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믿음을 가지고 달려 나가면 하나님이 정말 놀랍게 일하십니다. 저는 1962년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후 하나님께서 제 가족과 친척 한 사람 한 사람 구원으로 이끄신 것을 생각하면 참 감격스럽습니다. 특히 제 아버지는 좀처럼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돌아가시기 3일 전 구원을 받았는데 아버지를 구원으로 이끄신 하나님을 간증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키가 작고 몸도 약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위장이 좋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깨끗이 낫게 해주셨습니다. 1997년부터 심장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청진기를 제 가슴에 대고 맥박 소리를 들어 보면 맥이 뛰다가 5초나 7초 정도씩 뛰질 않는데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국내 병원에서는 병명을 찾지 못했습니다. 기회가 되어 미국의 심장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았는데 현대의학으로는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1999년 페루 리마 실내체육관 집회 때는 심장이 좋지 않아 지하 선수대기실에서 한참 누워있다 설교를 해야 했습니다. 그때는 이제 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해 8월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제 심장을 완전히 낫게 하셨습니다.
군 생활을 이끄신 하나님
구원받고 난 이후 하나님이 제 삶을 하나하나 바꾸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통신훈련소에서 군 생활 할 때 주변 동료들과 제 삶은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군 생활을 힘들어 했고 이를 못 견뎌 탈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군 생활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야간에 외부 침입자를 감시하기 위해 내무반 단위로 불침번을 섭니다. 5일에 한 번씩 순번이 돌아오는데 내무반 동료들에게 “나는 매일 불침번을 설 테니 새벽 4시에서 6시 근무에 편성해 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동료들이 모두 좋다고 했습니다. 불침번은 외부 침입자 감시 외에 크게 할 일이 없어 저는 매일 그 두 시간 동안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매일 훈련 1시간 전에는 조용히 기도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에 주님이 충만했습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위병소를 나설 때 앞으로도 이런 예수님과 함께라면 사하라 사막에서도, 남극에서도 살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구원받은 후 지난 50년 동안 하나님은 작은 것 하나도 외면치 않으시고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성전을 깨끗케 하시듯
저는 올해로 73세가 되었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 강대상에 서는 목사님들은 아마 몇 명 안될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이 강대상에 올라오면서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이번 주까지 서울, 전주, 대구에서 성경세미나를 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세미나에 참석해 구원받고 변하는 것을 보며 참 행복하고 기뻤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고 추했지만 그 더러움과 추함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오셔서 그것들을 다 쫒아내시고 깨끗케 하셨습니다. 이제 성전에는 소 울음소리 대신 기도소리가 들리고, 양 울음소리와 장사치들의 떠드는 소리 대신 찬송과 말씀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의 상태를 그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있는 어둠을 제하시고 기쁨과 감사로 가득하게 하십니다. 제게도 항상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님은 늘 그 모든 것들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공허에서 행복으로
구원받기 전 저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혼돈과 공허,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땅과 같았습니다. 뭔지 알 수 없는 공허함 때문에 저녁이 되면 캄캄한 밤거리를 걸어 다녀야 했고, 친구들과 모여 화투도 치고 남의 밭에서 서리도 했습니다. 하지만 1962년 죄 사함 받고 예수님이 제 마음에 들어오신 후 그 혼돈과 공허, 어둠과 절망이 다 떠나갔습니다. 그 후부터는 제게 어려움이 와도 한 번도 절망하지 않았고 외롭고 공허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선교학교를 졸업하고 사역을 시작하던 시절, 그 지방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중에 하나였지만 제 마음은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주님이 저와 함께하심을 느낄 때 제게 오는 모든 문제는 주님의 문제였고 주님이 그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소홀히 여긴 ‘아간’
여호수아 6장을 보면,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전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수 6:18) 만일 여리고성의 물건 중 하나라도 취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아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간도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간의 마음에 이 이야기가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후 아간은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를 보고 마음이 빼앗겼습니다. ‘야, 이거 너무 멋있다. 나한테 정말 잘 어울리는데. 이건 금덩어리 아니야? 가져가서 나중에 요긴하게 써야겠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없으니 그 물건들을 취하고 싶은 생각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었다면 두려워서 그것들을 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간의 마음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고 자기 생각으로만 가득차 있었습니다. 결국 아간은 그 물건들을 취했고 그와 가족들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종의 인도를 받아야
우리 마음속에서도 아간처럼 수없이 많은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자리를 잡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구약시대에나 인도자가 있었지 요즘 시대에 무슨 인도자가 있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성경과는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라고 하시며 베드로를 목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외에도 신약성경 곳곳에 말씀을 전하는 인도자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육신의 쾌락을 쫓는 사람들은 간섭받기 싫어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우상 섬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선지자들이 그런 사람들을 책망하고 악에서 돌이키도록 이끕니다. 하지만 바알이나 아스다롯 같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우상이 아무 런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면 제멋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나님의 종을 통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인도받기 싫어하고 말씀을 소홀히 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이야기들과 다릅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듣는 사람의 믿음의 수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그래서 종종 저에게 “목사님, 설교 하실 때 너무 같은 이야기만 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제가 같은 이야기를 백 번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자리 잡으면
오늘날 한국 교회의 수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에 매여 고통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사했다는 말씀을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에 확실한 믿음으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지 못하고 이론적인 지식으로 알면 죄의 두려움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했다는 말씀이 우리 마음에 믿음으로 자리 잡게 되면 우리는 죄에서 해방됩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과 가까워지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작은 어려움이 생겨도 하나님께 의지하여 하나님이 살아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두려움은 죄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가운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누구나 기도를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마음과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의 마음은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기도한 후에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겠구나’ 하며 평안과 기쁨, 소망이 생깁니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나 괴로움은 모두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으면 그 두려움 때문에 큰 사고를 저지를 수 있고, 우리 마음에 있는 미움 때문에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면 그 낙심이 삶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마음이 어떤 일을 일으키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움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가난해질까 봐 두려워서 도둑질하고 그 죄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거나 살인까지 하게 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그냥 ‘살인해라’가 아니라 두려움을 주어서 죄를 짓게 합니다.
