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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시 52:1-9)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교회에 참 잘 나오셨습니다.
시편 1:1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의인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 있는 사람을 가리켜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입니다.
여러분!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92:12절을 보면,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라고 했고, 시편 104:16절을 보면,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곧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의인을 종려나무로, 백향목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심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시고,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 17:7-8절을 보면,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의인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은 의인의 삶은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하는 삶이지만, 악인의 삶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시편 1:4-5절을 보면,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의인들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인데, 악인들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기 때문에,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의 길을 걷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의인의 길, 복 받은 길을 걸으십시오.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가 되십시오.
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아멘.
오늘 시편 52편은 “포악한 자여”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포악한 자”가 의인일까요? 악인일까요? 말할 필요도 없이 악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악인의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악인의 첫 번째 특징은 먼저 그의 생각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절에 “악한 계획”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악한 사람은 늘 악한 생각, 악한 계획 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악한 사람은 항상 생각하기를 “어떻게 하면 죄를 지을까?”라고 죄를 도모합니다. 지극히 인위적이고, 인간적인 생각이요, 하나님을 떠난 생각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악인은 자기의 악한 생각을 가만히 담아두지 못하고, 스스로 자랑하고 다닙니다. 여기저기 떠벌리고 돌아다닙니다. 입이 간질간질하여 가만 있지를 못합니다.
노아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다 그랬습니다.
창세기 6: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생각했다 그러면 악한 생각이고, 무엇을 계획했다 그러면 악한 계획입니다. 몇 사람이 모여 수군수군 거리면 악한 것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자꾸만 죄를 짓고, 너무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들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여러분! 악인은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늘 악한 생각 속에 악한 해석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찔리고, “오늘은 나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다 나를 위한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권사님들 들으라는 말씀이고, 이번 주일에는 집사님들만 들으라는 말씀이고, 다음 주일에는 젊은 사람들만 들으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언제나 나를 위한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때, 은혜가 됩니다. 누군가가 들어야 할 말씀이 아니라, 바로 내가 들어야할 말씀인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누가 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오늘은 나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구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더 나아가 깊이 마음에 찔림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여,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충성하겠습니다.”라고 회개하면, 복이 될텐데, 회개할 생각은 안 하고 “누가 일러 바쳤을까? 나 들으라고 대놓고 이야기하시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무슨 굳은 결심이나 한 듯이, “잡히기만 해봐라. 죽었어!” 그러고 이를 악뭅니다.
여러분! 악한 생각, 악한 계획이, 그 머리에 가득한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악인이라는 것입니다.
포악한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므로 악인이 되지 아니하고, 선한 사람이 되려면, 선한 생각, 선한 계획 속에, 항상 사로잡혀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를 든든히 세울까?”
“어떻게 하면 신앙이 더욱더 성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설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일까?”
뭔가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적인 사고로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말과 행동이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이, 악인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 속에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악인의 특징은 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아멘.
모든 악이 그 사람의 혀에서 나옵니다. 혀를 보면 그 사람이 악인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우리가 건강을 진단할 때에도, 혀를 내밀어 보라고 합니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 보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아 하고 입을 벌려 보라”고 그럽니다. 그리고선 후레쉬로 비춰서 혀를 관찰하고 그 안쪽도 관찰합니다. 혀를 보면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답니다 .
그렇습니다. 악인의 특징 두 번째는, 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는데, 악인은 심한 악을 꾀하고, 간사를 꾀하고, 악을 도모하며 거짓을 사랑합니다.
그가 입을 열었다 하면, 주변이 시끄러워지고, 문제가 생기고, 싸움이 일어나고, 분쟁이 생깁니다. 평안이 깨져버립니다.
악인은 아주 간사하고, 거짓된 말을 즐겨합니다. 가슴에는 모사가 있고, 손가락에는 죄의 전가가 있고, 그의 발은 악을 행하기에 민첩합니다. 그러므로 정말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한다면, 은혜 받기를 원한다면, 이 혀부터 고쳐야 합니다.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 간사한 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참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서울 남대문 시장을 가보면, 좁은 통로에서, 손바닥을 치고 발을 굴러가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데, “자! 골라요 골라. 아주머니 아자씨 언니 동생 사장님 사모님 골라요 골라” 그러면서 꼭 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 “말만 잘하면 공짜로 준다!” 그럽니다.
“자 말만 잘하면 공짭니다. 공짜”
어디를 가든 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 입을 열면 찬송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고, 칭찬이 나오는 복된 입술, 복된 혀가 되십시오.
