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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일간신문인 "아이리쉬 타임즈"와의 인터뷰라 아일랜드 관련 내용이 많습니다.
투어일기에서 말씀드렸던 노엘의 아일랜드 혈통에 대한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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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칼에 찔린 줄 알았다'
3주 전, 노엘 갤러거는 토론토 무대에서 공격을 당해 본인은 늑골이 골절되고 밴드는 공연을 취소해야만 했다. 아직도 부상에서 회복 중인 오아시스의 브레인이 브라이언 보이드에게, 아일랜드 출신인 가해자, 본인의 아일랜드 혈통, "기후 변화", 피트 도허티의 손톱, 톰 요크의 노래, 실버민트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만약 이 인터뷰 도중에 내가 좀 바보같이 굴고 쓰레기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좀 알려주겠나?" 노엘 갤러거는 중부 런던에 있는 자신의 음반회사 사무실에서 어색하게 앉으며 이렇게 묻는다.
"(바보같고 쓰레기 같은 말인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차리겠나?" 내가 대답한다. 잠시 불길한 침묵이 흐른 후 갤러거의 입술에 천천히 미소가 번진다.
"요즘 내가 먹는 진통제 때문이야. 그건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강력한 진통제인 거 같은데, 내가 그 약을 먹으면 폭주하는 경향이 있다고 사람들이 얘기해 주더라구.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이런 강한 진통제는 몸이 멀쩡할 때 먹어야 재미가 있지. 하하."
이 오아시스의 기타리스트는 지난달 토론토 공연 중 떠밀려 넘어졌을 때 3개의 늑골이 골절되어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다. 대화 도중 갑자기 "마크 채프먼*¹"이란 이름이 튀어나왔을 때에서야 비로소 무대에서의 피습이 갤러거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¹ : 존 레논 암살범.
무대에서의 피습에 대해 : "난 완전히 겁에 질렸었다"
"난 유튜브 수퍼스타야" 그가 인상을 쓰며 말한다. "최근 몇년간 최고 조회수라고 들었어. 사람들이 리암이 얼마나 잘 대응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군. 동영상을 보면 걔가 날 공격한 놈을 갈기려고 하는 게 보이지.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후에야 걔가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걸 알 수 있어.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 없지만 그 사고는 보기보다 심각했어. 사실 난 칼에 찔린 줄 알았다니까.
그 놈은 비가 내리던 무대 뒤에 있었지. 그리고 날 뒤에서 덥쳤고 난 모니터 위로 떨어졌어. 난 그 즉시 등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는데, 갈비뼈가 부러진 곳이었어. 그때 내 다리 쪽을 보니까 그 놈의 젖은 발자국이 남았더라구. 난 그게 피인 줄 알았어. 난 완전히 겁에 질렸었지.
그때까진 모든 게 훌륭했어. 폴 웰러가 우리 바로 전에 공연을 했었고, 그날 밤엔 그와 진탕 마실 계획을 세웠었다구. 근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난 병원에 있었지. 경호원들은 어디있었냐구? 경호원 두 명이 무대 옆에서 신나게 기타치는 시늉을 하고 있었지! 그건 페스티벌이라서 우리 전속 경호원을 데려오지 않았어. 당연히 이제 우린 경호 상황을 재고해봐야 되겠지만, 마돈나처럼 400명씩 데리고 다니고 싶지는 않아.
근데 알고 보니 어땠는지 알아? 날 공격한 놈이 아일랜드인이라는 거야! 47살인데 이제 막 캐나다 시민권을 얻은 것 같아. 전세계를 상대로 아일랜드 민족에게 먹칠하기 싫어서 이 얘긴 지금까지 한 번도 얘기 안했어.
아일랜드 혈통에 대해 : "내 몸엔 잉글랜드인의 피가 한 방울도 섞여있지 않다"
난 우리가 자랄 때 엄마가 우리 형제들에게 해주셨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너희들이 잉글랜드인인 건 단지 잉글랜드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야." 마요 출신 어머니에 미쓰 출신 아버지를 둔 내 몸엔 잉글랜드인의 피가 한 방울도 안섞여있지. 난 최근에 스코틀랜드인 여자친구와 아들을 낳았는데, 걔 몸에도 역시 잉글랜드인의 피는 전혀 흐르지 않지.
