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학사로 보는 세상] 환경 파괴가 불러온 신종 질병
2023.07.11 13:19
●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구제역의 공통점
수년 전까지 구제역이 유행하여 돼지사육농가를 혼란에 빠뜨리더니 최근 몇 년간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농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감염병에 걸렸다는 사람은 볼 수 없지만 수시로 매스컴에 등장하는 것은 사람과 달리 돼지에게는 아주 큰 피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피해가 생긴 것도 아니지만 감염병은 언제든 변이될 수 있으니 발생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돼지에게는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구제역의 경우 예방백신을 접종하기도 하지만 일단 병이 발생했다 하면 현재 취하고 있는 조치는 병이 발생한 돼지가 있는 농장의 모든 돼지를 살처분하는 것이니 수십년 전만 해도 전혀 상상치 못한 엽기적인 방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에 조류독감이 우리나라에 처음 전파된 후 닭이나 오리의 감염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땅을 파고 대량으로 살아 있는 닭과 오리를 묻어버리는 비인간적인 방법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는 지켜볼 수 없는 일”이라거나 “동물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성찰을 하게 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나 구제역이 발생하면 살아있는 돼지를 땅에 묻는 방법으로 대량 살상하는 것은 끔찍할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실행을 어렵게 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구제역의 공통점은 돼지에게 전파되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병이고 돼지는 피해가 크지만 사람에게서는 감염병을 일으키지 않으며 바이러스가 발견된 주변 농장의 돼지를 살처분하고 이동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신석기시대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가축을 기르는 일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축농장에서 좁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한데 몰아넣고 대량으로 사육을 하다 보니 밀도가 높아서 감염병 발생시 전파가 아주 용이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높지 않은 밀도를 유지하면서 자연에서 살다 보면 감염병의 전파도 쉽지 않을 텐데 좁은 공간에서 가축을 사육하다 보니 감염병이 한 번 유행했다 하면 몰살될 수도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것이다. 돼지에게서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나자 더 큰 전파를 막기 위해 살처분이라는 조치가 취해진 것은 인간이 발전시킨 대량사육시설도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된다.
● 멧돼지와 사람이 마주치는 이유
최근에 뜸한 듯하지만 멧돼지의 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수시로 전해지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감염된 돼지의 분비물에 포함된 바이러스를 통해 다른 돼지로 전파되며 고병원성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치사율은 거의 100%에 이를 정도로 돼지에게는 치명적인 감염병이다.
고병원성이 아닌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 감염된 상태로 만성에 이르게 되면 치사율은 20% 정도까지로 떨어진다. 다행이라면 돼지 이외의 동물과 사람에게서는 발생된 바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때로는 주택가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한다. 온순한 집돼지와 다르게 사나운 멧돼지의 공격을 받는 경우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으니 문제가 된다. 어디에서든 멧돼지와 마주치면 위험에 빠질 수 있으므로 얼른 몸을 감추고 119 등에 신고를 해야 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지금은 사람에게 발생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사람에게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변종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또 멧돼지 몸에 붙어 있는 물질이 사람에게 접촉성 피부염이나 알러지(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멧돼지가 지닌 미생물 병원체가 사람으로 전파되어 새로운 감염병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멧돼지가 사람의 공간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멧돼지 개체수가 증가하자 서식지가 좁아져 새로이 더 넓은 서식지를 마련하려는 과정에서 행동반경이 넓어지다가 사람의 영역에 침범했다.
둘째, 개체수의 증가와 함께 먹잇감을 구하기 어려워져서 먹이를 찾아 헤매던 중 사람의 영역에 침범했다. (먹잇감 감소의 이유로는 지구환경의 변화를 들 수도 있으나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셋째, 전세계적으로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지구에서 차지하는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 사람과 멧돼지가 서로 만날 기회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2015년 낙타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되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일으킨 것처럼 돼지가 가진 미생물 병원체는 언제든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 멧돼지를 비롯하여 동물과 접촉이 잦아지는 것은 사람이 환경과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지구 구석구석을 지속적으로 파괴해 가는 현재의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새로운 감염병이 전파될 가능성은 점점 커지게 된다.
● 사람은 지구의 일부분일 뿐 주인이 아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지구의 주인이라 믿어 왔다. 그러나 자연의 위대함을 감안하면 사람이 주인이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인류의 질량을 모두 합하면 지구 역사상 어느 한 종이 이렇게 많이 산 예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인류는 지구의 지배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지배자는 공룡이 그랬던 것처럼 지구에 격변기가 있을 때마다 몰살되곤 했다. 현재의 기후위기가 지구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을 예상하면 인류가 멸종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는 멸망하더라도 과거의 큰 자연변화에서 살아남은 미생물이 모두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하지 않는다면 미생물은 생존할 것임이 확실하다. 사람이 사라진 지구에 외계인이 방문하여 지구의 역사를 조사한다면 “인류라는 종족이 지구에 잠깐 살다 가면서 환경을 많이 파괴했구나”라는 평가를 할 것이다.