그런데 인간에게는 죄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좋은 말, 선한 말보다는, 남을 흉보는 말, 악한 말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더 솔깃해지는 것은 “이거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고 혼자만 알고 있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가서, 또 그렇게 말합니다.
“이거 남들한테 절대로 말하지 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당신한테만 특별히 말하는거야. 비밀이야”
특별히 나에게만 말해 주는 것이고, 혼자만 알라는 말에 더 귀가 솔깃해집니다. 이게 다 원수 마귀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살았던 아담과 하와가 시험에 들게 된 것도 바로 말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물었습니다. “아담아 왜 그랬느냐?”
아담이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하와가 그랬어요!”라고 둘러댑니다.
하와한테 “왜 그랬느냐?”라고 물으니까, 하와도 “뱀이 그랬어요”라고 둘러댑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라고 했다면, 아마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말에 실수가 없으려면, 세 가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되고, 둘째는 급하게 하지 말아야 하고, 셋째는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을 이것저것 많이 하다보면, 실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을 급하게 하는 것도, 역시 실수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하지 말고, 좀더 심사숙고하고, 내일이나 한달 후에 하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한번 더 생각해 보시고 말을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잘 하다가가도 말 한미디로 다 까먹어버리는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 있습니다.
또 세 번째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옛말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도 어린아이가 우니까, “호랑이 온다. 아이구 무서워. 호랑이가 잡아간데. 울지 마 뚝. 저봐 저봐 호랑이 오네” 그러니까 정말 밖에 호랑이가 왔더랍니다.
두세 사람이 모여,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바로 그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정말 호랑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함부로 말했다간 다 죽게 되겠지요.
귀신 귀신하면, 모든 것이 귀신으로 생각됩니다. 어떤 사람은, 쥐가 지나가도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피곤해서 잠이 오면 “잠 마귀야 물러가라”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감기만 들려도 “감기 귀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머리에 손을 얻고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칩니다.
뭐 그럴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감기에는 약 하나 먹고, 땀을 푹 내면 됩니다. 함부로 말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상대방의 가슴을 깊이 찌르는, 남을 해치는 그런 말보다는,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말이라도 그의 영혼을 살리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친절, 또 한 마디의 작은 격려, 칭찬, 배려, 이런 것이 얼마나 교회를 아름답게 만들고, 사회를 살기 좋게 만들고, 이 나라를 밝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우리 속담에 “내가 다시 마시지 않겠다고 침 뱉고 돌아선 우물, 나중에 다시 찾는다.”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생각과 친절한 말씨로 이웃을 대하면 우리에게 언젠가는 큰 축복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마태복음 10:12-13절에 보면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복을 빌어주라는 말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받을만 하면 받을 것이요, 그 사람이 합당치 않으면 그 복이 복을 빈 사람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를 좋게 바꾸는 방법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부흥 성장시키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자랑하는 데 있습니다. 목회자를 자랑하고 서서 서로를 자랑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하여, 희망찬 이야기, 밝은 이야기,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한 이야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교인들끼리 만났을 때에도,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도, 교회의 좋은 이야기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 받은 이야기, 기도 응답받은 이야기, 그런 좋은 이야기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 한 마디로 교회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교회의 어두운 이야기, 문제거리, 목사님에 대한 험담, 다른 성도들의 행실 등, 안 좋은 이야기들만 그 사람에게 잔뜩 늘어놓는다면,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안 나오겠습니까?
만났다 하면, 교회의 안 좋은 이야기만 한참 하다가, 마지막으로 “교회 한번 나와 봐”하면,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원망과 불평, 시기와 질투의 말만 늘어놓으면 교회에 나오고 싶어할까요?
여러분! 입술을 열면, 복된 말, 좋은 말,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말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서 3:2절을 보면,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했습니다.
누가 온전한 사람입니까? 온전한 사람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시기와 질투의 말, 원망과 불평의 말을 버리고, 사랑과 격려의 말, 칭찬의 말을 많이 함으로,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악인의 특징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악인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악인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악인이라고 해서, 강도나 도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악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술 먹는 사람, 담배 피우는 사람이, 악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압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들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자 술에 취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담배 빼물고 한숨을 길게 내쉬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술이나 담배가 악인을 정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인과 악인의 잣대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이 악인인 것입니다.
술 담배 안 해도, 더 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술 담배 하는 사람은, 그래도 교회에 갈 때는, 수없이 양치질을 하고, 자기 스스로 입에 손을 대서, “후우!” 바람을 불며, 냄새가 나는지 안나는지 확인을 하고, 그러고나서 교회에 나옵니다. 얼마나 양심적입니까?