난 여기 옆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은 아일랜드인이라고 느껴. 내가 처음으로 접했던 음악이 맨체스터에 있는 아이리쉬 클럽에서 밴드들이 부르던 투쟁가였어. 오아시스의 노래들이 주먹을 하늘로 찌르는 듯한 분위기를 갖게 된 건, 내가 그런 선동적인 투쟁가를 들으며 자랐기 때문인 것 같아. 전부 투쟁가 아니면 형편없는 아이리쉬 컨트리/웨스턴 음악들 뿐이었지.
난 아일랜드계 카톨릭 신자로 자랐어. 우리 엄마는 아일랜드 버터랑 우유만 샀던 기억이 나. 하지만 70년대 당시엔 폭탄 테러 같은 것 때문에, 우리 동네 가게엔 아일랜드 제품을 갖다 놓질 않았고, 엄만 다른 곳에 가서 사셔야 했지. 부모님이 맨체스터에 있는 아이리쉬 클럽 중 하나인 캐러셀 클럽에 갔다 오면서 주차장의 차들이 반(反) 아일랜드 군중들에 의해 박살났던 얘길 들려주던 게 생생히 기억나. 무서웠지.
작곡에 대해 : "어떨 땐 1년에 3곡 밖에 못쓸 때도 있다"
이번 앨범을 쓸 땐 내 작곡능력이 최고조였어. 어떨 땐 1년에 3곡 밖에 못쓸 때도 있지만, 이번 앨범은 완전 초스피드로 작곡했지. 심지어 믹싱을 할 때에도, 믹싱 데스크에 앉아서 3곡을 더 썼어. 지금 30곡 정도가 놀고 있어. 지난 주에 매니저한테 작사가를 고용해서 그 곡들을 완성하는 건 어떨지 얘기하기도 했어. 그 중에 3곡 정도는 여자가 불러도 될 것 같아. 하지만 에이미 와인하우스한테는 줄 수 없어.
난 맘만 먹으면 다작을 하는 작곡가가 될 수 있어. 난 Definitely Maybe의 모든 곡을 오아시스란 밴드가 존재하기도 전에 이미 다 썼었지. 난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투어 스탭이었기 때문에 락앤롤 라이프 스타일로 살아야 했어. 전세계를 돌며 투어를 하고 마약도 잔뜩 하고 남는 시간에 장비를 셋팅했지. 사진찍고 뮤직비디오 촬영하는 그런 귀찮은 걸 안하고도 락앤롤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구.
그땐 그 곡들이 세상빛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 그냥 내가 약에 취했을 때 혼자 부르려고 작곡한 곡들이지. 인스파이럴 공연 사운드체크 때 그 곡들을 연주하곤 했어. 그러다가 하루는 외국에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엄마가 "리암이 막 밴드에 들어갔다"고 하시는거야. 난 그걸 듣고 쓰러질 정도로 웃었고, 맨체스터에 돌아왔을 때 걔들을 놀려주려고 연습하는 걸 보러갔지.
리암은 내가 작곡을 한다는 걸 아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나한테 "형이 쓴 그 쓰레기들 중에 하나만 들려줘"라고 했지. 난 Columbia를 들려줬어. 걔들은 나한테 밴드에 들어와달라고 했고... 1993년, 우린 지금 생각하면 푼돈인 48,000달러에 크리에이션 레코드와 계약을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보노의 회사[마더 레코드]가 3배의 금액을 제시했어. 그건 맨체스터의 어린 실업자들에겐 엄청난 액수였지. 하지만 앨런 맥기가 계약서를 다 만들어놨고 자기가 우릴 얼마나 믿고 있는지 항상 이야기했었기 때문에, 우린 그대로 크리에이션과 계약하기로 했어.
