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TV 시청 소감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일본제 내셔널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있었다. 마을에서 두 번째로 라디오를 갖게 되었으니 나름 자랑거리가 될만했다. 라디오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신통방통했다. 아이들은 전파라는 개념이 생소한 터라 라디오 속에 작은 사람이 있다고 우기며 뜯어보다가 고장 내는 개구쟁이들도 있었다.
텔레비전 시대가 열리자, 광고에 나오는 과자나 음식을 내놓으라고 떼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점차 익숙해지면서 화면 속이 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너만 먹냐, 나도 좀 주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지금도 아이들 가운데 화면과 현실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어떨까?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처럼, 노인들도 화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심방 하면서 노인들로부터 텔레비전 시청 소감을 들을 기회가 있는데, 한 할머니는 며느리 방 텔레비전에는 젊고 예쁜 사람들만 나오는데 자기 방 텔레비전은 늙은 여자들만 나온다며 불평했다. 또 다른 할머니는 “나는 혼자 집에 있어도 심심하지 않아. 매일 밤 많은 사람이 우리 집에 놀러 오거든.” 어떤 할머니는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사람이 등장할 때 “저년 죽여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어제도 한 할머니 교인이 텔레비전 시청 소감을 들려주셨다. 무서운 장면을 보고 공포를 이기지 못해 방에 있지 못하고 아픈 다리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끄면 될 일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은 고령으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고, 때로는 치매의 초기 신호일 수도 있다.
텔레비전 시청뿐 아니라 채널을 바꾸거나 전원을 끄는 일에서도 다양한 에피소드가 생긴다. 전원을 끄지 못한 할아버지가 새벽 1시에 이웃집 새댁을 깨워 텔레비전을 꺼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다. 리모컨을 잘못 조작하여 고장이 난 줄 알고 먼 곳에 사는 자녀에게 전화를 걸어 “텔레비전이 고장 났으니 어떻게 좀 해 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래서 충청도 한 시골 목사님은 ‘목사 사용 설명서’를 만들어 마을에 돌렸다고 한다. 전등이나 텔레비전, 냉장고가 고장 나면 마을 목사에게 연락하라는 내용이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시골교회의 목사는 설교자이자, 수리공이며, 심부름꾼이다.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이웃집 빨래를 걷어 주고, 병든 이웃을 병원으로 데려다주는 구급대원이기도 하다. 농촌교회에서는 설교 잘하는 목사보다 젊고 체력이 좋은 목사가 더 필요한 이유다.
이런 일상의 에피소드 속에는 숨겨져 있는 애환이 있다. 노인들에게 텔레비전은 소일거리며, 외로움을 달래 주는 창문이요,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다. 목회자는 그들의 텔레비전 너머에 있는 외로움과 소통의 갈증을 읽어야 한다. 텔레비전을 끄고 켜는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의 불을 켜 주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