목사님이 심방을 온다고 그러면, 얼른 재떨이를 숨기고, 추운데도 창문을 활짝 열어서, 환기를 합니다. 얼마나 정성을 다하고 양심적입니까?
길가에 침을 뱉았다고 악한 사람인가요? 신호등을 안 지킨다고 나쁜 사람인가요?
지금 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에, 목이 컬컬하고 뭔가 목에 걸렸던 것이, 마침 나와서, 무심코 뱉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정말 급한 볼일이 있어서 좌우를 살피며, 자기 딴에는 목숨을 걸고, 신호등을 건너는데, 그 뒤통수에다 대고, “나쁜 인간”이라고, 진짜로는 못하니까, 속으로 그렇게 외치면, 그거 되겠습니까? 보이는 것을 보고, 무조건 사람을 판단하면, 안됩니다.
겉으로는, 신사요, 요조숙녀요, 예의 바르고,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바로 악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사람, 하나님을 떠난 사람,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이 바로 악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52편 위에는 그런 글이 써 있습니다.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
“마스길”이라는 말은, 교훈이라는 말인데, 본문의 배경을 설명한 글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칼날을 피해서 도망을 다니다가, 아히멜렉이라는 제사장의 집을 들리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왔기에, 아히멜렉은 오신 손님이니, 소홀히 할 수가 없어서, 정성스레 대접을 했는데, 그것을 도엑이라는 사람이 봤습니다.
아히멜렉은, 단지 명성이 자자한 다윗을, 순수한 마음으로 대접한 것뿐인데, 마치 다윗과 함께 사울을 대적하는 편이 되어, 그를 도운 것처럼, 그렇게 사울왕에게 아히멜렉을 도엑이 고소한 것입니다.
결국 이 도엑이라고 하는 사람 때문에, 제사장 아히멜렉은 억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사울은 그 지역의 모든 제사장들 85명의 제사장들까지 다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무도 제사장을 죽이려하지 않자, 도엑에게 죽이라고 명령했고, 도엑은 제사장 아히멜렉과 함께, 85명의 제사장을 전부 죽이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젖먹는 어린아이들과 짐승들까지 전부 죽이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도엑이라는 사람을 가리켜 “포악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울의 목자장으로서,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권력을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몰살시키는데 사용했습니다. 그의 머리는 악한 계획을 가졌고, 그의 혀는 날카로운 삭도같이 간사를 행하고, 하나님을 힘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의지하고,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를 든든하게 하는 악한 자, 포악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죄도 모르고, 그 악한 행위를, 마치 무슨 영웅적인 행위인양 떠벌이고 돌아 다녔습니다.
여러분! 악한 말, 원망과 불평의 말, 시기와 질투의 말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말, 칭찬과 격려의 말, 감사의 말만 갑절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수기 14:28절을 보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은혜의 말, 축복의 말을 많이 하십시오. 하나님이 귀에 들린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저주의 말을 많이 하면 저주가 돌아올 것입니다. 축복의 말을 많이 하면 축복이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말을 많이 하여야 할까요? 당연히 좋은 말만 많이 하여야 합니다. 은혜의 말, 축복의 말,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세워 주는 말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아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 곳이나 심어진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가 되십시오.
“푸른 감람나무”는 황무한 지역에서 잘 자라므로, 시련 중에서도 낙심치 않고, 굳건히 서 있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같은 나무라도 집 안에 있는 나무는 주인의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나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화초를 좋아하고, 관상목을 키우는 분들 보면,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지 모릅니다.
아침 햇살이 잘 비취는 곳에 화분을 놓았다가, 낮에 해가 이동을 하면, 그 화분을 또 옮겨놓고, 바람이 너무 불고, 비가 들이치면, 안으로 들여놓고, 날씨가 화창하고 좋으면, 밖에 내다 놓기도 하고,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지 모릅니다.
똑같은 나무라 할지라도 누구네 집에 있느냐에 따라 화초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이 틀립니다.
똑같은 나무라 할지라도 누구네 집으로 가면 금방 죽어 버리는데, 누구네 집으로 가면 죽어가던 것도 다시 살아납니다.
죽는 역사가 아니라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는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감싸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에 있으십시오. 교회 중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중심의 삶을 사십시오.
시편 121:7-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가 되어,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보호를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자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가 되어,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 있기를 원합니다.
항상 우리를 돌보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