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중앙아시아 Dagestan의 민족시인 감자토프(Rasul Gamzatovitch Gamaztov, 1923∼2003) 의 詩에서 유래되었다. 현재 다게스탄 공화국은 러시아 연방에 속한 나라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체첸 공화국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주로 Caucasus 산악지대에 위치 하고있다. 이 지방 출신인 감자토프는 1940년 2차 세계대전(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했고, 지옥같은 전장에서 겨우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거기서 죽어간 전우들을 생각하며 시를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백학이다. 감자토프가 히로시마를 방문했을때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학을 받쳐 들고 있는 원폭 피해자 사까끼 사다꼬의 동상을 보고 영감을 얻어 다게스탄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하나인 Avar語 (Alarodian Northeast-Caucasian係語 or Nakh-Dagestan係語)로 쓴 시를 모스크바에서 발간되는 'Novy Mir' 라는 월간 문학 잡지에 발표하였다.
****(註: 히로시마 원폭피해로 인한 백혈병을 앓는 일본인 여자육상선수 사까끼 사다꼬가 회복을 기원하며 투병기간중 1000 마리의 종이학[Thousand origami cranes (Japanese: 千羽鶴 "Senbazuru")] 접었다고 한다. 사다꼬는 12세에 사망했다.)
감자토프는 '레닌'상을 수상했으며 '다게스탄의 인민시인' 칭호를 얻었다. 유명인사가 된 그는 다게스탄 작가연합의 의장으로 활동했으며,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등지를 여행하였다. 그는 모국어인 Avar 語로 시를 썻으나 이 언어의 사용자는 통털어 50-60만 정도에 불과하다. 주로 사용되는곳은 다게스탄 공화국의 동부및 남부지역으로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터어키의 일부 지역 그리고 소수에서 체첸지역 등지에서 사용될 뿐이다. 이후 백학은 전사한 병사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되어 구 소련의 2차대전 기념관들에는 날아가는 학의 그림을 새겼고 또 몇 군데에는 노랫말 귀절을 같이 새겨 놓은 곳도 있게 되었다.
이 시에 주목한 유태인 혈통의 배우겸 가수인 Mark Naumovich Bernes가 노래말로 개사하고, 1969년 우크라이나 출신의 Yan Abramovich Frenkel 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지금의 백학이 탄생하였다. 베르네스는 세계 2차대전의 전쟁과 관련된 가슴사무치는 노래들을(Tyomnaya noch,1943)불렀고 1965년 구소련의 '인민 공연예술가' People's Artist of the USSR(Народный артист СССР)로 지명된 연예인이었다. 1969년 베르네스가 처음 부른 이 곡은 순식간에 소련 가요계를 휩쓸며 대단한 인기를 얻었고, 전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러시아어 노래의 하나가 되었다.
Crane(백학,두루미) 이라는 제목의 이 곡은 체첸 유목민 전사(戰士:Warrior)들의 영광된 죽음을 찬미하는 음유시에 러시아가수가 현대적인 곡을 붙인 것이다. '지키트'는 서방의 '기사'나 일본의 '무사'라는 의미와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이다. 오랜기간 외세에 의해 고난을 당했던 카프카의 전사들을 지칭하는 말이며 체첸어로는 '코나흐라' 라는 말로 불려지기도 하며 스스로를 외로운 늑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길들여 지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경상북도만한 크기의 카프카즈 지역은 동쪽과 서쪽에 카스피해와 흑해를 두고 있는 지정학적인 요충지이며, 엄청난 양의 자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민족/다언어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복잡한 지역이다. 페르시아-셀주크튀르크-몽골-오스만튀르크로 이어지는 제국과 마지막 지배자가 1722년 첫발을 들여놓은 러시아 이다. 제정 러시아가 체첸을 정복하는데 137년이 걸렸고 이후 체첸은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던 1917년 독립을 선언했다가 붉은 군대에 짓밟혔고 사회주의 몰락으로 91년 다른 공화국과함께 독립을 선언했지만 러시아군이 몰려왔다. 석유가 묻혀있는 땅인 데다 카스피해 석유를 수출하는 파이프가 통과하는 지역인 까닭에 94년 두차례 전쟁으로 120만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으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 구소연방에 속했던 체첸과 다케스탄은 바로 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카프카즈 지역에 자리를 잡은 국가들이다. 세계 2차 대전 시절에 소련군과 함께 독일군의 진군을 막으려 직접 전쟁에 참가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라술 감자또비치 감자또프라'는 카프카즈의 지기트이자 민족시인이다. 그가 민족을 위해 온몸으로 독일군에 저항을 하면서 생생하게 목도한 삶과 죽음의 경험은 그의 서정시 '백학Cranes' 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데, 바로 이 감자또프의 서정시에 곡을 붙여 노래한 이가 러시아의 가수 Losif Kobzon(이오시프 코브존)이다.
