹이 그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하립이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 것은 주안술(駐顔術)이나 어 떤 영초영과(靈草靈果)를 먹어서가 아니라, 그 집안의 내력이지. 다른 사람에게 일 년이 사가(司家)의 적통(嫡統)을 이은 그들에게 반년의 시간이라 할 수가 있지. 그래서 그렇게 보였던 게야." 기문(奇聞)도 이런 기문이 없었다. 어찌 인간의 피부가 세월의 반만 따라간단 말인가. 그런 체질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그러나 천하는 넓고 기문괴사(奇聞怪 談)도 많다. 어떤 사물을 볼 때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먼저 생 각하는 단호삼은 세상에 정말 희귀한 일도 많구나 할 뿐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⑥ "그랬었군요." 순간 신비선옹은 새삼스럽게 선이 굵은 단호삼의 얼굴을 깊숙한 눈길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제 무극천패를 줄 수 있겠는가?" 단호삼은 조금도 거리낌없이 명쾌한 어조로 대답했다. "주인이 나타났으니 당연히 돌려 드려야겠지요. 허나 그 전에 사 아저씨가 어디 계시는지 알고 싶습니다만." 그 말에 신비선옹의 얼굴이 알게 모르게 굳어졌다. '보아하니 하립이가 이 아이에게 전부인 것 같군. 그렇다면 굳이 지금 알려 줄 필요가 없겠지.' 결심을 굳힌 그는 가볍게 두 손을 들었고, 일순간 보이지 않는 그 물이 전신을 옥죄는 것을 느낀 단호삼의 눈이 둥그래졌다. "왜 갑자기……." 그러나 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어찌 된 판국인지 말이 입 밖 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입 근육을 마비시키는 아혈 이 찍힌 것도 아니었다. 무형의 장벽(障壁)! 전신을 옭아맨 무형지기 때문이었다. 이어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싶은 순간 신비선옹의 음성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줄 안다. 그러나 앎이 모름보다 못할 때가 있음이니,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음성은 바로 옆에서 말을 하는 듯 또렷하게 들려왔다. 만약 단호삼이 무공에 대한 식견이 높았더라면 이것이 바로 뜻만 으로 의사를 전달한다는 의어전성(意語傳聲)이라는 전설상의 술법 임을 알 것이다.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신비선옹의 음성이 들렸다. "차후에 왕도연에게 물어보도록 해라. 왕도연은 바로 이 늙은이의 제자이니 상세히 알려 줄 것이다." "!" 이보다 더 놀랄 일은 없을 것이다. 경악으로 단호삼의 머리가 하얗게 비어갈 때 문득 자신의 몸이 허 공에서 맴돈다고 느꼈고, 그 순간 명문혈을 통해 장강대해 같은 진력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뜨겁기도 하고 싱그러운 과일을 먹은 것도 같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진력은 곧바로 단전으로 들어갔다가 사지백해를 누비며 흐트 러졌던 조화선공의 조각들을 모으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단호삼이라지만 지금 신비선옹이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는 안다. 신비선옹의 진원진기(眞元眞氣)로 내상을 치료하는 요상법 (要傷法)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요상법을 시전 하는 사람은 상당한 내공 손실을 가져온 다는 것도 말이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단호삼이 막 이럴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하려 할 때였다. "말을 해도 이 늙은이는 들을 수가 없다. 하니 잡념을 버리고 정 신을 집중하도록 해라. 그렇지 않고 입을 연다거나 하면 우리 둘 다 주화입마에 빠져 죽을 것이다." 