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다. 김정일의 간첩, 빨치산들을 추모하는 전시장과 분향소가 서울 시청을 중심으로 곳곳에 들어섰다. 이런 전시장과 분향소를 설치하는 일을 허가해준 것은 어디까지나 서울시의 소관사항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최종 결정권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어떤 사람인가? 그도 역시 좌익세력의 한 사람인가? 빨갱이의 한 사람인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 벌건 대낮에 이루어지고 있다. 드디어 빨갱이 세상이 닥쳐온 것인가? 서울 시민들이여, 국민들이여, 서울이 김정일 빨갱이 세상이 되고 있는데도 침묵하려는가?
“서울 시청 광장서 '간첩·빨치산' 추모제”
서울 도심에서 「간첩·빨치산」 출신들에 대한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통일연대·민중연대를 비롯,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이하 추모연대)」라는 단체는 11일부터 16일간을 소위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주간」으로 선포하고 서울 시청 앞 광장 및 도심 일대에서 다양한 추모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단체가 서울 시청 광장 등에 설치한 전시물 및 분향소의 추모대상 500여 명 중 상당수는 건국 이후 간첩·빨치산 활동으로 실형을 받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물의를 빚고 있다.
추모대상에는 1979년 검거된 共産혁명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애국전선(南民戰)」의 주범 이재문·신향식을 비롯해 1968년 검거된 「통일혁명당(통혁당)」 간부로서 越北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던 김종태·김질락·이문규 및 최영도·정태묵 등 간첩전력자들이 포함돼 있다.
남파간첩 출신 최석기·박융서·김용성·신창길·진태윤·최남규, 빨치산 출신 윤기남·정대철· 김광길·박판수·박현채 및 인민군·남로당 활동 중 검거돼 「비전향장기수」로 복역한 변형만· 한태갑·김규호·최한석·이용운·황필구·최재필·양재영·최주백·권양섭·장광명 등도 추모대상으로 전시물 및 분향소에 기재돼 있다.
같은 명단에는 지난 해 파문을 일으켰던 경기도 파주시 보광사 「통일애국열사묘역」에 안장됐던 빨치산 출신 류낙진·정순덕·손윤규, 간첩 출신 금재성·최남규 등도 포함돼 있다.
인혁당재건위로 사형당한 도예종, 범민련남측본부에서 활동했던 신창균, 구국전위에 연루됐던 이영기, 반제동맹에 연루됐던 최동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던 利敵性단체 관계자들은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이다.
추모행사는 11일 오전 서울시청 앞 선포식을 필두로 11일~12일 같은 장소에서 전시물·분향소 설치, 13일~15일 종각역 종로타워 앞 전시물·분향소 설치로 이어지고 토요일인 16일 오후 5시 광화문 열린 공원에서는 대규모 추모제가 계획돼 있다.
소위 「민족민주열사·의인 독서 감상문 응모」는 전국 초, 중, 고교생, 일반을 대상으로 오는 11월30일을 마감될 예정이다. 전교조와 추모연대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소위 『민주 열사, 의인들에 대한 평전이나 책을 읽고 적은 감상문을 모집하여 시상함으로서 열사들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고 동시대 의인의 삶으로 민주 열사의 삶을 인식하도록 한다』는 게 목적이다.
11일 행사를 주관한 단체들은 선포식을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자주통일, 민중생존을 위해 생명마저 초개처럼 내던진 민족민주열사들의 숭고한 삶을 기리는 일은 산자들의 마땅한 의무』라며 『오늘 우리가 민족민주열사들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일은 후대들에게 열사들의 그 숭고한 정신을 물려주고 빛내려는 자랑』이라고 주장했다.
기자는 11일 오후 전시물과 분향소가 설치된 서울 시청 앞 광장 책임자에게 행사의 許可 여부를 확인키 위해 전화를 걸어보았다.
서울시 총무과 청사운영팀의 李 모 주임은 『민주열사들의 추모행사라고 하여 허가를 내줬지만, 구체적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다시 「추모대상에 간첩·빨치산 출신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음」을 설명한 뒤 허가 취소 여부를 묻자 『그런 내용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이미 허가가 내려진 상태여서 취소는 어렵다』고 답했다.
-소위 「민족민주열사 면면(面面)」
추모제가 진행 중인 소위 「민족민주열사」들의 구체적 面面은 추모연대라는 단체의 발간책자와 인터넷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이밖에도 좌익운동권이 출간한 《쓰여지지 않은 역사(김민희 著)》, 《감옥에서 죽은 비전향장기수들의 이력서(1992년 3월 월간 말지 민가협 권낙기 著)》, 《인민군 종군기자 수기 이인모(월간 말지 刊)》 및 지난 1월 소위 『파쇼독재 잔당들과 후예들에 대한 매장, 처벌, 처형』을 주장하며 북한이 보내 온 《비전향장기수 공동고소장》에는 이들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기술돼 있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소위 「민족민주열사」들 중 간첩·빨치산·인민군 출신들은 검거 후 전향을 거부하다 옥사 또는 출소 뒤 지병(持病)으로 사망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29년을 복역한 뒤 1995년 사망한 빨치산 출신 윤기남은 비전향장기수를 다룬 영화 「송환」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과 조국에 대한 임무를 마무리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나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조국의 젊은이들이 승리해줄 것을 바랍니다. 끝까지 굳게굳게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최후까지 그날까지 나아가겠습니다"
소위 「민족민주열사」 중 간첩·빨치산·인민군 출신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최남규는 1957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체포된 후 1973년 출소했다. 1999년 사망한 그는 스스로 『백두산 장군(김정일)에 대한 충성 때문에 전향하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금재성은 1956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체포돼 1972년 출소한 뒤 1998년 사망했다.
진태윤은 1962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체포돼 1988년 출소했다가 1997년 사망했다.
박융서과 김용성은 각각 1958년과 1962년,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미수로 검거돼 복역하던 중 1974년과 1980년 옥사했다.
신창길은 1959년 간첩으로 남파된 후 암약해오다 73년경 체포된 후 1983년 옥사했다.
최백근은 해방공간에서 국회프락치 공작 등을 벌이다 6·25당시 월북한 뒤, 1952년 지하당 재건 사명을 띠고 남파됐다가 위장 자수했다. 이후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목표로 한 사회당건설을 주도하다 5·16직후 사형됐다.
박판수는 남로당 항양군 군당부책으로 지하활동을 하던 중 6·25가 벌어지자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됐다. 그는 1971년 출소한 뒤 1992년 사망했다.
류낙진은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1957년 가석방됐다. 그는 출소 이후에도 통혁당 재건위, 구국전위, 백운산지구 빨치산위령비 비문(碑文)작성 등 이적활동을 계속하다 2005년 사망했다.
정순덕은 인민위원회활동을 하던 남편을 따라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1963년 체포됐다. 그녀는 1985년 석방된 후 2004년 사망했다. 손윤규는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된 후 1976년 옥사했다. 김광길은 화순군당 위원장으로 빨치산 활동을 벌이다 검거돼 1969년 출소한 뒤 1991년 사망했다.
박현채는 16세에 빨치산 활동을 한 뒤 1964년 인혁당사건에 연루돼 복역했다가 1995년 사망했다.
정대철은 빨치산 출신으로 21년 6개월간 수감됐다가 1990년 사망했다.
장광명은 6·25당시 전북인민위원회 간부로 활동 중 체포돼 1971년 출소했다가 2003년 사망했다.
최석기는 6·25당시 인민군 대위로 복무하다 체포돼 복역하던 중인 1974년 옥사했다.
김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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