인류는 지구 역사의 1/1000~1/10000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잠깐 살다 사라진 존재일 뿐이지만 외계인들은 지구 역사 전체 기간의 약 80%에서 계속 생존하고 있는 미생물이 지구의 주인이라 여길 수도 있다.
인류 멸망 후에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은 지구의 주인이 인류라고 하지 않겠지만 기후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뻔히 알고 있는 인류는 후손들의 위험을 무시한 채 지금도 아마존 밀림을 파괴하고 분해되지 않는 일회용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면서 지구를 데우고 있다.
오늘날 ‘지구온난화’를 넘어서 ‘기후위기’라는 용어가 사용될 정도로 지구온도가 높아지는 것은 46억년간 지구가 경험한 큰 변화, 즉 혜성 파편의 침범이나 거대한 화산 폭발과 버금갈 정도로 예견되고 있다.
지구온도의 상승은 인류가 편리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문명을 발전시킨 것이 지구 환경의 파괴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더 즐겁고, 편리한 생활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류는 자신도 모르게 지구를 파괴해 왔고 이제는 서서히 비가역적인 수준으로 지구를 바꿔 놓고 있다.
● 새로운 감염병이 몰려오는 이유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감염병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류가 태어나자마자 수많은 미생물이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했고, 인류에게 해가 되는 병원체가 수시로 생겨나 감염병이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위협하곤 했다.
유사 이래 지금까지 수시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말라리아, 14세기에 중세유럽을 멸망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간 페스트, 19세기에 인도를 벗어나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콜레라, 제1차 세계대전 말미에 발생하여 전쟁으로 인한 피해 이상으로 인류에게 피해를 입힌 독감, 최근의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감염병은 수시로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곤 했다.
이외에도 두창, 발진티푸스, 한센병, 결핵 등 다양한 감염병이 인류 역사에서 수시로 인류를 괴롭혔지만 위생상태 개선, 백신 개발, 영양상태의 호전은 감염병 예방에 큰 도움이 되었고 치료약의 개발은 일단 병이 발생한 후에도 치료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터 놓았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해결가능한 감염병이 별로 없었는데 20세기의 의학발전은 거의 모든 감염병을 해결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역사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감염병이 수시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1976년에 미국에서 레지오넬라증(재향군인병), 아프리카에서 에볼라열이 발견된 것을 비롯하여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마르부르크열, 유행성출혈열, 웨스트나일바이러스감염증, 조류독감,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지카바이러스감염증,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등 새로운 감염병은 수년이 지나지 않아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인류는 처음 만나는 감염병이지만 동물에게서는 이미 그 병원체가 익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물이 가진 미생물 병원체가 사람에게 침입하는 것이 새로운 감염병 발생의 가장 큰 이유다.
동물이 가진 병원체가 최근에 사람에게 전파되어 새로운 감염병을 일으키는 것은 환경 변화가 가장 큰 이유다. 사람과 동물의 서식지가 겹치지 않으면 서로 접촉할 기회가 없을 텐데 자연환경 파괴, 미지의 지역 탐험, 사파리 관광 보편화 등 사람과 동물이 마주칠 기회가 잦아지는 것이 새로운 감염병 탄생의 가장 큰 이유다.
넓게 보면 인간의 탐욕이 환경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새로운 감염병 등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환경을 변화시키지만 그 변화는 결국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새로운 병을 전해 주게 된다. 따라서 자연의 섭리가 무엇이며, 자연의 일부일 뿐인 사람이 어떻게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이로운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 참고문헌
1. 데이비드 쾀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강병철 역. 꿈꿀자유. 2022
2. 세계보건기구 홈페이지(www.who.int)
3. 이시 히로유키 등.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이하준 역. 경당. 2003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교수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돼지 심장’ 이식받은 두번째 환자 6주만에 사망
돼지 신장 이식한 원숭이, 최장 생존 기록 썼다
돼지 신장 받은 원숭이 세계 최장 생존...국내 연구진, 잇따라 기록 갱신
미승인 유전자변형 ‘돼지호박’ 2종 유통…정부, 전량 수거·폐기
#돼지#아프리카돼지열병#구제역#인류#감염병
올여름 폭염 우려...'더워 죽을 것 같은' 온도는 몇도일까
정부 "그로시 총장 발언, 후쿠시마산 수산물 섭취 괜찮다는 뜻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