단호삼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죽는 것은 괜찮으나 도움을 주려는 고마운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신비선옹의 몸에서 허연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오르며 얼굴도 창백 하게 변했다. 기실 보통의 경우는 서로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이런 요상법을 실 행하는 것이나 지금 단호삼의 몸이 형편무인 지경이라 단호삼을 공중에 부양(浮揚)시켜 놓고 시전 하는 것이라 내공 소모가 극심 했던 것이다. 그에 비례해 단호삼은 텅 비어 있던 단전이 뿌듯하게 차 오르며 전신이 날아갈 것같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돌연 단전에 모인 조화선공의 진기가 생사현관(生死玄關)이라 불 리는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을 향해 광풍노도같이 솟구치는 것 이 아닌가. '맙소사! 이건…….' 단호삼이 경악하는 순간, 꽝! 뇌리에 뇌성벽력이 이는 듯한 충격을 받았고, 그만 혼절하고 말았 다. 상승무공을 극성으로 연성할 수 있는 생사현관이 뚫린 것이다. 원 래 인간이 갓 태어날 때는 모두 임맥과 독맥이 뚫려 있다. 허나 오염된 공기와 음식물을 섭취하면서 생사현관이 막히는 것이다. 신비선옹이 슬쩍 손을 끌어당기는 시늉을 하자 허공에 떠 있는 단 호삼의 몸이 천천히 내려왔다. 바닥에 자는 듯이 누운 단호삼을 지그시 응시하던 그는 장탄식과 함께 중얼거리며 동굴 밖을 향해 걸어갔다. "네 선량한 성격 때문에 생사현관을 뚫어줬다만, 네게 홍복(洪福) 이 될는지, 불행이 될는지 모르겠구나." 밤과 낮이 세 번 바뀌었다. 시간도 잊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단호삼의 전신에서 돌연 뼈마디 가 탈골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뿌드득… 뿌득! 그것은 사지(四肢)가 기묘하게 뒤틀리며 내는 소리였다. 마치 연 체동물같이 인간의 골격으로 만들 수 없는 기괴한 형태로 변하기 를 수십 차례. 단호삼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 또 한 번의 변화가 있었다. 피부가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지며 벗겨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파충류(爬蟲類)들에게나 볼 수 있는 허물처럼 말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 가장 순수한 신체, 즉 무공을 익히기에 가장 적합한 골격으로 바 뀐다는 환골탈태를 지금 하고 있지만 단호삼은 여전히 이를 못 느 끼고 있었다. 신비선옹조차 미처 예측하지 못한 환골탈태를 이룬 그가 깨어날 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⑦ "으음……." 절로 침음성이 흘러 나왔다. 환갑(還甲)을 바라보는 나이답지 않게 팽팽한 피부에 가슴까지 늘 어뜨린 흑염(黑髥)을 가진 녹림대제(綠林大帝) 냉공소(冷空素)는 육중한 몸을 호피(虎皮)가 깔린 태사의에 실으면서 힘없이 중얼거 렸다. "칠 일. 그래, 불과 칠 일 만에 여덟 관문이 뚫렸단 말이지……." 이것은 녹림칠십이채가, 아니 강남무림의 마도(魔道)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무림맹에 대항하기 위해 열 개의 관문을 만들었다. 그 중 일(一) 관문과 이(二) 관문에 절반의 힘을 쏟아 부었다. 예봉(銳鋒)을 꺾 어 선기(先期)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무림맹의 힘은 생각 외로 강해 두 관문은 닷새만에 무너졌 다. 그 와중에 무림맹도 상당한 손실이 있은 듯 주춤하는 기세였다가 어제부터 재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보고에 의하면 장백검유 왕도연이 합류를 했다 하였다. 공동, 무 당파와 함께 말이다. 그리되자 무림맹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상대적으로 녹림칠십이채는 수축되었다. 꽉! 팔걸이를 움켜잡은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왕도연! 대체… 대체 네 속셈이 뭐냐? 우리가 무슨 큰 잘못을 했 다고 이러는 거냐? 하찮은 돌멩이라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했거 늘… 마도라 불리는 우리가 있음으로 해서 너희들이 더 빛나지 않 느냐!' 