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산
남원 만행산 (909.6m)
남원의 바위 명산
원래 학교나 직장이나 집 가까운 사람이 지각한다고 했던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사는 내가 들머리에 도착했을 땐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따뜻한 날씨에 살랑대는 봄바람람을 맞으니 조금 더 여유를 부려도 되지 않을가 싶은 게으름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 까닭이다. 하지만 그런 여유로움도 잠시, 용평저수지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버스 두 대를 보고선 걸음을 서두른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100여명 산악회원들, 그들과 섞여 이 봄날의 여유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용평지 주차장에서 보현사 방향으로 300m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상사바위 안내판이 새롭게 서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금속안내판이었는데 그에 비해 훨씬 깔끔해진 모습이다. 하지만 그 아래 옹벽에 시뻘건 글씨로 '상수원 출입통제', '등산로' 하고 적혀 있어 움찔하게 만든다. '이거 들어가란 소리야? 들어가지 말란 소리야?'
용평저수리를 뒤로하고 시골길 마냥 편안한 산책로가 15분 정도 이어지고, 곧이어 삼거리다. 오른쪽은 능선을 통해 천황봉으로 오르는 지름길이고 왼쪽은 계곡을 따라 상사바위로 올라서는 길이다. 만행산에서 상사바위를 거치지 않고 정상에 오르는 것은 지리산에서 노고단이나 반야봉을 거치지 않고 천왕봉을 오르는 것과 같다. 맑은 계곡과 소나무숲이 우거진 왼쪽 산길을 따른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몇 분 오르니 다시 갈림길을 만난다. 표지기가 많이 붙은 오른쪽 길은 계곡을 따라 상사바위 바로 아래 삼배재로 올라서며, 왼쪽은 능선을 조금 더 돌아가는 길이다. 어느 족으로 갈까 고민하는 사이 뒤따르던 산악회 무리가 계곡길로 방향을 잡는다. 시끄러운 소음을 감내하며 오를 자신이 없어 우회하는 능선으로 접어든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는 계곡과 달리 능선길은 처음부터 가파르다.
주능선을 얼마 남기지 않고 오른쪽에 멋진 바위전망대가 나타난다. 소나무 몇 그루를 헤치고 바위전망대에 올라서니 웅장한 상사바위 모습과 삼각뿔처럼 솟아오른 천황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양탄자를 갈듯 녹음이 산 전체를 뒤덮어가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로 곧장 올라설 줄 알았던 산길은 봉우리를 우회해 오른족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상사바위가 있는 북동쪽 능선으로 곧게 뻗어 있다. 헬기장으로 내려서자 상사바위의 웅장함이 눈앞에 그대로 드러난다. 대부분이 육산인 이곳에서 상사바위는 가녀린 여인을 지키는 장군처럼 우뚝 서있다. 상사바위의 웅장한 모습은 상사부이 위쪽 봉우리를 지나 바로 아래 무덤에 이르러서야 진면목이 드러난다. 수십 미터는 됨직한 우람한 덩치와 깎아지른 절벽의 아찔함, 이 모든 것은 상사바위의 서쪽 능선에서 봐야 한다.
'상으로 내려준 바위' 라는 의미의 상사바위는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임금에게 상소를 올린다는 상소바위, 상사롭다는 의미 혹은 남녀의 정을 이야기하는 상사바위 등으로 불린다.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남원시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상서바위' 라고 적고 있다. 그 유래나 전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상으로 내려준 바위' 라는 이야기가 정석이 아닐까 한다.
상사바위에서 천황봉까지는 평범한 산길이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 난 길 위로는 간간이 바위가 노출되어 있어 무덤이 많이 눈에 띈다. 예부터 이곳이 명당이라는 소문이 퍼져 무덤을 많이 썼다고 한다. 능선길은 천황봉을 200m 남기고 보현사 하산로와 만난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활짝 열린 조망에 가슴이 탁 트인다. 팔공산과 장안산, 백운산, 월경산이 조망되는 것은 물론 지리산 100리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원 북동부에서 제일 높다보니 주변 산에서는 견줄 곳이 없고 멀리 희뿌연 백두대간 마루금과 우열을 견줄 정도다. 천황봉은 이처럼 뛰어난 조망과 접근의 편리성으로 새해 일출산행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하산은 보현사로 한다. 왔던 길을 되돌아와 삼거리 이정표에서 서쪽 능선으로 방향을 잡는다. 한참을 능선을 따라 내려서던 산길은 어느새 계곡으로 접어들고 물 구경하기 여러울 꺼라 예상했던 마른계곡을 따라 내려서니 지표면을 뚫고 나온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른다.
