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진로바꾼 한통의 편지/큰형 “네가 하나님의 종이 되도록 20년 기도했다”/충격받고 법관꿈 포기… “목사되자” 감신대 진학내가 법대에 가려는 것은 「가난의 한」을 풀고 권력도 가져보겠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인천고교에서 성적이 상위권이었으므로 명문대에 가겠다는 목표를 세워 공부에 매진했다.
사실 나는 군에서 제대해 복학한 뒤 낙제를 한 경험이 있다.이 때 담임선생님이 나무라지 않고 더 열심히 하라며 격려를 했는데 이 때 큰 자신감과 용기를 얻어 공부에 취미를 붙일 수 있었다.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흉보는데는 앞장서지만 칭찬과 격려에는 인색하다.말 한마디가 상대방에 주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체험했기에 항상 조심하고 좋은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졸업을 서너달 남겨놓고 진학대학을 결정해야 할 시절,큰형님에게서 편지가 왔다.
『광영이 보아라.어려움 속에서 공부하느라 수고가 많다.나는 네가 신학교에 들어가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을 20년 동안 한결같이 기도해 왔다.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네가 신학을 하리라 굳게 믿는다…』 깜짝 놀랐고 당황했다.내가 목사가 된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10살 때 아버님을 여의고 졸곧 형님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해 온 나로서는 반대의사를 표시하기가 곤란했다.그리고 우리 집안은 무조건 어른의 뜻에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형님이 나를 위해 20년간 기도했다면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예비된 길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 아닌가.일단 기도를 해보자』 진로를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종으로 불러 주셨다는 확신이 들었다.당시 창영교회 중고등부는 3백여명이 출석했으며 학생들의 기도열기가 대단했다.그리고 고등부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대부분의 임원들이 신학교에 진학하려 하고 있었다.그 영향도 받았기에 결국 신학교행을 결심했다.
당시 감리교신학대학은 경쟁률이 높았는데 입학시험에서 쉽게 합격했다.당시에도 서대문 냉천동에 학교가 있었는데 기숙사생활을 했던 나는 또 마음고생이 시작되었다.학비와 기숙사비 때문에 언제나 전전긍긍해야 했던 것이다.
비교적 열정적인 신앙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오히려 신학교에서 전혀 생경한 사실들을 배움으로 신앙에 대한 회의와 의아심만 부추기게 되었다.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구성됐으며 하나님의 권위까지도 부정하는 충격적인 강의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동안 내가 알아온 사실과 전혀 다르지 않는가.이런 학문이라면 배울 가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뜻이 맞는 신학생들과 금요철야예배에 참석,뜨겁게 통성기도한 적이 있는데 이것도 학교에 알려져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신약을 가르친 쿠퍼선교사의 강의는 내게 깊은 영향과 신앙도전을 주었다.박식한 신학지식을 바탕으로 기독교역사와 성경의 핵심을 찌르는 명강의는 내가 신학교에 미련을 갖게 한 마지막 보루였다.〈정리=김무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