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계몽>
1. 2025년 트럼프가 베네주엘라를 무력으로 침공했다. 푸틴의 침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은 가자 팔레스타인들의 기아와 죽음을 방치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미국과 이란은 전세계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최근 뉴스에 나오는 기사들은 지구적 삶의 위태로움을 증명하는 듯하다. 폭력과 무질서가 지배하는 현재의 상태는 지구의 미래가 암담한 상황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쇠퇴주의적 주장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저자 ‘스티븐 핑거’는 『지금 다시 계몽』이라는 책에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8세기 등장했던 계몽주의의 정신을 다시금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몽주의의 핵심적 아이디어는 인류는 진보할 수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는 이성, 과학, 휴머니즘에 대한 신뢰를 통해 끊임없이 오류를 교정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2. 핑거는 인간의 역사를 살펴볼 때, 현재의 상황에 대한 극히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삶은 끊임없이 진보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다양한 통계자료는 인간이 생명, 건강, 안전, 부와 같은 분야에서 실질적인 삶의 개선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진보는 “사회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특징을 최대한 세분화해서 인간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것을 반복·응용하는 과정”을 통해 성취되었다. 그럼에도 ’진보‘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 관점에 의해 오염된다. 종교적 신앙, 초유기체(민족, 인종, 국가)에 대한 광신, 과도한 생태계주의, 쇠퇴주의, 과학에 대한 거부와 같은 주장들이 진보를 의심하고 이성의 힘을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이다.
3. 핑거는 이성과 과학에 대한 불신 그리고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현재의 삶이 안전하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만큼 세상이 안전해졌기에 문제에 대한 예민함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끔직한 살육과 대량학살과 같은 극단적 폭력이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야만적 행위는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화 현상 속에서 특정 집단의 지지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핑거는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의 위험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부정적 경향에 지나치게 몰두함으로써 인간의 발전가능성을 스스로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4. 그렇기 위해서는 ‘계몽주의’의 핵심 아이디어를 다시금 회복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현재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이성은 감정을 배제한 차가운 ‘도구적 합리성’이 아니다. 이성은 검증된 사실과 정당한 논거를 바탕으로 상식적으로 문제를 파악하는 힘이다. 이성은 과학적 원리와 결과를 존중하고 인간의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휴머니즘과 결합하여 세계를 인식하고 파악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다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우선성을 제기하는 다양한 주장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들 또한 이성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의 감정적 측면이 지닌 특징을 소홀히 하지 말자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문제를 평가하고 해결방법을 찾는 최종적인 역할은 과학과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이성적 활동의 결과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추상적이고 선험적인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번영의 성취라는 휴머니즘을 향한 과정인 것이다.
5. ‘이성’에 대한 심각한 적대세력은 유신론적 도덕관과 낭만적인 영웅주의이다. 종교적 허구성을 인간에게 강요하면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삶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종교적 독재는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진행 중이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집단적인 허위의시을 산출하며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낭만적인 영웅주의’도 위험한 요인이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도 넓게 보면 이러한 선동과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 집결시키는 ‘영웅주의’적 현상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세력들은 정치적 양극화를 가져오고 삶의 공포를 자극하면서 진보를 향한 움직임을 공격하고 자신들의 세력이 모든 이익을 독점하려는 독재적 음모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계몽의 필요성은 현실적 문제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판단에서 나타난다. 음모론이나 선동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문제를 파악할 때, 이성과 과학 그리고 휴머니즘에 기초한 계몽주의에 기초할 때 우리에게 더 큰 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지지한 세력들이 ‘소득’보다는 ‘교육’과 관련있다는 연구결과는 건전한 시민교육과 계몽의 중요성을 다시금 알려준다.(계몽의 중요성은 윤석열이 자신의 불법행위를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때 분명해진다.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가 ‘민주주의’를 국가이름에 차용했듯이 이성과 계몽은 인간의 진보를 위한 중요한 가치임을 부정적 방식으로 증명된 것이다.)
6. 진보의 과정은 쉽지 않다. 다만 현재의 상태가 과거에 비하여 지속적으로 발전했음을 확신하고 그것의 수레바퀴를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음모론이나 권위적 포퓰리즘을 통한 선동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계몽’의 가치를 다시금 정립하고 핵심적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같은 용어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자유, 평등, 정의’라는 고전적 가치뿐 아니라 ‘민주주의, 연대, 계몽’같은 정치사회적 개념도 왜곡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성취한 진보를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개념의 근본적 의미를 다시금 정립하고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통해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7. 인간은 개인적 자유를 기초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존재한다. 인간에게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판단과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그럴 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정치적 이념과는 관계없이 사회를 인식할 때 기준이 되는 방법적 관점은 중요하다.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힘은 종교적 광신도, 민족적 열정도, 계급적 분노도 아닌 사실과 근거에 기초하여 이성과 과학의 힘이 기초가 된 휴머니즘을 향한 ‘계몽적 정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8. ‘계몽’의 핵심은 인간의 번영을 위한 가능성이다. 윤석열이 오역하고 남용하는 계몽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2003년에 발표된 <제3차 휴머니즘 선언>을 정리해 본다. “①세계의 지식은 관찰, 실험, 이성적 분석을 통해 획득한 성과물이다 ②인간은 본래 자연의 일부분이며 어떤 안내도 없이 진화적 변화를 거친 존재이다 ③윤리적 가치는 경험으로 검증되었듯이 인간의 필요와 이익에서 유래했다 ④삶의 실현은 인간적인 이상에 봉사하는 개인적 참여에서 나온다 ⑤인간은 본래 사회적이며 관계에서 의미를 찾는다 ⑥사회에 이로운 일은 개인의 행복을 극대화한다.”
첫댓글 - " 같은 용어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자유, 평등, 정의’라는 고전적 가치뿐 아니라 ‘민주주의, 연대, 계몽’같은 정치사회적 개념도 왜곡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 정치적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단들에게 합리적인 집단지성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