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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편 문학소비와 문학접수 및 평론
제 1 장 문학소비와 문학접수
제 1 절 문학소비와 접수의 함의
1, 문학소비와 접수의 함의
문학소비와 문학접수란 대체상 20세기에 흥기하여 류전된 현대 문학리론술어로서 기실 전통적문예학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고있는 문학흔상, 문학감상으로서 의미상 크게 차이가 없는바 모두 독자의 열독활동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문학소비와 문학접수는 내재적의미상에서 다소 구별되고있다.
우선 문학소비는 물질적소비와 정신적소비의 2중성을 띠고있고 문학접수는 순수 정신문화범위에 속하는 활동이다. 문학소비는 사회 정신산품소비로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성소비이다. 문학소비는 열독행위와 비진행상태의 열독활동의 소비행위도 포괄하지만 문학접수는 열독 혹은 흔상하는 정신활동이다.
문학소비와 문학접수의 주객관적조건에서도 구별되고있다. 문학접수는 문학흔상을 포함해 독자를 중심으로 하고 문학흔상은 작품을 중심으로 한다. 문학접수에는 창조성과 대화성이 있다. 접수자의 심미심리결구는 독특성과 편애가 현시되는 개인성과 공공성, 상호간의 소통성과 침투성으로 형성되여 있다.
문학접수는 심미활동이면서도 인식활동으로서 문화가치에 대한 천명활동이라 할수도 있다. 문학접수의 문화가치해석은 다방면인데 우선 한부의 문학작품의 해독을 통하여 작품에 반영된 어느 한시대, 한지구, 민족의 민속풍습 등을 해석할수 있으며 그로써 인식범위를 넓히고 가치함량을 높이게 된다.
그리고 문학작품아 담고있는 사회학, 력사학, 정치학가치 등등의 내함에 대한 해석도 문화해석가치의 중요한 요소이다. 문학작품속에 담긴 종교가치는 문학의 문화가치중에서 비교적 중요하고 심층적인 해서가치이다. 문학작품의 문화가치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심각한 내함은 철학가치이다. 철학가치는 때로 종교가치와 얽히게 된다.
문학적대화는 심미교류활동으로서 주요하게 네개 방면에서 대화 가 진행된다. 즉 독자와 작자의 교류, 독자와 작중인물의 교류, 독자와 다른 기타 독자들 사이에서의 교류, 독자와 작품속에 펼쳐지고 있는 자연이나 사회 나아가서 전인류적교류 등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문학접수동기는 각양각색일수 있다. 이를테면 심미동기, 지식을 얻으려는 동기. 교육받으려는 동기 등이다.
접수미학의 시점에서 말할 때 한부의 문본이 완성된후 독자가 접수하기전에 벌써 그 앞에는 숨어있는 독자가 있다. 숨어있는 독자란 작가 본인이 설정한 문본에 구체적인 예상독자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자기 작품이 세상에 나온후 가능하게 나타나거나 마땅히 있어야 할 독자로서 이런 예상은 어떤 때에는 작각적이고 어떤 때에 는 가능하게 그리 자각적이 아닐수도 있다.
기실 작자의 창작동기를 촉발시키는것은 문본속에 숨어있는 독자 들이다. 자기가 쓰는 글이 일기가 아니고 세상에 발표할것을 전제로 하고 쓰는 글이라면 미래의 독자를 예상하지 않고 제멋에 겨워서 창작하는 작가란 없을것이다. 즉 작가로 말하면 작품의 대상이 창작 과정에 시종 동반되고 그만큼 적극적으로 창작에 참여한다는 말이다.
문학흔상이란 바로 흔상주체가 자기의 전부의 경험으로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체험하고 재창조하는 정신활동으로서 문학적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됨을 의미한다. 문학적대화가 시작되기전에 독자는 자각적이거나 비자각적인 어떤 심리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이것을 접수심경이라 한다.
접수심경이 형성되는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현실생활속에 인간은 시종 일정한 정서상태에 처하기 마련이다. 문학흔상활동이 시작될 때에도 생활속에 정서상태가 홀연 중단될수는 없는바 열독과 정에 따라들어가서 열독효과에 영향준다. 접수심경에는 희열, 우울, 정숙 이 세가지 정황에 처해있을수 있다. 접수심경의 형성은 사회 생활과 개인의 조우에서 유발된 각종 정서와 유관된다. 이런 접 수심경속에 기대시야라 부르는 열독심리지향이 맹활약하고있다.
기대시야는 접수자가 접수과정에 들어 가기전에 이미 가지고있던 접수객체에 대한 타산과 기대를 말한다. 혹은 리해전의 심리상태이다. 기대시야에는 작품의 예술형식과 심미특질 등에 기대를 가지는 문학 적기대와 작품의 생활내함과 사상의의 등에 기대를 가지는 생활기대 가 있다. 그리고 자기에게 어떤 유익점을 줄수 있겠는가 하고 미리 예산하고 문학대화에 림하는 가치기대가 있다.
