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에 신록이 우거져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음력 4월이면 농촌에서는 훈훈한 봄바람과 더불어 모판을 만들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마른 논에 물을 잡아 가두는 일로 바빠진다. 남쪽지방으로부터 감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올콩과 참깨를 심고 봄누에를 쳐야하는 때도 지금이다. 절기상으로 소만에서 망종까지가 농촌에서는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다. 부뚜막의 부지깽이도 나서야 한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할일이 많을 때다. 보리가 누렇게 익기 시작하면 곳간의 곡식이 바닥나고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던 전설처럼 들리는 보릿고개가 절정에 이르던 시절이다. 야생초산행은 싱그러운 풋내가 가득한 산과 들을 가로질러 첩첩산중에 위치한 두무산으로 갔다. 두무산(斗霧山·1038m)은 합천과 거창군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주변에는 1000m가 넘는 산이 몰려있는 곳이다. 맏형 격인 가야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우두산과 비계산에서 날카로운 칼날 같은 암봉을 만들었다가 두무산에 이르러 부드러운 능선으로 바뀐다. 겉모습이 합천, 거창에 몰려있는 주변 산에 비하면 특징이 없고 평범하여 찾는 사람이 적어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드물게 찾는 사람들도 다른 산을 오르며 덤으로 지나가는 곳쯤으로 여기던 곳이다. 어디가 정상인지 구분이 어려운 두무산을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정상부근으로 늘 안개가 자욱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야생초산행은 합천군 묘산면 묘산초등학교를 출발해 산제치를 지나 두무산정상을 올랐다가 산의 동남쪽에 위치한 화양리 상나곡마을로 내려선다. 출발을 묘산중학교나 묘산초등학교에서 학교 뒤 능선으로 오르면 두 길은 바로 만나게 된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언덕 풀밭에는 지금 노란 씀바귀와 고들빼기, 하얀 선씀바귀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한 번 부는 바람에 일렁거리는 꽃모습이 아름다운 군무로 바뀌고, 주변에 활짝 핀 찔레꽃에서 발산하는 향기까지 더하니 문득 주저앉자 머물고 싶다. 어린 잣나무가 자라고 있는 능선을 지나면 소나무 숲이다. 능선을 따르는 길이라 경사가 급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라 다져지지 않아 오래 걸어도 발목과 무릎에 부담이 적다. 흔히 소나무 숲이 그렇듯 다소 메마르고 척박해 자생하는 식물은 많지 않다. 하지만 때를 잘 맞추면 소나무 숲속에서만 자라는 귀한 야생화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금난초
은대난초
한 구비 휘돌아 방향이 바뀌자 길가에는 은난초가 줄지어 서있다. 은난초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식물로 산지 숲속 그늘에서 자라는데 특별히 다른 잡풀이 잘 견디지 못하는 소나무 그늘을 좋아한다. 주변에는 같은 난초과 식물인 은대난초와 꽃빛깔이 노란 금난초가 거리를 두고 여기저기서 자생하고 있다. 은난초와 은대난초는 꽃빛깔이 희고 꽃이 이삭처럼 달리는 자태가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지만 은대난초는 잎이 가늘고 꽃싸개잎이 꽃차례 보다 길어 관심 있게 보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난초는 잎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황금색으로 빛나는 꽃빛깔이 달라 꽃이 피면 쉽게 식별이 가능하다. 등산로 곳곳 오르막에는 나무계단이 놓여 있고 힘든 경사로가 끝나는 곳에는 쉬어갈 수 있는 나무의자가 마련돼 있다. 거리를 두고 묘산초등학교 학생들의 체력 단련을 위해서 마련한 안내판과 정상 2.45km를 알리는 이정표가 기다린다. 약간의 오르막이 있은 다음에 표지판이 있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 표지판을 지나고 나면 긴 오르막이 시작된다. 숲속 환경도 달라지며 건조한 숲속에서 자라는 사초과의 산거울이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긴 오르막이 끝나는 능선에 서면 높이 올라 왔다는 것을 알려주듯 환경이 또 한 번 달라진다. 숲속에는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은방울꽃과 애기나리 그리고 둥굴레가 어울려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같은 백합과 식물로 꽃피는 때가 비슷하지만 꽃의 모양과 꽃차례는 판이하다. 잎이 두텁고 윤이 나는 은방울꽃은 꽃이 아름답고 향기를 지녔지만 독이 있어 다른 두 종류처럼 먹을 수 없다. 쓰임새도 각각 달라 은방울꽃은 꽃에서 향수를 채취하고 둥굴레는 뿌리를 말려 한약재로 애기나리는 뜨거운 물에 데쳐 말렸다가 묵나물로 쓴다.
애기나리
민백미꽃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이 끝날 때까지 산속은 비슷한 환경이 연속된다. 주능선에 이르면 오도산과 정상방향을 알리는 표시판이 나타나고 정상까지 큰 오르막은 없다. 주능선의 식생도 비슷하여 백합과 식물들이 대부분이고 나무가 없는 공터에는 졸방제비꽃과 참꽃마리가 군데군데 모여서 하얀 꽃을 매달고 있다. 정상석과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설치한 삼각점이 있는 곳이 정상이다. 산 정상이 주능선보다 두드러지게 높지 않아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은 가능하나 두무산을 보기위해서는 이리저리 좋은 장소를 옮겨가며 찾아야 한다. 모자람을 채워주기라도 하듯 막 피기 시작한 병꽃나무와 바위말발도리가 산정을 지키고 있다. 하산은 진행방향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오른쪽으로 최근에 정비한 등산로가 나타난다. 시작은 급경사이나 오래지 않아 완만해지며 끝마칠 때까지 비슷한 길이 계속된다. 산속 환경은 방향이 다르고 숲이 더 울창해지며 초본보다는 진달래 같은 키 작은 나무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각시붓꽃이 있어 방향에 따라 개화시기가 다름을 알려준다. 산기슭에 이르면 임도를 만나게 되고 계속 따라가면 하산 지점인 화양리 상나곡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에는 천연기념물 제289호로 지정된 유명한 화양리가 소나무가 있다. 수령이 400년 정도 됐다는 소나무는 수세가 웅장하고 균형이 잘 잡힌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다. 집이 두서너 채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가 있어 넓은 주차장까지 마련돼 있는 것이 이채롭다. 마을에서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택시를 불러야 한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묘산면에 소재하는 개인택시 전화번호를 알아두면 편리하다. 이번 산행은 두무산의 겉모습에서 알 수 있듯 큰 오르내림이 없이 끝낸 산행이다. 다만 능선을 타고 오르내리는 등산로라 물을 구할 수 없다. 산행 거리는 12km 정도에 4~5시간이면 충분하다. /농협중앙회 진주시지부장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진주 IC > 33번국도 합천읍 금양삼거리 > 24번 국도 묘산면소재지 -88고속도로해인사 IC > 1084번 도로 분기삼거리 > 26번 도로 묘산면소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