무절제한 생활에 대해 : "우린 세상의 코카인이란 코카인은 다 가졌었다"
만약 누군가 - 두 개의 경이적으로 성공적인 앨범을 낸 후 3집 녹음에 들어가려고 할 때의 우리처럼 - 세상의 시간이란 시간과 돈이란 돈을 다 가지게 된다면 그건 별로 좋은 게 아니다. 물론 이 말도 해야 되겠지. 우린 세상의 코카인이란 코카인도 다 가졌었지. 난 아직도 사람들에게 Be Here Now야말로 가장 좋은 코카인 퇴치 광고라고 말해. 그 앨범은 너무 길고 스스로에 대한 자만심에 질식할 지경이지 - 코카인 사용자들이 그런 것처럼. 내가 그 11분짜리 대곡들을 쓸 때, 난 계속 스튜디오의 누군가가 "그건 좀 긴 것 같은데"라고 말해주길 기다렸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지. 그때 우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밴드였기 때문에 아무도 나서서 입바른 소릴 하려고 하지 않았어.
그래도 Be Here Now엔 훌륭한 곡이 몇 개 있는 것 같아. 단지 18개의 기타 레이어 밑에 파묻혀 있는 걸 발굴해야 되는 게 문제지만. 얼마전 투어*²에서 Don't Go Away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연주한 적이 있는데, 진짜로, 다 큰 남자들이 눈물을 흘리더라니까. 가끔은 그 앨범 전체를 프로툴을 이용해서 재편집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폴 맥카트니가 The Long And Winding Road에서 필 스펙터의 현악 연주를 빼버렸던 것처럼 말야.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들어. 잠깐, 그 앨범 역시 밴드에 있으면서 겪게 되는 롤러코스터의 일부분이잖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들어오는 게 있으면 나가는 게 있게 마련이지. 그렇지 않다면 킨에나 들어가는 게 나아.
*² : Teenage Cancer Trust 2007 (2007년 3월 26일, 런던 로열 알버트 홀). 제가 버스 한 번 운행한 적이 있죠^^
형제관계에 대해 : "난 아직도 우리가 미국을 뚫지 못한 건 리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새 앨범에서 내가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세 곡이 Waiting for the Rapture, Falling Down 그리고 I'm Outta Time이야. 앞에 두 곡은 내가 불렀지. 난 이번 앨범에 와서야 진정한 내 목소리를 찾은 것 같아. 그 전엔, 투어갈 때 리암이 귀하신 몸을 직접 행차하지 않는다거나 그럴 때만 내가 리드 보컬을 맡았지 - 그리고 난 아직도 우리가 미국을 뚫지 못한 건 리암 때문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앨범을 많이 팔고 있었고, 아주 결정적인 미국 투어를 시작하려고 할 때, 걘 공항에 와서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 우릴 완전히 오도가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구.
그건 차치하고서라도, 메인 보컬이, 몸소 공연에 행차했을 때의 리암처럼 훌륭한 락앤롤 프론트맨인 경우에, 그 밴드에서 서브 보컬을 맡는다는 건 어려울 수 있어. 하지만 유투의 에지를 한 번 보라구. 그는 훌륭한 목소리를 가졌지만, 보노가 메인 보컬이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을 수가 없지. Rattle and Hum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에지가 부른 Van Diemen's Land야. 그래서 난 나 자신을 오아시스의 에지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그렇지만 앞으론 내가 더 많은 곡을 부를거야. 특히 Waiting for the Rapture에서의 내 목소리가 아주 자랑스럽기 때문에. 가성 부분이 정말 끝내줬지.
I'm Outta Time에 대해 얘길하자면, 리암이 존 레논에 대한 헌정곡을 하나 썼어. 정말 끔찍한 곡이 될 수도 있었지만, 난 진심으로 이 곡이 이번 앨범의 Wonderwall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리암은 자기가 작곡한 곡을 더 잘 부르지. 왜냐하면 자기 음역에 맞게 곡을 쓰니까. 이 곡엔 존 레논 육성 샘플까지 들어있어. 노래 마지막 부분에서 들을 수 있지. 우린 요코 여사에게 사용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어렵지 않았어. 그분은 우릴 사랑하시거든. 아마도 우리 모두가 존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계시기 때문이겠지.