문학작품의 모종 류형 혹은 형식특징에서 인기되는 기대지향인 문체기대도 있는데 이런 지향은 특정된 문체가 자신이 바라는 모종의 예술운치와 매력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희망을 의미한다. 작품속에 특정된 모종 형상에서 인기되는 기대지향도 있다. 이 기대는 독자가 처음 접촉하는 형상과 정경을 희망하는것을 의미한다.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면 인물의 성격특징 혹은 특정된 정서적분위기의 현시에 시종 깊은 감동을 받는다.
독자가 작품의 보다 심층적인 의미, 정감의 경계, 인생태도, 사상경향 등에 대해 기대하는 의미기대도 있다, 그리고 열독경험 기대시야도 있는데 생활실천과 문화교양에서 형성된 세계관과 인생관 이나 이미 형성된 심미취미, 정감경향, 인생추구, 정치리념 등등을 말한다, 열독경험기대시야에는 개체성기대시야와 집체성기대시야가 있다. 전자는 일반 독자의 기대시야이고 후자는 전문 연구와 비평에 종사는 특수독자들의 기대시야이다.
문학의 심미속성은 문학활동의 기타 문화속성의 기초이다. 바로 그때문에 독자들은 돈을 팔아가면서 기꺼이 문학작품으로 자기의 생활지식을 풍부히 하고 리지와 지혜를 계발하려 하려 한다. 그러나 문학접수는 무엇보다 먼저 미적향수를 주기에 미적속성을 구비하고 있으며 그래서 곧 문학접수가 일종의 심미활동이 되는것이다
문학작품ㅡ대화의 내용이 접수객체에게 의의있는것이 되자면 우선 독자의 열독호기심을 만족시켜야 하고 그것을 보증해주는 가독 성, 리해성이 있어야 하며 독자의 예술취미에 딱 맞아야 한다. 문학 흔상의 고조에는 공명감, 관념의 일치성, 정감경험의 동조, 의지와 념원의 접근과 친밀성 등이 있다.
공명이란 문본에서 발산되는 사상감정, 리상, 념원 및 인물의 운명적인 조우에서 산생된 강렬한 심리감응이다. 관념의 일치란 바로 독자의 기대시야속에 사상관념과 작가 혹은 작품속에 인물의 사상관 념과 통하는 무엇이 있어 공명이 생기는것을 말한다. 정감경험의 동 조란 독자의 기대시야속의 정감경험과 작가 혹은 작중인물이 겪고있 는 정감경험과 비스하다고 느껴져서 공명이 생기는것을 말한다. 의 지와 념원의 접근이란 독자의 기대시야속에 의지와 념원이 작자 혹은 작중인물의 의지와 념원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생긴는 공명이다.
2. 문학생산과 소비
접수미학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문학작품을 한부의 악보에 비할수 있다. 그 어떤 악보이든 연주를 전제로 존재한다. 마찬가지 도리로 열독활동만이 문학작품을 활자화된 죽은 언어재료속에서 구원해 내여 현실적생명을 부여한다. 환언하면 독자가 곧 문학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작자로 말하면 놀라운것은 독자들의 찬양이 아니며 분노하게 하는것은 평론가의 혹평이 아니다.
가장 슬픈 일은 작가의 성심어린 화제를 공급했음에도 독자군이 침묵으로 대답하는것이다. 가령 작품이 사회적으로 반향이 강렬하여 이런저런 평판을 듣게 되였다면 바로 그 작품이 사회상에서 중시를 받고있다는 실증으로서 그 작가에게는 가장 좋은 선물이며 작가로서의 더 바랄것 없는 일종의 행복이다.
예술흔상은 주객체의 감정교류활동이다. 만약 한 작가가 한부의 작품을 탈고했다면 한차례 창작활동이 완성된것이 되지만 옹근 예술 활동으로 말한다면 근근히 절반을 완성한셈이다, 비유하건대 만약 그가 자기의 작품을 “숨겨둔 명산”으로 만들생각이 아니고 작품의 사회적작용을 발휘시키려면 반드시 열독과 흔상과정을 거쳐야 한다.
작가로 말하면 독자가 자기 작품을 읽기 시작한 바로 그때로부터 문학적대화가 시작되는것이다. 례하여 오스뜨롭쓰끼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라는 소설은 전세계적인 광대한 독자대군속에 열광적인 열독을 불러일으켰는데 작가는 전세계적 범위에서 시종 격동적인 열렬한 분위기속에서 문학적대화를 진행한 행운을 가졌다.
문학작품은 가치계통이지만 심미향수는 공리성으로부터 출발할수 없다. 이는 심미판단에서의 직각성과 직접 련관된다. 직각적예술향수 속에서 사람들은 공리성을 고려하지 않기때문이다. 원래 예술작품 자체에 직접적실용가치가 있는것도 아닌것이다. 그러나 문학소비에서 미적희열성과 공리성을 갈라놓는것도 틀린다. 심미희열이 비록 공리 성과 직접적인 련관은 없지만 미는 필경 인간세상을 떨어져 고립적 으로 존재하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로신선생이 쁠레하노브의 미학관점을 평가할 때 다음 같이 말한바 있다.《미를 향수할 때 비록 공리를 거의 생각하지는 않지만 과학 적으로 분석해야 발견된다.…미적희열의 뿌리밑에 공용성이 엎드려 있지 않는다면 그 사물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것이다. 사람이 미를 위해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미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주작인은 엄혹한 사회투쟁에 질겁하여 전사로부터 은사로 둔갑한 후 십자거리에 “상아탑”을 쌓아놓고 표준적인 도피생활을 할 때 현실제재로부터 풀과 나무와 벌레와 고기를 쓰는데 열심하였다. 그는 《초목충어소인(草木虫鱼小引)》에서 다음 같이 피력하였다.
