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남자 탤런트가 멋진 야외 테라스에서 노래를 읊조립니다. 커피 광고 속의 풍경입니다. 이 탤런트는 음악에 맞춰 리듬감 있게 "칸타타"라고 부르지만, 정작 흐르는 배경 음악은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입니다. 예배와 축일(祝日)에 맞춰 연주되던 종교 음악(칸타타)이 무도회 춤곡(왈츠)의 노랫말쯤으로 변신한 셈입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도 커피의 맛을 예찬하는 〈커피 칸타타〉를 쓴 적이 있지만, 이 역시 왈츠와 별 관련은 없습니다. 바흐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나란히 앉아 광고를 본다면 서로 조금은 난감한 표정을 지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타계한 전설적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Pavarotti)를 닮은 TV 광고 모델도 등장했습니다. 한 투자회사의 광고이지만, 여기에도 '옥에 티'가 있습니다. 파바로티를 닮은 이 모델은 광고에서 '피가로(Figaro)~'라고 노래하지요.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가운데 유명한 〈나는 이 거리의 팔방미인〉의 멜로디입니다.
안타까운 건 이 노래를 부르는 '피가로'는 테너가 아니라 바리톤이 맡는 배역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파바로티는 생전에 오페라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른 적이 없게 되는 셈이지요.
- ▲ 인기 탤런트 공유가 출연한 음료 광고‘커피 칸타타’의 한 장면. 이 광고 에 쓰인 음악은 칸타타가 아니라 왈츠다.
작곡가의 창작 정신을 몰라주는 광고도 있었습니다. 한 아파트 광고에서 모델은 '슈베르트가 이곳에 살았다면 명곡이 하나 더 탄생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 방랑자 신세로 왔으니 /방랑자 신세로 다시 떠나네"라는 연가곡 《겨울나그네》의 노랫말이 일러주듯 그에게 작곡의 출발점은 '집'이 아니라 '길'이요, '풍요'가 아니라 오히려 '가난'이었지요. 또한 시인과 가수, 연극 배우와 화가 등 친구들과의 교감과 우정이야말로 창작의 든든한 원천이었다는 점에서 봐도 이 아파트 광고는 조금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발상입니다.
- ▲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닮은 모 델이 등장하는 투자회사 광고.
시(詩)에는 맞춤법이나 어법에서 조금은 벗어나도 좋다는 시적(詩的) 허용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광고적 허용'도 없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광고에서 클래식 음악을 활용하는 것도 상품의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을 강조하기 위한 '아트 마케팅'이겠지요. 기왕 그렇다면 조금 더 정확한 맥락에서 음악을 인용해서 그 제품의 격과 이미지를 더욱 높여보는 건 어떨까요.
입력 : 2008.05.21 23:22 / 수정 : 2008.05.22 02:59
- Copy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