가사는 내 강점이 아니야. 난 항상 가사를 곡에 끼워 맞춰. 반면에 모리씨 같은 사람은 곡을 가사에 맞추는 스타일이지.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Falling Down의 가사는 뿌듯해. 당신은 아까 그 곡이 마약으로 인한 몰락에 대한 곡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지. 그 곡은 내가 작년 이맘 때쯤 우리집 뒷마당에 앉아서 아름다운 초가을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던 때로부터 시작된 곡이야. 난 기후변화 어쩌구 이런 걸 한참 생각했는데, 인간이 이 모든 걸 파괴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지.
하지만 그 곡으로부터 꼭 그런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어. 난 자서전이나 곡 해설지 같은 걸 쓰지 않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 있고 난 이 곡이 A에 관한 곡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참 후에 작곡가가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그 곡은 X 혹은 Y에 관한 곡'이라고 말하는 게 너무 싫거든.
다른 뮤지션들에 대해 : "난 라디오헤드를 좋아한다... 톰 요크가 노래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난 한 번도 오아시스 이외의 다른 걸 할 필요를 못느껴봤어. 내겐 밴드만으로도 충분해. 이건 모욕을 하려는 게 아니지만, 데이먼 알반을 보라구. 그가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을 땐, 또다른 이런 저런 것들을 하지. 난 그런 건 필요없어. 난 내 생활이 있다구. 난 출세지상주의자가 아냐. 난 "이번 신보에서는 우리 안전지대를 벗어나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라고 하는 밴드들이 정말 싫어. 그런 건 개나 주라지. 난 내 안전지대를 구축하기 위해 18년을 보냈고, 그걸 벗어나지 않을거야. 그리고 라디오헤드 같은 밴드들과 그들의 '예술적 진보'는... 젠장. 난 라디오헤드를 좋아해 - 톰 요크가 노래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계급에 대해 : "난 절대 피트 도허티처럼 손톱 밑에 때가 낀 채로 다닐 순 없을 거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앞으로도 영원히 아일랜드의 브런치 바에서 음식을 먹었던 때일 거야 - 거기 기억 나나? - 마요의 찰스타운에 있던 곳들 말야. 브런치 바와 실버민트는 언제까지고 내 가슴 속에 특별하게 자리잡고 있을 거야. 왜냐하면 그것들은 아일랜드에만 있는 거니까. 우린 매년 6주 정도를 찰스타운에서 보내곤 했어. 정말 대단했지. 맨체스터의 공공임대주택 - 게다가 우린 3면이 막힌 막다른 골목에 살았어 - 에서 살다가 경치가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곳에 온 거니까. 어릴 때 정말 좋아했지. 강에 고기잡으러 가기도 하고, 건초 나르는 걸 돕기도 했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릴 때의 기억은 찰스타운 집 옆에 있는 우물에 갔던 기억이야. 내가 꼬마였을 땐 거기 수도가 안들어 왔었거든. 난 아직도 1년에 한 번씩은 거기로 가. 그 곳의 냄새만 맡아도 바로 정말정말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구.
난 여전히 아주 강한 정체성을 느끼고 있어. 아일랜드인 부모 밑에서 자란 노동계급 아들로서의 정체성. 그게 바로 내가 절대 피트 도허티처럼 손톱 밑에 때가 낀 채로 신사 모자를 쓰고 셔츠를 빼서 입고 돌아다니지 못하는 이유지. 노동계급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자부심을 가지기 때문에, 절대 그런 꼴로 돌아다니지 않아.
내게 일어났던 최악의 일들 중 하나가 내가 블러에 대해 그런 말을 했을 때였어[1995년 한 인터뷰에서 갤러거는 데이먼 알반과 알렉스 제임스가 에이즈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후에 이를 철회하고 사과한 바 있다]. 우리 엄마가 그걸 보시곤 나한테 전화를 했는데, 정말 화가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난 널 그런 식으로 말하라고 키우지 않았다." 너무나도 뼈아픈 질책이었지.