《지금 부득이 풀과 나무와 벌레와 고기를 선택하였는데 무엇때 문인가? 첫째, 이는 내가 좋아하기때문이요. 둘째, 그것들 역시 생물 이고 우리들과 관계가 있으나 또 결국엔 이물(异物)이기에 우리가 말해야 하기때문이다.》 여기서 알수 있는바 미감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공리와 유관된다는것이다.
물론 문학예술의 가치계통속에는 심미가치 외에도 인식가치와 륜리가치 및 종교가치가 등이 있다. 그중에서 심미가치가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만약 한 작가가 써내는것에서 인식가치생산이 심미 가치를 초월하면 사작활동은 그만 과학인식활동이 되고 륜리가치 생산이 심미가치 생산을 초월하면 가능하게 도덕행위로 변할수 있다.
이렇게 류추해 나간다 할 때 정치가치 혹은 종교가치생산이 주도 적지위를 차지하면 그 창작은 곧 정치활동이 되여진다. 문학창작은 심미가치를 생산하는 핵심이다. 그러므로 문학감상에서 문본실제는 작가의 심미가치창조이며 따라서 흔상자가 가져오는것은 주요하게 심미쾌락적체험이고 일종 재창조활동이다.
독자가 열독, 흔상하는 과정은 피동적접수과정이 아니라 능동적 해석과 재창조과정이다. 열정이야말로 사상보다 더욱 적합한 대체품 이다. 작품은 심미요소로서 주체의 미감을 격발시키는 잠재적능력을 구비하고있지만 주체의 미감산생은 어디까지나 작품과 전면적대화를 진행하면서 예술형상을 재창조하는 과정에 산생된다.
흔상활동중에 주체는 언제나 작품에 직접 현시되는 유한한 형상 자체에만 머믈러있는것이 아니라 작품형상과 접촉하는 동시에 자기의 전부의 심미경험으로 풍부한 련상과 상상을 전개하여 원유의 형상을 개척하고 보충하여 재창조한다. 재창조된후의 형상과 의의는 원래의 형상을 벗어나 작자마저 미처 생각못했던 의의까지 발굴해 낼수 있다는데 있다.
례하여 왕유의 《대사막에 외로운 연기 곧추 피여오르고 강하에 지는해 쟁반같고나.》라는 시구에서 새외풍경의 웅대함과 장려함을 읽어내게 된다. 송기의 《붉은 살구나무 가지에 봄뜻이 요란하네》 에서 《요란하다》의 글뒤에 숨은 말로 전달할수도 없고 그릴수도 없는 무한한 봄경치와 춘정을 읽어내게 되는데 이런 독해와 해석은 심미적창조의 작용에 의거한것이다.
언어예술로서의 문학작품은 감성외관상에서 직접적으로 흔상주체 에 감각적쾌감을 줄수는 없다. 흔상주체도 직접 문자의 외관, 발음 형식에서 문학성의 심오함을 감수할수 없다. 감상주체는 작품속에 문자함의를 상상중의 감성외관에로 환원시켜야 심미희열을 체험할수 있다. 주체는 반드시 자기의 문화지식과 소양, 생활경험과 심미의식 및 생명의식 등을 충분히 동원하여 작품의 언어결구속에 투입해야 한무더기의 문자를 이미지으로 전화시키고 묘사성 부호를 감성면모로 전화시킬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환원이라기보다 흔상주체의 심미 가치창조라고 말할수 있다.
문학흔상이 일종 심미활동일진대 흔상주체의 의식수준우에서만이 완성될수 있다. 우리들이 만약 능동적으로 대상의 자극을 접수하지 않거나 대상을 열정적으로 포옹하지 않는다면 활자화된 외재형식의 한수의 시, 한편의 수필, 한부의 소설속에서 천지간에 가장 아릿다운 정취를 감수할길이 없을것이다. 우리 말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민요풍 의 서정시를 완성시켜 조선 신시초기를 빛나게 장식한 김소월의 기념비적작품 《진달래꽃》을 다시 한번 흔상해보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녕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따라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분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눈물을 아니 흘리우리다.
시는 다읽었으나 그냥 가슴에 엉켜도는 정의 덩어리는 풀길없이 가슴만 아릿하게 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사무친 정과 한이 좌절(님과의 리별), 미련(다시 만나려는 기대감)원망, (기어코 떠나 가는 박정한 님에 대한 한)의 갈등을 거쳐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우리다》라는 《울어서는 안된다》는 자아초월의 륜리적실천을 굳게 다짐으로써 희생적인 사랑의 미를 보여주는 외유내강한 배달녀인들의 성격미, 인격미가 아름다운 녀인의 모습과 더불어 진하게 새겨진다.
