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통신과 같은 특정 산업에 전념하던 CRM업체들이 언제부터인가 의료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의료전문 CRM을 표방한 곳들도 수년 전부터 하나 둘씩 생겼다. 대형병원의 일인 줄로만 알았던 CRM이 개원가에도 낯선 단어가 아니게 되었다.

새로운 경영기법이 특정 산업에 유행처럼 번질 때에는 이유없는 열풍이 불기 마련이다. 공급자뿐만 아니라 수요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의료시장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CRM, 6시그마, MOT, ABC 등 각종 솔루션들이 범람하지만, 정작 해당 병의원의 특수성과 목표보다는 벤더(vendor)의 논리가 앞서는 경우가 많다.
CRM을 도입하는 이유에 대해서 병원들은 ‘고객만족도 제고를 위해서’와 같은 막연한 대답이나, ‘너도 나도 하니까’와 같이 목적의식 없는 대답을 한다.
벤더들은 ‘CRM은 단순한 경영기법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거창하면서도 아리송한 말을 늘어놓거나, ‘기업의 존재이유가 고객에게서 출발하기 때문’이라는 당연하면서 아무런 내용도 없는 말을 한다.
CRM은 어디까지나 경영기법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으며 수단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CRM의 가치는 경쟁우위 달성에 얼마나 효과적인 수단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경영자는 CRM을 도입하기 이전에 얼마나 우리 조직의 경쟁우위 달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CRM은 병원의 경쟁우위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얼마만큼이나 도움이 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CRM은 병원의 경쟁우위 달성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의료분야는 다른 어떤 산업에 비해서도 CRM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분야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병원의 고객들은 생애가치(LTV: lifetime value)가 높은 고객들이다.
생애가치라는 것은 고객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기여할 수 있는 매출액 혹은 이익을 의미한다. 생애가치를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 고가의 소비재다. 한 명의 고객으로부터 평생 동안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특정 브랜드의 자동차를 구입한 고객은 다음 번에도 같은 브랜드의 다른 기종으로 바꾸고, 혼수로 장만한 생애최초의 냉장고나 세탁기가 마음에 들면 평생 같은 브랜드를 고집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한 명의 고객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상당히 크다.
분야마다 차이는 있지만 의료서비스만큼 고객의 생애가치가 높은 곳도 없다. 보톡스시술을 받았는데 효과가 좋았다면 다음 번에는 주름제거술도 받아보고 싶어질 것이다. 팔뚝 지방흡입이 성공적이었다면 종아리퇴축술에도 신뢰를 줄 것이다.
의료가 고객의 생애가치가 높은 또다른 이유는 그 어느 곳보다 구전효과가 큰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고객생애가치는 고객 한 명의 매출기여도로만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특정 고객이 추천한 사람들의 매출액까지 포함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의료에서 구전마케팅(buzz marketing)이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둘째, 병원은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촉채널을 가지고 있다.
간접 채널을 활용하는 제조업체는 유통채널의 협조 없이는 개별 고객의 구매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 반면, 병원에서는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고객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용이하며, 나아가 면대면 접촉과 심층적인 상담을 통해 고객성향을 파악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셋째, 고객과의 접촉빈도가 잦은 편이다.
고객과의 접촉빈도가 잦다는 것은 고객데이터의 갱신이 그만큼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터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데이터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쓸모없는 데이터만 남는 것도 CRM 활용에 주요한 장애요인이 된다. 고객과의 접촉빈도가 낮을수록 수집된 자료는 쓰레기가 되고 만다.
심리적으로도 잦은 만남은 상대방에 대해 보다 높은 호감을 갖게 한다. 접촉빈도가 잦아질수록 병원에 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게 되고, 결국 그 병원은 마음 속에 친근한 브랜드로 자리잡게 된다.
넷째, 병원에서 다루는 고객정보는 다양하면서도 실명화된 정확한 정보들이다.
병원에서는 고객유형과 관련되 다양한 분석정보의 생성이 가능하고 정확성 또한 담보할 수 있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산업에서 CRM이 가장 활성화된 것도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개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다섯째, 의료서비스가 갖는 경험재로서의 특징이다.
의료서비스는 사용하기 전까지는 그 결과를 판단할 수 없는 경험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떤 척추전문병원에서 허리디스크수술을 잘 하는지 방문하기 전에는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한 정보가 되지만 나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
또한 고객이 의료의 질을 평가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본질적인 서비스인 진료나 시술도 중요하지만 진료프로세스나 친절서비스 등 자신의 전반적인 체험에 비추어 병원을 평가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병원은 고객관리에 보다 더 정성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의료서비스는 CRM을 활용하여 경쟁력을 높이기에 매우 적합한 분야이다.
병원에 CRM이 필요한 이유는,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병원의 존재이유가 고객에게 있기 때문도 아니다. CRM을 도입함으로써 고객들이 우리병원을 계속 찾도록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병원의 수익성을 제고하고 브랜드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메디게이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