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올리기에 앞서 청해진해운 사고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더불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아직 신원불명인 많은 분들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깊이 염원합니다.
상주시내에서 나온 후, 정말 많은 곳을 거쳐갔다.
사벌왕릉과 자전거박물관 경천대까지 중간중간 볼만한 것들이 꽤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깔끔하다고 쓰고 인공적으로 읽어야 하는 낙동강은 별 멋이 없었지만,
평범한 시골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분위기와 박물관에 전시된 많은 자전거 등등 전체적으론 그냥저냥 괜찮았다.
그러고 간 곳은 풍양.
낙동강에 둘러싸인 조그만 마을로서 그 흔한 4차선 길조차 없는 시골이다.
허나 상주, 문경, 예천, 안계로 가는 중간 길목이어서인지 나름대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동네이기에,
이 조그만 마을에도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개발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은 이 곳에서,
보다 따스하고 푸근한 손길을 맞으며 걸어갔다.
풍양이라는 동네는 '풍양 조씨' 때문에 처음 알게 되었다.
현재 지명으로 남아있는 곳이 여기와 고흥뿐이라, 처음엔 여기가 풍양 조씨의 동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보니 남양주가 풍양조씨의 고장이었고 여기는 그저 흔한 시골일 뿐이었다.
실제로도 그렇다. 어찌나 개발이 안 된지 면사무소와 시장이 있는 삼거리조차 죄다 1차선 골목이다.
사진으로 봐도 알겠지만, 절대 오타를 친 것이 아니다. '1차선이다'
이름없는 조용한 버스정류장은 중심가에서 도보 3~4분 거리에 붙어있다.
워낙 가깝지만 동네도 그만큼 작아서 거의 마을 끄트머리에 있다.
하기사, 이렇게 길이 안 좋은데 버스들이 중심가까지 들어왔다 나가려면 엄청난 카오스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할 터.
저 멀리서 이름 모를 시내버스가 한 대 들어오고 있다.
풍양정류장은 공식 이름이 붙어있는 것도 아니다. 동네가 풍양이니까 그냥 풍양이라고 부르는 것 뿐이다.
1층까지 단층 건물이지만 위에 가건물을 올린 2층 형태로 되어있는데,
대구 사는 사람에게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라이온스클럽'도 보인다.
이런 곳에 라이온스클럽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지역 유지가 이런 곳에도 적잖이 계시나보다.
이렇다할 선도 없는 주차장이지만 언제나 넉넉하다.
버스의 쉼터일 뿐 아니라 일반 자가용이 멈췄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동네의 위치가 참 애매해서 문경, 상주, 예천, 의성과 모두 붙어있는데 그 중 의성을 제외한 동네는 모두 낙동강 건너 마주보고 있다.
예천군에 속하지만 남쪽 끝에 혹처럼 튀어나와 있는 곳으로서 오히려 문경, 상주와 더 가깝다.
하필 운이 좋게도 문경, 상주, 예천의 세 지역 시내버스가 모두 들어와 있었다.
단조로운 파란 색상의 '시내버스'와 다르게 예천'군' 버스는 컬러풀한 이미지로 다니고 있다. 차급도 제일 좋다.
나름대로 예천 소속이라고 프리미엄 한 장 얹어준 것일까나 모르겠다.
먼지가 수북히 쌓인 자판기 한 대와 시골 슈퍼다운 철제 여닫이 문이 우릴 반겨준다.
평범한 시골 슈퍼같지만 이래뵈도 버스정류장 대합실로 들어가는 입구다.
그 어떤 동네건 돌아다니는 사람은 안 보여도 건물 안에는 꼭 사람이 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려고 잠시 앉아있는 어여쁜 학생 두 명이 있었다.
여름의 상징 단상과 겨울의 상징 난로가 함께 붙어있고, 위에는 예천 홍보물 여러 개가 있다.
TV와 화초는 물론이고 각종 주방용품, 심지어 폐지도 쌓여있다.
말로 정의를 못할 생김새다. 정류장의 기능은 하고 있지만 집 안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거기에 조그만 가게까지 함께 운영하시기까지 한다. 아마 저 문 안으로 들어가면 주인장께서 먹고 자고 하시는 공간이 나올 것이다.
도시에만 사는 사람들은 무척 낯설겠지만 시골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다.
뜨끈뜨끈한 연탄난로를 옆에 두고 주인 분께서는 마늘을 까고 계신다.