이런 노래같은 서정시에 한번 접하면 가슴에 새겨진다. 이 서정시에서 흔상주체는 시의 언어를 파악한 기초상에서 감수, 체험하면서 상상을 통해 한방면으로는 시인이 제공한 심미형상을《부활》시키고 다른 한방면으로는 자기의 인생체험, 사상감정을 심미형상에 부여하여 머리속에 구체적이고 선명하며 생동하는 심미의상을 형성하여 미적계발을 얻었기때문이다.
심미활동가운데 독자의 사유특점은 감성적이고 직각적인가? 아니면 리성적이고 론리적인가? 문학작품에 대한 흔상판단은 지식판단이 아니며 론리적판단이 아니라 심미판단이다. 크로체는 “직각설”을 제출하였는데 직각인즉 표현이며 따라서 아주 “성공적표현”으로서 미적정의로 된다고 하면서 직각과 리지를 대립시키고있다.
《직각적지식은 바로 표현적지식이다. 직각은 리지의 작용을 떠난 독립적이며 자주적이다.》이런 관점은 서방세계에 아주 영향이 컸지만 극단으로 나아가 마침재 비리성주의에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또 심미판단중의 리성작용도 강조하기도 했다. 헤겔도 같은 관점을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심미판단에서의 직관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반드시 리성기초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심미능력은 천성적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의 심미감관도 타고나는 맹목적본능이 아니다. 그것을 갖추는데는 문화수양이 수요 되는바 취미 혹은 흔상능력이다. 이런 흔상능력이 구비되여야 미를 리해하고 미를 발견해낼수 있다. 예술작품을 흔상할 때 찰나적인 감수는 곧 직각성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상당한 문화지식기초가 받쳐 져있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직각도 완전히 믿을바가 못된다.
3. 문학흔상의 특점
작품구성원소를 분석할 때 흔히 세가지 규정성에 부닥치게 된다. 첫째, 작품의 허구성이고 둘째, 작품의 심미적정감선이며 셋째 독자의 접수실현성이다. 이상의 세가지 규정성으로부터 작품구성의 기본 흐름선이 풀려나온다. 이 흐름선상에 여섯개 큰 원소가 있는데 현실 생활→심미대상→창작과정→문학문본→독자접수→사회실천이다.
작품이 생성되여 공능실현에 이르기까지의 계통성흐름속에 자아 공제, 자아조절을 실현하는바 물질로부터 정신에로, 정신으로부터 물질에로 환원되는 변화과정이다. 문학을 정체적으로 고찰하면 결국 현실세계 →표현세계 →허구세계 → 가치세계이다. 전반 문학접수의 특징은 간단히 말해서 개체성, 감성특질, 자유성, 언어의 매개성이다. 아래에 흔상활동의 특점을 상세히 알아보자.
1) 문학흔상에서의 심미희열
심미희열은 심미의식에서 피동적측면이다. 말하자면 심미의식속에 능동적측면인 심미창조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심미향수의 일종이다. 일체 심미향수는 모두 관조의 향수이다. 심미관조의 본질은 대상의 원만한 접수에 있지만 심미향수는 대상의 원만성에서 직접 향수를 느끼는것이 아니라 대상의 원만성에 대한 관조작용에 힘을 입어서 향수하게 된다.
그외 예술향수는 반드시 객체예술작품에 대한 관조로써 이루어 진다는것이다. 그러나 예술향수를 느낄 때 흔히 객체자신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객체의 자극에서 산생된 감정, 정서로써 향수를 느끼 게 된다. 이것을 “내부집중”이라고 한다. 문학적대화후에 재음미하 는 정서적반성과 사고인것이다.
문학감상활동은 감상자에게 어떤 물질적인 리익을 주지 않으며 반대로 감상주체가 꼭 그 수많은 검은 글줄을 읽어야 할 의무는 없다. 사람들이 돈과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면서 문학작품을 읽는 까닭은 무엇이겠는가? 해답은 물음속에 있다. 우리들이《돈끼호떼》를 읽고 포복절도하게 되고 비극속에 주인공들과 함께 주먹을 부르쥐고 가슴치며 통탄하게 되는 등이 곧 해답이 된다.
심미재창조과정에 감상주체는 한방면으로는 자기의 본질력량(리 상, 의지, 정감, 능력)을 실현하고 자아존재의 가치확인에 만족을 느끼며 다른 한방면으로는 감상주체 자신이 새로운 예술형상이 이룩 한 경지에 빨려들어가서 작품속에 인물형상과 운명을 같이 하면서 도취되여버린다. 이 공명에서 감상주체가 얻은것은 예술희열이다.
2) 문학감상주체의 차이성
문학감상ㅡ예술접수활동은 어디까지나 시대에 따라 지방에 따라 독자의 차이에 따라 차이가 있게 되고 사람의 선천자질, 생활경력, 사회분공, 개인 주관노력 등은 개체의 심미수양으로 하여금 천차반별 이 있게 한다. 한부의 작품을 감상할 때 전업적문학평론가가 얻는 미감체험은 발굴과 파악에서 보통독자와 현저히 다르기마련이다.
