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번동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주거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인구가 집중되었으므로 이제 이곳 주민들의 뒷동산이자 아침운동과 산책 및 휴식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오패산은 일명 빡빡산·벽오산·매봉짜 등으로도 불리운다. 먼저 빡빡산은 가운데벌리(번2동사무소 일대)에서 미아동으로 넘어가는 곳을 1950년대 말경 교원택지로 조성하
느라 나무를 모두 베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아랫벌리 남쪽 일대 산은 비교적 수목이 울창한데, 철종 때부터 벽오산이라 불리어 왔다. 벽오산은 이 곳에 오현(梧峴)이란 고개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철종비 철인왕후가 손자 김석진(金奭鎭)에게 ‘碧梧山’이란 글씨를 하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패산은 산세가 남북으로 뻗었으므로, 동서로 이어지는 고갯길이 발달되었다. 오현은 번동에서 미아삼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머귀고개'
또는 줄여서 ‘며고개’라고 칭했다. 이는 오동나무의 일종인 머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릿굴고개’는 월곡동 다릿굴에서 장위
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장위고개’라고도 하며 옛날에는 우장현(雨裝峴)이라 하였다.
오패산 지맥에서 천장산 지맥으로 이어지는 ‘마른대미고개’는 화랑로를 따라 상월곡동에서 장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이 고개를
넘으면 평지가 시작되므로 고개가 바로 끝났다는 뜻으로 ‘바로대미고개’라 불렀는데, 언제부턴가 발음관계상 ‘마른대미고개’라 불렀다고 전
한다. 이 고개 마루턱에는 동네의 재앙을 막아주는 수호신인 서낭님이 들어있는 커다란 소나무가 서 있었는데, 주택이 들어서면서 고개는 흔적조차 없어졌다.
또 성황당나무가 있는 고개 전체를 ‘푸석산’이라고 하는데, 성황당나무인 소나무가 워낙 크고 또 사철 푸르기 때문에 산 전체가 푸르러 보인
다 해서 푸석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푸석산 앞에 있는 석관동쪽 마을을 푸석골 혹은 돌곶이말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오패산 동쪽에 형성된 골짜기로 명덕골 또는 명덕동(明德洞)이 있으며 일찍이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곳은 속칭 공주릉 동남쪽의 동방
생명주택단지 일대인데, 주택지 조성을 위해 계곡을 매립할 때 ‘石芝洞’이라 새겨진 반석이 땅 속에 들어갔다고 한다. 석지동 202번지 가운
데벌리의 노인정 앞과 공주릉 입구 길가에는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있다.
오패산 기슭은 옛부터 오얏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집집마다 울타리로 삼을 정도였다. 봄이 되면 주변의 수려한 풍치 속에 오얏나무 꽃이 만
발하였다. 특히 오패산에서는 수정 등 보석이 많이 나오고, 맞은편 초안산은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려의 중신들도 이 곳을 자주
다녀갔다. 그들은 당시 ‘목씨(木氏)’ 성이 왕이 된다는 도참설이 유행함에 따라 목씨 성을 오얏나무의 이씨(李氏)로 연상하고, 이를 막기 위해
번동 공주릉 남쪽 명덕골에 벌리사(伐李使)를 배치하고 오얏나무를 벌채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마을이름이 ‘伐李’라고 불리어지다가 ‘樊里’로 고쳐졌다고 한다. 지금도 오패산 동쪽 번동의 자연부락은 웃벌리·가운
데벌리·아랫벌리라 불린다. 아직도 자연부락 이름이 사용되는 것은 대부분 군사보호지역으로 한때 개발이 제한되어 원주민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랫벌리는 정자말이라고도 한다. 정자말은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신경진의 별장이 있었기 때문에 연유되었고, 이 별장은 19세기 초
이요헌의 소유가 되어 삼벽정(三碧亭)이라 하였다. 아랫벌리는 궁말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번동 산 28번지에 조선 순조의 딸 복온공주(福溫公主)와 부마 김병주(金炳疇)의 묘가 있기 때문이며, 속칭 공주릉이라
부른다. 묘역은 200여평 밖에 되지 않으나 주위 경관이 수려하다. 묘소 입구 29번지의 창녕위궁(昌寧尉宮)은 원래 창녕위 김병주와 복온공주의 재실이었다. 창령위궁이라고 칭하게 된 것은 그 손자 김석진이 을사
조약 이후 이 곳에 은거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공주릉 남쪽 95번지에는 그 후손들이 묻혀 있는데, 그 중에는 일제강점 때 번동 자택에서 순국
자결한 열사 김석진의 묘가 있으며, 이 일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인근 주민들의 산책과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