워낙 조촐하고 그래서 찍기 전에 미리 물어보는 것은 예의이자 기본. 쿨하게 허락하시고는 다시 마늘을 까신다.
한창 칼질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표를 팔고, 먹을걸 집어오면 계산도 하신다.
여기서는 버스의 이름조차 바뀌어 있다. 시외버스는 고속버스, 시내버스는 완행버스가 된다.
시외버스는 거의 99% 서울(동서울) 아니면 대구(북대구)행이다.
동서울행은 대부분 안계에서 출발해 풍양-점촌을 거쳐간다. 여기서 직통으로 가는 노선은 없다.
대구행은 반대로 여기에서 출발해 안계-도리원-군위-효령 등을 거쳐간다.
워낙 손님이 적은 동네답게 두 노선 모두 중간경유가 많은데다 북대구행은 전구간 국도경유여서 시간도 꽤나 걸린다.
그런데... 산림? 직신? 처음 들어보는 동네일 뿐더러 (풍양→안계방면에 있는 마을입니다),
따로 적혀있을 만한 동네도 아닌데다가 중간 경유라면 다른 노선과 시간표가 겹쳐야 할텐데 그렇지도 않다.
제대로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직까지 알쏭달쏭하다.
시내버스는 '완행버스'라는 이름으로 안내해준다.
여러 지역과 맞물려있는 특성상 행선지가 다양하진 않아도 중심지로 쏙쏙 들어가는 노선이 많다.
아직 여기서도 종이승차권을 직접 뜯어 도장을 쾅쾅 찍어주는 식이다.
사진을 찍고 하면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었던 가슴 따뜻한 기억.
내용은 잊었어도 그 때의 좋은 추억만큼은 아련하게 남아있다.
연탄과 LPG가스로 난방을 하는 일반 주택이자 매점이자 버스정류장인 이 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곳이지만, 지역 주민들조차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여기가 혹여나 없어진다면 과연 풍양 주민들은 어찌 되려나.
소중한 존재들이 주변에 있을 때는 고마움을 모른다.
그래서 쉴새없이 불만을 내뿜고 때로는 싸우고 연락조차 안 할 때도 있다.
있는게 너무 당연하니까. 아니... 당연한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잃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 사람이 소중했다는걸... 그 존재가 가치있었다는걸...
이름 없는 버스정류소일 뿐이지만 그 누구 못지않게 소중한 공간.
있어서 고마운 정류소, 풍양버스정류장을 다시 되돌아본다.
첫댓글 사진과 글 잘 보고 갑니다.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풍양에 있었을 때는 정말 훈훈하고 좋은 감정밖에 없었는데, 요새 겪는 일들이 감당하기 너무 힘들어서 상당한 괴리감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두서없는 글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담하고 소박한 간이역들은 근대문화재로 지정되어서 옛정취그대로 보존하려고 하는데,, 이런 간이터미널들은 그저 황량하고 낙후되어만 가는게 안타깝네요....
간이역에 비해 관심이 떨어지는게 안타깝긴 합니다만, 아직 대부분의 정류장들은 멀쩡히 운영되고 있고 그 정도의 역사를 지닌 곳도 거의 없으니... 어쩔 수 없죠
풍양 다인 안계. 동서울 노선때문에 알게 된 지역인데
이렇게 맥시멈님의 사진으로 보는군요. 잘 봤습니다^^
정말 생소한 지역이지요. 감사합니다.
대단하다는 느낌 받았습니다.
늘 생소하지만 따스한 소식 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힘드시겠지만 기다리는 독자 생각해주시길요.
ㅎㅎㅎㅎ
잘 읽고 갑니다.
늘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천천히 기다리시면 꾸준히 올라올겁니다. :)
예전 예천군여행다녀오면서 들린지역입니다.풍양면과지보면은 예천의정취가묻어나있는지역이죠..잘보고갑니다
따뜻한 시골인심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시간이 멈춤 곳 편안하고 잘 보았습니다.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참 잘보았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곳...없으면 불편한...인심이지요. 그래도 시골 인심은 그렇지않아야 될텐데..
시골 인심도 예전같지 않다지만 저기만큼은 예외였습니다. ㅎㅎ
동서울에서 직접갈수있는 곳에 저런 곳이 있다니..
시골의 푸근한 모습을 잘간직하고 있는 것같네요..
좋은 글 사진 잘감상했습니다^^
시간 되면 한 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근처에 구경할 곳도 많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