그리고 중학시절에 《홍루몽》을 읽었을때와 대학시절에 읽을 때 심미적감수 역시 부동하다. 류협은《문심조룡.지음》에서 이렇게 쓰고있다.“강개한 자는 거슬리는 소리에 찬탄하고 속에 감추는 자는 세밀한것에 펄쩍 뛰고 지혜가 옅은자는 아름다운것을 보면 마음이 비약하며 기이한것을 사랑하는 자는 기괴한것을 놀랍게 듣는다.”
여기서 주체는 성격, 기질이 다름에 따라 각자 특유한 심미취미 와 애호가 표현된다는것을 알수 있다. 심미취미란 일반적인 취미와 완전히 다르다. 심미취미란 심미활동가운데서 사람들이 심미대상에 대해 심미평가를 할 때의 규범과 경향성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 들이 심미활동중에서 아름다운것, 추악한것, 슬픈것, 기쁜것 등드의 심미감수로서 사회현실과 자연계속에 각양각색의 심미가치에 대한 개체적애호의 형식을 심미평가의 표준으로 하는 온정된 속성이다.
심미취미는 심미감수와 심미리상과 융합된 일종 심미심리의 표현 형식이다. 영국의 경험파는 사람의 흔상능력을 취미라고 명명하였고 취미의 고저는 바로 한사람의 흔상능력을 설명한다고 하였다. 칸트는 영국경험파의 설법대로 흔상판단을 취미판단이라고 규명했다. 심미 취미는 다음 같은 특점이 있다.
첫째, 심미취미는 주관애호의 형식으로 표현되므로 개체의 애호, 정취의 풍부함과 결핍함, 등 차이성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주관의 선택과 편애를 배제하지 않는다. 둘째, 심미취미속에 취미판단은 추상적리론인식이 아니며 또한 적라라한 도덕개념도 아니다. 심미 취미는 심미실천속에서 형성되는바 력사발전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시대와 민족, 사회제도와 계급 등의 제약을 받게 된다.
또한 심미주체인 그의 개인생활능력, 문화소양, 흥취애호 심리 특점 및 사유방식특점의 영향을 받는다. 한마디로 심미취미는 주관 적차이성과 객관적차이성을 가진다. 이에 대한 체르늬쉡쓰끼의 정채 로운 론단이 있다.《상류사회의 귀부인들은 편두통을 즐겨하지만 농민들은 건강미를 좋아한다.》여기서 심미취미에는 계급적경향성도 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그야말로 지자가 지자를 알아본다거나 무우와 풀채를 좋아하지 않는것은 저마끔이라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은 철리적인것을 즐기고 어떤 사람은 서정적인것을 좋아하며 또 어떤 사람은 격조가 높은 시를 즐기고 또 어떤 사람은 정서가 우아한것을 즐길수 있는것이다.
이에 대한 모파쌍의 론술도 있다. 《공중은 많은 사람들로 이루 어졌는데 이런 사람무리는 중구난방으로 우리를 안위해 달라. 즐겁게 해달라. 쓸쓸하게 해달라. 감동시켜달라. 우리가 꿈을 꾸도록 해달라. 통쾌하게 해달라. 우리를 무섭게 해달라. 우리들이 눈물을 흘리도록 해달라. 우리가 사상을 가지도록 해달라. 하고 웨친다.》작가, 시인 은 독자들의 이런 요구를 만족시켜야 할 사명이 있다.
한부의 문학작품을 접수하는 력사는 역시 한부의 인류사회발전사 이기도 하다. 그 기간의 매개 시대, 나아가서 매개 민족은 모두 특정 된 물질생활조건아래 또 그것을 기초로 한 정치사상관념과 사회문화 풍모가 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런 시대. 그 민족속에서 생활하는 감상주체의 가치관념, 심미취미 내지는 심미능력 등에 상응하게 영향 주고 제약하는 작용을 산생시킨다.
하여 주체의 심미심리루적과 심미심리결구격식의 건립에 부동한 정도로 시대의 락인, 민족 및 계급의 락인을 찍는다. 때문에 감상주체의 차이성은 시대, 민족, 계급성차이를 반영하기도 한다. 례하여 프로벨의《보바리부인》이 세상에 갓나왔을 때 극히 일부분의 사람 들이 소설사상에서 전절점이라고 리해하고 감상하였으나 오늘 이 시대와 와서는 오히려 세계적명성을 드날리고 있으며 시종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있다. 반대로 프로벨의 친구인 페이더의 《꽃소녀》 는 당시 13차나 재판되였으나 지금은 거의 매몰되여버린 상태이다.
레브 똘쓰또이의 명작《안나 까레니나》에서 안나는 자기의 민족들속에서 반역적인 녀성으로 깊은 동정을 받고있지만 중국에서는 공맹지도의 도덕을 표준으로 삼다보니 흔히 안나를 본분을 지키지 않는 가증스러운 탕녀로 알고있다.