정치인이자 경제인으로 까지 성장한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민가수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Chasov Yar의 탄광촌에서 유태계 양친에게서 출생 하였다. 이러한 출생의 핸디캡 때문에 대중에 더 다가가기위해 유태인 姓 Yakobzon을 Kobzon으로 바꾸었다. 러시아의 국립 사범대학(Gnessin Pedagogical Institute of Music) 에서 음악 지도자 교육을 받은 그는1959년 교사가 아닌 대중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후기의 진지하고 비장한 음악과는 달리 초기에는 따스한 사랑노래들 위주였고, 대중적으로 성공하며 입지를 다졌다. 연가를 통해 러시아 최고의 가수반열에 오른 그는 국제무대에 진출, 1964년 불가리아 소포트에서 열린 국제음악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 1966년 항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최우수상, 1968년 골든 오르페우스 국제음악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획득하고, 1966년 소련연방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하는등 동구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뮤지션으로 자리하엿다.
나아가 미국, 이태리외에 남유럽국과 아프리카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공연하며 세계각지에 나가있는 자국의 장병들과 국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세계의 여러 나라에 러시아의 문화를 전하며 국가적으로 외교관이상의 역활을 수행해 내었다.
1984년부터 모스크바국립음악대학(Gnessin Music Academy Moscow)에서 팝 보컬 학부사무처장으로 근무하며 사범대학 출신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했고, 뮤지션으로서 또 사회인사로서 활동하였다. 1987년 그는 '인민 공연예술가'로 선정되었다.
1989년 민선 러시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엇으며 2005년에는 러시아 의회의 문화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Kobzon은 또한 영상사업, 석유 수출업등에서 경영인으로도 크게 활약을 해왔다. 최근에는 러시아 마피아에 연루되었다고 비난을 받고 있기도하다. 그의 음악은 쉽게 소개되지 않는 국내에도 소개되어 1994년 [Cranes(백학)]-1987년작이 뮤직 라인을 통해 라이센스 되었으며, 이 타이틀곡 'Cranes'가 드라마 '모래시계'의 테마음악으로 사용되면서 한국인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멜로디로 남게 되었다.
카프카스(코카서스)
카프카스(코카서스)는 러시아의 남부카스피 해와 흑해사이의 험준한 산악지역이다. 230여 민족이 심한 경우에는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족도 언어도 다를 정도로 '인종의 전시장' 이라고 불리운다. 이를 두고 창조주가 언어를 나누어 줄 때 카프카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람에 그만, 가지고 있던 자루 속의 언어가 쏟아졌기 때문이라고 다케스탄의 위대한 민족시인 감자토프는 해학적으로 말했다. 카프카스인들은 이처럼 언어차이로 크게 분리되어 마치 서로 다른 대륙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보이는 데다가 가끔 서로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카프카스 산악지대의 자연, 풍속, 사랑, 우정을 노래하여 러시아 시단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라술 감자토비치 감자토프 (Rasull Gamzatovich Gamzatov)는 이러한 배경속에서 민족색이 짙은 서정시 백학(zuravli)을 썼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다른 카프카스 전사들과 함께 직접 소련군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대항해 싸운 전사였던 감자토프의 시에는 그 행간 행간에 피에 물든 아픔이 짙게 배어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비극으로, 그리고 영광으로 기록될 광주민주화 운동을 소재로하여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음악으로 등장했던 '백학'이 바로 카프카즈 전사들의 영광된 죽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이들은 현재 러시아에 대항하여 무장 독립투쟁을 하고 있는 체첸의 전사들 지키트들을 기리는 내용이다.
노래말적어봅니다 내게는 이따금씩 다음과 같이 생각되곤 한다. 피비린내 나는 들판에서 돌아오지 않은 병사들이 언젠가 우리 조국 땅에 묻히지 않고, 백학으로 변해버렸다고. 그들이 저 아득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날아다니며 우리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자주 그리고 슬프게 말을 잊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닌가? 우..우..우..우..우.. 때가 오면, 백학의 무리와 함께 나도 저 회청색 안개 속으로 흘러가리라, 하늘 아래 새처럼, 지상에 두고 온 당신들 모두의 이름을 소리소리내어 부르며.나는 가끔 이런생각이 들곤합니다.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