아직은 오월, 오래 참기 힘든 차가운 계곡에서 땀을 식히고 40여분 내려서자 넓은 임도를 다시 만나고 출발했던 보현사가 저만치 눈앞에 마중을 나와 있다.
*산행길잡이
용평저수지-(50분)-전망대-(15분)-헬기장-(5분)-상사바위-(50분)-천황봉-(50분)-용평저수지
만행산은 남원 보절면과 산동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만 가지 고행 속에 진리를 얻었다는 뜻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는 천황산이라 표기돼 있지만 보절면에서는 만행산이라 불리며, 천황산이라는 이름보다 더 오랫동안 지명으로 사용되어 왔다.
사방으로 뚫린 시원한 조망 덕분에 사시사철 산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데 5월부터 진달래와 철쭉이 온통 붉은 빛으로 산을 가득 수놓는다. 봄뿐 아니라 여름에는 짙는 녹음으로, 가을에는 단풍, 겨울이면 눈꽃이 산꾼들을 유혹한다.
용평주차장에 세워진 등산안내도에는 남원시에서 지정한 4개의 등산 코스 말고도 귀정사나 상신마을로 내려서는 길도 안내하고 있다. 대부분은 보현사에서 출발해 보현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하거나 보현사에서 시작해 귀정사까지 산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에 세워놓은 이정표가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식수는 보현사에서 구할 수 있으며 그외 해발 500m 정도까지는 계곡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교통
기점은 남원이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남원행 기차가 하루 15회(06:50~22:50) 있고 센트럴시티(06:00~22:20), 동서울터미널(09:00, 10:00, 15:20)에서 버스가 다닌다. 서울-전주간 수시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 후 남원으로 이동해도 된다. 남원시내에서 용평까지 171번 시내버스가 하루 5회 운행한다.
자가운전시 88고속국도 남원나들목에서 함양 방면으로 이동, 남원소방서 식정 119센터 지나 갈치삼거리에서 좌회전, 721번 지방도를 타고 황벌교 지나 우회전, 도촌마을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용평저수지와 보현사가 나온다.
*잘 데와 먹을 데
만행산 주변에는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으므로 남원시내로 나와 숙박하는 것이 좋다.
남원추어탕은 설악추어탕과 더불어 전국에 유명하다. 촉석루 주변으로 추어탕집이 밀집해 있다. 부산집(063-632-7823), 남원추어탕(625-3009), 그외 백제한정식(634-3535), 마당골(633-3252) 등이 있다.
*볼거리
혼불문학관 현대문학의 새 지평을 연 소설 <혼불>은 작가 최명희가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17년간 혼신을 바친 대하소설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몰락해가는 한 양반가 며느리 3대를 통해 그 당시의 힘겨웠던 삶과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해 내었다. 혼불문학관은 작품의 배경지인 사매면 노봉마을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으로 혼불의 주무대가 되는 종가, 노봉서원터, 호성암, 서도역 등이 있다. 문학관 내부에는 고 최명희 작가의 집필실과 소설의 내용을 형상화한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하늘별마을 만행산천문체험관 천황봉 자락의 하늘별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2007년 개관했으며 7명의 천문지도사가 있으며 실습용 천체망원경 18대, 대구경 16인치 천문관측망원경 등 다양한 천문관측기자재를 보유하고 잇다. 예약제로 견학프로그램을 운형하고 있는데 당일 2만원, 1박2일 4만원의 체험비를 받고 있다. 063-626-9009, 011-9647-6308.
글쓴이:전재완
참조:만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