《금병매》는 봉건통치계급들은 봉건례교를 수호하기 위해 사악 한것으로 보며 금서행렬에 넣었다. 김성탄은 평민립장에서 향수하는 사람의 감정으로부터 출발해 그것을 감히 천하에 크게 어긋나는 성 해방의 책이라고 했다. 이는 감상주체의 계급립장이 부동한데서 온것 이다. 감상주체의 차이성 특점은 문단의 번영창성을 가져왔을뿐만아니라 백화제방의 아주 좋은 국면을 열어놓았다.
부동한 민족, 부동한 시대, 부동한 계급의 사람들의 심미취미 에는 일치성 일면도 있게 된다. 이를테면 백두산의 절경이나 력대의 세계명화는 누가 보나 미적감수를 받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한것은 인성을 토대로한 공동한 사회성을 고유하고 있기때문이다. 심미취미 의 일치성은 사람들이 인류초기의 예술을 흔상하는데서도 표현된다.
4. 문학흔상의 의의
문학작품의 가치는 감상속에서 생성된다. 한편의 문학작품이 독자의 열독을 거치기전까지는 확정적이고 종국적인 의의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객관존재라는 의미에서 작품자체에 의의가 있을뿐이다. 말하자면 작품의 의의는 감상자가 활동과정에 실혀되여 작가, 작품, 독자가 참가하는 “원탁회의”에서 작품과 독자가 전면적으로 대화한 결과인것이다.
문학작품은 실용문과도 달라서 창작이 끝나고 독자의 손에 넘어갔을 때 천천만만의 감상자가 재창조적독해를 하는 문본이 되여진다. 작자의 의도는 유한하다. 독자에 의해 해독된 의의는 무한하고 개방적이다. 전자가 후자를 결정한다는것은 불가능하고 황당하다.
당년 도브롤류보브가 곤챠로브의 《오몰로모브》의 독해에서 제시한 의의는 작자가 창작시 미처 못생각했던것이며 또 작자가 매우 찬동을 표시한것이였다. 그러나 그의 해석이 유일한것은 아니다. 영 국의 신비평리론에서도 “문본의 자족설”이 제기되였는데 문학작품 의 의의는 작품자체에 있고 이런 의의야말로 유일하고 완전한것이라고 인정하고있다. 피아제의 발생리론에 따르면 문학형상은 감상 주체의 심리결구와의 동화(同化)를 거쳐야만 주체의 적극적반응이 생긴다. 여기서 동화란 주체의 “객체의 자극에 대한 적극적선택과 개변”을 말한다.
물론 열독접수활동중에는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주동적으로 창조하는 성분보다 피동접수성분이 더 많은 독자들이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피동적소비형접수는 독자가 작품의 의의, 생성과정에서 의 중요한 지위를 부정하는것은 의미하지 않는다. 총적으로 감상자의 두뇌속에 형성된 그 문학의의는 실제상에서 작품과의 공동활동의 결 과이고 주객체의 호상납입, 호상개변, 상호인증의 결과이다.
문학작품의 가치는 감상속에서 실현된다. 사회의식형태로서의 문 학은 자재적존재가 아니라 타방을 위한 존재물이다. 즉 문학의 존재리유는 그 가치목적과 실현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이 인간의 심령을 정화시킨다고 하였고 프로이드는 문학이란《일종 성적 만족을 대신하는것으로서 인생에 부족한것을 보상해준다》고 하였다.
서방현대철학가 마르쿠스는《예술이 직접 세계를 개변하지는 못하지만 가능하게 변혁될수 있는 이 세계의 남자들과 녀인들의 내구 력의 공헌을 개변시켜줄수 있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인류가 문학 을 절실하게 수요하는것은 모종 가치와 작용이 있기때문이다.
읽혀지지 않은 문학작품의 가치는 근근히 가능한 존재일뿐 현실 적존재가 아니다. 문본과 감상의 관계는 소비의 관계와 같다. 모든 물질산품은 소비속에서만 산품으로서의 자기를 증실할수 있을뿐이다, 그러나 감상자가 일정한 심미관계속에 있기만하면 곧 문학의 가치가 충분히 제시된다는것은 아니다. 그의 전파환경과 전파조건이라는 중요한 인소도 있다.
문학감상은 작품의 의의와 가치를 생성시키고 실현시킬뿐만아 니라 문학창작에 영향주고 제약하는 작용도 한다. 문학활동에서 창작 과 감상은 생산과 소비의 관계와 같다. 맑스는 소비가 없으면 생산도 없는바 소비가 생산을 촉진한다고 하였다. 작자의 창작은 어디까지나 감상ㅡ소비를 위해서이다.
일정한 시대의 문학작품은 어찌하여 이런 결구방식을 쓰고 그런 사상과 정취를 표현하였는가? 이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작자의 생존태도와 심미추구가 포함된다. 보다 직접적원인은 해당 시대의 감상주체의 심미리상, 심미취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문학작품의 생존공간이 개척될수 없다는것이다.《정력적인 작가와 독자가 있어야만 힘있는 예술을 생산할수 있다.(로신)》문학사상 영향면이 넓었던 프랑스고전주 의문학은 루이14세시대 상류귀족사회의 심미정취에 대응된 산물이다. 프랑스의 비극의 모습은 모두 귀족과 대신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데 있었다.