그렇다. 밤이 길고 어두울수록 아침에 돋는 태양은 더욱 창연한 법이다. '좋다! 피를 그렇게 원한다면 피를 주마. 암, 주고말고!' 결심을 굳힌 냉공소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종부채주!" "예, 대제." 단상 아래 엎드려 있던 사내의 얼굴이 들렸다. 훤한 이마가 돋보 이는 사순 가량의 중년인이었다. 냉공소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의 해맑은 이마를 보며 간단하게 말했다. "떠나게." 순간 같이 싸우자는 말을 기대했던 중년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는 바닥에 머리를 쿵! 찍으며 부르짖었다.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단단한 대리석 바닥에 시뻘건 핏물이 퍼지는 것을 본 냉공소는 마 치 자신의 이마가 깨어진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도 짐짓 호통을 질 렀다. "감히 본 대제의 명에 항명(抗命)을 하는 겐가!!" 중년인의 머리가 들렸다가 다시 바닥을 찍었다. "그럴 리가…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죽으면, 그대마저 죽으면 누가 형제들의 혈채(血債)를 받지?" "!" 중년인의 몸이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경직되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 냉공소는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기억나는가? 두 번째 본좌에게 도전했을 때 패배하면 목숨을 주 겠다고 했던 말을……." 어찌 그 일을 잊겠는가. 이 중년인. 패검철담(覇劍鐵膽) 종일명(鐘日明)! 한 자루 철검(鐵劍)으로 강호를 종횡무진(縱橫無盡) 휘저었던 그 는 언젠가는 무면탈혼검 사하립을 꺾고 천하제일인이 되고 말리라 는 야망을 가진 검수업자(劍修業者)였다. 그러다 팔 년 전, 냉공소에게 도전하여 패한 후, 절치부심(切齒腐 心)하여 삼 년이 지나 다시 도전하였다. 그때 냉공소는 지면 무엇을 주겠느냐고 물었고, 그는 서슴없이 목 숨을 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냉공소는 껄껄 웃으며 목숨을 필 요 없으니 녹림인(綠林人)이 되라고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부채주라는 신분으로 엎드려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굴복된 상태에서. "기… 억합니다." "그럴 테지." 고개를 주억거린 냉공소는 다시 말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킬 때가 됐네. 지금, 이 순간 부로 그대는… 아니 자네라 불러야겠지." 비무 당시 냉공소는 종일명에게 자네라는 호칭을 썼다. 자신의 수 하가 아니었으니까. "자네는 이제 더 이상 녹림인이 아니네." "그 말씀은?" 번쩍 들린 종일명의 얼굴이 철갑을 씌운 듯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 다. "파문(破門)이네." 그는 이내 손을 저으며 말을 바꾸었다.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백혈녹대주(百血綠代主)로 승격시 킨 걸로 하지. 어떤가? 자네 목숨을 걸고 녹림인의 원한을 풀어 주겠는가, 아니면 여기서 개죽음을 하겠는가? 본좌와 형제들의 원 망을 들으면서 말일세." 무슨 공갈을 이렇게 겁나게 친단 말인가. 종일명의 안면 근육이 미친 듯이 떨렸다. 떨림에 의해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말을 할 듯 말 듯하길 얼마 후, "염라국(閻羅國)에 가시면 속하의 자리를 봐주시겠습니까?" "기꺼이!" 흡족한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인 냉공소는 문득 희미한 미소 를 머금었다. "하지만 자네가 올 때쯤이면 염라국이 아니라 녹림국(綠林國)이 되어 있을 걸세. 그리고 자네 자리는 명부왕(冥府王)일세. 어때, 마음에 드는가?" 종일명은 히죽 웃었다. "들다마다요. 정파입네 하며 거들먹거리는 놈들을 깡그리 싸잡아 들일 수 있는 자린데. 정말 마음에 듭니다, 녹림대왕님." 입은 웃고 있다. 그러나 눈은 결코 웃고 있지 않았다. |
첫댓글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