말씀이 영원한 생명이 되고
아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를 잡았더라면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가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것을 취하지 않았을 것이고, 금덩어리와 은을 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말씀이 없기 때문에 유혹을 물리칠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가 탐이 나고 금덩어리를 탐내게 되는 것입니다. 아간이 아골 골짜기로 끌려갈 때 아들딸도 끌려가고 아내도 끌려갔습니다. 아들이 끌려가면서 뭐라 그랬겠습니까? “아빠! 왜 금덩어리를 취했어요? 왜 금을 가져왔어요? 그래서 우리가 다 죽잖아요!” 결국 여호수아의 말대로 온 가족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아간이 물건을 취하게 된 것은 표면적으로 탐심 때문에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깊이 사고하지 않아서 ‘내게 말씀이 없어서 죄를 지었구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없어서 두려워했구나. 내가 욕망을 가졌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느날 제게 들린 성경 말씀 한 마디가 영원한 생명이 되고 말씀 한 마디가 제 삶을 바꾸고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저주를 물리쳐 주고, 고통을 물리쳐 주고, 재앙을 물리쳐 주고, 멸망을 물리쳐 주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걸 모르는 사람들은 말씀을 소홀히 여깁니다.
뉴욕 할렘에서 구원을 받다
미국 뉴욕에서 사역하고 있는 제 아들이 최근 맨해튼구에 있는 할렘에 예배당을 얻어 전도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할렘은 뉴욕 최대의 흑인 거주지로 마약과 범죄가 끊이지 않는 아주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빈민가입니다. 그곳에 뉴욕교회 형제자매들이 전도지를 돌리고 집집마다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렘의 어두운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아무도 자기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 날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서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자매는 그들을 통해 구원받았다고 간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형제자매들에게 할렘에 가면 위험해서 생명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할렘에서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랜기간 할렘에서 전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 한 명도 다친 사람이 없고 오히려 여러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월간 기쁜소식지에 실린 할렘에서 구원받은 자매의 간증을 읽으면서 무척 감격스러웠습니다. 그 자매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를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친구가 없는 슬픔과 공허함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집을 방문한 형제자매들의 인도로 세미나에 참석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인 자매의 마음에서 슬픔과 괴로움이 사라졌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우리 마음을 바꾸고 행복을 가져옵니다.
말씀이 없는 사울
사무엘상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울을 세워서 왕을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암몬 사람 나하스와 전쟁에서도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자신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으면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왔을 때는 오히려 두려워했습니다. 사무엘상 14장을 보면, 블레셋이라는 형편을 보고 사울이 전쟁에 나가지 못하자 그의 아들 요나단이 하나님을 의지해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그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상 15:2~3) 하며 하나님의 종 사무엘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사울의 마음에는 이 말씀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따라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에 이끌림 받아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에게 기쁨과 영광,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사울 왕이 아말렉을 치고 그들을 진멸했습니다.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상 15:7~9) 하나님의 말씀에 아말렉을 다 치라고 했으면 아각 왕도 쳐야 되고 양과 소의 기름진 것도 치고 마른 것도 쳐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각 왕도 죽이지 않았고 양과 소의 좋은 것과 기름진 것이 탐스러워 남겼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삼상 15:10~11)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생각을 따라 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울의 생각이었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오늘날 이런 사울의 모습을 통해 성경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 55:8)라며 우리 중에 누구도,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면 그 말씀과 우리 마음이 합쳐지면서 하나님이 일을 하십니다. “난, 아무리 말씀을 봐도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지 않고 말씀만 보이네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교회에 오셔서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먼저 종에게 당신의 뜻을 보이시고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세상의 학문을 배웠지만 하나님의 뜻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제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겠습니까?”라고 자주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으면서 성경의 이야기로만 알지 말고, 지금 목사님이 전하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아, 저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구나. 오늘 목사님이 이런 뜻으로 이야기하시네’ 하며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우리가 죄악으로 흘러가려고 할 때, 우리를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말씀은 생명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 말씀은 생명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말씀의 인도를 받으면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이 도우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여러분,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생각을 따라 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전쟁터에서 적으로부터 날아 오는 칼과 창, 활을 하나님이 막아주시지 않아서 그는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받아들이면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