일체 우수한 작가들은 모두 독자들의 감상요구와 취미를 존중해 왔거나 료해하기에 주의하였다. 당조때 시선이였던 리백이 자기의 시고를 마을의 로파한테 읽어주고 의견을 청취했다는 전설은 이면 에서 의의가 있는 실증으로 되고있다.
로씨야의 고골리도 자기의 작품을 발표하기전에 명시인 루꼬브쓰 끼를 청하여다 새로 쓴 극본을 들려주었다. 원래 루꼬브쓰끼에게는 오침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듣고 듣다가 그만 코를 드렁드렁 골며 굳 잠에 빠져버렸다. 그가 잠에서 깨여났을 때 그를 책망할대신 《당신 의 깊은 잠이 곧 이것에 대한 가장 훌륭한 비평이였습니다.》라고 말 하고는 극본을 뻬치까속에 던져넣었다.
문학활동은 어디까지나 작가와 독자의 호상합작관계속에서 진행 된다고 단언할수 있다. 독자응 감상에서 정보귀환은 작가의 예술추구 에 중요한 참조계로 되며 심지어 일종 고삐로 되여 창작을 제약하기 도 한다. 어떤 작가는 이렇게 쓰고있다.
《작가가 원고지를 펼쳐놓고 창작할 때 그 독자의 그림자가 작가의 뒤에 서있으며 작가가 그림자 의 존재를 의식하기 원치않을 때에도 그냥 그의 등뒤에 서있는다. 이 독자는 원고지우에 그가 볼수 없는, 그러나 마멸해 버릴수 없는 표기를 찍어놓는다…》
아. 똘쓰또이는 이렇게 쓰고있다. 《개인의 창작경험에 근거하여 나는 내가 쓰려는 작품의 응당 있어야 할 력량과 질량은 나의 심목중 에 제일 먼저 제기되는 독자와 관련된 개념에서 얻어진다는것을 알았 다.》물론 문학감상이 창작에 주는 영향을 강조한다 하여 독자의 감상 수준과 심미취미의 높고 낮음, 고상함과 저속함을 분별하지 않고 또 작가가 감상중에서 귀환된 정보를 고려하지 않고 받아 들이라는것은 아니다. 작가에게는 시종 독립정신이 있어야 한다.
문학감상은 감상주체를 창조한다. 문학감상과정에 주체는 전부의 심미경험으로 객체(작품)와 대화, 교류할 때 흔히 단순히 객체에 대한 감지를 표현하는것이 아니라 체험하고 재창조하며 동시 에 자신의 심미심리결구에 대해 수정재건하는 경지에 달려들어간다. 접수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독자가 아무런 약속력도 없이 제마음대로 하는것이 아니라 작품의 형식과 내용의 제약을 받게 된다.
작품의 기대시야와 작품의 력사시야가 일치하지 않을 때 독자는 자기 반성을 하게 되고 지어 독자의 사상관념, 정감태도 및 심미취미 등에 조정, 개변을 가져오게 되여 새로운 기대시야를 가지게 된다. 여기서 이미 우에서 언급했던 피아제의 《동화설》이 창립되는 동시 에 그에 《순응》하게 된다.《순응》이란 《조절》,《적응》 이라고 한다. 즉 내부적도식을 개변시켜 현실에 적응시키는 것이다.
만약 객체의 진실성 합리성이 있어 주체에 강렬한 자극을 주었 다면 주체는 심미객체에 순응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이런 평형은 상대적이고 잠시적인것으로서 부단히 파괴되고 부단히 새로운 평형에 이른다.이런 의미에서 문학감상은 감상주체를 창조한다고 한다.
고전명작들중에서는 왕왕 인물의 행동묘사에 착중하고 완정된 이 야기정절을 강구하며 서술의 맥락이 분명해지기를 도모하면서 결구설 계상 현념과 관절, 대단원을 극력 추구한다. 《5.4》이후 현대소설, 현대희곡에서는 서양예술을 본받아 인물의 정서심리묘사에 중시를 돌 리고 결구에서 개방성, 표달상의 은유, 상징 등 수법을 채용하고있다. 이런 현대적수법들이 금방 나왔을 때는 사람들의 접수심리와 사개가 잘 맞물리지 않았다.
여기에는 심미표준이 작용한다. 심미표준은 심미활동에서 대상을 판단할 때 쓰는 미와 추에 대한 척도이다. 심미표준은 추상적개념이 아니며 수자나 조례도 아니다. 그것은 심미주체의 심목속에 존재하고 있는 각종 미적사물에 대한 구체적“모습”혹은 “심미심리모식”이 다. 심미대상의 감성적외모특징과 심미주체의 심목속에 심미심리모식 이 맞아떨어질 때 심미주체에게 상응한 심미체험이 생기고 비로소 일정한 심미감수를 얻게 되거니와 일정한 심미평가를 내리게 된다.
