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정선을 걷다
1. 강원도 정선은 오지로 알려진 강원도 중에서도 오지이다. 정선의 고립된 지형은 강원도 지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정선은 오른쪽으로 태백산맥이 지나고 있으며, 위쪽으로는 평창의 험준한 지세가 가로막고 있고, 아래쪽으로는 영월과 태백의 탄광지역이 위치하고 있다. 국토의 주요 간선은 이곳까지 연결되지 않는다. 정선을 오기 위해서는 다른 강원도 지역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2. 그런 고립과 험준함이 정선을 특별한 장소로 변모시켰다. 정선으로 들어서면 막혀있다는 인상보다는 광활하게 탁 트인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비록 주변의 산세는 강렬한 위세로 지켜보고 있지만, 강이 흐르고 넓게 트인 평지는 여유로운 기운을 듬뿍 안겨준다. 오랜 전, 이곳으로 쫓겨 들어왔던 사람들도 험준한 산세를 지나 발견하게 된 아름다운 풍경에 경탄했을 듯싶었다. 두 개의 하천이 만난 아우라지에서부터 흘러내린 조양강의 흐름은 정선을 산과 물의 고장으로 만들어주었다. 물은 흘러내리며 사람이 만든 철도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연이어 연결되고 있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3. 이틀간의 정선 답사를 위해 숙소를 정선아리랑 5일장 앞에 있는 모델로 정했다. 소박하고 단순한 정선의 중심 지역은 바로 앞에 흐르는 조양강의 흐름 속에서 차분하게 자리잡고 있다. 5일장이 열리는 2일과 7일을 제외하고는 외지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지만, 장날이 되면 이곳은 대한민국의 가장 핫한 장소로 변모한다. 서울의 청량리에서 장날에 맞춰 ‘정선 아리랑 열차’가 출발한다. 최근 공사관계로 운행을 멈췄지만 조만간 다시 다닐 예정이라고 한다.
4. 정선 시장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음식은 ‘콧등치기 국수’이다. 익숙한 메밀국수이다. 이번에는 다른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강원도의 대표적인 전을 모은 ‘모둠전’이다. 가격도 1만으로 비싸지 않으며 메밀전, 메밀전병, 수수꾸미, 김치전 등을 하나로 모았다. 제대로 조합을 이룬 음식이었다. 과거 먹고 싶었지만 통합된 메뉴가 없어 주문이 부담스러웠는데 그런 욕구를 반영한 정선 아리랑 시장의 멋진 메뉴가 탄생한 것이다. 막걸리와 함께 기분 좋게 취한 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시장 바로 앞 조양강 <아라리 공원>으로 갔다. 1987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여 만든 공원이다. 벤치에 앉아 석양과 함께 조용히 흘러내려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요즘 내가 수집하고 있는 <석양에 어울리는 커피 마시기 좋은 장소>에 딱 맞는 곳이었다. 여유롭게 커피의 향에 취하면서 하나씩 밝아오는 건너편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맑고, 산은 높고, 물은 고요하다. 사람들도 사라진 어둑한 공원에서 마시는 커피는 떠도는 ‘고독’이 찾은 또 다른 즐거움의 하나였다.
1. 정선 올림픽 아리바우길 1코스(정선 5일장 - 나전역)
정선에서 강릉까지는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만들어져 있다. 정선의 물길을 따라 걷다 태백 산맥 줄기를 따라 강릉까지 가는 코스이다. 이번 답사는 정선 구간을 걷는다. 아리바우길 1코스는 정선 아리랑 시장에서 영화 촬영지로 잘 알려진 <나전역>까지이다. 코스는 처음부터 조양강을 따라 철길과 함께 걷는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막 피워난 벚꽃의 환영을 받으며 걸어간다. 듬직한 산의 얼굴이 여행자의 기운을 북돋아준다. 정말로 고요한 길이다.
길은 중간에서 산 쪽으로 빠지는 코스와 계속 강을 따라 걷는 코스로 나뉜다. 강 쪽 코스를 선택한다. 시간도 절약되지만 그보다 나는 단연코 ‘강’이 우선이다. 코스 출발점에서 가까운 정선역도 보통의 간이역과는 다르게 제법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관계로 이곳도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주변에는 몇 군데 카페와 식당도 보인다. 정선역을 출발하자 철길도 같이 따라 간다.
답사 안내문에는 약 7시간이 걸린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그것은 산쪽으로 코스를 잡았을 때의 추정시간이다. 강 쪽으로 걷게 되면 약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적어질 것이다. 코스의 난이도와 관계없이 봄날에는 강가를 걸어야 한다. 아름다운 꽃과 싱싱하게 살아나는 나무들의 생명이 강물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워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의 배경은 푸른 하늘과 높은 산들이다. 숲속이 주는 포근함도 좋지만, 어떤 막힘도 없이 세상 모두를 하나로 끌어 모아 같이 호흡하는 이런 모습이 좋다. 강과 산 그리고 하늘과 꽃이 길을 만들고 있다.
3시간 조금 더 걷자 북평면의 마을이 나타난다. <나전역>이 있는 곳이다. 나전교를 건너 나전역을 찾아 걷는다. 다리 입구에 <나전중학교>가 있지만, 마치 아무도 없는 듯, 너무도 조용하다. 분명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공간이지만 운동장에도 건물도 비워있는 듯하다. 시골 학교의 고적함이라고 해야할까? ‘나전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있다. 나전역은 카페로 꾸며져 운영되고 있었다. 기착역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철길은 언제나 그리움과 가능성의 세계이다. 항상 떠남을 환영하는 상징적 메시지를 철길은 갖고 있다. 북평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정선으로 귀환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코스였다.
2. 정선 아리바우 길 2코스(나전역 - 구절리역)
아리바우길 2코스는 나전역에서 이제는 폐역이 된 구절리역까지다. 코스의 길이는 약 22km라 한다. 차를 나전역 주차장에 세우고 답사를 시작했다. 어제 보았던 나전중학교 옆을 지나 산길로 들어선다. 이 코스는 꽃배루 재를 지나 아우라지로 향한다. 꽃배루 재는 S자 형으로 길을 만들어 그다지 힘들지 않으면서도 산 아래 광경을 충분히 보여준다. 1시간 조금 더 걷자 재의 꼭대기에 도달한 듯싶었다. 하지만 낭패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분명 어떤 갈림길도 없이 직선으로 따라 왔건만 안내 표지에 <나전역> 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중간에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아리바우길 1코스 산쪽 코스를 걸어야 했다.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이라 그다지 억울할 것도 없지만 나전역에서 아우라지 역으로 가는 길을 놓친 것이 아쉬었다. 정선은 아름답지만, 답사 안내는 부실하다. 코스 안내는 불필요한 곳에만 반복되어 있고, 꼭 필요한 곳에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도 코스를 놓쳤다. 제법 많은 답사의 경험이 쌓이고 있지만, 코스를 놓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아직도 부족함을 느낀다. 길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적은 것이다. 코스 안내와 관계없이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도치 않게 나전역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가 되었다. 삶도 이처럼 나아가는 방향을 놓치고 뱅뱅 원점으로 돌아오는지 모른다. 분명 걷고 있지만 변화되지 않는 관성의 수레바퀴를 돌릴 뿐이다.
첫댓글 아우라지 & 이라리 그리고 강과 함께 커피 한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