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주로 인간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성품들 그리고 거룩을 향한 염원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2)어거스틴은 형상과 모양은 영혼의 지적특성과 도덕적 특성에 각각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3)이레네우스와 터툴리안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구분하여 전자를 신체적인 특징에서 후자는 영적인 특징에서 찾았다.
(4)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어떠한 신체적 유비 개념도 거부하면서 '형상'은 인간의 아름다운 특성을 '모양'은 본래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자질들로써 계발되기도 하고 상실되기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5)로마 카톨릭 교회는 '형상'은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적 은사의 표시요 '모양'은 인간이 초자연적으로 받은 은사의 칭호, 곧 원시적 의로 보았다.
(6)개혁파 신학자들은 형상과 모양의 구분을 반대했으며, 원의를 하나님의 형상 안에 포함된 것인 동시에 원래의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질 그 자체에 속한 것으로 간주했다.
(a)이때 루터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능력과 같은 인간의 자연적인 재능에서 찾지 않고 오직 원의 안에서만 찾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인간이 죄를 범할 때 완전히 상실된 것으로 보았다.
(b)반면에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은 일차적으로 인간의 영혼 속에서 찾아져야 하며, 모든 인간의 본성의 부분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용어는 아담이 부여받은 완전성을 지칭하는 바 명료한 지성, 이성에 복종하는 지성, 적절히 통제된 감성, 창조주가 부여한 모든 탁월하고 찬탄할만한 재능들을 가리킨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의 자리는 정신과 마음, 혼과 그 능력이지만 육체의 모든 부분 가운데 다소라도 영광의 빛이 비취지 않은 부분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형상은 자연적인 재능과 원의라고 불리는 영적인 자질들, 곧 참된 지식, 의, 거룩을 포함한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 전체가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완전히 소실된 것은 영적인 자질들뿐이다.
(7)소지니주의자들과 일부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하등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뜻한다고 가르쳤다.
(8)슐라이에르마허는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신적인 것을 수납하는 모종의 능력이요 거룩한 이상에 응답하고 하나님의 형상에까지 자라가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Ⅱ.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성경상의 자료
1. '형상'과 '모양'은 동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두 개의 다른 실체를 가리키지 않는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신학적인 견해보다는 성경의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2.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을 구약과 신약에서 모두 각각 다루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1)구약에서의 하나님 형상 이해
(1)하나님의 형상에 관하여 다루고 있는 첫 번째 성경은 창1:26-27이다.여기서는 “짜르다, 베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형상’(첼램)과 “...와 비슷하다‘는 동사에서 유래된 ‘모양’(데무쓰)이란 두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창세기의 첫 장은 사람의 창조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는데, 동물들은 ‘각기 종류대로’(21, 24, 25절) 창조 받았지만 유독히 사람만은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 받았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이때 ‘형상’과 ‘모양’이라는 단어가 병행적으로 사용되었으나 히브리어 본문은 “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으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두 단어는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이 두 단어 사이에는 아무런 의미적 차이를 두고 있지 않다. 이 두어가 모두 의미하는 사상은 사람은 어떤 점에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며,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2)하나님의 형상에 관하여 두 번째로 다루고 있는 성경은 창9:6이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 후 노아와 맺은 새로운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말씀하셨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이후에는 모든 사람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에게 나온 자로서 같은 생명에 예속되어 있다. 따라서 타인의 생명이나 자기의 생명에 대해서 더 이상 주도권을 행사 할 수 없다. 레위기 17:10에서 "생명은 피에 있다"고 하시면서 피 있는 채 고기를 먹을 수 없게 하셨듯이 사람은 타인의 피를 흘려서는 안 되는 것은 그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까닭으로 생명의 원천을 건드림으로써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3)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내용을 제공하고 있는 또다른 성경은 시편8편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직접적인 단어는 사용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내용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선언하면서 모든 만물이 그 발아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4)‘형상’과 ‘모양’이란 단어는 창5:1-3에서도 발견된다. 1절에서는 ꡐ모양ꡑ이라는 단어만 사용되었으나 3절에서는 ‘모양’과 ‘형상’ 두 단어가 다 사용되었는데 창1;26-2절처럼 두 단어는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서가 아닌 타락한 아담의 모양과 형상으로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창1:26-27과 차이가 있다. 아담의 부패하고 오염된 죄의 본성이 그의 후손으로 오는 모든 사람에게 전가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2)신약에서의 하나님의 형상 이해
(1)사도 야고보는 3:9에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로 마하면서 이런 까닭에 사람을 저주하면 하나님이 모욕을 당하시는 것임을 말한다.
(2)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4:4에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용한 ‘형상’이라고 번역된 단어인 ‘에이콘’은 형상이란 말의 히브리어인 ‘첼램’과 동의어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 나타낸바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골로새서1:5에서는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임을 분명하게 말씀해 준다.
(3)예수님은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14:9)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네가 나를 바라본다면, 너는 아버지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완전한 형상이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이다.
(4)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이심은 히브리서1:3에서도 볼 수 있다.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정확한 형상이라.” 여기서 ‘정확한 형상’이란 원형으로서의 그 형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임을 말한다.
Ⅲ. 결 론
이상을 종합할 때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이시다. 바울은 롬8:29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음과 그리스도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셨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에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사람인 ‘하나님의 형상’이 실현된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