심미주체의 심미심리모식은 객관적심미대상에 대한 심미소성의 개괄이며 주체심미체험의 응결로서 미적존재의 필연성과 심미체험의 보편성의 통일이라고 할수 있다. 미적사물의 심미속성은 심미심리모 식이 구성에 객관적규범성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심미표준은 심미감 수, 심미취미, 심미리상, 심미평가에서 반영된다. 바로 그래서 느낌 에는 짝이 없다고 하는것이다, 사물의 아름답고 미운것은 완전히 개 인의 좋아하고 미워하는데서 결정된다.
심미표준에는 확실히 상대성, 차이성이 존재한다. 례컨대 사람의 인체미의 심미표준에 대해 살펴보자. 북위시기에 돌조각상에서 체현 되다싶이 바싹 여윈것이 미였지만 당조때 돌조각상에서 체현되는것은 살집이 풍만한것이 미였다. “구라파미인을 중국이나 다른 아세아인 들이 좋아할리 없는것과 같다.
심미표준에는 또한 계급적차이성이 존재한다. 체르늬쉡쓰끼가 말했듯이 로씨야의 미인의 표준은 사지가 섬약하고 얼굴이 창백하며 귀가 작고 심지어 편두통까지 조금 있는것 이였지만 보통농민들속에 미인의 표준은 사지가 건장하고 얼굴이 불깃불깃한것이였다고 한다.
심미표준의 시대성, 민족성, 계급성은 바로 심미표준의 시대의 공통성, 민족의 공통성, 계급의 고통성의 표현이다. 이런 심미표준은 문학작품에 대한 감수에서도 마찬가지 도리로 작용할것은 자명하다. 처음 현대주의적 문학작품들을 대했을 때 중국독자들 거의 모두의 공통어가 알둥말둥하다는것이였다.
그러나 현대주의문학작품들이 날이 갈수록 많이 창작되고 심미 활동이 심입됨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의 접수태도와 심미구조를 부단히 조정, 개조, 재건립하면서 차츰 이런 작품들과의 대화를 익숙 하게 진행하게 되였다. 서방의 선봉파작가들은 현대서방 문화가 극단 적으로 개성화된 현실에 기초하여 독자들도 자기들을 따라 비애와 우수를 느끼면서 사상이 심오해지고 모종의 현대고민을 능히 체험 할수 있는 문화인으로서 예상했다.
당시의 독자들에게도 작가들과 같은 현대인의 고민, 초조함과 실락감이 있긴했지만 필경 카프카, 포크너, 죠이스네들처럼 체험이 심각하지 못했으며 강렬하지 못하였기에 대부분 독자들은 선봉파 작품들의 그런 《고상함과 우아함》을 리해할 방법이 없었다.
하여 카프카는 자기가 죽으면 모든 문고들을 불사르라고 벗들 에게 요구하기까지 했다고 전해지고있다.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선봉파 작품들을 가히 리해할수 있다고 느꼈다.《대상에게서 인간의 본질적 풍부성을 전개할수 있고 인간의 주관감수의 풍부성도 발전하게 된다.》 이것은 지성적인 작가의 준엄한 충고이기도 하다.
부대적으로 문학소비와 문학감상의 공통성과 차이성을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문학접수는 열독을 포함하지 않는 구매, 점유, 그리고 열독흔상의 정신소비활동이다. 문학접수는 전문 심미범위내의 열독흔상활동이다. 량자는 착중점이 다르다. 문학소비는 문예사회 범주이고 문학접수는 심미심리학의 각도이다. 문학소비의 함의는 보다 거시적이고 광범위하기에 문학접수계단을 포괄하지만 문학소비 의 개념으로는 문학접수의 특점과 내함을 똑똑하게 천술할수 없다.
때문에 량자의 관계를 론한다면 문학소비는 문학접수의 필요조건 이고 초급상태이라 할수 있고 문학접수는 문학소비현실의 연장이고 고급상태라고 할수 있다. 문학소비는 문학접수를 포괄하지만 량자가 동등한것은 아니다. 문학접수는 문학소비의 최종적가치실현이다.
5. 문학평론과 문학접수의 련계와 구별점
련계성으로 말하면 량자는 모두 문학작품에 대한 창조성적열독이 고 리해이고 평가이다. 그러나 량자는 대상범위, 접수특징과 지식배 경 등 방면에서 부동하다. 문학접수의 대상은 문학작품에 국한되고 문학평론은 작품을 주요한 대상과 기본출발점으로 한다. 그리하여 보급면이 더 넓고 다양한 문학현상으로서 작품을 보다 거시적으로 심미투시하고 작품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문학접수에는 개체성이 돌출하지만 문학평론은 일정한 정도에서 사회성접수이다. 문학접수에는 전업지식이 꼭 수요되는것이 아니고 일정한 심미능력만 구비하면 되지만 문학평론은 일정한 직업훈련을 받아야 하고 필요한 리론배경과 지식의 틀과 평론방법을 장악하고 있 어야 한다. 그리고 언어문자를 능숙하게 운용할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