그 엄청난 앨범 판매고, 넵워스에서의 거대한 공연, '영국 음악의 구원자'라고 불려지던 것...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난 내 정체성을 지켜왔어. 우리가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조차 난 내 자신이 옆에 있는 평범한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사실 그 반대가 맞을 수는 있어도 말이지. 난 여전히 여기 앉아서 내 운이 다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 2008 The Irish Times
출처 : http://www.irishtimes.com/newspaper/theticket/2008/1003/12228154692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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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관계에 대해" 부분은 결론적으론 (노엘이 한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리암을 칭찬하는 내용이지만 언론은 항상 표제를 저렇게 뽑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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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었어요................모냐 이 찜찜함은...........노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구........................또 노엘 다쳤을때 생각나ㄴㅔ요.......에궁
맨체스터에 돌아왔을 때 걔들을 놀려주려고 연습하는 걸 보러갔지......................................................ㅋㅋㅋㅋㅋㅋㅋㅋ
정체성을 지키는 Noel의 태도가 정말 맘에 들어요. "내 운이 다할 때를 기다린다..." 멋지다...
참... 투어일기도 새로운 게 올라왔던데... 부탁해요~~~~~~~~ㅎㅎ
우와 .... 진짜 인터뷰 너무 좋다 ㅠㅠ 페퍼민트님 이런 심도있는 인터뷰 어디서 찾으세요 ?? 제가 찾으려고 하면 맨날 찌라시만 나와요 ㅠㅠ 했던 질문 또하고 또하는 ㅋㅋ
사실 여러분이 놀라실까봐 여러 신문,잡지의 이름을 빌렸을 뿐 제가 매일 노엘과 직접 전화로 통화한 내용입니다
ㅎㅎㅎㅎㅎ 센스 만점 페퍼민트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잠시 페퍼민트님의 말씀 진심인줄 생각하고 깜놀 ㅋㅋㅋㅋㅋㅋ
zzzzzz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런 대답을 하실 줄이야 근데 웬지 진짜같아요ㅋㅋㅋㅋㅋ
페퍼님은 언제나 진지하셔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 믿어버릴꺼같애
우앗 왠지 사실일것 같은... 아침마다 노엘한테 전화해서 굿모닝 인사 하는 거 아니에요? ㅋㅋ
ㅋㅋㅋ페퍼민트님.. 이렇게 진지하게 개그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개그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헐 페퍼민트님..ㅠㅠㅠㅠㅠ
이런슈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페퍼님 전 믿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쩔수없다
전 페퍼민트님읩 발닦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노엘 노래 남는거 많으면 나한테 좀 주지 ....ㅋㅋ 뮤지컬 만들어보고 싶다
TCT의 Don't Go Away는 최고였죠 정말. 그나저나 이번 인터뷰는 멋지면서 어딘지 서글프기도 하네요... "우리가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조차 난 내 자신이 옆에 있는 평범한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역시 모든 어머님들은 위대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귀기울이고 싶어지는 부제목들ㅋ 오늘도 역시 인터뷰 번역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아 진심으로 저 신문 사고싶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모든 노엘의 이너뷰들이 다 알차지만 이번 이너뷰 특히 좋아요 ㅠㅠ
왠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인터뷰네요.. 감사해요^^
아 이번 인터뷰 너무 좋으네요^^ 질문도 좋고 대답도 좋고, 오늘따라 노엘대장이 보고싶다는!!!
톰요크가 노래를 시작하기 전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엘은 제 삶의 나침반이군요~~ 존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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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조차 난 내 자신이 옆에 있는 평범한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뭔가 어르신의 포스가 ... 멋져요 ㅠ 잘읽었습니다~
항상 정성스러운 번역 감사드립니다 ^^ 정보 구하기도 힘들텐데, 이렇게 번역까지... 리플이라도 달아서 감사 인사 드리고 싶네여
잘읽었습니다, 감사해요!
노엘이 자기 혈통에 대해서 저렇게 진지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피습한 사람이 자기민족 사람이라니 어디가서 말도 못하고 참 답답했었겠네요 ㅜㅜ 페퍼민트님 재믺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